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
‘굉장하다. 역시 대기업에서 에이스라고 불리는 개발자는 다르구나.’
한명수는 감탄했다.
“이해했지? 로직이 튼튼하면 자연스럽게 코딩에도 군더더기가 없어지는 법이야. 여기 이 마인드 맵을 보면······.”
신입사원 간담회는 본래 신입사원들이 자신들의 고충을 털어놓고 선배들이 자신들이 겪은 노하우를 전달하거나, 혹은 마음가짐 등을 말해주는 훈훈한 자리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상훈의 간담회는 전혀 달랐다.
‘자네들 수준의 불만이나 고충 따위는 뻔하지.’
‘?’
시작부터 터무니 없이 공격적인 멘트였다. 맥베스의 미친개라고 불린다더니, 진짜로 미친놈이 아닌가? 싶은 첫인상이었다.
‘일이 힘들어? 그럼 쉽게해.’
‘윗사람 눈치 보기 힘들어? 그럼 윗사람이 눈치 보게 만들어.’
······.
이건 진짜 미친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뒤편에 서있는 거구의 남자는 감명깊다는 표정으로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방법을 알려주겠다. 회사 생활의 모든 문제는 이거 하나면 해결이다. 반대로 이게 안 되면 해결이 안되지.’
문상훈은 화이트 보드에 간략하게 무언가를 적었다.
[표면적인 노력 보다 진정한 생산성에 집중하라]
어도비 CEO 스콧 밸스키가 한 격언을 적는 것으로 문상훈의 연설, 아니 강의가 시작되었다.
‘너희는 이 자리에 일을 하기 위해 왔다. 그러니 일을 잘한다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 된다. 반대로 일도 못하면서 징징대는 것은 너희가 겪는 문제 대부분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일을 잘하면, 아~주 잘하면 네가 윗사람 눈치를 볼 시간에 윗사람이 네 눈치를 보기 시작할 것이다.’
‘업무라는 것은 결국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로직을 짜라! 마인드 맵을 이용해라. 네가 회사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시간까지, 화장실과 탕비실에 들리는 모든 시간까지 동선을 설계하고 계획적으로 행해라! 이건 기본중의 기본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인가 싶었다. 화장실과 커피 마시는 시간까지 설계하라고? 과장이 심한 사람이다.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인해서 장트러블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신입인 너희야 잘 모르겠지만 곧 알게 될거다. 장 운동에 좋은 제품들을 소개하지. 이것들을 출근하기 전에 먹고 업무시간 전에 화장실의 용무를 끝내는 것을 루틴화 해라. 업무 중에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코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뭐랄까, 점점 빠져든다. 그리고 그럴듯하다. 물론 그가 말한 것들 대부분이 실현이 가능할까? 싶은 내용들이었지만 문상훈이라는 남자의 굳은 의지와 결의에 찬 눈빛은 이것들이 실현 가능하며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강한 에너지라는 것은 자석처럼 주변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문상훈은 마치 강력한 자석 같은 남자였다.
그렇게 회사 생활의 루틴을 설계하는 방법이 끝난 이후에는 상사를 대하는 방법으로 이어졌다.
‘상사도 인간이다. 대부분은 몇 가지 타입으로 구분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지만, 반대로 완전히 무용하지도 않다. 회사가 괜히 시간낭비해가며 강사들을 초청해 MBTI 따위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용하라고 하는 것이다.’
‘멍청이들은 아! 내 MBTI는 이거구나? 하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정말로 멍청한 짓거리다. 중요한 것은 상사의 MBTI이지. 네 것이 아니다. 너희는 상사와 동료들의 정보를 기억하고 그것을 이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신입사원들이 아니었다면 이 대목에서 깜짝 놀랐을 것이다. 듣고 있던 최기환 조차도 놀랄 정도였으니까.
천생 안하무인으로 남들 눈치따위는 조금도 보지 않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문상훈은 자신만의 확고한 인간관계 철학을 지닌 남자였다.
