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홍기도의 아들 홍세인은 어려서부터 함께 지낸 소꿉친구가 있다.
표인아.
장신에 눈에 확 띄는 미녀인 그녀와 어려서부터 딱 붙어 자란 덕분에 홍세인은 연애 한 번 못 해본 상태로 대학을 졸업했다.
표인아와 연애를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다른 여자들이 알아서 피해가버린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홍세인은 딱히 연애에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연애보다 게임이 좋았기 때문이다.
홍세인이 게임 개발자로 진로를 결정한 것은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결과였다.
당장 그의 아버지부터가 카이두라는 세계 굴지의 게임개발사의 회장이 아니던가?
하지만 홍세인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게임 개발을 선택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 보다는 오히려 표인아의 아버지 덕분이 컸다.
표세인.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아버지의 친구.
그에게 표세인이란 단순히 아버지의 친구를 넘어 2번째 아버지나 다름없는 관계였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표인아와 함께였다. 그렇기에 어릴 때는 등하교를 표세인이 담당했었고 자라고 나서도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그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것이나 마찬가지다.
표세인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 이따금 회사를 방문(출근이 아닌 방문이다)할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항상 집에 있었다.
덕분에 홍세인은 자연스럽게 표세인과 어울리며 많은 게임들을 접했었다. 홍세인은 표세인이 좋았다.
어린시절부터 재미있는 게임을 소개해주거나 자신에게 공략법을 알려주는 식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우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표세인의 또 다른 별명은 천재 개발자였다.
수년에 한 번 꼴로 표세인이 세상에 내놓는 게임들은 하나같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표세인이 세상에 내놓은 게임의 팬들이야 수억명 이상이지만, 그중에서도 홍세인이 표세인의 게임에 갖는 애착은 남다른 것이었다.
‘어때 보이니?’
‘저는 이 부분에서는 적이 더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렇게 해볼까?’
‘어?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우리는 같은 팀이잖아! 그렇죠?’
‘클클클. 그럼 우리 세인이도 한 팀이지.’
그때부터였다.
게임이란 즐기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홍세인의 진로는 게임개발자로 정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아 명석한 머리를 지닌 홍세인이었다. 과학고 조차 문제 없는 성적을 가진 그는 마침 기둥소프트가 설립한 게임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것은 표인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그녀는 홍세인만큼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으니까. 그리고 표인아가 그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도 홍세인의 결정에 한 몫했다.
선생님들은 기겁을 했으나, 정작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뻐했다.
‘정말 그래도 돼요?’
어린 마음에 다른 부모님들이라면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홍기도였다.
‘안 될 이유가 뭐가 있어?’
‘선생님들이 저라면 의대나 법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요?’
‘응? 의사나 변호사는 돈 주고 고용하면 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그 직업을 원하는 이유가 뭔지는 알잖아.’
‘돈?’
‘그렇지. 네가 돈이 필요하진 않잖아.’
‘그렇군요.’
‘네 인생 진로 중에서 딱 하나를 빼면 내가 너에게 간섭할 일은 없다.’
‘그 이야기 좀 그만해요! 인아 누나랑 저는 그런 마음 추호도 없다고요!’
‘웃기지마! 인아는 분명 말을 받고 나랑 약속했어!’
‘내 결혼을 왜 아빠랑 해요!’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
‘엄마! 아빠가 또 이상한 소리해요!’
홍세인의 볼맨소리에 쉬린칭이 깔깔 웃었다.
‘너도 네 아빠 아들이니, 그러다가 냉큼 태세전환하겠지.’
‘?’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런거 있어.’
‘그렇게 있다.’
부모님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어쨌든 홍세인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이후 본인이 꿈꿔온 대로 개발자가 되기 위해 기둥소프트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정말로 부모님의 말대로 그와 연아는 그사이에 연인이 되어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왔어?”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홍세인이 큰소리로 기둥소프트의 한명수 이사에게 인사했다.
“새삼스럽긴. 전처럼 아저씨라고 불러도 된다.”
