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42화 (342/346)

342.

“10위요?”

최기환은 문상훈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다. 자신이 들은 것이 사실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10위다.”

문상훈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아니······. 대체 왜······. 아니, 어떻게요?”

최기환은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문상훈이 신입사원 연수 과제 지도관 역할을 한다는 것도 황당한데, 그걸로 모바일 마켓 10위를 노린다니?

당장 문상훈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조차 자칫 잘못하면 10위 권 밖에 랭크될 수 있다. 물론 대기업의 인프라와 문상훈이라는 인재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이니, 그렇게 망가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흥행을 점칠 수 없는 노릇이 아니겠나? 그런 와중에 신입사원 연수 과제에 정신팔릴 틈이 어디있나?

“혹시 양성태 차장과 관련된 일입니까?”

“어? 뭐, 뭐라고?”

양성태가 언급되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문상훈을 보며 최기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차장님, 제가 감히 차장님 하시는 일에 건방지게 왈가왈부 할 짬밥은 아니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으음······.”

“이번 프로젝트. 팀장 진급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타성에 젖은 다른 팀들을 각성시킬 진짜배기 개발팀 한 번 만들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으음······.”

최기환의 말에 문상훈은 드물게 입을 열지 못하고 신음만 흘렸다.

최기환의 말대로였다.

현재 그가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성과에 따라서 그는 팀장이 될 것이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코딩만 뽑아낼 뿐인 자판기 같은 프로그램팀이 아니라, 진짜로 최고의 주가를 올릴 그런 팀을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걸 말할 수도 없고 미치겠네.’

조회장이 직접 비밀 엄수를 지시한 일이다. 게다가 이건 무조건 문상훈에게는 다시 없을 큰 기회가 아닌가?

메인 프로젝트가 우선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성공해도 최대 아웃풋이 팀장이다.

하지만 신입연수 과제인 이 어설픈 프로젝트는 최대 아웃풋이 임원이지 않은가?

물론 한번에 임원 승진은 아니겠지만, 자신을 임원으로 승진시킨 뒤, 이걸영 상무의 오른팔로 만들겠다는 것이 조회장의 의지였다.

결국 이것은 자신의 그 어떤 계획보다도 가장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었다.

“양성태에게 놀아나시면 안 됩니다. 지난번에도 호구······. 아, 죄송합니다. 말이 잘 못 튀어나왔습니다.”

지난번 자신까지 끌어들여서 간담회 준비를 했던 것을 호구 같은 행동이라고 말하자, 문상훈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물론 그럴리야 없겠지만, 정말로 한 대 맞을 것 같다는 오싹한 기분에 최기환은 급히 입을 닫았다.

“최기환이······.”

“예.”

“내가 호구로 보이냐?”

“아, 아닙니다.”

“나 문상훈이가 호구로 보인다 이거야?”

“아닙니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190이 넘는 거구인 최기환이 쩔쩔대는 모습에 금세 화가 풀린 문상훈은 혀를 찼다.

“됐다. 네가 뭘 알겠냐.”

“제가 뭔가 모르는 것이 있는 겁니까?”

있지. 아주 엄청난 것이.

탁 터놓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서 답답함만 커졌다.

“기환아.”

“예.”

“지금은 말해 줄 수 없지만, 이거 해야 하는 거다.”

“······.”

“너에게 이걸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란 것은 알지?”

“예. 문상훈 차장님이 그쪽에 메달리는 사이에 제가 차장님 파트를 담당하면 되는 거죠?”

“그래. 컨셉 단계만 지나면 내가 붙어 있을 필요가 없을테지. 하지만 그래도 너에게 상당한 부담일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나 문상훈이가 이번에는 너에게 빚한 번 지자. 나중에 확실히 갚아줄게.”

“빚이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이해는 안 되지만, 문상훈 차장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겠죠. 알겠습니다. 천준호 실장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보겠습니다.”

“고맙다.”

문상훈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

*

*

“어디가나?”

