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 (2)
대도서관의 삼 층의 서적은 방대했다. 수련 마법사의 자격이 없으면 개방이 되지 않기에 사람은 한적할 법도 했지만 한적하지 않았다.
본인이 서책을 찾기 위해 온 경우도 있지만, 대리인을 보네 관련 서적을 찾게 하고 필사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중요한 정보라면 필사가 되지 않기에 본인이 직접 와야 했지만 그런 서적은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보통 쇠사슬이 아닌 보안 마법이 걸려 있는 쇠사슬이었다.
가져가려고 한다면 쇠사슬이 소유자를 공격해 포박하는 용도였다. 서책의 값이 나름 붙어있는 탓에 가끔 좀도둑이 들곤 하는데 거의 포박당해 발견되곤 할 정도로 나름 강력한 마법이었다.
시온이 보고자 하는 서책은 모두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필사되지 않고 여기서 직접 봐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시온은 익숙한 글자들을 확인했다. 괜히 이곳이 수련 마법사의 자격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의 언어는 주석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현대인의 언어와 똑같았다.
약간 다른 의미가 있었지만 그래 봐야 새로운 고유명사가 더해지는 정도였다. 그 정도는 현대인에겐 고등학생 수준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시온이 이곳에서 일하는 소년에게 손가락으로 쇠사슬이 걸려 있는 서책을 가리켰다. 소년 셋이 사다리를 그쪽으로 가져다 댔다. 이제 세 명이 그 책을 내려올 것이었다.
이 소년은 모두 이곳에서 일종의 교육을 받는 소년들이었다. 기사에게 종자라는 체계가 있다면 마법사에게는 이런 식으로 조수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년들이 내려온 책의 이름이 이제 훤하게 보였다.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
‘휴, 드디어 기초 수련법을 벗어나게 되는군.’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은 기초 수련법보다는 효율이 높은 마나 수련법이었다. 이것도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좋은 것은 아무래도 금화가 걸려 있던지 사제 관계가 걸려 있던지 해당 가문에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시온이 쓱 제목을 읽고 바로 첫 장을 넘기자 소년들이 속닥거렸다.
“이번에 합격한 사람이야. 차석이래.”
“귀족 가문이야?”
“그런 가봐.”
“해석 시험을 만점을 받았다나 봐. 관리자님이 얘기하는 것을 엿들었어. 보아하니 마탑에서 사람이 올 건 가봐.”
소년들이 이런 조수 생활을 하는 건 단순히 이곳에서 견학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소년들도 결국 수련 마법사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것만큼은 피할 수가 없었다.
시온의 그들의 말을 듣고 자기의 두 번째 유년기 시절이 흘깃 지나갔지만, 마냥 흐뭇한 느낌으로 볼 수는 없었다. 소년이 언급한 말 중에 신경이 쓰이는 단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얘야.”
“앗. 네. 시온 마법사님.”
“내 이름을 알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험을 참관했습니다.”
소년이 우러러보는 얼굴로 봤지만 시온은 지금 그게 급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 묻자. 마법사의 탑에서 사람이 올 거라는 것이 무슨 얘기지?”
소년이 자기의 입을 가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시온이 지긋이 바라보자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자고로 비밀을 열게 하는 데에는 나이를 떠나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시온은 은화 몇 개를 꺼냈다.
“일이 끝나고 맛있는 밥이나 사 먹거라.”
“앗. 감사합니다.”
소년은 관련된 정보를 술술 뱉기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마법사의 탑에서 사람을 파견해 시온을 고용할 생각이었다.
또 시온에게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일 것이었다. 막 수련 마법사를 단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 지금 일어나려고 하는 것이었다.
‘마법사의 탑에서 나를 필요한 다라.’
어떤 업무의 일을 구할 수 있을지는 뻔했다. 마법서의 해석이나 주석을 다는 일일 것이었다. 금화도 나쁜 편은 아니겠지.
