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도시로 가는 길(1)
시온 니벨룽은 니벨룽 가문의 막내였다. 니벨룽 가문은 한미한 가문으로 발피르 산맥의 흩어져 있는 가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귀족이라고 해서 귀족이 전부 고귀하게 사는 것은 아닌 것이, 가문이 어디에 존재하는 지도 중요했으며 관련된 봉신 관계를 맺는 봉주가 누구인지도 중요했다.
니벨룽 가문은 둘 다 좋지 않은 가문이었다. 발피르 산맥은 땅은 넓은데 위험한 짐승이 즐비했고 산맥의 특징 덕에 각종 도적도 빈번히 생기는 편이었다.
봉주인 아벤느 가문도 그렇게 번성한 가문이 아니었다. 아벤느 가문의 가주는 현재 미성년자였고 아벤느 가문의 전권은 올버니가 가로챈 상황이었다.
그러니 봉신 가문도 세금이 말이 아니었다. 원래도 힘든 편이었지만 올버니의 압박에 니벨룽 가문은 더욱 가난해졌다.
시온이 가문에 있을 이유가 더더욱 없어졌다. 그럴 것도 그런 것이 가문의 상속은 큰형이 받을 것이었다.
게다가 흔한 귀족들의 가족과도 다른 편이 아닌 것이 큰형이 자기를 거스르는 동생들은 모두 쫓아낼 생각인지라 더 있어 봐야 피를 볼지도 몰랐다.
‘새로운 세상이라.’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시온은 사실 현대인이었다. 것도 서른이 넘은 나이였었다. 그나마 이렇게 평정심을 가질 수 있는 건 세상에 대한 나름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상속에 제외된 아들들은 가문의 지원을 받아 다른 곳에서 자립할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가문이 크고 나눌 것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나눠 가지겠지만 시온의 니벨룽 가문처럼 그저 허울 좋은 귀족이라면 장자가 다 가지고 나머지는 해당이 되지를 않았다.
아니면 계속 거기서 눌러 않거나 그나마 재산이 있는 상인이나 비슷한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가야 했는데 시온은 그렇게 사는 건 싫었다.
허리춤에 있는 은화들이 겨우 받아낸 바로 그 권리였다. 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받아낸 추천서 하나와 그리고 여비를 비롯한 약간의 동전들.
당연히 이것만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양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빈손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었다.
시온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자유 도시 피레였다. 피레의 별칭에 자유란 단어가 붙어 있는 만큼 이곳에서 나름의 여러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활기찬 도시였다.
일단은 거기까지 가는 것이 지금의 당면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노숙이라든지, 산맥의 길을 찾는 법이다든지, 위험한 짐승을 피하기, 물을 찾기 위한 지식, 덫을 깔고 요기할 짐승을 잡는 기술 정도는 이미 잘 배운 상태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가야 할 미래를 인지하고 있던 시온은 여러 사람에게 생존술을 열심히 배웠다.
바로 이것과 같이 말이다. 깔아둔 돌덩이가 작은 토끼의 머리를 내리찍고 기절시킨 모양이었다. 토끼의 귀를 잡아 들어 올렸다. 불을 붙이고 나면 오늘 식량을 굳히게 된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일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어 갔다. 피를 빼고 내장을 제거하고 나머지는 잘 싸놓은 뒤에 저녁에 먹을 거였다. 이렇게 혼자서 해야 할 상황을 예상하고 예전부터 악착같이 배우고 익혔다.
현대와는 다르게 이곳은 자칫 잘못한다면 일상적인 생활도 유지할 수 없는 미개하다면 미개한 곳이었다.
‘왕조가 있다니.’
역사에서만 보던 그런 철저한 사회의 규칙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거였다. 그나마 농민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여러 차례 훈련한 덕에 이 정도의 문제는 이제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근처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아도 어떤 짐승이 배회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오늘 밤은 불을 조금 더 크게 키워야겠다.’
아직 까지는 호기심 넘치는 짐승이지만 아무리 안전한 길로 가고 있다고 해도 이곳의 위험성은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괜히 니벨룽 가문이 가난한 것이 아니다.
토끼는 저녁 식사이니 지금은 건포를 뜯어야 했다. 건량은 나름 개조를 한 상황인데도 씹자마자 텁텁한 것이 물을 빨리 먹어야 했다.
물을 넣으면 조금 나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저 쓰디쓰고 밍밍하고 비린내 나는 맛이 기다리고 있다.
