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면허(15)
독학이라니. 시온의 답변을 들은 마법사들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고리를 형성해 온 것도 놀랐는데 시온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너무 많았다.
많으면 필요한 마나도 많은 법이었고 흔히 말하는 최악의 자질이라고 평가받았다. 아무리 다양하고 기존 마법을 잘 다룰 수 있다고 해도 결국엔 높은 단계에 올라야 고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좌절한 마법사들이 본래의 마도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옆길로 빠지는 편이었다.
물론 시온 역시 이들이 왜 자기를 가지고 입방아를 찌어 대는지 알고 있었다.
‘나도 착각했었지. 무난히 달성할 줄 알았으니까. 선조가 남긴 유품이 아니었다면.’
선조의 일지를 달달 외운 수준이었다. 그것의 용도는 선조인 발뭉도 몰랐다. 그는 오히려 그것을 부수려고 했다. 그것에 미끄러져서 고대 던전의 함정에 빠져 죽을 뻔했다고 한다.
나중에 홧김에 부숴버린다는 것을 아마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꿈이었던 마법사의 길을 안내해줄 수 있었던 물건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용도의 액은 복용만 해도 큰 촉진 효과가 있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넉넉하게 합격하는 것은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현대였을 때나 중세에 떨어졌을 때나 한번이 없었던 그 운이 지금에서야 벌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이 비밀에 대한 것은 죽을 때까지 안고 갈 작정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실험 중이지만 마석을 정화하는 기능도 있고, 포션의 질을 올려준다는 점도 확인했다.
마법사 면허증만 나오게 된다면 얻을 수 있는 재료의 접근도도 확연히 올라가니 여러 가지를 더 실험해 볼 수 있을 거였다.
아마도 이 물건이 세상에 알려지면 높은 사람조차도 쉽게 전쟁을 할 것 같았다. 시온이 보기엔 그 정도의 가치는 있어 보였다.
“변형이 가능한가?”
여기서 시험관이 말하는 변형이라는 것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속성 하나를 발현하고 그 형태를 바꿔 보라는 뜻이었다.
시온은 다섯 가지를 모두 할 줄 알지만, 여기에서 원하는 것은 한 가지를 정확히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시온에게는 아무런 장비가 없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점이 현대인이었던 시온에게 신기한 점이었지만, 마법이라는 것은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리고 간단한 수학도.
거창한 계산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그럴 거였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구구단을 외울 수 있는데 이게 은근히 여기에서는 엄청난 기술이었다. 시온이 보기에 구구단만 알고 있어도 밥 벌어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의 수리체계는 구조가 완전히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오오. 완벽하군. 분명히 수재야.”
시험관이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시온은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비교적 쉬운 일의 연속이었지만 아무래도 계획이 많이 걸려 있다 보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수재라’
시온은 시험관이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시온은 어떻게 보자면 나름의 자질이 부족한 것을 푸른 액으로 퉁 친 상황이었다.
그것의 정체를 모른다면 시온이 보통의 마법사 보다 두 배 이상의 마나를 쌓는 효율이 있는 것으로 보일 거였다.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재능 내지 마나의 체질 정도일 거였다. 딱히 시온이 부유한 가문으로 보이지 않으니 먹은 것도 평범하다고 판단한 것이었고.
가도 된다는 얘기에 시온은 재빠르게 한 남자에게 물었다.
“성적이 잘 나오면 마법 장비를 하나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인가요?”
줄 때도 있고 주지 않을 때도 있는데 딱히 공개하는 편은 아니었다. 보통은 주관하는 가문이 어디인지에 따라서 상품이 나오곤 했다.
소금 무역을 독점하는 페라라 가문 정도라면 마법 장비가 걸려 있을 거라는 생각이 얼핏 들은 시온이 궁금증을 찾지 못하고 남자에게 물은 것이었다.
남자는 의외의 표정이었으나 곧 시온의 차림새를 보고는 상황이 짐작이 간다는 듯 귀에 언질을 줬다.
“비밀이긴 한데, 어차피 시험관님들이 마음에 들어 하신 분이니 알려드리겠습니다. 걸려있습니다. 좋은 성적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시온이 남자와 대화를 마치고 들뜬 기분으로 내려오는데 체력 시험에서 임시 상대로 뛰어줬던 에릭이 시온의 어깨를 잡았다.
“에릭 경?”
“시온 경. 안녕하십니까.”
희한하게도 결투를 하고 나니 강한 정이 생긴 상황이었다. 끝나고 나서 그의 상태를 확인하러 한 번 갔을 때 그는 시온을 아예 기사로 대우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시온도 그를 똑같이 맞춰 불렀다.
“몸은 괜찮으신지요?”
“예. 괜찮습니다. 그보다 굉장한 실력이시더군요. 저는 마법사를 하신다는 것을 끝까지 믿지는 않았습니다만 결국 눈으로 보고 나서야 시온 경이 진실만을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말투가 약간 무서운 녀석이었다. 지금의 자질도 뛰어나니 곧 피의 도끼라는 이명을 물려받고 기사로 활약할 자질을 가진 자였다.
“제가 실례라도?”
“아닙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군요. 여기 제 여동생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동생?”
“인사해라. 시온 니벨룽 경이시다. 곧 마법사이시기도 하고.”
“안녕하세요. 베아 할프 라고 합니다.”
시온은 긴 금발을 땋은 창백한 미녀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레이디.”
“어떻습니까? 제 여동생?”
“미녀로군요.”
“그렇지요.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그의 진지한 눈빛에 시온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
“약혼을 제안합니다.”
“........갑작스럽게 무슨 말을······.”
“저는 시온 경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실한 남자이고, 강인한 남자이고 영리하기까지 하지요. 그리고 니벨룽 가문은 귀족 가문입니다. 저 역시 할프 가문의 방계이지만 귀족 가문입니다. 이 결합은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온은 어디론가 도망갈 구석이 필요했다.
ㆍㆍㆍ
에릭 할프란 녀석은 생긴 것답게 무서운 놈이었다. 시온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동생이란 애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무리 이곳이 중세라고 하지만 어떻게 이런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오빠의 말에 순종한단 말일까?
사실 현대인인 시온에겐 매우 버거운 문제였으나 중세인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기도 했다. 오히려 말을 잘 듣는 그의 여동생은 귀족의 명예가 있다고 봐야 했다.
어쨌거나 시온은 오늘도 담가놨던 마석을 올려 꺼냈다. 탁기가 이제 거의 없어져 있었다. 이 간단한 작업만으로도 하루에 금화를 열 개씩 챙기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