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게임 업계는 PC보급과 함께 빠르게 성장했고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로 기하급수적으로 체급을 불려왔다.
이후 그래픽 기술이 발달이 더해지면서 영화와 스포츠 같은 비교적 오랜 역사를 지닌 강력한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차례로 넘어서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구축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이 게임 업계를 선도해온 것은 미국과 일본이었다.
PC게임을 선도하는 것은 미국.
콘솔게임을 제패한 것은 일본.
이렇게 구축된 양강체제에서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한국과 중국이었다.
MMO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한국과 모바일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중국.
먼저 두각을 나타낸 것은 한국이었지만 중국의 카이두는 거대한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해외의 유망 개임 개발사들을 흡수하며 덩치를 키워 세계 1위의 공룡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모바일 시장의 약세와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개발 양상만을 답습하며 점차 뒤처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시장은 완전히 바뀌었다.
맥베스.
AAA급 게임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차별화된 클라우드 시스템을 앞세워 그야말로 제 2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엄청난 성장세로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을 완전히 접수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맥베스의 CEO 조연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기업인이며 여성으로는 최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그녀는 탁월한 사업수단으로 20대의 이른 나이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장직에 올라 맥베스 황금기의 막을 열었다.
맥베스의 역사는 한국 게임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
초창기 한국 게임 시장의 첫 번째 황금기의 주역이 1대 회장인 조양길이라면, 두 번째 황금기의 주역은 단연코 조연아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외부에 알려 질대로 알려진 이야기처럼, 그녀는 개임 개발 자체에는 거진 문외한이라는 점이었다.
과거 게임 개발에 문외한이었던 경영전문가들이 게임개발사를 운영하면서 발생한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개발은 전적으로 개발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업에만 매진할 뿐임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경영방침은 현재에도 수많은 게임사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적고 보니 엄청난데…….”
게임 칼럼리스트 임형준은 자신이 작성하던 칼럼 초고를 되짚어보며 혀를 내둘렀다.
10년전 중국의 폐쇄적인 게임시장 운영방침이 변화하며 절대적인 아성을 자랑하던 카이두의 위상도 예전 같이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차에 대자본에 힘을 얻은 북미와 유럽의 게임회사들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규모를 키웠다.
이제는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전면 창을 이용해 주행 중 게임을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해졌고, 그만큼 게임 시장의 규모는 과거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과거부터 테슬라와 긴밀한 관계가 있던 맥베스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앞세워 이러한 자율주행 자동차를 비롯한 유비쿼터스 형태의 게임 문화를 선도했고 혼란한 게임 시장의 절대적인 패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현재는 카이두를 매입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거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대박일 텐데…….”
과거 인터넷 사이트 하나를 손에 쥔 회사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 될 거라 예상하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게임 회사 하나가 세계 정상급 공룡기업이라는 것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돈이 된다는 것은 수십 년 전부터 당연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게임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맥베스가 카이두를 삼킨다면……. 아니, 독점방지법을 들먹이며 세계 각국이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이니……. 이건 안될 이야기려나?”
임현준은 머리 뒤로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몸을 뉘었다.
“역시 핵심은 기둥소프트인가?”
임형준은 맥베스의 사내 조직도를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과거에는 맥베스 소속 스튜디오 중에서 개발로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고 하는 기둥소프트.
하지만 오래전부터 맥베스 산하 투자전문 기관으로 변모되어 버렸다.
조연아 회장의 오빠라고 알려진 투자전문가 제임스의 활약으로 맥베스의 보급창고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
그가 성공시킨 투자들로 인해 마르지 않는 금맥이 되어버린 기둥소프트의 자금 조달능력은 맥베스가 지닌 최고의 무기 중에 하나였다.
과거 모바일 운영체제 회사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스토어의 힘으로 게임 개발사들에게 갑질을 하던 시대도 끝난지 오래였다.
맥베스 클라두으를 자신들의 모바일 스토어에 입점하기 위해서 아예 설설기는 상황.
