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면허(12)
예외적인 일이었지만 시온이 그렇게 얘기하자 진행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참관하고 있던 에릭이 나서기로 했다.
시험관들은 에릭이 나오자 약간의 걱정이 든다는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시온 역시 분명히 유명 기사의 종자가 분명하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아무리 봐도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시온은 자꾸 딴 생각이었다. 시온의 최대 관심사는 현재의 몸 상태였다. 딱히 관리하지 않았는데도 몸의 근력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힘이 더 넘쳤다.
‘무슨 약을 먹은 것처럼...’
‘어, 설마?’
시온은 매일 마나의 증진을 위해 푸른 액을 복용했다. 그것이 어떤 작용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불현듯 들었다. 비록 이곳이 대체로 현대의 지식수준과 과학의 발달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중세였지만 무언가 설명이 안 되는 구석이 많이 있었다.
“에릭 이라고 합니다.”
“시온 입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시험이 시작됐다. 어떻게 보자면 에릭은 마법사 시험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금발의 건장한 체격의 남자인 에릭은 전도유망한 예비기사였다.
그는 여동생을 보호할 겸 낯선 곳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는 종자였는데 스승은 피 도끼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무지막지한 전공이 있는 기사였다.
‘특이한 놈이군.’
에릭이 속으로 웃었다. 마법사를준비 한다는 놈이 종자 중에서도 보기 힘든 관리가 되어 있던 것이었다.
‘뭐지?’
시온의 자세는 아무래도 중세에서 엄격히 배워가는 자세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첫 번째 겨루기가 교환이 나자 그의 머리가 백지가 됐다.
‘?! 무슨.... 힘이.’
ㆍㆍㆍ
이제 시온은 어떻게 된 일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동안 단련이라고 해왔던 것은 고작해야 도박장에서 일했던 것뿐 딱히 준비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마법사 체력 시험이 대단한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와 비교해서 오히려 힘이 더 좋아졌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먹기만 해도 근력이 보조된다.’
현대에 많은 운동선수가 꿈꾸던 바로 그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확인은 더 해봐야 했지만.
완전히 지쳐 떨어진 에릭은 반쯤 무릎을 굽히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제야 방금 레슬링을 한 에릭의 모습이 보였다. 레슬링, 모든 기사의 덕목으로 들어가는 대련이었다.
애초에 기사들이 무장하는 수준은 위로 갈수록 정상이 아니었다. 심하면 서로의 무기가 반쯤 무용지물이 되어서 죽이기가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이 전장이라면 그야말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죽여야 하는데 그때 레슬링을 잘하는 쪽이 상대를 이길 수 있었다.
어쨌든 왕들이 빈번하게 마상창대회와 함께 상금이나 무구를 걸고 정기적으로 대회를 열만큼 위쪽 계층에서나 아래쪽 계층에서나 인기가 많았다.
“아니 저거 에릭 아니야?”
“에릭이 누군데.”
“피 도끼의 종자.”
그나마 에릭이 인지도가 있는 편이어서 이번의 일은 아까보다도 파장이 컸다. 게다가 무슨 마법사 시험을 치는 녀석이 유명한 종자를 제압해버린단 말인가. 소문이 날 법도 했다.
체력 시험부터는 시민들에게 공개되는 편이어서 관중도 제법 있었다. 본격적으로 꽉 차는 것은 마나를 다루는 시험이었기에 관련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름 많았다.
당연히 시온은 합격이었다. 게다가 만점에 추가점수까지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여섯 번의 기권자가 나왔고 여기에 걸맞은 어려운 상대를 넣어 비기기만 해도 일등이었을 건데 오히려 제압해버리다니. 시온을 잠깐이나마 걱정했던 이들은 오히려 황당할 지경이었다.
시온은 뜨거운 주위의 광경에 조금 난감해졌다.
‘아, 이건 위험해. 정확한 결과를 본다고 너무 심취했어.’
그런 그의 눈에 익숙한 인물이 관중석에 보였다. 하도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덕에 안보기도 힘든 얼굴이었다.
어제 시험 옆자리에서 봤었던 도팽가의 여자였다.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여자가 홱 돌아서서 나가버리자 시온은 볼을 긁적였다.
‘내가 뭐 잘못했나? 최대한 눈에 들어야 하는데.’
시온은 도팽 가의 여식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도팽 가와 관련한 일만 구할 수 있다면 금전적으로 지식적으로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ㆍㆍㆍ
돌아오자마자 시온이 빠르게 점검한 것은 마석의 상태였다. 어제 분 푸른 액을 마석에 담가놨다. 마석이 푸른 액을 흡수한다는 것과 그 액을 흡수할 때마다 탁한 기운이 없어진다는 점이 지금 노리고 있는 바였다.
탁한 기운만 없앨 수 있어도 현재 구매한 마석의 금화 가격의 두 배는 받을 수 있는 물건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팔아버리겠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팔면 안 된다. 지금의 목적은 마석의 질을 올려서 두 번째 고리를 달성할 만한 보조도구를 하나라도 확실히 얻겠다는 것이 맞았다.
그만큼 자체적으로도 어려운 길이었지만 시온이 너무나도 여러 개의 속성을 감지할 수 있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만약 보통 사람처럼 두 개나 세 개만 됐어도 이러진 않았을 거였다.
“예상대로네.”
시온은 마석이 모든 액을 흡수하고 탁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된다면 시험이 끝나고 조금 더 푸른 액을 사용하게 된다면 원래의 품질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불순한 마석이 암시장 경매까지 올라오게 된 이유는 뻔했다. 마석을 수리할 수 있는 세공사의 몸값을 굉장히 비싼 편이었다. 일을 맡기기도 까다롭지만, 수임료도 높았다.
그래서 이런 질이 낮은 마석을 고치는 데에 새로 사는 것이 나을 정도로 수임료가 많이 나오게 된다.
괜히 암시장까지 싼값에 나오게 된 것이 아니라는 거였다. 이대로 본래의 품질만 회복해놔도 되팔았을 때 제값을 받을 것을 생각해보면 벌써 금화 오십 개는 이득이었고 머리만 잘 써도 이십 개는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예 이렇게 작업을 해서 돈을 모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는데.”
기초적인 장비만 구매하는데에도 허리가 휠 정도로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대부분 재능이 애매하고 가난한 수련 마법사는 기본적인 장비를 갖추는 데에만 꼬박 오 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지금의 관건은 이 푸른 액이 생각보다 용도가 많다는 점이었다. 근력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확인했고 당장에 여기저기 쓸 용도가 많아 마석에다가만 꼬박 쓰기에는 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