‘물론 상사에게도 너의 MBTI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안타깝게도 좋은 부하가 되기 위한 노력은 강조되지만, 좋은 리더가 되는 노력은 중요치 않은 세상이다. 네가 편하고 싶으면 네 스스로 환경을 개선하는 수 밖에 없다.’
이런식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마치 지난번 심리학교수를 초청해 들었던 강연 같은 내용을 지나쳐 본론에 들어갔다.
“너희는 이제부터 나와 함께 게임 하나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
“게임?”
순간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작은 술렁임이 이어졌다.
“이것은 신입사원 연수에 일환이지만 그렇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무척 힘들 것이다. 최소 몇 달간은 회사를 집으로 생각하고 지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원하는 자만 참가하면 된다.”
“저희가 참여함으로서 얻을 이득이 있나요?”
한 신입사원이 용기를 내서 질문했다. 그러자 문상훈이 기다렸다는 듯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있다. 일단 작게는 별것 없는 인사평가에 한 줄 정도 첨부되는 소소한 이득이 있겠지. 물론 이것은 참여했는데 일을 개떡같이 해서 마이너스 기록이 남을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마, 마이너스······.”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다. 단순히 참가했다는 것만으로 너희의 열의 같은 것을 인정해 줄거라고 생각하나? 결과도 없이 의욕과 열의가 있다는 식의 생활기록부상의 뜨뜻미지근한 칭찬을 회사에서 기대하는 머저리는 없겠지?”
문상훈의 말에 마이너스라는 단어를 읖조린 몇몇 신입사원이 급히 입을 닫았다.
“다음으로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험······.”
“개발자란 결국 몇 개의 게임을 어떤 포지션에서 얼마나 관여했는가로 실력이 판가름나는 것이다. 이것은 주도적으로 게임 하나를 완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값진 경험이 되겠지.”
문상훈의 말에 신입사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소속된 파트에서도 소스나 파악하라며 맥베스 게임들의 코딩 소스나 읽으라고 일축하기 일쑤였다.
아직은 신입사원들을 전력으로 취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건 성과가 났을 때의 일이지만······. 최고의 이득은 바로 나 문상훈이가 승진할 거라는 점이다.”
“?”
“?”
순간 신입사원들은 저마다 서로를 돌아보며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저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게임을 개발해서 성과를 내면 지가 승진한다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표정이군.”
대답은 없었지만 모두가 눈빛으로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설명해주지. 좋은 상사라는 것은 좋은 후임보다 100배는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나 문상훈은 장담하건데 좋은 상사다.”
“······.”
뭔가 자뻑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모두는 입을 열지 못했다.
“너희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너희의 아이디어를 가로채고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상사. 자신이 지시하고서는 결과가 나빠 보이자, 너희 탓으로 돌리는 상사. 업무가 아닌 쓸데없는 지적들로 너희의 업무 효율을 낮추는 상사.”
“세상에 나쁜 상사가 되라고 지시를 내리는 회사는 없지만 반대로 착한 상사에게 승진의 기회를 더 제공해주는 회사는 없다. 세상은 넓고 개새끼들은 많다. 이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바로 나 문상훈이는 다르다.”
“나는 지금 차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단 한 번도 조기 진급 명단에서 빠진 적이 없다.”
“사실이다.”
문상훈의 말에 최기환이 자신의 일처럼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사실임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나는 너희들의 알량한 성과 따위 빼앗아서 올리는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너희의 성과는 오롯이 너희의 성과다. 그리고 나는 내 주변의 부하들이 유능하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너희의 형편없는 업무역량도 강제로 레벨업 시킬 것이다.”
“······사실이다.”
최기환은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끔찍하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문상훈이 같은 인물이 이 회사의 높은 자리에 올라야 너희의 미래가 편해진다. 지금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몰라도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 문상훈이의 승진이 너희에게는 가장 큰 이득이다.”
