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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24화 (324/346)

324.

“회장님 안에 계시나?”

미국 지부로의 발령이 확정된 문상훈은 여느 때보다도 기세가 등등했다.

맥베스를 이끌어갈 차기 인재로 손꼽히는 문상훈은 이걸영 상무와 손을 잡았고 급기야 미국지사 NO.2라는 막강한 힘을 손에 넣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조만간 이사로 진급할 것이다.

‘물론 그 정도에서 만족할만한 사람이 아니지.’

아마도 문상훈은 미국센터장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본인도 그러한 자신의 야망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연과는 향후 자신이 회사를 경영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인물 중에 하나로 문상훈이라는 남자를 점찍고 있었다.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쯧.”

자신도 모르게 문상훈을 가늠하는 것이 드러난 것일까? 문상훈은 마땅치 않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며 회장실로 들어갔다.

‘조금 어설펐던 모양이네.’

연아는 자신의 어설픈 행동을 반성하며 더욱 표정 관리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연결한 내선 스피커를 연결했다.

아버지와 다른 임원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경영 감각을 키우라는 지시를 철저히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사내 메신저를 통해 날아든 한통의 메시지.

-조연아 비서. 지금 내 방으로 좀 오세요.

양성태 실장이 자신을 호출했다.

연아는 그 메시지를 보고 미간이 좁아졌다. 아버지와 임원들과의 대화를 엿듣는 것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가장 좋은 후계자 수업의 일환이었다.

대부분의 비서들이 훗날 사내의 임원으로 성장하게 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학습의 효과가 지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본업인 비서 직무에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절대로 회사 내에서 내 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 그 정도도 못 하면서 회사를 이어받겠다고 할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겠지?’

마치 자신을 반상 위의 장기말처럼 내려다보며 즐겁다는 듯이 이죽거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대로는 안 돼.’

비서의 업무는 만만치 않다.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라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아버지의 지시를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연아는 회사내에서 자신의 수족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

*

“선이요?”

간만에 집에 왔다.

여전히 미친 듯이 쏟아지는 업무들을 쳐내며 가진 재주를 온전히 제 칼퇴근에 집중하는 뺀질뺀질한 부사수와 신경전까지 펼치는 통에 집에 와서는 푹 쉬고 싶었는데······.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말씀에 머리가 지끈지끈 할 지경이었다.

“제가 여자 못 만날까봐 그러십니까? 저 엄마 아들이에요. 보시다시피 제 얼굴이 어디 가서······.”

“네, 얼굴은 날 닮아서 문제없지.”

갑자기 찾지도 않은 아버지가 불쑥 튀어나와서 어머니의 공로(?)를 스틸하셨다.

“······아니죠. 저 외탁했잖아요. 세종이가 아버지 쏙 닮았죠.”

“그게 지금 표씨 집안의 일원으로서 할 소리냐? 그리고 세종이가 어디가 나를 닮았어?”

“그럼 엄마 닮았나요?”

“쟤는, 그냥 쟤 얼굴이야.”

“훗, 역시 나란 남자는 공전절후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남자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옆에서 사과를 씹던 세종이가 홀로 흐뭇한 얼굴로 헛소리를 지껄였다.

“아들아.”

“네.”

“그런 걸 전문 용어로 돌연변이라고 하는 거다.”

“무슨 돌연변이가 전문 용어에요! 형, 아니지?”

“전문 용어 맞지 않나? 뭔가 의학계에서 쓸 것 같지 않아?”

실제로 의학계에서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동생놈을 약 올릴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 없다.

“엄마! 아빠랑 형이 나 괴롭혀! 내가 엄마 닮았지?”

“······.”

“엄마?”

“······.”

“여기요? 여기도 아들 있어요?”

잠깐의 꽁트가 벌어지는 틈을 타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기어코 어머니가 나를 다시 붙잡으셨다.

“도망치지 말고 앉아라. 좁은 곳에서 이 화제 나누면, 더 감당하기 어려울 거다.”

