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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14화 (314/346)

314.

남궁원에게 일정표를 전달한 홍기도는 그 길로 문상훈을 찾아갔다.

현재 맥베스 개발 파트를 주도하는 것은 남궁원과 문상훈이었다.

그렇기에 문상훈만 문제없다면 홍기도가 작성한 일정표가 사내 메신져를 통해 모두에게 전달될 것이었다.

“이대로 진행하면 될까요? 관건은 이관작업이 일주일 내로 마무리 되어야 한다는 부분인데요.”

홍기도가 작성한 업무일정표를 살펴보던 문상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이라…….”

“너무 촉박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삼일이면 충분해.”

“네?”

문상훈의 말에 홍길도가 화들짝 놀랐다. 나름 제반 여건들을 섬세하게 고려한 결과물이었다.

자신에게 이런 지시가 내려와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자신이 없을 정도로 타이트한 일정인데도, 문상훈은 그것을 절반 이상 단축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관 작업 따위에 시간 낭비할 여유 따위는 없어. 담당자를 하나 정해서 넘긴다.”

“그게 가능할까요?”

“다른 팀이라면 어떻지 모르지만, 칠층팀의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지 않나?”

“경험과 연륜인가요?”

“그 정도 레벨이 아니라,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직접 지시를 내리던 분들이야. 일반적인 개발자들과 같은 시선으로 그분들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실례지.”

“하지만 반감은 없을 까요?”

홍기도의 말에 문상훈은 피식 웃었다.

지난번 조팀장과의 대화 이후 그간의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마굴팀부터가 굳이 자신들의 위세를 드러내지 않고 현재의 직분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자신을 셔틀로 부리던 것은 따지고 보면 소속이 다르기에 벌어진 헤프닝이었다.

조팀장이 보증을 해준다고 했으니, 자신의 역할은 그들의 맨파워를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었다.

문상훈은 앞으로 벌어질 마굴팀 컨트롤을 상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음……. 뭔가 좀 불안한 느낌이긴 한데, 일단 확실히 일정표에 수정 사항은 없으신거죠?”

“그래. 그거면 충분해.”

“알겠습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건투? 이런 일에 무슨 건투씩이나 필요하나.”

문상훈은 이미 조팀장의 약속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에 일말의 불안감도 느끼지 않는 상태였다.

그리고 문상훈 같은 타입은 이렇게 한 점의 위기 의식이 없을 때야 말로 가장 본연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었다.

홍기도는 그 점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굳이 자신의 우려를 말하지 않았다.

*

*

*

“문상무님과 남궁원 모두 오케이 사인을 받았어요.”

홍기도는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와 자신의 업무 일정표가 통과되었음을 알렸다.

“흐음…….”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거죠?”

“너를 어떻게 굴려볼까 싶어서.”

평소라면 나는 절대로 홍기도 녀석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조금만 업무 과중의 분위기가 냉큼 꽁무니를 뺄 테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 홍기도는 여느 때와 다르게 열혈 버프가 걸려버린 상황.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상관이 없다. 정말로 자기 멋대로 구는 녀석이 이처럼 바쁠 때, 열혈 버프에 걸린 것은 정말로 다행이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을까요?”

“뭐가?”

“문상무님과 마굴팀을 묶은 것이요.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상성상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마굴팀도 너랑 비슷해.”

“저랑요?”

홍기도가 이해가 가질 않는 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에는 장난끼가 넘치지만, 필요한 상황이 오면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업무에 임하지.”

“훗, 저를 그렇게 평가하고 계셨군요.”

“아니, 이건 전제조건이고 비슷한 것은 뒤에 나올 말이야.”

“흥!”

자신이 헛물켰음을 깨달은 홍기도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뭐가 비슷한데요?”

“열성적이 되는 것은 좋지만, 결국 평소보다 힘을 내면 어딘가 삐끗하게 되잖아?”

“그렇죠.”

“이럴 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란 그 부분에 요령을 부릴 줄 아는 사람들이지.”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부분에서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야. 인간의 체력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모품이고, 너랑은 달리 마굴팀은 정말로 체력적으로는 젊은 개발자들과 승부가 안되니까.”

