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22화 (322/346)

322.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예식장을 섭외했음에도 불구하고 객석에 앉을 수 없는 인원들이 절반은 될 것 같았다.

“축하합니다.”

“정말로 축하드려요.”

사람들의 끊이지 않는 축하 세례에 대체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인지, 얼굴에 쥐가 날 것 같다는 표현을 오늘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돈은 없어도 사람 좋은 것으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아버지 덕분이랄까? 신랑쪽 하객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상황은 반대였다.

회사 직원들까지 결혼식에 초대하는 것은 좀 그럴 것 같아서 일부러 평일로 잡았는데도 가게 문을 닫고 일부러 이곳까지 발걸음을 해주신 부모님 지인들 덕분에 신랑쪽 하객석은 일찌감치 만석이었다.

호텔 예식이라서 넓은 홀이라도 실제 테이블 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층에 따로 마련된 연회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예식을 관람해야 했다.

이것이 조금 미안했지만, 정말로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올 줄은 몰랐다.

“표사장. 드디어 그간 쏟아부은 축의금 회수하는 구만.”

“그러게 말이야. 그동안 이 굼벵이 같은 녀석이 하도 결혼식을 미뤄서 걱정이었는데, 말이지. 하하하.”

“그런데 처가가 그렇게 부자라며?”

“처가만 부잔가? 이제 이 녀석도 돈 많아.”

아버지는 지치지도 않는지, 다가오는 하객들 마다 큰 웃음으로 환대했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부모의 저력이라는 것이겠지.

어쩌면 나보다도 더욱 기쁘신 것 같다.

“축하한다. 드디어 너도 결혼이구나. 이제 진짜 몇 안 남았네.”

“그렇지. 좀 늦긴 했지.”

오랜만에 보는 친구 녀석들도 제 가족들을 동반해서 얼굴을 비췄다.

지금까지는 내가 저 위치에서 짧은 축하를 보내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축하 받게 되니 당시에는 몰랐던 결혼한 친구들의 고뇌가 절로 실감이 난다.

“부회장님.”

“아! 오셨군요.”

“하하하! 오늘 따라 신수가 더욱 훤하시군.”

양성태와 문상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죄송한 느낌이네요. 이렇게 바쁜 시기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이것이 얼마나 큰 경사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경사라……. 좀 버거운 단어네요.”

“부회장님의 향후 거동에 대해 우려하는 임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혈연으로 묶였다는 것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르실 겁니다.”

“그럼. 그럼. 게다가 덕분인지 주가도 들썩이고 있고 말이지. 단순히 결혼식으로 회사 주가를 올리다니……. 우리 부회장님은 정말로 이 회사의 기둥이란 말이지.”

“하하하. 이제는 가정의 기둥이 되어야죠.”

“하하, 그러지 말라고 할 수도 없겠네.”

문상훈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양대표는 축의금 얼마나 준비했나?”

눈을 가늘게 뜨고 양성태의 표정을 훑는 문상훈. 그 속내를 읽은 양성태가 싱긋 웃으며 얇은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변변찮은 마음만 담았습니다.”

“흐흐흐. 그렇군.”

문상훈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아니, 축의금 봉투를 저렇게 빵빵하게 채워서 가져오는 일도 있나?

보통 액수가 크면 수표로 해결하지 않나?

“흐흐흐…….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이겼군.”

문상훈은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봉투는 그거 하나입니까?”

“어? 그럼 당연히 하나지…….”

“부회장님과 회장님. 두 분의 결혼식입니다만?”

양성태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또 다른 봉투를 꺼내 들었다.

“아……. 아니, 그래도 우리는 같은 팀이니……. 부회장님 쪽 하객인 것 아닌가?”

“회장님도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좋겠군요.”

양성태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두 개의 봉투를 흔들었다.

“하, 하지만……. 이건 두 명 몫을 하고도 충분한 액수라고! 아마도 내가 가장…….”

문상훈이 무언가 억울한 심정을 드러내려했다. 하지만 그때.

“표세인 부회장.”

“아!”