“······네.”

나는 냉큼 자리에 앉았다. 명절도 아닌데, 이런 주제가 더 무거워지는 것은 정말로 고역이다.

“너도 이제 슬슬 삼십 대도 꺾여가는 상황 아니냐. 엄마 말 들어라.”

“······아버지도 잘 안, 오케이. 제가 지나쳤네요. 보기 괴로우니 얼굴 푸시죠. 그러다가 입 돌아가시겠습니다.”

엄마 등 뒤에서 표정 변화만으로 차마 아들을 향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만가지 욕설을 투하하는 아버지를 급히 만류했다.

“기껏 반반하게 낳아 놓았더니, 너 마지막 연애가 대체 언제야? 여자 만날 생각 자체를 안 하잖니.”

“지금은 한창 일할 때잖아요.”

솔직히 지금도 뭐 마음만 먹으면······.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연봉공개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디 가서 크게 빠지는 타입은 아니지 않나?

“맞아. 엄마, 형을 신경 쓸게 아니라 귀여운 우리 막둥이 여친 좀 소개를······.”

“······.”

“엄마?”

“······.”

“엄마, 괴롭히지 말고 넌 이거나 먹어라.”

아버지는 세종이 입에 배를 밀어 넣는 것으로 세종이를 대화에서 이탈시켰다.

“그래서 누군데요?”

상황을 보아하니, 이번에는 어머니도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한번쯤 얼굴이라도 비추긴 해야 할 모양.

“송사장님 알지?”

“마트 사장님?”

“그래.”

“아버지 앙숙 아니에요? 거기랑 우리 집이랑······. 괜찮겠어요?”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닌게 아니라, 아버지도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끙······하고 신음하고 계셨다.

평소에도 라이벌 같은 존재인데, 문제는 시장 바닥에서 가장 돈이 많은 송사장님 댁과 별것 없는 우리집.

거기에 그분 자식들은 하나 같이 제법 이름난 회사에서 근무한다고 항상 자랑하는 통에 운동을 하다가 거꾸러진 나와 비교되어 항상 송사장님 자식들 자랑을 듣고 와서는 홀로 끙끙 앓으시지 않았던가?

“마음에 안 들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참아야지.”

갑자기 대의씩이나? 아니, 자식 결혼에 무슨 그런 거창한 단어까지 입에 담으십니까?

나는 뭐라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순간 엄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계신 것이 보였다.

그냥 입 다물고 있자.

“그런데 그 집 딸이면······. 송연아라고 했던가? 그 사람 한참 어리지 않나요?”

“그렇지. 솔직히 그 누나랑은 내가 소개팅을 해야지.”

“너 보다는 한참 많지. 이 녀석아!”

아버지의 핀잔에 동생 놈은 흥하면서 요새는 연하남이 대세네 뭐니 하면서 홀로 투덜거렸다.

“연아 엄마가 그러는데, 연아도 제법 오랫동안 연애의 연자도 못 꺼내고 있다고 하더구나. 큰 회사 비서 일을 하느라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비서 힘들죠.”

솔직히 비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비서는 만만치 않은 직군이라고 알고 있다.

“아무튼 다음 주 주말로 약속 잡았으니까. 그런 줄 알아.”

“아, 이건 약속된 수치 플레이인데.”

“뭔 플레이?”

“생각해보세요. 나이도 어리고 집도 잘살고 얼굴도 예쁜 친구가 저한테 관심이나 있겠어요? 그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닐텐데?”

“넌 그래도 얼굴 하나는 반반하잖냐.”

“얼굴 하나는이라뇨. 저 회사에서 나름 일 잘한다고 칭찬듣는 다니까요?”

송부장 뭐시기가 내 우리 팀에 오고부터는 완전 찬밥 신세긴 하지만······.

“아무튼 이번에는 엄마 말 들어. 한번 만나보는 것 뿐인데, 그게 뭐 그리 어려워?”

“······알겠습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표현수 과장이라고요?”

