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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35화 (335/346)

335.

우리는 언제나 정답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늦게 정답을 떠올린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던 것을 깨닫게 된다.

첫째로 튜토리얼이라는 핑계로 전투가 무척 쉬웠다. 반면에 처음에 굉장한 보상 1억 크레딧? 이라는 거금을 언급한 이후로는 딱히 이렇다 할 아이템이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그 시점에 마스터는 함정 카드를 오픈했다. 물론 이 시점의 우리는 그것이 함정 카드인 줄은 몰랐다.

[당신은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난쟁이 같은 몬스터. 구세계의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생물. 이른바 황금 고블린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이 존재를 잡으면 굉장한 수준의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다는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들 모두 들어는 보았지만,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

황금 고블린이라는 말에 정말로 모두가 움찔하고 반응했다.

서서히 익숙해져가는 전투였다. 이 상황에서 보다 강력한 아이템으로 캐릭터를 한층 더 성장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는 시점이 아니던가?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답은 정해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건 가야지. 황금 고블린이라니, 이런 횡재는 언제 다시 경험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잖아?”

“그렇지. 이건 놓쳐서는 안 돼.”

“가장 깊은 곳에 누워계신 분께서도 저 번쩍이는 미물을 쫓으라고 하시는군요.”

그것부터 시작이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점차 황금에 눈이 먼 망자들처럼 원래 예측되었던 루트가 아닌, 조금 돌아가지만, 훨씬 더 좋은 보상(난이도도 수직 상승하는) 루트를 연달아 선택했다.

그리고 우리는 강해졌다.

우선 나만 해도 +2 데미지에 통각공유라는 독특한 기능이 있는 장검을 얻었다. 내가 이 검으로 적을 공격하면 근처에 있는 적들이 일정확률로 환통을 호소하며 절반의 데미지를 입는다.

무척 재미있는 기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각자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들을 얻었는데, 의외로 이번 득템으로 완전히 달라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은 다름아닌 함성준이었다.

“리롤!”

“리롤!”

“리롤!”

한 전투에 1번이라는 제한이 있지만 실패한 주사위 굴림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강력한 기믹을 손에 넣은 허당 암살자는 완전히 달라졌다.

애초에 노련한 플레이어였지만 단순히 극악한 주사위 운(운인지 호박석의 문제인지는 아직 모른다)에 의해 모두에게 안타까운 동정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나와 맞먹을 정도의 딜링을 성공시키거나 여러 상황에서 굉장한 활약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함성준은 언제나 처음에는 호박석 주사위를 던지고, 실패하면 다른 주사위를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호박석 주사위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점점 더 강하게 드는 것이, 다른 주사위를 이용할때의 함성준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크리티컬(주사위 눈 20)이 뜰 경우, 내 경우에는 단순히 데미지가 올라가지만 암살자의 경우에는 행동을 한 번 더 취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한번은 연속으로 적들 사이를 누비며 홀로 전투를 마무리해내는 기염까지 토했다.

“와우!”

“하멜! 하멜!”

그때는 정말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함성준을 응원했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가 우리의 황금기였다.

루트를 벗어난 탓에 조금 오래 걸려 도착한 건물 지하로.

그리고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불길한 검은 양머리를 달고 있는 존재.

이른바 바포메트라고 불리는 상위급 몬스터였다.

애초에 하우스 룰인 만큼 저 몬스터의 스펙이 어느정도인지 예상하기는 어려웠지만, 조팀장이 저 괴물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불길함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일으켜 세운 것 같은 존재다. 당신은 그 불길한 존재를 발견하기 무섭게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강력한 육체와 마법을 두루 사용하는 바포메트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임무는 실패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있을 수준이 아닌 것 같은 놈인데?”

“갑자기 아이템 퍼준다 싶더니······. 강제 난이도 조정 들어간 겁니까?”

“나는 분명히 자네들이 분기점을 선택할 때마다 충고했었어. 기억하지?”

기억한다.