“그러면 더욱 큰일 아니에요? 문상무님은 제가 제시한 업무이관 날짜부터 앞당기시려고 하시던데…….”

“여기서 문상무님과 마굴팀의 캐미가 발동하지.”

“?”

“문상무님은 기본적으로 남궁원과 비슷한 성향이야. 뭐든 본인 손으로 컨트롤해야 적성이 풀리지.”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죠. 아! 잠깐만요. 설마 그럼?”

“마굴팀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지닌 노하우와 연륜으로 새로운 게임의 틀을 빠르게 잡고 업무 프로세스를 최대한 요령 있게 진행하는 거지. 그러면이관 작업 같은 부분은…….”

“이거, 문상무님 독박인 상황이네요.”

“그렇지.”

“……대표님. 문상무님께 너무 악독하신 것 아니에요?”

“누군가는 피를 봐야 하는 상황이야. 어휴, 일단 틈틈이 생각해둬라.”

“뭘요?”

“문상무님께 드릴 선물?”

정말로 나중에 조공이라도 바쳐야 할 거다. 조금만 지나면 문상훈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문상훈은 미친 듯이 크런치를 밀어붙일 것이고, 마굴팀은 요령 있게 그것들을 헤쳐갈 것이다.

그러면 결국 누군가는 그 남은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 대상은 문상훈 자신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한부장님도 중간에서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아아! 그 생각을 못했네?”

생각해보니 이거 문상훈이 아니라 한명수가 고래 싸움에 낀 새우꼴이 된 격일 수 있겠다.

“이미 지금도 마굴팀 내에서 죽어라 코딩에만 매달리고 계시던데요.”

팀을 관리하라고 보낸 부장급 인사가 정작 관리 실무는커녕 그저 코딩만 미친 듯이 붙잡고 있는 상황.

문제는 그것이 묘한 시너지가 되어 머신 라이더 개발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원래부터도 관리직 보다는 개발자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유독 강한 한명수였기에 그 자신도 현재의 상황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놓고보면 한명수는 곧 머신 라이더 마무리를 혼자 짊어져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묘하게 한부장님 건에서는 쿨하시네요?”

“사실 본인이 가장 만족하고 있을 테니까.”

안타깝게도 한명수는 본인부터가 개발자로 활동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실제로 팀장 시절까지는 그 되바라진 성격에도 불구하고 나름 두각을 나타내던 인재였지만, 정작 부장을 달고 나서는 전혀 활약을 하지 못한다.

“나중에 한명수 부장님은 기둥소프트로 이직을 제안해야겠어.”

나 개인은 한명수의 그런 기질을 높게 사지만, 맥베스 정도의 큰 조직이라면 단순히 그것만으로 인사고과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자리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해가는 것도 샐러리맨의 중요한 자질인데, 한명수의 장인 기질이 그것을 방해하는 격이다.

“그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이미 마굴팀만으로도 개발자의 연령 따위는 무의미한 분위기가 완성되었다.

아마도 한명수에게는 맥베스 같은 대기업 보다 훨씬 나은 선택지일 것이다. 복지는 다소 밀리지만, 연봉은 오히려 기둥소프트가 더 위니까, 나름 윈윈 할 수 있는 선택지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절 어떻게 굴려보실지는 결론이 난건가요?”

조금 전 내가 흘린 말을 홍기도가 주워들었다.

“하나 있기는 한데…….”

“한데?”

“네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뭔데요?”

평소라면 감당의 감자만 나와도 ‘그렇군요. 저는 물러나겠습니다.’하며 냉큼 백스텝을 시전하겠지만, 이제는 호기심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거 이번일 끝나면 이 녀석 부작용으로 한 몇 달은 건들지도 못하겠구나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감당 여부를 떠나서 일단 떠넘겨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 베데스다 오스틴 스튜디오의 핵심개발자인 로건 리치라는 사람이 마침 회사를 떠나서 새둥지를 찾고 있거든?”

“오오오! 해외 출장입니까! 좋습니다! 언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대체 이녀석 요즘 퇴근 후에 어떤 고행을 하고 있는 걸까?

해외 출장이라는 말에 캐릭터가 혼동 될 정도의 텐션을 보이다니…….