이걸영은 뒤에서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급히 들을 돌렸다.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이긴 퇴근 시간인데 퇴근하는 길에 마주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전 제시간에 퇴근하는 법이 없으신 분이 오늘따라 정시 퇴근이시라고요? 그것도 저와 딱 맞게? 그러지 말고 솔직히 털어 놓으시죠?”

“저녁 먹을 거지? 함께 가자.”

“으음······. 그거 거부권 있는 겁니까?”

“밥 사준다는데, 뭘 그리 비싸게 굴어?”

조양길은 떨떠름한 이걸영을 납치하듯 낚아챘다.

“요즘 어떠냐?”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면서 자꾸 질문하냐? 너 내가 로비에서 불렀을 때부터 내 용건이 뭔지 알았잖아.”

“함성준 형님 이야기죠?”

“그래. 성준이 그 녀석 이야기지. 뭐겠냐.”

대학 선후배 사이로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두 사람이었기에 둘만 있을 때는 회장과 상무가 아닌 선후배 사이로 돌아오는 그들이었다.

“말 나온 김에 한번 물어보죠. 성준이 형님 좀 과하지 않습니까?”

“과하지.”

“그런데 그냥 두고보기만 할 겁니까?”

“왜? 성준이 때문에 숨막혀? 도움이 필요해?”

조양길이 이죽거리며 말하자 이걸영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같은 선후배라고는 해도 이걸영에게 조양길과 함성준은 궤가 달랐다.

조양길은 이걸영이 입학한 시점에 이비 군대까지 다녀온 예비역이었던 반면에 함성준은 고작 한학번 차이였다.

따라서 그들이 본격적인 창업준비를 시작했을 때도 조양길은 다소 학번이 차이나는 선배라는 느낌이었던 반면, 함성준은 그렇지 않았다.

딱히 무시한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좋은 의미에서의 경쟁상대였다.

실제로 개발 능력만을 놓고보면 이걸영은 조양길 보다도 위였고 함성준은 애초에 그부분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대신 함성준은 사람들을 아우르고 이끌어가는 부분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함성준은 주로 외부 영업에 치중하고 이걸영이 개발을 이끌어 왔다.

그렇게 두사람은 딱히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성과를 거듭하며 회사를 성장시켜나갔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심각한 차이가 발생했다.

임원이 되고부터 개발 쪽에서 손을 떼자 이걸영은 그저그런 임원이 되어버린 반면, 함성준은 중국 시장 진출을 성공시키며 회사에서 무서운 기세로 입지를 키워버린 것이었다.

입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창업공신으로서 너무 차이가 나는 것에는 다소 심난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심통난 표정 지을 것 없다. 어차피 너와 성준이는 이런 쪽으로는 어차피 싸움이 안 돼. 너도 잘 알고 있잖냐.”

“흥, 그래서 그냥 지켜봐라! 뭐 이건가요? 아예, 성준이 형님 밑으로 붙으라고 하시지요?”

“밑에 붙을래?”

“······제가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그래. 그렇지. 클클클.”

이걸영의 말에 조양길은 우습다는 듯이 클클 웃었다.

“지금 상황에서 네가 성준이 녀석과 단순 힘겨루기는 무리야. 그건 너도 알고 있지?”

“쩝······. 알고는 있죠.”

“그래서 말인데, 문상훈이 그녀석 어떻게 생각하냐?”

“문상훈? 문상훈 차장 말씀하시는 겁니까?”

“다른 문상훈이가 또 있나?”

“없죠. 아니, 갑자기 그 친구는 왜요?”

“너나 함성준이나 그 녀석 눈여겨 보고 있었지?”

조양길의 말에 이걸영은 짜게 식은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물잔을 들어올렸다.

“딱히 눈여겨 본다기 보다······. 애초에 요즘 개발팀 에이스 아닙니까? 싫어도 눈에 띄는 녀석이죠. 게다가 하는 짓도 뭐······.”

“그 놈이 성깔이 그정도인가?”