뭐랄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치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스스로의 연설에 고무된 문상훈은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최고야. 잘했어. 이정도면 이녀석들도 이해했겠지. 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입사원들의 표정은 딱 절반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뭔 개소리냐는 표정을 짓는 무리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뭔가 끌린다는 표정을 지은 이들이었다.
한명수는 후자였다.
물론 그가 끌린다는 것은 문상훈이 떠들어재낀 자신의 승진 운운하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경험······. 좋다. 이거.’
이 시기에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비슷한 열망을 품고 있다.
멋진 게임을 만들고 싶다. 자신을 게임업계에 투신하게 만든 그런 명작 게임을 스스로의 손으로 빚어 내겠다는 순수한 열망.
회사에서 승진해서 임원을 달겠다는 생각 따위를 품고 있는 사원들은 많지 않고 그런 이들일수록 금방 회사를 떠난다.
“언제부터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목소리 좋군. 자네 이름이 뭔가?”
“한명수라고 합니다!”
문상훈은 자신의 전화번호와 사내메신저 ID를 백보드에 적었다.
“관심이 있는 자들은 이곳으로 메시지를 보내라. 더 질문있나?”
질문은 없었다.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알려주지.”
“?”
“이거 선착순이다.”
문상훈은 마법의 주문을 던지고 자리를 떠났고 신입사원들은 선착순이라는 말에 허겁지겁 문상훈의 사냄메신저 ID를 적고는 자신의 PC를 향해 내달렸다.
*
*
*
“내용에 대한 평가는 제외하더라도 참으로 청산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성태의 말에 이걸영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걸리는 부분이라도?”
“팀워크 보다 본인이 서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야. 그렇지?”
이걸영의 말에 양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그런 기질이 있지요.”
현재 조양길의 심중이 이걸영와 문상훈을 한데 묶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는 문상훈을 위해 변명을 해야하지 않나? 싶지만 양성태는 그러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골을 넣기를 바라는 타입입니다. 동료의 득점에도 기뻐하기는 하겠지만 내심 다음 골은 반드시 나다라며 되새기는 타입이겠지요.”
“역시 좀 아니지 않을까? 함성준 전무도 괜히 저 친구를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것이 아니야. 게다가 파벌이라는 것은 화합도 중요하지 않나?”
이걸영은 자칫 문상훈을 영입하는 것으로 이제 막 발돋음하기 시작한 자신의 파벌에 악영향이 미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기 최기환 저 친구 보이십니까?”
“보이네만?”
“저 친구도 탁월한 업무 능력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문상훈 차장과 비슷하게 안하무인적인 성격으로 상사들의 눈총을 사기도 하지요.”
“핵심이 뭔가?”
“적어도 현재의 문상훈 차장은 남들은 다룰 수 없는 특정 부류의 인재들을 강하게 휘어잡을 수 있다는 것은 증명이 된 셈이 아닙니까?”
“닭잡을 때와 소잡을 때를 구분하면 될 일이다?”
“그것이 임원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지. 그게 내 역할이지. 하지만 어쨌든 저 녀석이 게임을 성공시켰을 때의 일이지.”
만약 첫 번째 과제부터 실패한다면 모든 것은 무산된다.
“그점은 염려 놓으셔도 좋습니다.”
“?”
“맥베스의 에이스 개발자가 아닙니까?”
“두 사람······. 사이가 좀 그렇고 그런 것 아니었나? 라이벌 아닌가?”
“라이벌이니, 없는 자리에서는 치켜세워줘야지요. 그래야 같은 저울에 올라 있는 저의 가치도 돋보이는 법 아니겠습니까?”
양성태의 말대로 문상훈은 신입들을 이끌어 모바일 마켓 5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후 조양길과 이걸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핵심 프로젝트들을 담당하며 양성태를 넘어 순식간에 임원 자리까지 꿰뚫게 된다.
[외전] 목장이면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