“아쉽지만 해외는 아니야.”

“그럼 뭐 성이 로씨고 이름이 건리치에요? 중간에 리라고 하는 거 봐서는 탈북민이라도 되나?”

해외출장이 아니라는 말에 대뜸 비뚤어져 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 대 쥐어 박을 까도 고민했지만, 지금 이 녀석이 고장나면 내가 너무 바빠질 것 같아서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가족들과 한국을 방문중이래. 일단은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고 그 사람만 설득하면 오스틴 스튜디오의 핵심멤버들을 죄다 영입할 수 있다고 하거든? 이거 무슨 말인지 알지?”

“이번 프로젝트의 향방이 달려있는 중요한 일이군요.”

“그렇지.”

그런 중요한 일을 너에게 맡겨야 한다니……. 내 애닳는 심정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거면……. 당당히 집에 늦게 들어가도…….”

“너 쉬린칭이랑 살림이라도 차렸니?”

“요즘엔 같이 지내죠. 아버님까지 함께 아파트 좌우 양쪽을 사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아이고야…….”

듣기만해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다. 나도 지금은 처갓집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와 조팀장의 관계는 일반적은 장인과 사위의 관계를 초월한지 한참 되었다.

게다가 인간적으로도 합이 잘 맞는 타입이라서…….

솔직히 아들들은 조연준이나 제임스 보다 내가 훨씬 더 친하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홍기도와 쉬융레이는 그렇게 돈독한 관계도 아니고…….

무엇보다 쉬융레이의 성격을 고려하면, 매끼니마다 괴식에 가까운 정력제들을 입에 들이부어야 할텐데…….

“너는 언제나 식사에 문제가 있구나.”

“인간의 3대 욕구 중의 하나가 식욕인데……. 나는……. 왜 나만…….”

혼자서 뭐라뭐라 지껄이더니 홍기도는 고개를 푹 숙이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제가 로건 리치까지 처리한다치면……. 대표님은 뭐하세요?”

“뭐하긴 새로 개발할 차기작 컨셉을 잡고 있지. 일단 2개의 게임이 서로 연동되는 형태의 게임을 고려 중이야.”

“2개요? 우리 3개 개발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홍기도의 말에 나는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3개야. 나만 그중 하나는 내가 일절 손대지 않을 거야.”

“마굴팀에게 맡길 게임인가요?”

“아니, 그쪽은 나와 함께 연동형 게임을 개발해야지.”

“아! 로건 리치가 외국스튜디오니까, 자율성을 보장해 주시려고요?”

“아니, 외부 스튜디오인 만큼 더 신경 써야지. 나는 오히려 그쪽에 붙어서 개발해야 할걸? 남은 쪽은 마굴팀이 잘 할 테니까.”

“그럼 나머지 하나는?”

“남궁원…….”

“이야~ 남궁원 많이 컸네. 대표님이 아예 일을 맡겨도 될 정도라고 생각할 수준에 올라섰군요?”

“……과 너.”

“네?”

홍기도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3개의 차기작 중에 하나는 너희 두 사람이 알아서 잘 해봐. 각자 PD와 PM으로 역할 분담하면……. 주먹 싸움까지는 가지 않길 빈다.”

“……저는 상관 없는데……. 걔도 상관 없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분위기상 제가 PM인데……. 진짜 괜찮을까요?”

회사마다 직급과 직책의 우선순위가 달라지지만, 이 경우에는 둘이 비슷한 위치에 놓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정을 담당하고 조율하는 PM이 PD의 목을 조르게 되는 일도 빈번할 테니…….

안 그래도 견원지간에 가까운 녀석들인데……. 괜찮을까 싶다.

“문제가 생기면 부사장님께 보고하도록, 이 건에 한해 너희의 직통라인은 부사장님이고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오케이! 재미있겠네요. 그럼 당장 이것부터 남궁원과 상의하고 올게요!”

“진짜 싸우지 마라…….”

“에이, 제가 여자랑 어떻게 싸워요.”

“……맞지도 말고…….”

“…….”

대답도 안 하는 거냐.

벌써부터 걱정이다.

딱히 수를 읽은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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