양성태나 인사평가기록 등을 통해서 들은 적은 있지만, 오너는 이런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세상에 오너 앞에서 제 성질대로 나서는 직원은 없는 법인지라, 상대의 진짜 성격을 알 수가 없다.

“딱 한번 본적 있습니다.”

“어떻든가?”

“예전에 최기환이라는 부사수를 갈구는데······.”

“갈구는데?”

“모니터를 바닥에 던져서 부숴버리더군요.”

“하! 그놈 통도 크군.”

크런치라는 개념도, 주 5일 근무라는 개념도 없이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개념이었던 1세대 개발자들 중에서 간혹 성격이 거친 이들 중에 마우스 정도를 집어던지거나 키보드를 부수는 이들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모니터······. 이건 정말로 흔한 일이 아니었다.

“왜 그랬다던가?”

“그 최기환이라는 친구가 제 멋대로 남들 코딩 부분까지 손을 댔다더군요.”

“하하하! 그거 혼날만 했군. 가만! 그런데 최기환이라면 그 키 엄청나게 큰 그 친구 아닌가?”

“네. 맞습니다. 그 거구가 문상훈 차장에게 덤비지는 않을까 걱정했었습니다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더군요. 문상훈 차장이 그 분노한 상황에서도 조리있게 제대로 설명했고 최기환도 납득한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회사 기물은 부수면 안되지.”

“설비팀에 돈봉투 던지고 갔다더군요.”

“크크크. 그 녀석 참 웃긴 녀석이군.”

“그렇죠? 그 친구가 인물은 인물인 모양입니다.”

조양길과 이걸영은 껄껄 웃었다.

“그런데 그 친구 이갸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 겁니까?”

“내가 문상훈이 붙여주면 잘 다룰 수 있겠어?”

“네?”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 너 혼자 함성준이랑 게임이 안되잖아. 이럴 때는 강한 무기라도 하나 필요하지 않겠어?”

“그게 문상훈이라는 겁니까? 하지만 고작해야 차장······.”

“그건 우리가 키워주자고.”

“키워준다······.”

“솔직히 문상훈이 정도면 회사 차원에서도 키울만한 인재 맞잖아. 게다가 케쥬얼 모바일 시장은 역시 북미시장이야. 그녀석 미국에서 자란놈이잖아. 미국지부가 커질수록 녀석의 가치는 높아지겠지.”

“성준이 형님이 중국통이니, 문상훈을 미국통으로 키워서 밸런스를 맞춰 본다 이거군요.”

“그래. 일단 계획은 그럴 듯 하잖아?”

조양길의 말에 이걸영은 턱을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셨다. 머릿속으로 조양길이 말한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본다.

제대로 성장한 문상훈을 앞세워 함성준과 맞선다.

당장은 완벽한 그림은 나오지 않지만, 그나마도 이것이 가장 가능성이 있지 싶었다.

“하지만 역시 문상훈 하나로 가능할까요? 양성태까지 붙여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회장 비서까지 빼가려고 하다니, 간이 부었군.”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이걸영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 없는 말이었다고 생각하며 순순히 물러났다.

“양성태 그녀석 곧있으면 사업부로 보낼거야.”

“자, 잠깐만요! 양성태는 함성준 형님에게 보낸단 말입니까? 그럼 안되죠!”

안그래도 벌서부터 군단이니 뭐니 하는 별명까지 붙은 함성준의 파벌이다. 여기에 양성태가 합세한다면 문상훈을 준다고 해도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끝까지 들어. 그 녀석은 거기서 함성준 녀석의 제동장치 역할을 하게 될거야.”

“아!”

“그 사이에 문상훈이 키워. 네 손으로 키우는 거다. 모두가 아! 문상훈이는 이걸영 상무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야. 그리고 문상훈하고도 정식으로 만나서 제대로 설득하고.”

“갑자기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한목소리만 나오는 회사에 성장동력이라 봐야 뻔하지.”

경영자로서 회사 내에 여러 종류의 목소리가 나오길 바란다.

“그건 그렇지만······. 과연 제가 함성준 형님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쉽진 않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조양길의 말에 이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전]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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