“그래도 여긴 회사잖아요.”
“하긴 그건 좀 그렇겠구나. 하지만 그러면 너도 여기 느낌대로 이사라고 부르지 말고 미스터 한이라고 불러라. 참고로 핑크는 안 된다.”
“······네.”
어려서부터 기둥소프트 사무실을 놀이터처럼 방문하던 홍세인이었다. 그래서 기둥소프트의 임원들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회장인 표세인과 부회장인 제임스의 경우 거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왔네!”
마침 홍세인을 발견한 표인아가 후다닥 달려왔다.
“이야기 들었어?”
“뭘?”
“너 나랑 다른 개발실이래.”
“그래?”
“응. 네 소원대로 우리 아빠 직속팀에 소속이래. 좋지?”
“응. 좋다.”
홍세인은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표인아의 눈썹이 꿈틀했다.
“여자친구랑 다른 팀이라는데도 웃음이 나와? 너 제정신이냐?”
“업무적으로는 부딪칠 수도 있잖아. 차라리 떨어져 있는 것이 낫지. 안그래?”
“으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하네.”
“그런데 오늘따라 부산스럽네?”
일반적인 신입사원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홍세인은 기둥소프트 내부에 흐르는 묘한 텐션을 곧장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현재 기둥소프트는 작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게 다 너희 아버지 때문이지.”
“우리 아빠?”
“응. 아니다. 우리 엄마 때문이기도 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넌 정말로 집안 일에는 관심이 없구나?”
“말 돌리지 말고 제대로 설명해줘.”
대학교 시절부터 혼자 살아온 탓에 오히려 표인아가 홍세인의 부모님 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정도였다.
“맥베스와 카이두가 합병한대. 이름을 맥카스라고 하기로 했다더라고 유치하지? 진짜 센스 없다니까?”
“그러게 센스 없네. 어쩐지 우리 아빠가 지엇을 것 같은 느낌이네.”
“우리 엄마일 수도 있어. 그런부분에 관심 없는 사람이잖아.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에만 관심이 있겠지.”
“그런데 왜 갑자기 합병?”
“이게 다······. 우리 아버지 때문이겠지.”
“아저씨 때문이라고?”
“그래. 아버지가 이번에 본격적으로 차세대 VR게임 개발에 착수한다고 공표했거든.”
“와우!”
드디어 4세대 VR 시장으로 넘어오며 과거에는 말뿐이던 가상현실게임이라는 개념이 거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360도 디스플레이 기술의 성립과 슈트형 컨트롤러의 등장으로 이 시대의 게임은 과고와는 거의 완전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마침 저기 오네. 그럼 기쁨을 나누라고 방해꾼은 사라져줄게.”
“어. 고마워. 빨리 가봐.”
“이 새끼가······.”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등을 돌린 홍세인을 향해 표인아는 눈을 흘겼지만 이미 홍세인은 볼까지 발그레하게 상기된 상태로 다가오는 한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듬성듬성 돋아나있는 흰머리와 흰수염에도 불구하고 굵은 주름 몇 개를 제외하면 나이보다도 한참 젊어보이는 남자였다.
거의 6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허리는 꼿꼿했고 움직임에는 힘이 넘쳤다.
“왔구나.”
기둥소프트의 대표이자 오너.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자.
표세인의 등장이었다.
“네! 왔습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갔네?”
“그러니까. 평소에는 흐리멍텅한 눈으로 멍때리기만 하는 녀석이 말이야.”
표인아는 자신의 아빠를 향해 눈을 반짝이는 홍세인이 꼴보기 싫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너 아직 안 갔어? 일해야지.”
“진짜 죽고 싶냐?”
“새로 합류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우리 목표가 뭔지는 알고 있지?”
“네! 마왕타도죠!”
“크흐흐흐. 진짜 이런 점은 아빠랑 똑같네요. 오랜만이에요. 홍세인군.”
“이모도······. 아, 아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함송희 이사님.”
