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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16화 (316/346)

316.

“왜 불렀어?”

남궁원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홍기도는 회의실에 도착했다.

“대표님께 연락 받았어. 너랑 같이 게임 하나 만들어 보라고 하던데?”

“들었구나. 그런데 너 지금 기존 프로젝트 마무리로 바쁜 것 아니야?”

스파이스와 머신 라이더라는 두 개의 AAA급 게임의 마무리를 담당하는 남궁원은 실제로도 정신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근래에는 아예 숙직실을 자신의 집으로 삼아 생활하고 있을 정도.

하지만 워낙에 일처리가 빠른 남궁원이 잠깐 눈 붙이는 시간을 제외하고 업무에 매진한 탓에 약간의 여유까지 부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정말로 일벌레를 넘어 일귀신이라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너 대표님한테 회사 지박령이니 어쩌니 하더니……. 정작 너야말로 너무 일에만 매달려 사는 것 아니냐?”

“난 목표가 있으니까.”

“목표?”

“그거 알아 우리 회사 역대 최연소 이사 진급자는 문상무님이었다가 현재는 표세인 대표님이야.”

“그런가? 그러면 너는 역대 최연소 이사 진급 명단을 갈아 치우겠다 이거지?”

“6년 안에만 해낸다면 가능하겠지?”

남궁원의 말에 홍기도는 곰곰이 무언가를 계산했다.

“흠……. 축하해.”

“뭘 맨날 축하한대?”

“너라면 가능할 거야. 솔직히 그렇게 길게 볼 것도 없이 한 3년 내로 가능하게 되겠지. 문제는 그때쯤이면 너는 다른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다른 고민?”

남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임원 진급을 할 수 있다면야, 고민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맥베스냐, 기둥 소프트냐. 그것이 문제로다.”

“뭐?”

“회사 규모로 보면 고민할 것도 없겠지만…….”

규모로만 본다면 당연히 맥베스 임원이 훨씬 좋을 것이다.

기동소프트는 깨비몬이라는 킬링 타이틀에 힘입어 규모 대비 엄청난 수익을 달성했지만, 그렇다고 맥베스와는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 기둥소프트……. 으음……. 만약 표세인 대표님이 간곡히 부탁하신다면 솔직히 흔들리긴 하겠네.”

표세인 팀원들 중에서 표세인에게 인정 받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은 없다.

오히려 처음에는 자신들을 기둥소프트로 불러들이지 않은 것에 살짝 실망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홍기도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표세인 대표님이 어떻게 나오느냐를 떠나서 너 스스로 고민하게 될 거라니까?”

“왜?”

“넌 정말 목표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구나?”

“뭐 인마?”

홍기도의 말에 남궁원은 욱했다. 하지만 홍기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남궁원 같은 극한의 엔티제 타입은 의외로 목표를 달성하기 까지 철저한 계산과 끊임 없는 채찍질을 아끼지 않지만, 의외로 달성한 이후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남궁원이 딱 그런 상황이었고 홍기도는 그 점을 간파했다.

“생각해봐. 네가 원하는 것이 그냥 임원 진급이 아니잖아?”

“응?”

“너만의 스튜디오를 진두지휘하며 게임을 개발하는 것 아니야?”

“그, 그렇지?”

“그러면 맥베스 같은 대기업 임원과 기둥소프트 임원 중에서 어디가 더 자유롭게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겠어. 네가 임원들 정치 싸움 같은 것에 관심이나 있어? 솔직히 잘 하지도 못하잖아.”

“……내가 잘할지 어떻게 알아!”

“모를까 봐 말해주는데, 육식동물은 풀 못 먹어.”

“…….”

홍기도의 말에 남궁원은 급히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맹점이었다.

이런 경우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단순히 자신이 현재 맥베스에 소속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임원을 다는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임원이 된 이후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기둥 소프트 쪽이 훨씬 매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건 지금 고민해봐야 의미 없는 이야기니까 본론으로 넘어가자.”