하지만 어쩌랴, 아이템을 얻고서 그 성능에 취했고, 누군가는 얻지 못했으니 의리상 한 번 더······.

그런식으로 난이도가 올라가리라 예상되는 루트를 우리 스스로 계속 선택해온 것은 사실이다.

결국 플레이는 잠시 중단되고 비상 회의가 열렸다.

“얼마나 강할까요?”

“한 둘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죽는다고요? 그럼 사제가 부활시켜주는 건가요?”

“저 부활은 없는데요?”

“부활 없어?”

부활이 없다면, 죽으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어떻게 되긴 캐릭터 삭제되고 마스터가 적당히 준비한 프리셋 캐릭터 한나 던져줘서 이어가겠지. 보통 그렇게 될거야.”

“게임인데 보통 부활이 없나요?”

“TRPG의 원조라 할 수 있는 D&D 시리즈부터가 부활 주문의 난이도가 너무 높고 권장 플레이 레벨은 너무 낮아서 죽으면 다른 캐릭터로 옮겨가는 것이 기본이야.”

“······그렇군요.”

자유도 자유도 하던 것에 비해 죽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일단 각자의 롤을 재정비하자고, 일단 검사를 지켜야 해. 저 녀석은 마법만이 아니라 접근전도 강해서 검사가 무너지면 바로 달려들어서 강제로 접근전을 벌이게 될거야. 그러면 전멸이지.”

“자네가 탱커니까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위험한 역할을 맡아주길 바라네.”

“그럼요. 당연히 제가 앞장서야죠.”

탱커인 내가 뒤에서 깔짝일 수야 없다. 이걸영과 함성준은 지금까지 보인 적이 없는 진지함으로 각자의 롤을 다시금 숙지시켰다.

“마법사는 데미지 보다 상대의 캐스팅을 방해하거나 주문을 캔슬하는 쪽에 신경 써야 할 거야. 저 녀석 마법 저향력이 너무 높아서 어차피 어중간한 주문은 데미지가 박히지도 않을 테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사제는 시작부터 광역힐 걸고 그 다음부터는 계속 도트힐을 탱커에게 뿌려. 아마 저주받은 오라? 뭐 그런 것으로 공격을 피해도 매턴 HP가 깎여 나갈 거야.”

이걸영과 함성준은 각자 함송희와 홍기도에게도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그럼 시작하죠.”

내 말에 이걸영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사위를 들어 올렸다. 그가 이번에 새로얻은 아이템의 효과는 상대의 체력이 100%인 경우에 한해 반드시 크리티컬 데미지가 들어간 다는 것.

“좋았어!”

주사위의 눈은 6!.

1D6+4의 데미지 공식에 의거 무려 10이라는 데미지가 나왔고, 여기에 크리티컬 계산으로 무려 20의 데미지가 들어갔다.

[강력한 총탄에 바포메트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하지만 이내 화면을 되감은 것처럼 멀쩡하게 원상복구 되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데미지였던 듯이 바포메트는 콧김을 뿜으며 이를 갈았고, 그의 발밑에 있던 마법진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바포메트에게 돌진하겠습니다.”

“저는 주문쐐기를 시전할게요!”

내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함송희가 번쩍 손을 들으며 말했고 조팀장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주사위를 던졌다.

주사위는 눈은 15. 성공이었다.

[마법진에서 빛이 사라지자, 바포메트는 살짝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처럼 비틀거렸다. 이 충격으로 곧장 주문을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달려가면서 단검투척.”

이동중 투척이 가능한 암살자 답게 함성준은 내 뒤를 쫓아 이동하면서 단검을 던졌다. 단검은 어차피 데미지도 볼품 없고 그나마 중독이 노림수 인데, 상대는 독에 면역이라고 했다.

“칫.”

하지만 함성준은 그나마도 실패했다.

[당신이 던진 단검은 때마침 몸부림치던 바포메트 움직임으로 인해서 빗나갔다. 벽을 때리는 공허한 쇳소리에 당신은 입맛이 씁쓸했다.]