그러나 시온은 좀 더 폭넓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 일을 맡아 보는 것은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좋았다. 지금은 어디까지 마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마법사의 탑은 분명히 대단한 곳이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수도와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냥 좋은 곳은 아니었다.
마법사는 그야말로 마법의 단계를 형성하기 위해 미쳐 있었다. 좀 더 높은 단계를 이룩한다면 모든 사회체계가 나이와 가문 여하를 떠나서 상하 관계가 형성됐다. 가끔 농담으로 언급되곤 하는 중년의 제자와 젊은 스승도 전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아무것도 기반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그곳을 간다는 것은 간단히 성장하지 못하는 쳇바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말 그대로 그쪽 일을 맡았다가는 평생 주석만 달아야 할지도 몰랐다. 시온은 대강 알았다는 답변을 준 뒤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을 읽는 데 집중했다.
‘어려운 내용은 없네.’
오히려 심심할 지경. 그러나 기초 마나 수련법과는 급이 다른 것이 느껴진다. 이제 알았지만 기초 마나 수련법이 손쉽게 사람들이 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그 수련법은 수련 마법사의 자질이 혹여나 있을 평민 인재를 밝혀내기 위해 존재하는 거였다.
‘선조 님도 어지간히 안타깝구나.’
시온에게 있어서 가장 값비싼 유물을 남겨준 발뭉 니벨룽은 기초 마나 수련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좌절한 경우였다.
ㆍㆍㆍ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을 익히는 데에는 며칠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 봤자 수련 마법사 정도만 달아도 공개가 되어 있는 수련법이었다. 더 좋은 수련법을 구할 때까지는 제 역할을 하기야 하겠지만 아쉬운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재로써 시온이 딱히 속박되지 않고 수련법을 얻을 방법이 존재는 했다. 마석을 구매할 때처럼 금화를 잔뜩 준비하고 암시장 경매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온은 간단한 전격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전격 마법은 그야말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존재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장서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쇠사슬을 보고 느끼는 것이 있었다. 보안 마법부터 배워서 혹여 있을 일에 대해서 대비하는 것.
“됐나.”
허락하지 않은 누군가 이제 마석을 집으려 한다면 저릿한 전류가 흐르게 된다. 아직은 충격적인 손상을 입히거나 포박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따끔거려서 손을 집지 못하게 할 수준은 됐다.
금화를 넣어놓고 다니는 주머니에도 이와 같은 마법을 걸어놨다.
“이것도 성과가 있는데.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오늘 시험하기 위해 푸른 액에 담가 놨는데 녹색 반지도 변화가 온 것이 분명했다. 마석의 순도를 높여주기에 녹색 반지에도 실험을 해봤더니 여기에도 알 수 없는 정순함을 더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확인해볼까.”
시온은 녹색 반지의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지를 확인하기 위해 반지를 끼고 간단한 마법을 만들었다. 여관에서 뜨거운 속성 마법을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차가운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시온은 무난히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곳의 마법사라는 것은 강력한 믿음이 필요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어떤 것을 믿을 수 있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한기가 서리더니 컵에 있는 수분이 공중으로 올라 얼어붙었다. 시온은 마나의 변화를 미세하게 분석하기 위해 집중했다. 지금 하는 것은 이 푸른 액이 시험의 상품인 녹색 반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였다.
“놀라운데.”
이 녹색 반지가 시온에게 전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시온에게 줘도 될 만큼 하자가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이 반지는 멀쩡하게는 생겼지만 사용자의 마나를 너무나 사용하게 했다. 그 효과가 강력해서 만약 몬스터에게 몇 번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혀야 한다면 이 반지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사용이 제한됐다.
그런데 그 부분이 덜해진 것이 느껴졌다.
“아직은 좀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분명히 거슬리는 게 줄었다.”