이미 수많은 모바일 기종들이 난립하고 운영체제 역시 과거의 양강체제를 벗어나 수많은 제품들이 우후죽순 모습을 드러냈지만, 반대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중심으로 뭉친 맥베스의 파워는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 재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맥베스가 유저 친화적인 기조를 유지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에 자신들에게 방해가 된다 싶은 것들은 철저하게 박살내며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의 패자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 맥베스가 카이두까지 삼킨다.
괜히 세계 각국들이 독점방지법 운운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다른 경쟁 개발사들도 눈치를 보고는 있지만 내심 걱정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었다.
“게임 업계가 너무 대기업 위주로 굴러가도 재미 없는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인개발이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이런 일인개발자들이 맥베스의 투자를 받아 스스로 하위스튜디오가 되고자 발버둥을 친다.
맥베스 클라우드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임이 요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으니까.
“과연 어찌될는지…….”
칼럼리스트 이전에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임형준은 목을 긁적이며 다시금 뉴스 기사를 훑기 시작했다.
*
*
*
“좋은 말할 때, 이쯤에서 사인해라.”
맥베스의 현 CEO인 남궁원은 한쪽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이 인상적인 여장부 유형의 인물이었다.
맥베스 내부에서는 암암리에 미친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녀였다.
여전히 젊은 시절의 패기와 열정을 잃지 않은 그녀는 맥베스의 황금기를 주도한 스타 개발자이자, 조연아 회장의 오른팔이라는 막강한 입지를 내세워 사원들에게 존경과 공포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지 말고 일단 차부터 한잔하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열 내는 것 아니야?”
반면 그녀 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은 홍기도.
과거 맥베스 부대표까지 역임하고 이제는 카이두의 회장이 된 남자.
갑작스럽게 변화한 중국 시장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탓에 공산당의 미움을 사 휘청이던 카이두를 정상궤도로 돌려놓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내가 너를 모르냐? 또 요상망측한 궤변으로 수작 부릴 것이 뻔하지. 일단 사인부터해. 이야기는 그 다음이다.”
미친개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으르렁대는 남궁원을 앞에 두고도 홍기도는 무척 평온한 얼굴로 차를 음미할 뿐이었다.
“좋네. 올해는 차 농사가 잘 되었어.”
“미친놈, 누가 보면 니가 농사지은 찻잎인 줄 알겠다.”
“내 밭에서 나온 것 맞는데?”
“……그지 같은 갑부새끼…….”‘
다른 것보다 홍기도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간과한 자신에게 화가 나서 남궁원은 한 번 더 으르렁거렸다.
“그보다 너 무슨 브릿지냐? 염색할 거면 전부하지, 왜 거기만 남겨둔 거야?”
“그냥 여기만 이런 거야. 염색 자체를 안 했어!”
“한번 해라.”
다른 것은 몰라도 잔주름 정도를 제외하면 나이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홍기도에게 이런 지적을 받는 것이 화가 났다.
대체 이 녀석은 나이도 안 먹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뭐하러? 내가 이 나이에 멋 부리고 다닐 일 있어?”
“멋 부려야지. 그래야 남편에게 사랑 받지.”
“내 남편은 내가 벌어오는 돈 만으로도 넘칠 만큼 나를 사랑한다. 그러니 헛소리 말고…….”
“그런데……. 그 이야기 들었어? 표세인 형님.”
“뭐?”
갑자기 튀어나온 표세인이라는 단어에 남궁원이 움찔했다.
“꼴을 보아하니, 전혀 모르는 것 같구만. 가끔 연락은 해라. 같은 나라에 있으면서.”
“으음……. 가끔은 한다. 그리고 나는 일단 조회장님과 붙어 살다시피 하거든?”
“그거랑 표세인 형님에게 연락 안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 아니냐?”
“으음…….”
“아직도 함송희 일로 화가 난거냐?”
“윽!”
함송희라는 말에 남궁원은 이를 악물었다.