“전방에 광역 회복주문을 걸겠습니다.”

홍기도는 전방으로 돌진한 나와 함성준을 위해 광역 회복 주문을 시전했다.

그것으로 우리 턴이 모두 끝난 덕분에 이번에는 다시 내 차례부터 시작이 되었다. 아까는 기습이라서 이걸영부터였지만, 순수하게 민첩으로 계산을 하면 내가 가장 앞선다.

“공격합니다.”

내가 손에 넣은 마법검의 능력인 통각공유가 단일형 보스에게는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2의 마법검인 것이다.

명중 굴림은 15로 간단하게 통과했다.

이어지는 데미지 굴림에서 8면체 두 개를 굴리자 5와 6이 나왔다. 여기에 +2마법검 보정치와 +3의 힘 보정치가 더해져서 최종 데미지는 16!

[당신의 검이 바포메트의 상반신을 대각선으로 갈랐다. 바포메트는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손톱을 휘둘러 반격했다.]

“12 이상 나와야해.”

나는 조팀장의 지시에 따라 20면체를 굴렸다. 나온 주사위 눈은 12.

“쳇, 아슬아슬했군.”

조팀장은 서서히 우리가 별다른 데미지 없이 전투를 이끌어가는 것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혀차는 소리가 유독 날카롭게 내 귓가에 닿았다. 하지만 조팀장 기분 맞춰주자고 공격에 맞을 수는 없지······.

“으억!”

내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함성준의 보잘 것 없는 권총 사격이 빗나갔고 도리어 반격에 당해서 15에 달하는 막대한 데미지를 입었다.

“도닥붕~ 도닥붕~ 저는 세이안에게 도트힐 겁니다.”

홍기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에게 힐을 걸었다.

“아니, 아무리 탱커가 중해도 그렇지! 당장 솜털 하나 안 다친 사람에게 힐을 주고 반피 넘게 깎여 나간 나는 무시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어지간히 서운했던 모양인지 함성준이 볼맨소리를 터트렸다. 하지만 홍기도는 그에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고 주사위를 굴리며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도닥붕의 닥은 닥쳐의 닥!”

“······뭐 인마?”

“형님. 이거 게임입니다.”

“······나도 연기야.”

“피 없으면 돌아와요. 부산항에~”

홍기도는 멋대로 가사를 짜집어가며 흥얼거림을 멈추지 않았고 그 사이 주문은 성공했다.

[당신은 피부위로 서늘한 기운이 서렸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서늘함은 무척 쾌적하고 포근함이 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턴당 1D6+2의 지속 회복이 들어오는 주문이었다.

“지금 세이안의 명줄을 내 손에 쥐게 된 순간입니다. 지방방송은 꺼주시지요.”

“오, 뭔가 진짜 매장교단 사제다운 멘트인데?”

그런가? 내 생각에는 뭔가 묘하게 껄끄러운 대사였지만 다른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따라서 나 역시 그냥 게임 캐릭터 연기라고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괜히 내 이름하고 비슷한 캐릭터 명으로 지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홍기도의 턴이 끝나고 함송희는 주문쐐기를 날려 바포메트의 주문을 다시금 원천봉쇄했다.

[자신의 주문이 연거푸 봉쇄되자, 분노한 바포메트가 새카만 연기를 토해냈다. 연기는 순식간에 인근 터널 전체를 집어 삼켰다.]

“전부 중독 굴림! 10이상 통과.”

모두가 통과했다.

나와 함성준만 빼고.

“으하하핫! 세이안 네녀석의 목숨은 이 손안에 있다! 큐어!”

홍켓몬은 괴상하게 웃으며 주사위를 굴렸고

“마! 나도 중독이라고!”

함성준은 비명을 내질렀다.

“도닥붕······.”

“새끼야! 중독을 붕대로 어쩌라는 거냐!”

그건······. 맞는 말이다.

[외전] 은혜 갚는 전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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