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
지하로를 통해 남치범들이 위치한 건물 지하에 접근. 그리하여 납치된 시장을 딸을 구출한다.
미션 자체는 무척 심플한 내용이었다.
[지하로에 들어서자 당신은 예상보다 악취가 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공배양한 슬라임이 열심히 폐수와 오염물질들을 분해하는 덕분일 것이다. 금새 당신은 그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도중에 전방에서 묘한 소음이 들려왔다.]
마스터는 그대로 말을 멈추었다? 뭐지? 분위기상 적이 등장한 것 같은데, 그러면 뭔가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이걸영과 함성준이 주사위를 들어 올렸다.
“인지체크. 지금 우리 중에서 누가 가장 높죠?”
“하멜이 가장 높군. 하멜에게 판정을 맡기지.”
암살자인 함성준의 캐릭터가 인지 능력이 가장 높은 모양이다.
역시 연륜과 경험이랄까? 조팀장이 의도적으로 말을 멈추자, 곧장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서 움직였다.
그렇군. 이렇게 하는거군.
“5 이상만 나오면 성공.”
“훗, 쉽군.”
함성준은 피식 웃으며 20면체 주사위를 굴렸다. 그리고 실패했다.
“어? 이걸 실패해?”
의외로 가장 놀란 것은 조팀장이었다. 설마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모양이었다.
“초보자들을 위해 튜토리얼 삼아서 짠 구간인데 이걸 실패하다니······.”
조팀장은 난처해했고······.
“형님은 정말 제대로 하는 게 없네요. 허당성준 아니랄까봐.”
“······그 목소리로 형님이라고 하지 마라. 닭살 돋는다.”
“그 개발은 여전하시군요.”
“개발?”
“아, 자네들은 모르겠군. 우리 함성준 형님은 정말이지 옛날부터 자타공인의 개발로 유명하거든. 공을 차면 하늘로 날아오르고 주사위를 던지면 여지없이······.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이걸영은 껄걸 웃으며 함성준을 조롱했다.
[하멜은 실수로 허름한 벽면을 짚었고 그것이 무너지며 큰 소음이 발생했다. 그 소리를 듣고 인근에 있던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리더.”
“네?”
갑자기 조팀장이 나를 호명했다.
“4면체 하나 굴려.”
“4면체요?”
“인지체크 실패했으니 페널티 받아야지. 나운 수만큼 몬스터 숫자가 늘어난다.”
“어? 그거면 하멜이 굴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원래 리더가 하는 거야. 뭐 싫으면 맡겨도 되지만 나는 책임 못 진다.”
조팀장의 말에 함성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니, 진짜 사람 뭘로 보고, 자 보라고!”
함성준은 냉큼 4면체 주사위를 던졌다. 그리고 주사위의 눈은 4가 나왔다.
“······.”
“······너 굴린 거지?”
“······리더가 허락하지 않았잖습니까. 저는 그저 이러니 저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일전에 양성태가 주사위를 너무 잘 굴려서 재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설마 이거······.
양성태가 주사위 눈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주사위 운이 극악이었던 것 아냐?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적들 많이 나오면 경험치 많이 얻고 레벨업 쭉쭉하니,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거지?”
“틀린가요?”
“TRPG는 비디오 게임이 아니야. 본인이 진짜 캐릭터라고 생각해봐 목숨 걸고 계속 적들과 싸우고 싶겠어?”
“하긴, 그건 그렇네요.”
나는 이걸영의 말에 동의하며 주사위를 굴렸다.
“오! 1!”
“역시!”
홍기도와 함송희가 짧게 환호했다.
[다섯마리의 레드테일 스네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당신을 완전히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투는 피할 수 없다.]
“오호! 드디어 전투다!”
“순서는 어떻게 되나요?”
전투 순서는 민첩성 순으로 나, 함성준, 이걸영, 함송희, 홍기도 순이었다.
