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벽조목은 이름 그대로 벼락을 맞은 대추나무를 가리킨다.
민간신앙에서 대추나무는 양기를 상징하며 벼락은 양기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강력한 양기 덕분에 귀신이나 흉한 기운을 쫓는 효능이 탁월하다고 알려진 덕분에 오랫동안 귀한 물건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인터넷에 벽조목이라는 세글자를 입력하면 셀 수 없이 많은 벽조목 상품들이 검색된다.
이것들은 대부분 인조 벽조목이다. 인조 벽조목은 실제로 번개와 같은 전기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대추나무를 고온압축해서 만들어지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벽조목은 실제 벽조목에 비해 보다 단단하고 품질이 균일하여 사실상 더 좋은 재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진짜에 비해 값어치가 떨어지기 마련이고, 특히 ‘진짜’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함성준은 더더욱 진짜를 원했다.
“진짜 벽조목이라는 것이 그렇게 구하기가 어려운 겁니까?”
“네. 대추나무 자체가 별로 크지도 않은데다가 수분도 적어서 번개를 맞는 일 자체가 별로 없어요. 게다가 요즘에는 산불 우려 때문에 피뢰침이나 여러 장치로 나무에 번개가 떨어지는 일 자체를 방지하니까······.”
목재상인은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먹였지만, 결론적으로는 진짜 벽조목은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하하! 내가 뭐라고 했냐? 이게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니까!’
귓가에서 조팀장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음······.’
대기업 전무라는 직함을 달 때까지 정신없이 내달렸다.
나름 창업 공신으로 회사 주식도 상당히 들고 있는 덕분에 그냥 회사원 수준을 훌쩍 넘어선 재산도 지니고 있다.
그런 남자에게 원하는 물건을 가질 수 없다는 경험은 흔치 않은 것이었고 그렇기에 좀처럼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역시 표세인을 닦달하는 수밖에 없나?”
나름 이런저런 방법으로 표세인을 공략해 보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게다가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아예 직원과 대표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직급으로 누룰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지만······.’
한때 자신의 전무직함을 이용해 그를 포섭하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허사. 이제는 그 이유도 알게 되었지만, 어쩐지 그게 아니었더라도 표세인은 그런 종류의 포섭이 불가능한 캐릭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뭐 그거야 아무래도 좋아.’
이제 시급한 게임 개발은 모두 출시했고 당분간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조팀장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TRPG 건을 꺼내 들었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
도대체 그까짓 주사위가 뭐라고 자신이 이렇게까지 애가 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꾸 머릿속으로 드는 생각에 잠을 설칠 지경이다.
‘내 주사위 봤나? 이게 보통 물건이 아니거든?’
조팀장이 이죽거리며 자신의 주사위를 깔아보는 장면이 자꾸 연상된다.
사실 함성준은 원래부터 물욕이 있는 타입이었다.
언제나 최신형이나 프리미엄이 붙은 한정판에 사족을 못쓴다. 그의 골프채나 낚싯대 들도 하나 같이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침을 흘릴 정도.
그런 그였기 때문에 조회장이 손에 넣은 유니크한 벽조목 주사위는 무척 탐이 나는 것이었다.
콜렉터라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어떤 의미에서 중독자나 다름이 없다.
한정판 신발이나 의류, 피규어 같은 것들에 열광하는 젊은이들 역시 마찬가지.
원하는 것은 가져야 한다. 가장 자본적이고 바람직한(?) 욕망.
그렇기에 함성준은 물러날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함성준은 이를 악물었다. 비장의 패를 꺼낼 차례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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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신가요?”
함성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척 초조한 표정에 누가 볼까 두려워하는 기색이지 않은가?
“우리 대화 좀 할까?”
“······그러시죠?”
대체 무슨 용건이기에 이러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조팀장을 제외한 마굴팀 멤버가 따로 나를 찾은 적이 없었기에 다소 의아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요즘 좀 한가해서 여유로운 시기 아닌가요?”
“그렇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곧 조팀장님이 TRPG도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
나는 곧바로 함성준의 용건을 깨달았다.
“주사위 때문이군요.”
“그렇지.”
“죄송합니다. 아버지께 말씀은 드렸는데 벽조목이라는 것이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은 아닌 모양이더라고요.”
“그래. 나도 따로 알아봤는데 그렇다고 하더군.”
따로 알아봤다고? 대체 그 주사위가 얼마나 탐이 나기에······.
“인터넷을 뒤져보니까 멋진 주사위도 많던걸요. 하나 구입하셔도······.”
“아니야. 달라!”
아이, 깜짝이야.
내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호통을 치는 탓에 나는 깜짝 놀랐다.
함성준의 눈동자 속에 이글거리는 탐욕의 불길이 엿보인다.
이거 위험한 수준인데?
“자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네.”
“아니, 제가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내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나무 위로 벼락을 내리게 하겠는가?
이건 정말로 하늘이 돕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하지, 자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어.”
“아니, 이게 무슨 마피아 영화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게를 잡으십니까. 저 조금 무서워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좀 표정 좀 풀고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까? 게다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없는 벽조목을 어떻게 구해오겠습니까?”
“······자네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네?”
아니, 이것도 신용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눈빛이 너무 부담스럽다.
“자네는 언제든 방법을 찾아왔지.”
함성준의 눈동자 속의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그러니까. 나는 믿어. 어쩌면 벽조목은 아닐 수도 있겠지. 어쩌면 상아로 만든 주사위를 가져올지도 모르지.”
“제가 잘은 모르지만 코끼리 상아는 국제적으로 수출입 금지 품목 아닙니까?”