“그래. 그러자.”

남궁원은 조금 맥빠진 느낌으로 머리를 가로 저으며 상념을 털어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나중에 얼마든지 고민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남궁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너 대표님께 뭐 따로 듣거나 지시 받은 것 있어?”

아무리 자신들에게 맡긴다고는 해도 표세인이라면 뭔가 팁 정도는 던져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뭔가 고민하기 전에 홍기도에게 그것을 확인하고자 회의실로 부른 것이었다.

“있어.”

“역시 있었군.”

남궁원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은 이번 일에 한해서 완벽하게 방임주의 노선을 펼치겠다고 하셨어.”

“뭐?”

“문제가 생기거나 상담할 일이 있으면 양성태 부사장님께 상의하라고 하셨어.”

“어……. 우리 버림 받은 거냐?”

당장 마굴팀과도 새로운 방식의 연동형 게임을 개발한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상황인데, 자신들은 방임?

“아니지, 지난번에 네가 하극상 어쩌고 떠들던 때도 결국에는 이래저래 도움을 주셨었지. 이번에도 그런거겠지?”

“이번에는 완전히 다를 거야.”

“확실해?”

“응. 확실해.”

홍기도는 확신에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굳이 우리를 방임할 이유가 뭐야? 아! 혹시 너 하극상 어쩌고 떠들고 다니다가 미움 산 것 아냐? 이거 나까지 덤터기 쓴 상황이지?”

“전혀 아니지. 오히려 네 탓도 크지.”

“뭐?”

홍기도의 말에 남궁원은 살짝 발끈했다.

“네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큰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해봐. 너 스스로도 알고 있을걸? 대표님과 함께 일하기 시작하기 전의 너와 지금의 네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해?”

“음…….”

생각해보면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좀비로얄을 시작으로 오행전기와 스쿨런 그리고 스파이스에 이르기까지.

솔직히 개발부문에서만 따지자면 남궁원이야 말로 표세인의 오른팔이랄까? 직속 야전사령관이 되어 동분서주했더랬다.

그러나 그것의 대가가 방임?

이건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소 착잡한 심정이었다.

사실 그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남궁원이야 말로 가장 표세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었다.

홍기도는 거의 개인 친목 수준의 관계이고, 함송희는 팀원이라기 보다는 팬클럽 멤버에 가까운 수준.

오직 남궁원만이 표세인에게 업무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이상적인 팀원에 가까웠다.

“이거 시험이야.”

“시험?”

“그래. 이번 프로젝트로 확실히 성과를 나타내야 해. 그러면 금방 실장이든 임원이든 결과가 드러날 거야.”

“시험이라…….”

“좋게 생각하자고 다른 의미로는 우리는 이제 뒤치다꺼리까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보시는 거지.”

“다 좋은데……. 너랑 한 세트로 우리라고 평가 받는 부분이 우려스럽네.”

“하하하. 너는 결국 나를 넘어서지 못했다.”

“뭐래. 이 미친놈이…….”

홍기도의 갑작스러운 웃음에 남궁원은 또 다시 발끈하려 했지만 금세 흥분을 추슬렀다.

표세인의 뜻을 대강 알았고, 이것이 시험이라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좋아. 어쨌든 상황은 이해했어.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과 관계 없이. 프로젝트는 성공하고 봐야지.”

“바로 그렇지.”

홍기도 역시 동의했다.

“그래서 뭔가 생각한 것은 있어?”

“음……. 나부터 말해야 해?”

“생각한 것 없어?”

“솔직히……. 아직은 없네.”

근래 이래저래 바빳던 홍기도였기에 딱히 새로운 게임 컨셉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너는 어떻게 개발자라는 녀석이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을 수가있냐?”

“……저는 현재 비서입니다.”

“이번에 PM 맡는다며!”

