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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36화 (336/346)

336.

“세상에······.”

“어떤 의미로 정말 굉장하네요.”

바포메트는 정말로 강력한 몬스터였다. 싸움이 이어질수록 우리는 전멸을 각오해야 했다.

모두가 그렇게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는 순간 이 싸움은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함성준이 있었다.

그의 손에서 던져진 주사위는······. 그야말로 저주 받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만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저주가······.

우리를 구해줄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

*

“아니, 이쯤이면 나에게도 힐 줘야 한다니까? 나 이제 스팀팩 다 떨어졌어!”

함성준의 음성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홍기도도 마냥 장난으로 그에게 힐을 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중독된 함성준이 전방에서 물러난 사이 바포메트의 공격이 나에게 집중되면서 홍기도는 사력을 다해 나에게 힐 샤워를 집중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거 누구 하나 희생 없이는 안 될지도 모르겠는데?”

이걸영은 씁쓸하게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함송희의 활약으로 바포메트의 주문 공격은 어찌어찌 봉쇄하고는 있었지만 바포메트가 토해낸 독연기는 자그마치 매턴 내성굴림에 성공해야하는 지속 광역기였다.

물론 굴림 수준은 낮고 데미지도 크지는 않지만······. 원래 가랑비에 옷젖는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함성준만큼은 아니라도 함송희와 이걸영은 상당히 데미지가 누적된 상황이었다.

“저 이 타이밍에 이런 말씀드리기 참 죄송스러운데, 힐 주문 하나 남았습니다. 진짜 암살자에게 쓸까요?”

홍기도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함성준에게 직접 질문했다.

“아으아······.”

아직 보스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회복주문을 암살자인 자신에게 써도 되겠느냐?

“어우으어······.”

죽기는 싫은데, 노련한 플레이어로서 전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힐은 자신이 아닌 탱커에게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보여지는 첨예한 내적갈등의 현장이랄까?

시시각각 변해가는 그의 표정을 보며 우리는 모두 애도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함성준은 결단을 내렸다.

“좋다. 여기가 내 묫자리인 모양이군.”

함성준으로서의 대사가 아니었다. 암살자 하멜의 멘트였다.

갑자기 묘하게 비장미가 넘치는 단어에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고 함성준을 주목했다.

“먼치킨 플레이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 너무 쎄게 푸쉬하시니까, 안 그럴 수가 없군.”

함성준은 조팀장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먼치킨이라······. 먼치킨이라는 단어가 TRPG에서 파생된 단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저주 받은 주사위 굴림을 선보인 함성준이 갑자기 먼치킨 플레이를 하겠다는 것이 무슨 소리인가 할 것이다.

먼치킨이란 지나치게 자신의 캐릭터의 힘에 집착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그 중에는 룰을 빠삭하게 숙지하고 그 빈틈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함성준은 조팀장을 향해 선언했다.

“다잉메시지 시작하겠습니다.”

다잉메시지? 눈치를 보아하니, 암살자의 특성 중에 하나인 모양이다.

“의외로군. 진짜 할 생각인거지?”

“네.”

조팀장의 질문에 함성준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은신 체크부터 하라고.”

“예.”

함성준은 주사위를 굴렸다. 그리고 은신체크에 성공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역시 함성준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탓에 그저 멀건이 바라볼 뿐이었다.

“좋아. 성공했군. 그러면 이제부터······. 죽음 내성 굴림을 해보라고.”

죽음 내성?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란 말인가? 물론 산송장에 가까운 딸피 상태인 하멜이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상태였다.

바포메트가 딱히 공격을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왠 죽음 내성?

“저 특성 발동 조건이 그거야. 사용하면 무조건 죽어.”

이걸영이 우리에게 설명해주었다.

“네? 그럼 뭐 자폭기 같은 건가요?”

“데미지 높은가요?”

이번에도 우리는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했다. 보통 죽음이 담보되는 기술이라면 자폭기술이 대표적이지 않은가?

“자폭이 아니야.”

“그럼요?”

“일종의 도발기지.”

“목숨을 담보로 도발을 한다고요?”

마치 홍켓몬의 주특기를 듣는 기분이들었다.

“형님. 그 주사위 말고 이게 낫지 않을까요?”

이걸영이 함성준에게 자신의 주사위를 내밀었다. 딱봐도 기껏 목숨까지 걸고 나선 참인데 주사위 운이 없어서 허망하게 실패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함성준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호박석 주사위를 들어보였다.