거리가 완전히 좁혀지지 않은 만큼 나는 우선 권총을 선택했다.
권총은 1D6+2 데미지였다. 나는 우선 20면체 주사위를 던져 명중 체크를 했다.
“10이상이면 명중인데, 네 민첩 보정수치 덕분에 8이상이면 된다.”
내 주사위 눈은 12가 나왔다. 가볍게 명중! 이후 6면체 주사위를 던져 최종 데미지를 계산했다.
4가 나온 덕분에 +2해서 6데미지!
이후, 차례로 우리 팀원들이 공격에 성공한 덕분에 시작과 동시에 2마리의 레드테일 스테이크를 쓰러트렸다.
[레드 테일 스네이크의 공격!]
가장 앞에 있던 나와 함성준이 당연히 첫 타겟이었다.
하우스 룰에 따라서 적들은 명중굴림을 하지 않고 우리가 방어, 혹은 회피 굴림을 한다.
“아까와 같다. 8이상 나오면 방어 성공이다.”
내 주사위는 20이 나왔다.
“어? 공격시 20은 크리티컬인데, 방어시에 20은 뭐에요?”
홍기도의 질문에 조팀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이걸영이 대신 대답했다.
“뭐긴 반격이지.”
“오호!”
그거 괜찮군. 나는 이번에는 칼을 뽑았다. 권총보다 훨씬 강력한 2D8에 힘 보정 수치가 붙는다.
내 주사위는 12가 나왔고 힘 보정수치 3이 더해져서 총합 15의 막강한 데미지가 떴다.
[세이안의 반격에 당한 레드 테일 스네이크는 그대로 절명했다.]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함성준이었다.
“젠장!”
8이상만 나오면 되는 상황에서 3이 나오는 기염을 토하며 뱀에게 물린 함성준은 뒤이어진 중독 굴림에까지 연달아 실패하며 제 스스로 무덤을 팠다.
아무래도 함성준 자체가 이 게임의 밸런스 패치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덕분에 할 일 없던 홍기도가 신나게 회복 주문을 때려 부으며 열을 올렸다.
어렵지 않은 적이었던 덕분에 함성준만이 잠깐 위기를 겪은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별문제 없이 적들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이런거군.’
한 번의 전투로 나는 대략적인 흐름은 파악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외에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수로를 조금씩 전진하며 우리는 전투와 연기에 차츰 익숙해졌다.
“것 참 정말 너무 못 싸우는 거 아니에요?”
“······내 전공은 암살이다. 전면전은 특기가 아니야.”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걷는 족족 사고를 치시니······.”
“아, 아니······. 리더 자네까지······.”
함성준은 나를 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와 이걸영을 포함한 모두가 실실 웃었다.
역할극의 힘이랄까? 평소와는 다른 호칭과 입장이 더해지니 부쩍 가깝게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성준 그리고 이영걸은 나름 가깝게 지낸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서로 농담을 던질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껏 웃으며 차츰 시장 딸이 납치되어 있는 건물 지하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하수로 보스 겪인 몬스터와의 결전을 앞둔 상황에서······.
양성태가 등판했다.
“자,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식사 후에 계속하십시오.”
“쯧, 꼭 이렇게 갑작스럽게 끊어야겠나? 조금 늦게 먹어도······.”
“안됩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회장님을 비롯하여 멤버분들의 건강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각에 식사하고 정각에 취침하는 것. 이것은 지켜주셔야겠습니다.”
양성태는 부드럽게 웃으면서도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연아의 이름까지 언급되자, 말이 궁해진 조팀장도 끙하고 물러날 뿐이었다.
“그래. 밥은 먹어야지.”
드디어 이영걸이 음성변조가 아닌 제 목소리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몇시간 동안이나 여성 캐릭터에 변조된 음성으로 상대하다가 갑자기 60대 아저씨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니 퍽 어색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다들 식사하고 하시죠. 차라리 빨리 먹고 빨리 다시 앉는 것이 빠를 것 같습니다.”