“아직은 정식 발령 전이고……. PM은 개발보다는 매니지먼트에 신경을 써야지.”

“말은 잘하네.”

“아무튼 극딜 그만하고 네 패나 까봐. 그리고 일단 우리 같은 편이거든? 대표님도 싸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셔서 지금 나도 열심히 참고 있는 거야.”

“알겠어. 일단 이것들 보면서 이야기하자.”

남궁원은 자신의 타블렛을 홍기도쪽으로 돌려주었다.

“뭐냐 이거?”

“내가 그동안 생각해 놓은 컨셉과 아이디어들.”

“……무슨 소설 쓰냐? 이거 페이지가 너무 많은 것 아니야?”

“그냥 틈날때 마다 끄적인거야.”

“너는 기획서를 끄적이면서 쓰냐? 이거 거의 컨셉 기획서 수준이잖아?”

홍기도는 말도 안되는 분량의 컨셉 노트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남궁원이 일에 미친 것은 알았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쳤다.

분명 표세인이라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퇴근하면 할 것도 없잖아.”

“연애라도 해!”

“귀찮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똑바로 훑어봐. 그 안에서 건질만한 것이 있으면 시간을 상당히 단축할 수 있잖아.”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것의 가치가 고작 시간 단축 정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척 남궁원다웠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좋고 더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해도 상관 없다는 태도.

그녀에게는 무조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겠다는 포부가 최우선이었다.

“가만……. 이거 흥미롭네? 너 이런것에 관심 있었니?”

“아! 한동안 오행전기 개발하면서 중국시장을 조사했잖아. 그때 그쪽으로 머리가 돌아가더라고…….”

“흥미롭네. 다른 것보다 일단 표세인 대표님의 공략포인트가 글로벌 시장이잖아? 하지만 이건 중국시장을 핀포인트로 노린 거잖아?”

“그렇지. 매출로만 보면 중국에서만 대박나도 글로벌 시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니까.”

“난 이게 끌린다.”

“네 말 들으니까. 더욱 괜찮아 보이네.”

홍기도가 고른 것은 중국 시장을 타겟으로 삼은 게임이었다.

전란에 휩싸인 고대 중국에서 한 선인이 자신이 만든 진법 안의 도시에 피난민들을 받아들여 도시를 부흥시킨다는 내용.

기본적으로는 건설 시뮬레이션이지만, 외부의 위협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소수의 무인들을 육성하는 육성시뮬레이션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킬링타임이지.”

“그렇지. 유저들의 시간을 많이 붙잡는 것이 핵심이니까.”

흔히 게임을 마약이라고 부르지만, 시뮬레이션 장르는 그 중에서도 진짜 마약에 버금가는 중독성을 지닌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축구 감독 시뮬레이션 게임을 이혼사유로 인정할 정도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그리고 이거라면 나도 조금 힘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네가 무슨 힘을 쓸 수 있는데? 초능력이라도 깨우쳤냐?”

“거의 초능력에 가깝지.”

“뭔 헛소리야.”

남궁원이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나에게는 쉬린칭이라는 중국 시장 한정 무적의 치트키가 있지.”

“아!”

남궁원은 그제서야 홍기도의 여자친구가 쉬린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카이두의 지원도 받을 수 있겠는데? 어차피 중국내 서비스는 카이두와 손을 잡고 진행해야 하니까.”

“그렇네. 생각해보니 이거 확실히 좀 승산이 있을 것 같네.”

“일단 그러면 시뮬레이션 장르 조사 좀 해볼까? 나도 전에 조팀장님과 매지션 크레프트 개발할 때 모아둔 자료가 있어.”

“그거라면 찾을 필요 없어.”

“응?”

“내가 그것들 포함해서 새로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거든.”

“……너 진짜 일 중독이다. 병원 좀 가봐라.”

“……뒤질래?”

남궁원은 도끼눈을 떴다.

쨍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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