“잘 보라고.”

함성준은 호박석 주사위를 던졌다.

TRPG의 주사위 판정은 주로 특정 숫자 보다 높게, 혹은 낮게 나와야 한다.

조팀장의 하우스 룰은 HP가 0이 되면 매턴 죽음 내성 굴림을 해야한다.

확률은 다소 후하게 50%.

즉 20면체를 굴려 10 이하로 나와야 한다.

함성준은 플레이 내내 높은 주사위 눈이 나오지 않아서 고생했다.

정말로 호박석 주사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4!”

“성공했군.”

[바포메트는 알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눈앞에 있던 적들이 아닌 은신한 하멜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이번 턴에 바포메트는 공격 없다.”

“오오! 이거 얼마나 지속됩니까?”

“하멜이 죽을때까지.”

“네?”

“반대로 내가 죽음 내성에 계속 성공하면······. 저건 이제 샌드백이야.”

함성준의 말에 조팀장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매턴 1씩 줄어들어. 그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저도 반신반의했는데······. 이 주사위 요물입니다. 가능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기적과 같은 주사위 굴림이 이어졌다.

함성준은 바포메트가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무려 4번이나 죽음 내성 굴림에 성공했다.

더 놀라운 것은 4번의 주사위를 굴리는 동안 전부 4를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4, 2, 2, 3.

이 것들이 20면체를 굴려서 나올 수가 있는 확률인가 싶을 정도였다.

[바포메트의 입에서 부글거리를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며 그대로 제 몸을 녹여버렸다. 그리고 당신들은 서둘러 최후를 맞이한 동료의 곁으로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마지막인데 뭘 남겨? 반드시 이 임무 성공해서 다들 한목 챙기라고······.”

암살자 하멜은 그 말을 끝으로 무대에서 퇴장했다.

무려 4턴이나 바포메트의 이목을 잡아 끌며 샌드백으로 만들어준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바포메트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애초부터 우리의 스펙으로는 누군가의 희생 없이 승리할 수 있는 판이 아니었다.

물론 주사위 놀음이니, 불가능하다고 만은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조팀장과 함성준, 이걸영은 오랫동안 TRPG라는 취미를 즐겨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중간에 자신이 열심히 키운 캐릭터를 희생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 쉬자고.”

조팀장의 말에 나는 함성준에게 다가갔다. 멋있었다고 하면 될까? 고맙다고 해야할까?

뭔가 위로 대신 찬사를 보내주고 싶은 기분에 다가가고 있었는데······.

“크흐흐흐······. 이거 진짜 요물이로군.”

함성준은 호박석 주사위를 두손에 꼭 쥐고소 침이라도 흐를 것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 희생은 포인트가 크지. 새로 받은 캐릭터로 중간만가도······. 이번 상품은······.”

이야······.

여기에 포기를 모르는 남자가 있었구나. 함대만이 따로 없네.

나는 딱히 위로가 필요 없음을 깨닫고 슬쩍 발길을 돌렸다.

*

*

*

-게임 즐겁게 하고 있어?

잠깐 여유가 생긴김에 나는 연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네.”

-다행이네. 나는 어쩌면 재미 보다는 눈치 보여서 함께 하고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알잖아. 장인어른과 나는 잘 맞는 것.”

-크크크. 그렇지.

연아는 우습다는 듯이 큭큭 거렸다.

“지금 뭐하고 있어?”

-쉬린칭도 기도씨 그리로 보내서 할 일이 없다고 해서 둘이 같이 있어.

멀리서 쉬린칭이 니하오!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들렸다.

-그러고보니 기도씨는 어때?

“어떻냐니?”

-기도씨도 재미있게 노는 것 같아?

연아의 말에 나는 힐끔 고개를 돌려 함송희와 함께 있는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내가 캐릭터를 괜히 무게감 있게 잡은 것 같아. 활약도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지?”

“저도요. 괜히 무게 잡는 느낌으로 한 것이 실수 인 것 같아요.”

서로의 캐릭터 성격을 두고 반성회 같은 것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충분히 즐겁게 즐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재미있게 즐기고 있어. 저 녀석이야 어디서든 나보다도 더 잘 어울리지.”

-······다행이네.

무언가 살짝 묘한 느낌이 드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그것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

“그럼 끝나고 다시 연락할게.”

