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면허(11)
사람들이 수군거릴 수밖에 없었다. 척 봐도 시온이 이 체력 시험의 일등은 따놓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체력 시험의 종목이라고 몇 개가 있지도 않았지만 가장 득점이 높은 건 역시 겨루기였다.
마법사고 뭐고 간에 중세에서 출세하려면 어떤 직업을 가져도 기사도 정도는 암묵적으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로 여자는 체력 시험을 건너뛰게 되고 남자들만이 여기에서 배점을 나누고 겨루게 됐다.
‘그런데 근래 들어 몸이 더 좋아진 것 같단 착각이 든단 말이지.’
약초 분류 업에 반 종사를 하게 되어 가문 내에서 하던 육체 훈련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몸이 좀 풀려야 정상이었다.
애초에 그런 각오를 하고 현대에서 몸을 만들던 기억을 최대한 되짚어 근력 운동을 해왔다. 하루의 일정량의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고기는 꼭 먹었다.
괜히 사냥에 열중한 게 아니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추적술, 서식지 구별, 덫 정도는 능숙하게 놓을 줄 알아야 당장에 이곳에서 전쟁이 터져 유랑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식사량은 오히려 오지 때보다 많이 먹지는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사냥술을 능숙하게 발휘할 수 있다면 이런 도시 생활엔 식비가 따로 많이 나가는 것 같았다.
고기를 그대로 값을 받아버리니, 덫을 놓고 물고기만 잘 사냥해도 시온은 나름 현대에서 취미 삼아 보고 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더욱 확실하게 사냥을 해 나갈 수 있었다.
사실 시온이 니벨룽 가문에서 자립하기 위해 나간다고 했을 때 가문 사람은 모두 고개를 흔들었지만 시온과 부대끼던 사람들은 모두 시온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당장에 시온이 여정을 떠난다고 짐을 꾸릴 때 가장 아쉬워했던 것이 헨슨 경이었다. 헨슨 경은 사냥꾼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그와 여러 차례 대형 덫을 설치해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 일조를 했다.
그때마다 헨슨은 감탄을 해서 시온에게 질문한다고 괴롭힌 적이 있었다. 물론 시온에게 이런 직업을 가지라고는 절대로 권유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귀족이 가지기에는 급이 낮은 직업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귀족적인 중세의 규칙 때문에 많은 귀족의 자제들이 집을 나서지 못하고 주저앉는 거로 생각했다. 금화가 나오는데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시온을 마주 보고 있던 건 다른 귀족의 남자였다. 시온은 아직도 귀족의 의무인, 제대로 차려입는 행위를 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하급 용병처럼 보여 사내는 시온과 자기가 대련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나는 저런 녀석과 못 한다. 시험관이 누구지?”
“접니다.”
“지금 그렇게 인원이 딸리지도 않은데 귀족끼리 겨루는 것이 아닌 이런 잡탕이 일어난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죄송합니다만, 상대인 시온 니벨룽은, 니벨룽 가문의 자제입니다.”
“뭣? 저게 귀족이라고?”
이야기를 듣고는 그의 눈이 대번에 바뀌게 된다. 그러고는 시온은 자세히 살펴본다. 자세히 보니 시온의 구겨진 옷 아래에 반지 문장이 있었다.
“저런 명예가 없는 놈.”
이쯤 되자 살살 이겨줄 생각조차 있었던 시온은 기분이 나빠졌다.
“나를 모욕하다니, 죽고 싶나?”
“...........?!”
시온이 갑작스러운 공격적인 언어에 그가 얼어붙었다. 왜냐하면, 같은 귀족끼리는 명예결투가 가능했다. 명예를 손상당했다고 여겨진다면 목숨을 거는 진짜 결투가 가능해진다.
즉 여기서 시온이 명예 결투를 신청한다면 꼼짝없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거절하는 것도 문제가 되어 버린다. 받아들였다가는 뼈가 부러질 것이었다. 그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시온 경.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나는 기사가 아니다.”
“아, 그럼 어떤 경의 종자를 다니셨던 것이죠?”
“한 적이 없다.”
“.......?”
그가 침을 삼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위 사람이 술렁거렸다. 명예결투가 그렇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시온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기사의 종자가 아닌 이상에야 저렇게 단련된 몸을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시온 경. 무례를 범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가 결국 계산을 마치고 사과를 하는 것을 택했다. 어지간해선 턱도 없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이후에 일어날 일을 생각해서 빠르게 사과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었다.
체력 시험을 치기도 전인데 명예 결투를 받았다가는 그대로 뼈가 부러질 것이었고 부러졌다간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다. 간신히 체력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도 대체 마나를 다루는 본 시험은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하지만 이의는 제기하겠습니다. 못하겠습니다.”
상대가 그냥 포기해 버렸다. 포기해 버리면 점수야 까이지만 비슷한 상대를 찾아서 재도전하면 됐다. 애초에 신분이 맞지 않는다는 명분을 들이댄 것도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가 포기해버리는 것은 시험관들이 짧은 토의를 하더니 받아들였다. 시온은 자연스럽게 추가 점수를 얻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점수를 얻은 것이다.
그 이후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 명이 기권했으니 시온이 추가 점수를 얻었을 뿐 대련을 해야 했기에 다음 순번으로 내리 잡혔는데 줄줄이 기권이 나와버린 것이었다.
추가 점수만 육 점이 되어버려서 이제 대충 지게 된다고 해도 상위권은 확실했다.
“시온 니벨룽님. 이거 죄송스러운 일입니다만. 시온님의 준비된 결과에 지레 겁을 먹고 모두가 포기해버리고 있습니다.”
“포기야 자유니까. 상관은 없소.”
“네. 시온님은 그냥 올라가실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해봐야 뻔하니까요. 어떤 기사의 종자를 하셨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종자 경험을 한 적이 없소.”
“아, 정말로 그러신가 보군요.”
귀족이 유명한 기사나 가문의 기사에 종자로 들어가는 일도 흔하게 있었다. 개인 가문의 기사에게 들어가게 된다면 사실 종자가 아니라 과외를 받는 것처럼 된다.
보통 유명한 기사에게서 훈련을 받는 것은 차남이 차지했다. 유명한 기사 역시 이러한 귀족의 자제를 종자로 두는 것은 손해가 아니었다. 잡일은 보조 종자를 두면 되는 거고 차남을 잘 가르치고 귀족 가문에게서 돈을 받으면 되니까.
애초에 귀족이면서 용병 단체를 이끌거나 금패를 받아 활동하는 자들도 몇몇 있었다. 또는 기사이면서 영주인 자들도 많은 편이었고.
“그래도 시험을 치르고 싶다.”
그냥 올라갈 수 있다고 해도 이 시험을 준비해온 건데 그냥 합격을 준다고 해도 찝찝했다. 간단하게라도 시험을 치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