왜 향신료가 발달했겠는가, 소금과 후추는 이곳에서 너무도 귀하디귀했다. 특히 후추는 가문에서도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흔하디흔한 것이 막상 없어지니 귀중함이 느껴지는 게 한두 세월이 아니었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내고 출발하기 전 매일 하던 단련을 해야 했다. 자립하기 위해서는 사냥법 정도로는 당연히 안 된다. 그보다는 좀 더 용병업을 염두에 둬야 했다.
각종 육체 훈련도 훈련이지만 오늘은 미뤄두고 마법 훈련을 할 계획이었다. 사실 페레시로 향하는 이유는 이게 가장 컸다.
페레시에는 큰 마법 길드가 있었다. 그랬다. 이곳은 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게 신기한 점이었는데 그 규모가 생각보다 거대했고 높은 신분의 계층을 이루고 있었다.
마법사라는 건 귀족과 비슷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어떻게 보자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사회적 지위가 낮을 수 있을까.
그래서 많은 사람이 신분을 상승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의 하나가 마법사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러했다. 실상은 마법사들도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다. 마법에 대해 알기 위해선 어렸을 때부터 조기 교육이 중요하게 작용을 했다.
관련된 과목을 배워야 하고 여러 가지 훈련을 해야 했다. 물론 재능이 중요하기에 이러한 과정 없이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신분에도 길이 열려 있다는 거였다. 어쨌든 애매한 자질이라면 교육받은 쪽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귀족이 아니라면 농민보다는 상인의 자제가 많은 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온이 그런 혜택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니벨룽 가문은 막내에게 그런 교육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가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책이 있었지.’
장서엔 마법과 관련된 서적이 있었다. 시온이 글을 배우려고 노력을 갈고 닦은 것은 그 서적을 읽기 위해서였다. 글 정도는 의욕만 있다면 가문에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현대와 익숙한 문자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글자를 깨우치고 관련된 서적을 탐닉한 것도 여러 해였다.
그냥저냥 자립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나름의 치열한 준비와 페레시에 존재하는 마법사 길드에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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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역할은 다방면에 걸쳐있다. 단순히 이 현상을 일으키는 데에 있지 않았다. 의료와 생필품의 발명, 갖가지 약품 지식,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일까지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큰 역할이라고 한다면 바로 전쟁에 있었다. 마법사라고 해서 영지를 갖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전쟁에 공을 세우고 영지를 하사받은 마법사도 소수지만 있었다. 대부분은 대마법사, 13인의 현자 즉 마법사의 탑 자체가 소유하고 있는 영지의 대리인들이다.
페레시도 그중에 하나였다. 길은 묘하게 조용했다. 사람이 지나다닐 법하다만 오늘따라 유독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나름 길은 잘 가꿔져서 어설프게 나무를 쳐서 만든 표지판까지 달려 있었다.
표지판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몬스터가 나타날 일이 드물다는 뜻이기도 했다. 심심하던 차에 저 끝에서 사람의 무리가 조금 보였다. 행상이었다.
간단한 무장에 등짐을 지었고 끌고 있는 말과 수레엔 이런저런 물건이 담겨 있었다.
앞에 가던 가죽 갑옷에 철판을 덧댄 방어구를 입은 남자가 시온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데 산지라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긴 했다.
도시는 서로 경계하는 것이 일이지만 이곳은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뭉쳐야 조금이나마 살아나기가 쉬웠다.
“안녕하시오!”
현대에서나 이곳에서나 그다지 인사성이 밝지는 않았지만, 사내의 대범한 인사에 받지 않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한 법이었다.
“예. 안녕하세요.”
“여행에 길잡이의 축복이 있기를.”
“상행에 노파의 지혜가 깃들기를.”
남자가 씩 웃었다. 길잡이는 안전을 축복해줄 수 있지만, 상행에 노파의 지혜가 깃들겠다는 답례는 동전과 연관이 있는 법이었다.
당연히 상단 무리에게는 후자의 인사를 해주면 크게 호감을 살 수 있었다. 낯선 이에게 노파의 답변을 받았을 때 운이 잘 풀린다는 미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벤 형제요. 소금과 옷, 맥주를 판다오.”
“저는 그냥 지나가는 방랑자입니다.”
“그러신가. 오는 길을 보아하니 니벨룽가 사람이신가 봅니다?”
용케도 가문의 문장을 알아챘다. 니벨룽 가문이 한미하긴 해도 나름의 인지도는 잘 잡힌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지 세 개의 문장은 귀족다운 멋이 잔뜩 묻어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