-알겠어. 파이팅!

*

*

*

바포메트를 쓰러트린 이후 우리는 지하수로를 벗어나 건물 지하에 잠입에 성공했다.

함성준의 빈자리가 아쉬웠지만 반면에 더 많은 이탈을 예상하고 레벨디자인을 설계한 것인지, 전투는 수월했다.

우리는 파죽지세로 빌딩을 점거한 납치범들을 물리치며 시장 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시장딸의 보디가드였다는 사람을 만났다.

“부디 저도 힘을 보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 새로운 캐릭터가 바로 함성준의 새로운 캐릭터였다.

그렇게 함성준도 새로 합류하고 건물을 한층씩 오르며 적들을 격파해 나갔다.

최대한 전투를 피해가며 싸워나가고 있었음에도 전투 횟수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결국 최종 보스를 만날 수 있었다.

[과거 유행했던 동물의 유전자를 조합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당신을 맞이했다. 그의 머리 위에 돋은 짐승귀과 꼬리 그리고 날카로운 송곳니는 그야말로 맹수 그 자체였다.]

[잘도 여기까지 오셨군.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마지막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표세인 회피 굴림.”

“헛! 저보다 빠른가요?”

처음으로 나보다 빠른 적을 만났다.

“당연히 최종보스인데 너보다 빠르지. 15이상 나와야해.”

“15?”

“그거 세이안의 민첩 보정치 더해진거 맞습니까?”

“맞아.”

“그럼 다른 사람들은 17~18 이상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터무니 없는 상대의 속도에 우리는 입을 떡 벌렸다.

어쨌든 회피 굴림을 했으나, 14.

나는 공격을 허용했다. 그리고 무려 12의 데미지를 입었다.

“한번 더 굴려.”

“네?”

“이 녀석 1회 2번 공격이야.”

“헐.”

바포메트도 반격이 아닌 상황에서는 1회 1번 공격이었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다시금 주사위를 던졌다.

12.

아무래도 그동안 쭉 이어졌던 나의 주사위 운에도 한계가 온 것 같다.

“다시금 세이안의 명줄을 쥘 차례인가?”

대체 내 명줄을 쥐는 것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홍기도 녀석의 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의 공격 차례다.

“알지? 15이상인 것?”

“명중 굴림도 똑같습니까?”

“대부분 그렇잖아?”

하긴 그랬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사위를 던졌다.

11. 어림도 없었다.

“세이안이 공격 실패한 것 처음 아닌가?”

“그렇네요. 회피 굴림에서 실패한 적은 있어도 명중 굴림을 실패한 적은 없었는데······.”

내가 두 번 연거푸 얻어맞고 반격까지 실패하자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내입으로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이 파티의 전투의 핵심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 함성준이 의기양양한 미소와 함께 호박석 주사위를 들었다.

“이제 내가 활약할 차례인 모양이군.”

“넌 17이상 나와야 한다.”

민첩이 나보다 낮은 탓에 나보다도 한층 허들이 높아졌다. 게다가 오늘 함성준의 주사위 눈은 계속 바닥을 치지 않았던가? 낮은 숫자에서 자신감을 보인다면 이해하겠는데, 지금은 뭘 믿고 저러지?

모두가 이런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함성준이 조팀장을 향해 한마디 던졌다.

“주술사 저주를 저 자신에게 겁니다.”

“무슨 저주?”

“반전 저주요.”

반전? 설마?

“이제부터 내 주사위는 반대로 적용되는 것 맞죠?”

함성준이 호박석 주사위에 입을 맞췄다.

진짜 이름 그대로 저주 받은 주사위가 되어버렸다.

저주 받은 주사위의 위용은 엄청났다. 함성준의 활약으로 우리는 바포메트를 상대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마지막 보스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이거 MVP는 정해진거나 다름 없는데?”

“그러게요.”

“그렇네요.”

내 말에 홍기도와 함송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TRPG가 끝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함성준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지금 우주여행 지원 이메일 보냈어.”

“이걸 저에게 왜?”

“약속했지 않나. 자네를 지원해주겠다고.”

정말로 우주여행을 양보한다고?

“아무튼 나는 약속 지켰어. 그럼 나중에 보자고.”

함성준이 약속을 지킬 줄은 몰랐는데······. 이건 정말로 살짝 감동인걸?

[외전] 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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