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
문상훈은 맥베스에 입사 초기부터 모두의 눈에 띄는 존재였다.
“역시 문상훈이군.”
“이번에도 문상훈이 진급한다고?”
“벌써 대리?”
“벌써 과장?”
“자, 잠깐만 그러면 지금······. 차장? 내가 팀장일 때 입사했는데, 지금 나와 같은 차장이라고?”
그가 주목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미국에서부터 단련된 탄탄한 프로그래밍 실력과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미국식의 불도저 같은 과한 열정.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바일 시장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북미시장의 가치가 커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유학파인 문상훈의 가치는 두드러졌다.
명문대 출신이라 하더라도 간단한 영어회와 정도라면 모를까, 비즈니스 수준의 컨택이 가능할 정도로 영어가 능통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북미를 겨냥한 모바일 게임 개발에 열을 올리는 사내 분위기에서 문상훈은 여러모로 촉망받는 인재였다.
“하지만 그래도 안되지.”
“그렇지. 역시 최고 에이스는 양성태지.”
무서운 기세로 승진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맥베스의 차세대 인재로 문상훈이 아닌 양성태를 지목했다.
문상훈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빌어먹을 낙하산 자식이······.’
문상훈에게 양성태란 단순히 눈엣가시라는 것을 넘어 앙심 수준의 적개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첫번째로 그는 낙하산(문상훈의 기준에) 이었다.
정규 입사 시즌이 아닌 갑작스러운 특채, 그것도 조회장이 직접 비서로 앉혀버린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보통 이렇게 위에서 직통으로 꽂아버리는 비서라면······. 임원 코스지?’
‘그냥 비서도 아니고 회장 전담 수행비서잖아? 이거 뭔가 있는 거 아니야?’
‘숨겨놓은 자식이라도 되나?’
하나씩 덧붙여지기 시작한 소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결국 조회장의 숨겨둔 자식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조회장은 양성태를 각별하게 아꼈다.
두 번째 양성태는 개발자가 아니었다.
선민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문상훈 본인도 이러한 자신이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일반 적인 경우, 경영지원팀이나 사업부를 비롯한 다른 팀에 딱히 적개심이나 업신여기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양성태에게는 뭐라도 꼬투리를 잡고 싶었다.
더욱이 양성태의 포지션은 비서다. 자신이 게임을 개발하는 사이에 양성태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따금씩 인원급 상사들과 대화 혹은 식사자리에서 심심치 않게 양성태에 대한 칭찬이 들려왔다.
‘양성태······. 정말 놀라운 친구지요?’
‘양성태 차장, 정말 명불허전이더군.’
결국에는 임원들에게 알랑방귀나 뀌고 다니는 녀석일 것이 틀림 없다.
문상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세 번째 양성태는 미남이다.
사실 의도적으로 얕보이지 않기 위해 과장되게 자신의 성격을 연출하는 경향이 있는 문상훈이었다.
하지만 그런 요소를 제외하고 외모만을 놓고 보면 딱히 이렇다할 포인트가 없는 평범한 키에 평범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문상훈 본인 쪽이 연상이지만 두 사람의 나이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막상 옆에 서있으면 10살도 넘게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대체 뭘 처먹고 다니기에 남자 피부가······.’
훗날 표세인을 비롯한 모두가 감탄을 감추지 못한 양성태의 동안은 이 시기에도 명불허전이었다.
결국 양성태와 함께 차세대 에이스로 거론되는 덕분에 여러모로 비교가 되는 일이 잦은 문상훈에게 있어 양성태는 도저히 이뻐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
“······.”
“······.”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양성태와 한자리에 있게 된 것이었다.
신입사원연수.
일반적으로 인사과와 총무과에서 담당하는 일이기에 개발자인 문상훈은 물론 비서인 양성태 조차 딱히 연관이 없는 행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개발과 그 외 파트의 차장급 중 한명씩을 차출해서 간담회 형식의 코너를 하나 맡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현재 차장급 인사중에서 문상훈과 양성태만큼 주목 받는 이들은 없었다.
“······.”
“······.”
“······쯧.”
서먹한 침묵이 계속되자 문상훈이 결국 혀를 찼다.
“이봐, 양성태 차장.”
“예.”
“그래도 자네가 몇 살 젊은 편인데, 이런 일은 좀 솔선수범 움직여 줄 수 없겠나?”
일종의 기싸움 같은 것이었다. 솔직히 일반적인 업무라면 결코 누군가에게 자신의 역할을 떠넘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차피 열외 업무.
게다가 지금은 이 행사 자체 보다는 양성태에게 기싸움에서 우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게······. 참 곤란한 일입니다.”
“곤란하다고? 뭐가?”
“제 보직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차장이라고 해봤자, 제가 담당하는 일의 특성상 보직 자체가 중요하지요.”
양성태는 문상훈 이상으로 빠르게 승진을 거듭했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개발자가 팀원에서 팀장, 부서장등으로 역할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놓고 볼때는 다소 의아한 일이다.
물론 아예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양성태는 차장급 인사로서 비서실을 진두지휘하거나 컨트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히려 비서실장 보다도 훨씬 실세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양성태는 조회장의 직속 수행비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회장님 수행업무에 차질이 벌어진다면 저는 당장이라도 이 일을 사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성태는 대뜸 무기를 꺼내들었다. 성질 같아서는 문상훈도 그러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이걸영 상무가 직접 지시한 내용이었다.
