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17화 (317/346)

317.

연아가 회장에 취임한 이래 처음으로 직원들에게 상당한 난제를 던져준 상황.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시작인 덕분에 생각처럼 바쁘지는 않았기에 나와 연아는 주말을 맞아 우리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내가 오빠를 너무 바쁘게 만든 거지?”

“응? 아니야. 그 정도는…….”

물론 갑작스럽게 만만치 않은 지시를 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직급이 깡패라고 예전 회사와 비교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연동형 게임은 마굴팀과 함께 개발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세부 일정 계획을 문상훈과 조팀장이 맡아서 기획 중인 덕분에 당장 나는 예상보다 한가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주말에 연아와 함께 시간을 보낼 여유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왜? 이제와 걱정돼?”

“솔직히 처음부터 좀 우려스럽기는 했지.”

“회장의 입장에서는 때로 직원들에게 높은 목표를 요구할 때도 있는 법이지. 그렇다고 금전적인 지원을 안 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당장 로건 리치를 중심으로 한 새 스튜디오까지 영입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던가?

이것만으로도 금전적으로 상당한 투자다.

많은 오너들이 요구만하고 지원은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고려하면 이 정도면 정말로 준수하다.

“그냥 오빠를 믿고 너무 버거운 요구를 한 건 아닐까 싶어서.”

“내가 아니었다면 요구 사항이 달랐을 거란 의미야?”

“그럼. 표세인이 아닌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까지 요구하겠어.”

“하하하. 그건 좀 기쁘네.”

단순히 남자 친구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개발자로써 회사 오너에게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나?

이것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걱정마. 아직 시작 단계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도 잘 될 거라고 생각해.”

“본인들이 담당하던 프로젝트 마무리를 다른 곳에 넘기는 것……. 그거 개발자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 아니야?”

“사람에 따라서 그 럴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을 반기는 사람이 많을 걸?”

“그럴까?”

“너도 아직 개발자들의 마음을 모르는 구나. 보통은 새로운 게임에 대한 흥미가 훨씬 높은 법이야.”

“그랬으면 좋겠네. 부디 다른 개발자들도 의욕을 낼 수 있도록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길 바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걱정 놓으시죠.”

“고마워…….”

연아가 힘없는 미소로 대답했다. 뭐지? 오늘 따라 유독 힘이 없어 보이는데?

“몸이 안 좋아?”

“음……. 딱히 어디가 안 좋다는 느낌은 아닌데, 뭔가 힘이 좀 없네.”

“멀미 기운이 있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연아는 정말로 기운 없어 보이는 얼굴로 시트에 몸을 파 묻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분명 연아가 아침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저기압형 인간이기는 하지만, 이미 잠에서 깬지 한참 된 지금까지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잠시.”

나는 손을 뻗어 연아의 이마 위로 가져갔다. 살짝 따뜻하긴 한데, 굳이 열이 난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살짝 멀미 기운이 오는 가봐.”

“잠깐 차 세울까?”

“아니야. 거의 다 왔잖아. 도착하면 내릴 건데 뭐.”

연아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래. 어서 가자.”

“그렇다고 막 밟지는 말고.”

“내가 막 밟는 것 봤어?”

“하긴 오빠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안전 운전 신경 쓰는 타입이지.”

기껏 열심히 운동하며 건강한 몸으로 만들어 놨는데, 운전으로 명줄을 줄이면 그것만큼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게다가 운전이란 나 혼자 다치면 다행이고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안전 운전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래. 조금만 참아.”

그렇게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부모님 댁을 향해 차를 몰았다.

*

*

*

“우리 연아 왔구나!”

“어머니!”

연아의 모습을 발견한 엄마가 활짝 웃으며 반기자, 연아도 마주 웃었다.

“너 어디 몸 안 좋니? 뭔가 안색이 살짝 파리한데?”

“조금 멀미했나봐요. 원래 멀미 같은 것 잘 안 하는데…….”

“음…….”

연아의 말에 엄마도 뭔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혹시 요즘 식사할 때 속이 더부룩하거나 거북스럽니?”

“네. 며칠 전부터 좀 그러네요.”

요즘 연아와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해서 그것을 몰랐다.

원래도 연아가 아침식사를 종종 거르는 탓에 나와 조팀장 둘 이서 식사를 하는 탓도 있었지만, 근래 바쁜 일정으로 저녁 식사도 회사에서 해결하고 집으로 복귀하는 탓에 정말로 연아의 상태를 감지하지 못했다.

“너는 몰랐어?”

아버지가 대뜸 나를 보며 물었다.

“……네. 부끄럽게도.”

“진짜 부끄럽구만.”

아니, 내가 말했는데, 굳이 반복하실 것까지는 없잖아요.

“일단 앉자.”

“네.”

어머니는 연아를 거실에 앉혔고 그 사이 아버지는 담요를 가져와서 연아의 무릎 위에 덮어주었다.

“연아야.”

“네.”

“너 어쩌면 애들어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네?”

“너도 들은 이야기가 있을 것 아니니. 지금 네 반응이 딱 그런 느낌 아니야?”

엄마의 말에 연아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지금 대충 상황을 전해 들은 나 조차도 그것을 의심하게 되는데, 직접 겪고 있는 연아가 그것을 모를리는 없다.

“이럴 때가 아니다. 병원에 한 번 가보자.”

“갑자기 병원이요?”

“이런 건 빨리 알아야 알맞은 대처를 하지.”

“그, 그렇죠.”