“표세인 부회장.”
“네.”
“제법 잘하네?”
“플레이하시는 것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로 원년팀의 에이스라는 것을 절로 알겠네요.”
이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이영걸의 연기는 대단했고 무엇보다 캐릭터에 몰입하면서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최고였다.
“진짜 최고였어요! 캐릭터 컨셉이 조금만 달랐으면 완전 언니로 모시고 싶었다니까요?”
“하하하. 고맙구만.”
함송희까지 합세하자 이걸영은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그럼 식사 맛있게드십시오.”
양실장이 준비해준 저녁 식사를 먹으며 우리는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배치를 바꾸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게 나을 것 같아요. 하멜은 어차피 근접전투에 나서봤자, 힐만 가져가니까. 차라리 뒤에서 권총으로······.”
“앗! 하멜 없으면 나 할 것 없는데?”
“자네는 힐 말고 버프도 좀 걸어봐야지.”
“아, 사제에게 버프라는 것이 있었군요? 하도 하멜에게 힐 걸어주기 바빠서 까먹고 있었네요.”
“으음······.”
함성준은 자신을 향한 디스에 침음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이가 없을 정도로 최악의 주사위 운을 자랑하는 탓에 사제인 홍기도가 아예 하멜의 전담 마크맨이 되어서 힐셔틀에 매진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오늘 주사위 운이 좋은 덕분에 딱히 홍기도 녀석의 도움이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들은 후방에서 전투를 하기 때문에 그럭저럭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 난이도가 한층 올라갈 것을 대비해서 대열을 정비하고 싶은 모양이다.
“리더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제 생각에도 하멜이 뒤로 빠지는 것에는 찬성입니다. 하지만 단순이 여러분들 위치가 아니라 더 뒤로 빠졌으면 좋겠어요.”
“더 뒤로?”
“이제 슬슬 후방에서 덤벼오거나 우리가 적들에게 포위될 수 있는 상황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너무 평범하게 정면에서 들어오는 녀석들 뿐이었잖아요. 마치 튜토리얼처럼.”
나는 이 말을 하면서 힐끔 조팀장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나 조팀장은 뜨끔한 표정이었다.
“혼자서 전위를 담당할 수 있겠어?”
“홍기도의 버프를 받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오히려 어그로가 다른 쪽으로 튀는 것 보다는······.”
나는 차마 내가 주사위 두 번 굴리는 편이 함성준과 함께 어그로를 분담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후위를 담당하는 것은 좋은 제안이네.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나쁘지 않아. 그렇지 않습니까?”
“하긴 슬슬 뒤통수도 신경 쓸 때가 되긴했지.”
함성준도 후방 경계에 대해서는 찬성인 듯 했다.
“그런데 후방은 잘 지키실 수 있겠습니까? 원래도 주사위 운이 안 좋은 편이긴한데, 이정도는 아니셨잖습니까? 설마 그 새로운 주사위에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걸영의 말에 함성준이 고개를 확 치켜들었다.
“주, 주사위에는 문제 없어! 내가 문제지!”
“가만, 그러고보니 그거 원석 그대로를 깎아서 만든 물건이죠?”
“훗, 그게 바로 그 물건의 가치지.”
“원석 그대로라서······. 무게 중심이 어긋나 있는 거 아니에요?”
“어?”
“그래서 계속 낮은 점수만 나오는 것 아닙니까?”
순간 듣고 있던 나도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조목은 무게감과 중심을 잡기 위해서 철심도 박아 넣는 등의 처리가 있었지만, 호박석에는 그런 장치가 없었다.
어차피 말들어주신 아버지 지인분도 주사위 같은 물건을 전문적으로 만드시는 분도 아니지 않나?
“그, 그럴리 없어!”
함성준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지만, 이미 주사위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외전] 도닥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