아무리 주사위가 갖고 싶다지만 밀수품목으로 만든 주사위까지 탐내는 것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안이 뭡니까?”
다른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밀수품목인 상아까지 등판하면서 튀어나온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말을 키우는 것도 아니니 마피아 영화처럼 말 목을 잘라서 보내지는 않을 테고······.
무언가를 기른다는 의미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그나마 홍켓몬 하나······.
물론 침실로 홍기도 녀석 목이 배달되는 일이야 없겠지만, 어쨌든 궁금하다.
“자네 조팀장님과 TRPG 해본 적 없지?”
“없죠. 애초에 TRPG 자체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 내가 한 가지 설명해주지.”
그제야 함성준은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나 에게도 앉으라는 듯이 손짓을 하기에 책상에서 벗어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 양반이 나름 완벽주의자야.”
“그런가요?”
사실 지난번 게임 개발 때만 보아도 의외로 꼼꼼하고 성실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완벽주의라······.
개발이야 그렇다치더라도 TRPG는 단순한 취미활동일 뿐인데, 여기에 완벽주의라는 말이 함께 등판한 것이 다소 묘하게 느껴진다.
“완벽한 플레이를 위해서는 그만한 보상과 페널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양반이지.”
“음······. 확실히 조팀장님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실 거라는 느낌이 드네요.”
“바로 그렇지! 그리고 의외로 그런 점에서도 그 양반의 완벽주의가 적용되지.”
“보상과 페널티인가요?”
“그래.”
“페널티까지 완벽하다는 것이 조금 걸리긴하네요.”
완벽한 보상과 페널티라······.
보상 쪽은 몰라도 페널티에는 다소 걱정이 된다.
“한번은 각자 보유한 주식을 건 적도 있어.”
“네?”
주식을 걸었다고?
“물론 그때야 맥베스 주가가 지금 같지는 않았지. 하지만 목숨 걸고 주사위를 던진 것은 사실이야.”
“정말로 TRPG에 주식을 걸었다고요?”
“그래. 소량이긴 하지만 각자 조금씩 걸었지.”
“이해가 안 됩니다. TRPG라는 것이 무슨 랭킹 제도 아닐텐데, 페널티를 받는 사람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주식을 보상으로 받는 쪽은 그렇다치는데, 잃은 쪽들은 대체······. 아니, 애초에 어떻게 보상을 받은 사람과 페널티를 받을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인가?
“MVP를 뽑지.”
“설마 그거 정하는 사람은 조팀장님입니까?”
“그래.”
“다른 사람들은 그걸 납득하고요?”
“그럴 수밖에 없지. 애초에 마스터인 본인은 MVP 명단에서 제외되니까. 덕분에 아주 기합이 빡! 들어가지.”
“기합이 너무 과하게 들어갈 것 같은데요?”
“그래서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그렇기에 해보면 의외로 주사위를 쥔 손이 땀으로 흥건해지고······. 이래저래 몰입할 수 밖에 없지.”
“거의 도박 아닙니까?”
“어허! 말조심해야지. 어차피 다 같은 식구잖나. 계약서 새로 작성할 뿐이야. 스톡옵션 계약 같은 것은 흔한 일이고, 게다가 참가자 대부분이 임원급이니, 매년 계약은 갱신되기 마련이고······.”
“이 이야기가 새 나가면 주주들이 대폭발 할 것 같은데요?”
장난도 정도가 있지! 이 사람들 면면을 따지고 보면 한, 두 주도 아닐테고, 거의 지분싸움에 가까운 수준이 아닌가?
“그때는 딱히 주주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을 때니까.”
“아, 옛날에만 그랬다는 거군요? 그 다음은 뭐였나요?”
“지금 이걸영이가 사는 아파트가 보상이었지.
“몰랐는데요. 설마 아파트를 걸었다는 겁니까?”
“아파트까지 걸면 그건 진짜 도박이지 않나.”
함성준은 나를 향해 짜게 식은 눈빛을 보냈다. 처음에 주식 운운 하기에 겁먹었는데, 이제는 나름 정신을 차리고 건전하게(?) 하는 건가?
“청약권이었지. 거기에 임원 전용 융자금 혜택이 플러스 된······. 뭐 당시에는 나에게도 제법 탐나는 상품이었지.”
이, 이 사람들······.
순간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청약권과 임원 전용 융자금 혜택이라면 또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애매한 그런 느낌이기도 하고······.
‘아무나 낄 수 있는 판이 아니야.’
갑자기 예전에 조팀장이 나에게 지나가듯이 던졌던 한마디가 떠오른다.
설마 그 아무나에 그만한 페널티를 감당할 수 있는 재력까지 포함되었던 걸까?
순간 기둥소프트 설립과 깨비몬 수익 배분을 유리하게 제공해준 이유가 TRPG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 그래서 이번 보상과 페널티는 뭡니까?”
“몰라.”
“모른다고요?”
다소 김새는 느낌이다. 이렇게까지 사람 기대를 부풀려 놓고서 정작 보상과 페널티에 대한 정보가 없다니?
“하지만 뭐든 작은 것은 아니겠지. 우리도 예전보다······. 다들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지 않았나.”
“으음······.”
주머니 사정이 지금 보다 나빴을 때도 아파트 수준의 상품이 오갔다면······.
과연 지금은 어느 정도 수준의 상품이 등장한다는 거지?
“그래서 내 제안은 이거야.”
“?”
“내가 자네를 밀어주지.”
나를 밀어주겠다고? 말은 고마운데, 정말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이게?
[외전] 이박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