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면허(3)
금화 열 개가 생겼다고 해서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흔히들 마법사들은 돈이 많이 든다고 한다. 괜히 귀족이나 상인이 대부분인 게 아니다. 마법사는 마나를 모으는 것이 전부인 족속이었다.
마나가 높아져 높은 면허를 받게 되면 그것이 마법사의 모든 것을 가를 수 있는 조건이었다. 상위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은 더도 말고 마나의 양을 높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첫 번째로 중시되는 것이 마석이었다. 흔히 마나를 담을 수 있는 보석을, 가공해 마석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 마석의 효과 역시 일방적일 정도였다. 좋은 마석은 매일매일 순도 높은 마나를 모을 수 있게 하고 그 마나는 다시 마법사가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이 순환이 마법사가 평생 해야 할 단순한 반복이었다. 중세의 신분 상승은 현대에 비교하자면 아찔할 정도로 어려운 편이었다.
만약에 이 상황을 올라간다고 해도 피로 이어지는 권력이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많은 유력 귀족과 왕족이 뛰어난 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모든 기반이 되는 마나를 모을 방법은 자질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장비의 질이라는 것이 강하게 작용했다.
더 좋은 마석이 있다면 더 쉽게 마나를 쌓을 수 있는 법이니, 왕족치고 아무리 관심이 없는 자라고 해도 기본 마법은 부릴 줄 아는 거였다.
이마저도 뛰어넘는 것이 가끔 나오곤 하는 천재적인 자질이었다. 천민, 평민이 마법사라는 직업을 통해 입지적인 출세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어렵고 노력으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이 같은 개괄조차도 수련 마법사가 되기 전에는 제대로 알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스승조차 없는 시온이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발뭉 니벨룽이 남긴 일기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는 욕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 적어도 한 몸 건사하고 영지 하나 얻으면 그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시온이 유년기를 각종 육체적 훈련에 매진한 것도 딱히 거창한 목표를 가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준비하고 서른쯤에는 자리를 잡고자 하는 나름의 소박한 야심이 있었기에 그랬다.
‘후. 지금 필요한 건 그래서 마석이지.’
마석, 제대로 된 가문이라면 자식 중 한 명은 마법사의 길을 걷게 하려고 갖은 애를 쓰기 마련이었다. 마법사를 하나도 배출하지 못한 가문은 흔히 멍청하다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애초에 기수 가문으로서 영예로운 기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 니벨룽 가문의 오래된 전통이었기에 시온은 전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요구해봐야 턱없이 부족한 영지의 재산으로는 마석 하나 샀다가는 값비싼 기사의 무구를 구할 수 없는 일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의 무구는 비싸다. 하나하나가 매우 비싸서 니벨룽 가문에서도 제대로 된 무구를 가질 수 있는 건 계승되어야 할 장남밖에는 없었다. 나머지는 그저 검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아무리 최하급의 마석이라고 해도 페레 시에서 구할 수 있는 마석의 가격은 금화 백 개 부터였다. 암시장에 간다면 오십 개짜리도 구할 수 있겠지만, 품질은 보증 못 한다.
그뿐만 아니라 마나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장비도 많이 필요했다. 그 정도로 마법사라는 건 돈이 많이 들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한다면 더 높은 단계의 마법사가 될 수만 있다면 가치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하나의 단체에서 상급의 지위까지는 그저 치고 올라갈 수 있었고 거기에 기반을 둔 각종 이문이 남는 사업이나 장사에도 손쉽게 끼어들 수 있었다.
시온은 오랜만에 탁자 위의 컵에 물을 따라놓고 나뭇잎 하나를 띄웠다. 가장 기본적인 테스트 법.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마법사가 어떤 원소를 다룰 수 있는지 점검할 방법이었다.
나뭇잎이 점점 흔들리고 요동을 쳤다. 첫 번째 요건인 마나의 감지와 기류를 쓸 수 있는 법이다.
차가운 이미지를 생각하고 집중하자 나뭇잎 끝이 얼어붙었다. 수와, 빙속성을 다룰 줄 안다는 것.
그렇다면 시온은 수 계열 원소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스파크가 점점 일어난다. 전격 속성이다. 이게 바로 세 번째 요건, 원소를 여러 개 다룰 수 있다는 것.
네 번째 나뭇잎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염 속성이었다. 이건 특수 계열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자 결국 나뭇잎이 떠올랐다.
그 나뭇잎이 불이 붙더니 이내 물 위에서 활활 타기 시작했다. 불 속성, 이렇게 해서 다섯 가지 속성을 다룰 수 있었다.
‘많이 다룰 수 있다고 해서 좋은 일은 아니지.’
영주가 마법사라는 직업에 만능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온은 마나를 느끼는 일에는 타고난 것 같았다. 다만 그에 부작용으로 여러 가지 원소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원소도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자제하고 있었다.
여러 개를 느끼는 것도 큰 재능이긴 하지만 마법사에겐 오히려 독이었다. 왜냐면 상위 마법을 익히는 것이 마법사의 전부인데 그 상위 마법을 익히게 하는 마나의 쌓임은 여러 원소가 다룰수록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잘못하게 된다면 평생 하위 마법사에 머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위험한 편이지.”
그래서 마법사의 자질의 혜택을 받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시온도 지금 마석부터 가지고 싶어하는 거였다. 남들보다 모아야 하는 마나가 많다는 건 이제 확실해진 부분이었으니까.
“한 달이면 경기는 세 번이고 금화 열 개씩으로는 면허 시험 전까지 절대로 마석은 못 구하겠지.”
다른 방편이 필요하다는 뜻, 그리고 선조가 남겨준 작은 물병이 보인다. 너무나도 수수한 물병이, 현재로썬 이게 유일한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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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담고 하루를 기다리고 나면 푸른 액체가 나온다. 이게 현재 마나를 증가시키는 시온이 가진 유일한 물건이었다.
액체를 마시고 가장 기본적인 수련법으로 마나를 모으는 것이다. 그동안의 시간에는 육체 훈련과 이 층의 장서에서 습득한 기초 마법을 반복한다.
딱히 어려운 것은 없고, 그저 범위와 강도만 지금 하는 것에서 늘리기만 하면 됐다.
도박장의 시합이 나가기 전까지는 약초 상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곳의 주인은 마법사였다.
의료 마법사가 운영하는 의료시설의 한 부분이었다. 처음엔 의료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면허가 없으면 간단한 업무조차 맡겨주질 않았다.
그래서 밀려난 게 약초 분류였다. 이마저도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얻을 수 있는 직업이었다.
“자네, 이번에 시험을 본다고?”
“그렇습니다.”
“허허, 면허 나오면 꼭 나랑 같이 일하세.”
나이가 아주 지긋하신 마법사는 내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일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배울 필요도 거의 없었다.
니벨룽 가문은 발피르 산맥의 오지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에서는 의료시설을 기대할 수 없는 탓에 농민조차도 약초에 대해선 귀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