함송희는 오래전부터 맥베스를 떠나 기둥소프트에 안착했고 곧장 CTO(최고 기술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표세인이 회사를 돌아보지 않는 사이에는 제임스, 한명수와 함께 기둥소프트를 이끌어 왔다.
“아무튼 대표님 제가 말씀드린 것은 기억해주셔야해요. 이건 돈으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기술적인 문제에요. 제임스 부대표님도 여러모로 고민하고 계세요.”
“아, 안되는데······. 정말 네 힘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야?”
“당연히 안되죠. 저도 이젠 퇴물이에요. 이런 신기술은 젊은 인재들쪽이 전문가라고요.”
함송희에 말에 표세인은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홍기도 녀석이 그래서 맥베스와 손을 잡은 거지.”
“네. 그 두 회사는 독자적으로 오랫동안 차세대 게임 기술에 투자를 해왔죠. 그러면서도 마치 자매회사처럼 기술을 공유하면서 이번에 합의점까지 찾은거죠. 모르긴 몰라도 기술로는 손을 잡은 그 두회사를 쫓을 수 있는 회사는 없어요. 이건 불가능해요.”
기둥소프트도 그동안 꾸준히 체격을 불려왔지만 세계 1, 2위를 다투는 맥베스와 카이두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번 합병으로 맥카스라는 몬스터 컴퍼니의 탄생하면 자금력과 기술, 인프라면에서 누구도 꿈꿀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홍기도 녀석에게 뒤처지는 건가?”
“지난번에도 꽤 아슬아슬했잖아요? 홍기도 회장의 장점은 자신이 뛰어난 개발자가 아님을 알고 보다 나은 인재들에게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준다는 점이죠.”
“끄응. 그렇지.”
“한번쯤은 질 수도 있지 않아요? 그리고 솔직히 본인들끼리 경쟁하는거지. 남들은 딱히 누가 이기고 진다고 생각 안해요. 애초에 게임 성적은 둘다 최상위권인데, 매번 기준이 애매하잖아요?”
“그래도 싫어.”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오히려 솔직해 지는 부분이 나오기 마련이다. 표세인의 경우는 딱 이부분에서 무척 솔직해졌다.
홍기도와 남궁원에게 지고 싶지 않다. 이것이 근래 표세인의 가장 큰 화두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로 지고 싶지 않아. 그리고 게임이란······.”
“꼭 기술력만이 게임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죠.”
홍세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계속해봐.”
표세인은 무척 기대된다는 듯이 홍세인을 바라보았다.
“게임은 예전부터 시중에 나온 하드웨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도전들이 있었죠. 그리고 때로는 부족한 기술을 메꾸기 위한 여러 노하우들이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VR시장은······.”
“네. VR은 기존보다도 더 스펙적인 부분에서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죠. 하지만 과거 평면 디스플레이가 전부였던 시절에도 최고급 그래픽이 아닌 랜더링이나, 기타 여러 방식으로 기술력을 보충한 사례는 있었죠. 무엇보다 과거 표세인 대표님의 스쿨런 같은 경우에도 극한의 비선형성으로 부족함을 메운······.”
-짝짝짝.
갑자기 표세인이 박수를 쳤다.
“들었지? 이게 바로 내 제자야.”
“그렇네요. 정말로 딱 대표님이 바라는 스타일이네요. 그런데 정말로 카이두 회장의 아들을 우리 회사에서 육성해도 되는 걸까요? 훗날 이곳에서 쌓은 노하우를 고스란히 그곳으로 헌납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필요하다면 서약서라도 쓰겠습니다. 저는 미래에도 아버지 회사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아니, 무슨 서약서 씩이나······.”
“무엇보다 대적에 맞서 싸우는 것이 훨씬 재미있잖아요? 어쨌든 규모로는 저쪽이 훨씬 크니까요.”
“크크크. 그래 바로 그거지! 좋았어. 간만에 피가 끓는구나.”
표세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외전] 용사파티 (재)결성!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