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304)

마법사 면허(8)

그나마 이 시험에서 유일하게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해석 시험일 것이었다.

아무리 고가의 장비가 있다고 해도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뒤에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질 않았다.

시온은 배정받은 자리를 중심으로 주위를 쭉 훑어보았다. 거대한 공간이 빼곡하게 차있다. 이런 곳이 다섯 곳이나 됐다.

정식 마법사들이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들이 조종하는 것으로 보이는 작은 눈 모양의 모형이 돌아다녔다.

그런 기물을 조종하기 위한 마법사의 마나가 시험장마다 가득 차 있었다. 시온은 마나를 쌓는 건 늦어도 이런 쪽에서는 민감했기에 별다른 탐지 장비가 없어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나이도 다양했고, 신분도 다양하고, 남녀 구별도 없었다. 밖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위와 아래를 나누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보는 여자는 시온과 같은 귀족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남들이 가지고 싶은 것들을 모조리 가지고 있었다.

얼굴이 예쁘고 출신도 고귀하고 가문마저도 부유했다. 그녀의 가문 문장은 뛰어오르는 돌고래였고 그것은 그녀가 도팽 가문이라는 것을 뜻했다.

시온은 그녀의 정체를 대강 짐작을 했다. 귀에 걸고 있는 돌고래 모양의 귀걸이 보석은 그 자체가 마법이 걸려 있는 보주였고, 입고 있는 옷도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세 개의 루비 반지도 각자의 역할을 담고 있는 마법 아이템이었고 게다가 기본적인 자질도 높은지 쌓아둔 마나가 많아 보였다.

저런 장비가 없다고 해도 그녀는 합격선이겠지만 그녀의 몸은 마법을 증폭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보조 도구로 가득 차 있었다.

‘일등을 노리는 거군.’

지금의 시온의 임금으로는 그녀가 끼고 있는 루비 반지 하나 사는데에도 몇 년이 걸릴지 몰랐다. 용병으로 뛴다고 해도 힘들었다.

그 정도의 격이 있었다.

‘도팽 가문이라. 큰 곳에서 왔네.’

도팽 가문 역시 마법사로 이름난 명가였다. 페라라 공작 가문은 에스테 시를 지배하는 가문이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대도시를 지배하는 가문이 도팽 가였다.

하지만 그런 곳의 자제라고 해도 뽑기로 장소가 잡힌다면 꼼짝없이 그곳에 와서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녀는 여지없이 주위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이 없었는지 그녀를 감상하는 수많은 무리 중 하나인 시온을 그녀가 마주 봤다. 자리가 가까운 것이 문제였다.

도팽가의 여자는 시큰둥하게 쳐다보고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온의 신분은 시험관도 헷갈릴 수준이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신분을 노출 시켜줄 수 있는 가문의 문장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그간 벌어온 금화는 마석에 모두 투자한 덕에 옷은 넝마에 가까웠다.

체격이 좋다곤 하나 그냥 허우대가 큰 오지 청년은 귀티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도팽 가의 여자가 흘깃 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다.

ㆍㆍㆍ

배부받은 마법서는 그다지 대단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주 해석하기 힘든 단어로만 구성된 마법서였다.

하는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그저 해석해서 잉크에 펜을 적시고 적어가기만 하면 됐다.

모두 끙끙 앓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그만큼 고대의 문자는 어렵다고들 한다. 시온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그저 적기만 하면 되는 수준인지라 따분할 지경.

시온이 술술 막힘없이 써내려가자 도팽 가의 여자가 놀란 눈치로 시온을 쳐다봤다. 도팽 가의 여식도 나쁜 속도는 아니었다.

단지 장비와 가문의 후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간의 교육 수준도 노력도 대단했다는 뜻일 거였다.

하지만 그래 봐야 조금 빠른 수준이다. 그냥 줄줄 써내려가는 시온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의 문자를 읽고 오랫동안 체득한 이곳의 대륙문자대로 써내리는 과정은 시온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쉬웠다.

애초에 이런 해석을 하지 못했다면 마법을 독학으로 개관을 잡지도 못했을 거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연유 때문에 시온의 해석 능력은 마법사의 탑에 종사하는 학자에게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경험만 조금 더 쌓인다면 주석까지 달아볼 수 있는 수준.

즉, 이 해석 능력만큼은 마법사 시험 따위로는 측정이 안 되는 급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억 소리가 나게 하는 제일 큰 부분이 있었으니, 수리였다.

고작 해봐야 중학교 수준, 아니 곱셈만 할 줄 알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수리 체계 수준은 너무나 구조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져 이 간단한 것을 구해내는 데 엄청난 노력과 간극이 필요했다.

이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는데 시온이 걸린 시간은 삼십여 분이 되지를 않았다. 총 시간이 여섯 시간이 잡혀 있고 그마저도 완성되질 않아 완성된 부분 위주로 점수를 매기는데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작업을 끝낸 것이다.

시온이 자리에서 일을 마치고 끝내려는데 그 모습을 도팽 가의 여식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오해라도 할 그런 풀린 표정이었다. 그녀는 시온이 산골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 귀족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몸에 붙어 있는 근육은 이쪽의 일과 잘 맞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니까. 어디 기사 시험에서 볼 법한 체격이니.

얼굴도 지극히 평범해 각종 사교 모임에 잘생긴 남자를 두루 친분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시온은 낙제 점수였다.

게다가 그녀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풀이를 하고 위엄있게 나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시온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속도가 경이로운 수준이었던 것.

나름대로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늦은 밤까지 공부해 매진한 그녀가 이 시험을 다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빠듯하게 네 시간 정도.

삼십여 분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시온을 봤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슨 단어가 돌고 있을지는 뻔했다.

‘천재.’

아주 드문 확률이긴 하지만 마법사 시험이라는 것은 근본이 재능이 따라줘야 했다. 그래서 항상 신분체계를 초월할 정도의 존재가 몇 명 나오곤 했다.

초대 대마법사인 피핀 역시 천민보다도 못하다는 창녀의 아들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 시온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왜냐면 여기에서 시간을 죽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

시온이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위가 고요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채워나가고 있는 탓이다.

삼십 대 중반의 마법사는 시온이 갑자기 일어나자 시험을 포기한 줄 알고 그의 답안을 받았다. 그리고 그 역시 시온의 얼굴과 답안을 번갈아 보는 행동을 반복했다.

“작성 끝났습니다.”

“아. 그.”

“문제가 있습니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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