함성준 전무와 이걸영 상무는 여느 임원들과는 비교가 불과한 창업공신에 막대한 지분까지 손에 쥐고 있는 맥베스의 기둥 중에 하나였다.
아무리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문상훈이라고는 해도 이걸영 상무의 지시를 어긴다는 선택지는 도저히 누를 수가 없다.
‘그걸 이자식은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는다 이거지?’
자신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선택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는 것이 미웠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것은 양성태가 가진 권력 따위가 아니라, 순수하게 조양길 회장의 수행비서로서 발생할 수 있는 예외사항일 뿐이다.
하지만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권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문상훈의 머릿속이 질투와 경쟁심으로 산만해졌다.
“하지만 그래서는 문상훈 차장님도 곤란하시겠지요.”
“내가? 내가 왜 곤란한데?”
너 따위가 빠졌다고 내가 곤란할 일이 뭐가 있냐. 나 천하의 문상훈이다.
라는 머릿속의 생각이 최대한 전달되기를 바라며 문상훈은 콧대를 세웠다.
“양성태는 발을 뺐는데, 문상훈은 그러지 못했다 라는 이야기라도 나오면 심기가 불편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누, 누가 그딴 소리를!”
문상훈은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굳이 생각할 것도 없이 양성태 홀로 발을 뺀다면 분명히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이상 문상훈 차장님께 미움을 받아도 곤란하니,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군요.”
“누, 누가 자네를 미워한다는 건가?”
“아닙니까?”
“그, 그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양성태는 싱긋 웃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상큼한지, 여직원들이 양성태를 훔쳐보며 저들끼리 꺅꺅 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꺽꺽 울음보를 터트리는 일 밖에는 못하지만······.’
아무튼 그 점은 중요치 않았다. 아무튼 문상훈은 다시금 양성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한번 머리를 굴려보죠. 하지만 역시 이 쪽은 저보다는 문상훈 차장님의 주 종목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자네 전공이 아닌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거북스러운 임원급 상사들을 쥐락펴락하면서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선보이는 양성태가 아니던가?
따라서 이번 일도 신입사원들과의 간담회인 만큼 양성태의 독무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문상훈의 마음이 편치 않은 또 하나의 이유였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반드시 콧대를 눌러주고 말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개발자가 아닌 양성태와 업무적으로 엮일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한데 엮이는 일이 생겼는데, 하필이면 양성태의 주특기인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 아닌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음, 그 부분은 묘하군요. 절반은 정답이지만······. 역시 완전히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절반은 뭔데?”
자기도 모르게 질문이 다소 뾰족했다. 양성태의 묘한 선문답 같은 화술에 자신이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덕분이다.
“제 업무는 특정인을 상대하는 일에 치중되어 있지요.”
그거야 비서니 당연하다. 어쨌든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특화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라면 개발자이신 문상훈 차장님의 전문분야가 아닙니까?”
“아니······. 아무리 개발에 대해 모른다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니야?”
“너무하다고요?”
“내 일이 무슨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야. 물론 때로는 사람들과 회의도 하지만 내 주업무는 모니터에 얼굴 박고 코딩만 죽어라 짜는 일이야.”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무슨 사람을 상대해?”
문상훈의 어이없다는 표정에 양성태는 또 한번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이 미소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무척 산뜻하고 훈훈하다는 평이 나올 법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문상훈이 받은 인상은 달랐다.
마치 자신을 내려다 보는 듯한 미소. 자신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한 상대에 대한 안쓰러움.
그런 기분 나쁜 감정들이 집적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소였다.
실제로 양성태는 이런 특유의 인상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일부 특정 부류들에게는 아주 기피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모니터 너머에 사람들 말입니다.”
“모니터 너머의 사람들?”
“문상훈 차장님께서 게임을 개발하실 때, 분명 모니터 너머의 많은 이들을 만족하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실 겁니다. 그렇지요?”
“그, 그건······.”
이 이야기가 그렇게 연결되다니? 양성태가 달변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구렁이 담넘듯이 이야기를 끌고갈 줄은 몰랐다.
“저는 비서인 만큼 모시는 상사분의 개인 취향과 상황에 맞춰 움직이는 것에 최적화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개발자이신 문상훈 차장님께서는 언제나 눈 앞에 보이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의 최대 만족도를 충족시는 일에 프로가 아니십니까.”
“그, 그거야······.”
“게다가 그런 개발자들 중에서도 선후배 간담회의 멘토 역할로 주목될 정도로 맥베스 최고의 인재로 손꼽히는 분이십니다. 당연히 저 보다는 문상훈 차장님의 주무대일 수밖에 없지요. 이것이 비서와 개발자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비서와 개발자의 차이.
평소에도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개발자의 프라이드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 그렇지!”
“그럼 문상훈 차장님만 믿고 저는 한발 물러나있겠습니다. 시키실 일이 있다면 뭐든 지시해 주십시오. 저는 전적으로 문상훈 차장님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내 지시에 따르겠다고?”
“네. 물론이죠. 그게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반대로 제 지시에······.”
“아, 아니야. 그게 맞지. 좋아. 그렇게하자고.”
자신이 양성태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문상훈은 황급히 손사레를 쳤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시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양성태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핫, 내 지시에 따르겠다고?”
천하의 양성태가 자신의 지시에 따른다. 그래 이게 맞는 거다. 문상훈은 흡족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입가가 슬며시 늘어났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날.
자신이 양성태의 꼬임에 완전히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외전] 알면서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