“응. 그 사람 일 잘해. 내가 예전 회사에 있을 때, 내 후임이었거든? 아주 쓸만해.”

김인숙이 건넨 자료를 보며 연아는 슬쩍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음······.”

김인숙의 말에 연아 역시 우려를 감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양성태 실장님이 사업부로 이동하시면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비서실내에 조직력에 작은 빈틈이 발생할 상황이죠.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제 사람을 심어 놓을 수 있을지 자신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 뭐 그것도 그렇긴 하지.”

김인숙은 사내에서 유일하게 연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딱히 연아가 밝히거나 김인숙이 알아낸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동창생을 만났다가 그곳에서 동창생의 친척 언니라며 김인숙을 소개 받으며 어쩔 수 없는 커밍아웃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연아의 부탁에 김인숙은 그녀의 비밀을 지켜주겠노라 약속했고, 그때부터 두 사람은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결국 김인숙을 수족처럼 부리는 것은 묘한 거부감이 있었기에 연아는 진짜 자신의 수족을 바라고 있었다.

“좋아요. 이 사람 내일, 시간 가능하다고 하나요?”

“마침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있던 상황이래.”

“그런데 과장급 인물이 신입 비서로 입사하려고 할까?”

“연봉 외에 제가 개인적인 인센티브를 챙겨주려고 해요. 그리고 나중에는 직접적으로 누락된 직급도 복구시켜 줄 수 있겠죠.”

“가만, 이거 차기 회장의 오른팔이 될 기회인가? 이거 남줄게 아니라 내가 먹어야 하는 것 아니야? 야! 지금 나 버리는 거야?”

“크큭, 버리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미리 말한다 네 오른팔은 내꺼다.”

“그래요. 언니꺼 하세요. 아무튼 감사해요.”

“감사하긴 뭘 아무튼 조심해. 양실장······. 알지?”

“네. 알아요.”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그 뱀 같은 남자가 바로 이상을 포착할 거야.”

“뱀 같은 남자? 전에는 이상형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결혼했잖아. 유통기한 지난 남자는 그냥 경쟁 상대일뿐!”

“자신 있으세요?”

“음······. 뭐 언젠가는······.”

김인숙은 슬쩍 눈을 피했다. 하늘 아래 두려운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양성태라는 이름값 앞에서는 다소 주눅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네. 먼저 들어가세요.”

“너는 안 가?”

“저는 하던 일만 마무리하고 가려고요.”

연아는 자신의 노트북을 가리키며 배시시 웃었다.

“어휴, 일벌레. 그래. 어차피 네 것이 될 회사니 일하는 보람도 있겠네. 아! 이거 위험 발언인가? 저 역시 회사를 제 집처럼 생각하며······.”

“크큭. 알겠어요. 들어가세요.”

“오케이. 나중에 봐.”

김인숙이 떠나고 홀로 카페에 남은 연아는 다시금 이력서를 훑어보았다.

흠잡을 것이 없는 이력.

하지만 이런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단순한 서류 업무라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편이었지만 사람을 다루는 일에는 영 자신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부친인 조회장이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 사람은 사람을 다루는 일에 능한 타입이면 좋겠네.’

이를테면 양실장 같은······. 하지만 양실장은 연아의 입장에서 완전히 자신의 수족으로 두고 부리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정말로 나, 회사 오너에 적합하지 않은 타입일까?”

자신의 오빠들도 그런 부분을 깨닫고(다른 한 명은 그런 이유가 아니지만)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은 거부했다.

아버지는 전혀 상관없다는 눈치였고 평소에도 검증된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내심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곁에서 자란 연아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본인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신 차리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연아는 억지로 고개를 흔들며 무거운 상념을 털어냈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쾅!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창밖을 보자 도로에 추돌사고가 벌어진 상황.

그리고 키가 훤칠한 남자가 자신의 와이셔츠가 피에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에 있던 임산부를 꺼내어 병원을 향해 달리는 장면이 연아의 눈에 들어왔다.

[외전] 치킨집 보다는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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