과거 기획팀에서 동고동락했던 전우의 이름에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박차고 떠난 표세인. 그리고 함송희는 그의 제안을 받아서 함께 떠났다.
당시에는 솔직히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왜 자신은 부르지 않고 함송희만 데리고 나가는 것인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함송희와는 여전히 좋은 친구사이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 켠에 남은 서운함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 그래서 요즘 뭐하고 지내신다는데? 무슨 도장깨기처럼 개발사들 유랑하면서 개발 도우미 노릇은 제법 오래전에 그만두시지 않았어?”
“새로운 회사 차렸어.”
“뭐? 이제 와서?”
애초에 회사를 차릴 생각이었다면 기둥소프트를 통째로 맥베스에서 분리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나?
“아니 갑자기 왜?”
“저번에 만났는데……. 맥베스와 카이두가 손을 잡으면 너무 거대한 존재가 된데.”
“그, 그건 그런데……. 아니,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악의 무리도 아닌데……. MMA정도야 늘상 있는 일이잖아.”
“그래서 한판 붙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붙어? 우리와?”
“이대로 끝나면 억울해서 안 되겠데.”
“뭐가 억울한데?”
“자기는 원래 용사 포지션이고 마왕은 선대 회장님이었으니, 이제는 조연아 회장님이 마왕…….”
“엥?”
남궁원은 황당함을 너머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체 지금 자기들 나이가 몇인데 이런 말을……. 아! 생각해보면 선대 회장님을 중심으로 마굴팀도 그랬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 정보만으로도 우리쪽 지분에 조금 더 양보 받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드네. 일단 여기 0.3%만 더 양보해줘.”
“으음…….“
남궁원은 신음을 흘렸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거야? 회장님도 남편의 바깥 일은 전혀 모른다고 하시던데.“
“다 수가 있지. 뭐 자식덕이라고나 할까?“
홍기도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날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회사인 맥카스가 탄생했다.
*
*
*
“후우. 후우.”
“왜 그래 무슨 시합 나가는 사람처럼?”
“시합 때보다 더 긴장돼.”
인아의 말에 세인은 한 번 더 거친 콧김을 뿜었다.
“엄살은.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곧 내가 다닐 회사 사장님이잖아! 그리고 아저씨는 언제나 좀 어려워.”
“……아직 아니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긴장 풀어. 그리고 애초에 왜 거길 들어간거야?”
“아저씨가 만드는 게임이 제일 재미있으니까.”
“크큭, 그래?”
인아는 연하의 남자친구가 긴장한 것이 무척 재미있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준비됐지?”
“누나 잠깐만.”
“아니, 누가 보면 맹견이라도 만나는 줄 알겠네. 우리 아빠가 널 물기라도 할까봐?”
“아저씨한테 물리면……. 진짜 아프겠지?”
“됐어! 이제 그만해!”
인아는 세인의 팔을 잡아 당겼다. 아빠를 닮아 여성치고는 상당히 키가 큰 인아였기에 세인은 우물쭈물하며 끌려 들어갔다.
“아빠! 나 왔어.”
“왔냐?”
“아, 아저씨……. 아니, 장인 어른 저 왔습니다!”
“장인 어른?”
세인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장한 남자가 당황했다.
“아, 아니……. 죄송합니다. 말이 헛나왔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헛나온 것은 아닌데……. 좀 빨리 나왔습니다.”
“얘 뭐라는 거냐? 너희 아빠가 맨날 고기만 먹여서 키웠을텐데, 왜 이렇게 매가리가 없어?”
“그, 그것이…….”
“아빠. 우리 결혼할 거야.”
인아의 말에 그녀의 아빠.
표세인은 피식 웃었다.
“그래? 일단 그건 알겠다.”
“그, 그럼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그건 너희가 알아서 할 일인데……. 그 전에 퀘스트 하나 깨자.”
“퀘스트요?”
“마왕 한번 토벌하자.”
“네?”
- 띠링!
[제 3대 용사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