마침 마굴팀 팀원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어? 그런데 신부측 하객으로 오신 것 아닙니까?”

“맞아. 그쪽에는 벌써 인사했지. 그리고 신랑측 방명록은 어딘가? 거기에도 기록은 해야지.”

“아니, 한쪽만 하셔도 되는데…….”

“그건 도리가 아니지.”

“끄응…….”

한순간에 도리를 잊어버린 사람이된 문상훈은 짧은 신음을 흘렸다.

“뭐 돈들이야 남부럽지 않겠지만 그래도 주는 사람 성의도 생각해서 너무 타박하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군.”

“아이고 별말씀을…….”

“축의금은 계좌로 쏘도록하지.”

“네? 계좌요?”

계좌라는 말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요즘 세상에 계좌 이체로 축의금을 보내는 일이야 흔하지만, 굳이 결혼식장을 방문했는데 계좌로 입금한다고?

“뭘 그리 놀라나. 그리고 그 정도 금액을 들고 다닐 수는 없지 않나?”

“네?”

대체 얼마를 하시려고……. 아니, 액수 자체 보다는 문상훈이 너무 눈에 띄게 기가 죽는 것이 안쓰럽다.

그러나 애초에 저 멤버 중에 한명이 무려 맥슨 전 회장인 백용현이 아니던가?

액수로 싸우기에는 감당이 안되는 괴물이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 역시 창업공신으로 맥베스 주식을 몇 %씩 들고 있는 이들이다.

돈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이다.

“그냥 재미있는 경험 시켜줬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우리들 연봉 토스했다고 생각해.”

“여, 연봉이요?”

근래 게임 개발자 연봉이 가파르게 오른 것도 있지만, 이 분들의 경력도 경력인지라 누군가에게는 깜짝 놀랄만한 연봉을 책정했는데…….

그걸 축의금으로 돌려준다고?

“그, 그건 너무 큰데요.”

“그냥. 받아. 그리고 나중에 내 손자들 결혼식 때 돌려주면 되지. 축의금이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닌가.”

“그, 그렇긴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많다.

“하하하. 놀라는 표정 보니, 제 이야기가 맞았죠? 놀랄거라니까요?”

“그래. 다른 선물 보다야 이쪽이 낫지.”

회사에서는 워낙 격이없이 지내서 잘 몰랐는데……. 역시 이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문상훈도 상당한 액수를 준비한 모양인데, 풀이 죽은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겠나? 하필이면 이런 괴물들이 곁에 있는 것을…….

하지만 축의금 경쟁의 최종 승자는 이들이 아니었다.

“축하드려요! 부회장님!”

다름 아닌 쉬린칭의 등판이었다.

“아, 신부 대기실에 계시던 것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지금까지 함께 있다가 잠깐 인사드리러 온 거에요.”

“그렇군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죠. 그리고 제 선물은 언니에게 말씀드렸어요. 어차피 두분 공동명의가 될테니, 언니에게 드려도 되는 거겠죠?”

“고, 공동명의요?”

이름부터 불길하다.

무슨 축의금 이야기에 갑자기 공동명의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동남아에 제가 따로 사용하는 별장이 있는데, 두 분은 신혼여행도 한참 뒤에 가실 것 같으니 그때라도 사용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벼, 별장?

축의금으로 별장을 준다고?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쉬린칭이다. 그녀가 말하는 별장 수준이라면 분명 엄청난 대 저택 수준일 것이 틀림 없다.

물론 동남아권 땅값이 한국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유명 휴양지라면 그래도 상당한 가격이 아닐까?

대체 이 사람들 나중에 뭘 받아내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으음……. 감사하긴 한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쉬린칭에게는 곧 갚아야 줘야 할 테니, 마음이 가볍지는 않군요.”

“하하하! 선물은 액수 보다는 마음이죠. 그리고 걱정 마세요. 제 선물은 언니가 알아서 해주시겠죠.”

쉬린칭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신랑분. 이제 준비하시죠.”