나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연아가 만약 임신을 했다면 앞으로 신경 쓸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연아는 지독한 하드워커다.

솔직히 나도 남들에게 일벌레 소리 듣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집까지 일감을 가지고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아는 달랐다.

연아는 일과 삶의 경계가 너무 없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항상 일감을 손에 쥐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맥베스 창립이래 최대의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하는 덕분에 더더욱 몸이 고달픈 상황이다.

“그……. 그렇지만 만약 아니면…….”

“아니면, 아쉬운 거지. 너희 모두 젊은데, 아이야 언제고 생기겠지. 그보다는 당장 아이가 들어선 것을 모르고 있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낫지 않니?”

엄마의 말에 연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연아는 지금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병원까지 가는 소동을 피웠는데, 만약 아무 일도 아니었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연아는 기본적으로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의지가 너무 강하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일에도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연아야.”

“네. 어머니.”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것은 오직 아이야. 만약 아이가 생긴 거라면, 그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

엄마의 말을 들은 연아는 슬쩍 몸을 일으켰다.

“네. 제가 너무 어른스럽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원래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진짜 어른이 되기 어렵지.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언제 느끼겠어.”

“……어른이 되어야 겠어요.”

연아는 뭔가 사명감이라도 느낀 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로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축하합니다. 6주차에 접어드셨습니다.”

“…….”

아…….

이런 거구나.

갑자기 머리를 한데 맞은 것처럼 띵한 느낌. 기쁨과 환호보다 정말? 이라는 느낌이 더 컸다.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연아도 마찬가지인 듯 그녀도 말없이 그저 내 손을 꼭 붙잡을 따름이었다.

“우선 과도한 업무는 가급적 삼가셔야 할 거라는 정도는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입덧이 조금 있으신 것 같은데, 보통 14~16주까지는 입덧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조금씩 가급적 자주 식사를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일부 유럽국가는 소량으로 하루 5끼니를 먹는 것이 습관화되어 입덧이 우리 보다 더 적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의사는 뭐라 뭐라 임산부가 주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운전과 운동 등에 대한 문제부터 신발 사이즈에 관한 조언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나는 될 수 있으면 그것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제대로 머릿속에 박힐 지가 걱정이었다.

“뭐라고 하든?”

병원 대기실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부모님이 다그치듯 물었다.

“임신 6주차래요.”

“어머!”

엄마는 너무 기쁜 나머지 한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남은 손으로는 아버지의 팔을 탁탁 두들겼다.

“넌 표정이 왜 그러냐?”

“제 표정이 왜요?”

“뭔가 넋이 나갔는데? 인마. 놀란 것은 연아일텐데 너는 춤이라도 춰서 연아 기분을 맞춰줘야지.”

“제가 춤춘다고 연아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고요. 솔직히 놀란 것은 사실이에요. 그치?”

“응.”

“내년에는 엄마가 되겠네.”

나와 연아는 그제서야 서로의 멍한 얼굴을 확인하고 웃음이 터졌다.

“오빠는 이제 아빠되네.”

“결혼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아기한테 혼나는 느낌이다.”

“그렇지?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그래! 이럴 때가 아니지. 너희는 이 길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렴.”

“아니, 모처럼 왔는데 식사라도 하지 않고요?”

“연아는 지금 자기 집 아니면 어디라도 불편할 거야.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할 일이 있어. 여보. 가요.”

엄마의 말에 아버지도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간다. 너희도 서둘러 집에 돌아가라. 안전운전 같은 이야기는 안 해도 되지?”

“솔직히 안전 운전은 저보다 아버지가 신경 쓰셔야지요.”

“하하하, 30년 무사고 경력자에게 무슨 헛소리냐.”

아버지는 당치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 우린 간다. 연아야.”

“네. 어머니.”

“앞으로 고생이 심할거야. 마음 단단히 먹어.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 말하고, 이건 너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 기억하렴.”

“네. 감사해요.”

“좋아. 여보 가요!”

“애들아 나중에 보자.”

그렇게 엄마와 아버지는 우리를 남겨두고 먼저 병원을 벗어나셨다.

“정신 없지?”

“솔직히……. 꿈이라도 꾸는 심정이야.”

“아까부터 계속 고민했던 건데…….”

“응?”

“이런 상황에서 축하한다고 해야 할까?”

“풋, 그러네. 뭔가 어색하네.”

내 말에 연아는 피식 웃었다.

“역시 이건 너와 내가 대상이 아닌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살짝 몸을 숙여 연아의 배를 바라보았다. 이 안에 우리의 아이가 생겼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환영한다. 친구. 앞으로 잘 부탁해.”

“뭐야. 그게, 크크큭!”

내 말에 연아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어서 장인 어른께도 이 말씀을 드려야지.”

“그래야지. 아빠 많이 놀랄까?”

“글세? 막상 우리 동거도 하는 셈이니, 그렇게 놀라지는 않으시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복귀했다.

*

*

*

“뭐야, 왜 벌써 왔냐?”

집무실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거실로 나온 조팀장은 우리에게 대뜸 질문했다.

“장인어른.”

“어허, 갑자기 왜 또 장인어른이래. 무슨 일 있냐?”

정수기에서 물을 따른 조팀장은 살짝 목을 축이고는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이 이상은 무리다. 욕심들 버려라.”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게 아니면 뭐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생각 난거냐? 문상훈이가 아주 게거품을 물겠구만.”

“그게 아닙니다. 저희에게 아이가 생겼어요.”

-쨍그랑!

어? 이건 예상과는 너무 다른 반응인데?

아이 이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