업체 측 진행요원이 슬쩍 다가왔고, 나는 그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

*

*

“신랑 입장.”

잔잔한 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박수 세례 속에서 주례석까지 걸어가는 길은 생각 보다 길게 느껴졌다.

막상 가슴도 살살 일렁이는 것이 묘한 고양감이 느껴진다.

의외인 것은 막상 식이 시작되니 다소 굳어 있던 미소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식이 시작되니 긴장이 풀린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주례석에 도착하여 좌우 하객석을 향해 공손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다음은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와…….”

“너무 예쁘다.”

내가 등장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순백의 드래스 자락을 이끌며 등장하는 연아의 모습.

그리고 연아의 손을 이끌며 다가서는 장인어른의 모습은 여느 때와는 다른 격정이 느껴졌다.

지난번 연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난 이후 부쩍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일이 많아 지신 것 같다.

‘예쁘네.’

‘알아.’

‘진짜 예쁘다.’

‘안다니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실풋 눈 웃음을 지었다.

비로소 이 사람과 이제부터 평생을 함께 하는 거구나.

앞으로 우리가 일생의 동반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주례 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하도 고집을 부린 탓에 어쩔 수 없이 사회를 맡겼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평소와는 다르게 젊잔게 사회를 맡고 있는 홍기도였다.

녀석의 안내와 함께 주례석에 서있던 연아의 대학교 교수님은 울림이 좋은 목소리로 다소 평이하다면 평이한, 한편으로는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삶의 격언들을 들려주셨다.

“이것으로 주례를 마치겠습니다. 너무 길면 지루한 법이니까요.”

“하하하.”

주례선생님이 마지막에 던진 짧은 농담에 작은 웃음 꽃이 피었다.

“그럼 반지 교환이 있겠습니다.”

나는 홍기도의 지시에 따라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있던 반지를 꺼냈다.

연아의 가느다란 손에 막힘 없이 반지가 들어갔다.

“다음은 축복 된 오늘이 있기까지 아낌 없는 사랑으로 길러주신 양가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먼저 신부측 부모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나와 연아는 계단을 내려와 장인어른 앞에 섰다.

“사위 표세인군과 딸 조연아양을 따듯하게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장인어른이 나에게 다가와 어색한 표정으로 품에 안고 에머리 역시 연아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것을 신부 가족 석에서 앉아서 지켜보던 제임스와 조연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돌이켜 보면 처가댁과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문제 없이 한자리에 모이게 될 정도까지는 되었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로 노력은 해야겠지만, 그래도 내심 뭉클한 심정이었다.

“연아를 잘 부탁한다.”

“네. 장인어른.”

“이제야. 네 입에서 나오는 장인어른 소리도 어색하지가 않구나.”

“그런가요? 상당히 오래걸렸네요.”

“돌이켜 보면 순식간이지.”

그렇게 우리는 짧은 대화를 끝으로 우리 부모님쪽으로 이동했다.

“우리 연아. 이제 진짜 가족이 되었구나.”

“감사해요. 어머님.”

조금전에도 그렇지만 연아는 딱히 눈물을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슬플 일은 없다. 결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크지 않을 테니까.

연아도 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신 내빈께 양가의 가족을 대신해 신랑 신부가 감사의 인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신랑신부 내빈께 인사! 힘찬 박수로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기도는 이번에도 의젓하게 준비된 멘트를 날렸다.

우리가 하객들을 향해 인사하자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원래는 제가 이런 저런 장난을 하려고 했습니다.”

홍기도의 말에 또 한번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감정이 복받쳐서……. 도저히 장난을 못 치겠어요. 두 사람 부디 행복하세요. 꼭이에요. 흑.”

정작 연아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홍기도 녀석에 대뜸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너, 너는 갑자기 왜 이러냐?

“두 사람 진짜 행복하셔야 해요. 잘 하실 것은 알지만, 정말로 꼭이에요.”

홍기도의 울먹이는 말에 결혼식 중에서 가장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맙다. 기도야.’

나는 눈빛으로 기도에게 감사를 전했다.

용사 파티 결성! [완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