이렇게 되면 이 반지를 다양한 상황에 사용할 수도 있었고 그게 아니면 비싼 값에 되팔 수 있었다. 치명적인 부분을 줄여 놓으면 값이 뛰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시온은 되파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반지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마석 외에는 아무것도 장비를 갖추지 않은 시온에게 있어서는 이것보다도 더 필수적인 물건이 있었다.
‘아공간 반지.’
최하 등급이라고 하면 그 공간이 아주 작지만, 고리를 형성한 마법사는 최우선으로 가지고 다니는 보조 장비였다.
그리고 생성되는 푸른 액의 일정 부분을 직접 먹는 일도 잊지 않았다. 시온의 추측에 이 액에는 마나의 증진 외에도 근력을 보조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딱히 그 시절처럼 온종일 격렬한 육체 훈련을 하고 있지 않은데 오히려 체격이 더 강해져 가고 있다는 것은 이 액을 복용하기 때문에 그럴 거라는 게 시온의 생각이었다.
마법사라고 해도 이제 고리를 형성한 수준이면 이제 막 업계에서는 풋내기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잡게 되었지만 그게 된다고 해서 모든 위험에서 안전할 수는 없었다.
“정 급하면 몸으로 해결해야 하니까.”
검술은 수준급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가문의 기사에게 배워둬서 다룰 줄은 알았다.
ㆍㆍㆍ
시온이 다음으로 준비하는 작업은 용병 패를 받기 위해 제국 용병 관리소를 들르는 일이었다.
제국 용병 관리소는 제국에 난립하는 용병들을 국가 차원에서 통합해주는 곳으로 일단은 용병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자격을 얻어야 했다.
그 전에 황금 도끼단이 운영하는 여관 앞에서 익숙한 인물을 보고는 시온은 당혹스러웠다.
며칠 동안 열심히 피해 다닌 에릭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시온 경.”
“아, 에릭 경. 오랜만이군요.”
그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 제안이 분에 넘치는 요구였나 봅니다. 시온 경이 그렇게 부담스러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 여동생이 어디서 못생겼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요.”
에릭의 여동생은 이곳의 기준으로도 미인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나이도 어리고 이번에 아슬아슬하게 수련 마법사 시험에도 붙은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비슷한 급에서는 줄을 서서 데려갈 정도였다.
그러나 시온이 여러 번 거절하자 그가 난색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시온이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 찾아내는데 고생을 했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다만 에릭은 그러한 점을 시온에게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공개적인 곳에서 했다면 가문을 모욕했다면서 명예 결투를 걸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이러한 약혼 제안이었다.
에릭이 아주 특이한 광기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해 시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런 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아직 자리를 잡기 전에는 결혼 같은 것을 할 계획이 없습니다.”
“자리를 잡으신다는 뜻이···.”
“예, 가문에서 독립하겠다는 것입니다.”
에릭이 감탄했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핑계 겸 실제 목적을 얘기했지만 나름 이곳에서 감탄이 나올 만한 포부이긴 했다.
흔히 귀족의 막내가 자립하겠다는 것은 가문을 나와 자신의 가문을 만들겠다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분가를 해버리겠다는 것. 당연히 성공하게 된다면 찬사가 뒤따라 올 정도로 대단한 명예로 취급받고는 했다.
“저를 또 이렇게 놀라게 하시는군요. 아무래도 시온 경에게 어울릴 만한 업적을 쌓아가는 일이 좋을 것 같군요.”
‘사람이 돌려 말해도 희한하게 못 알아듣는단 말이야.’
에릭 특유의 광기가 또 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설명해봐야 자기만의 언어로 이해할 터이니 시온은 반쯤 포기를 했다. 그때 가면 그때 맞춰 다른 얘기를 하면 됐다.
“그래서 어쩐 일이 십니까? 그 건수로는 안 보이는데.”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 저번에 특이하게 겨루기를 하시는 것 같아, 정식적으로 배워보고 싶습니다.”
“?”
“아, 물론 이런 제안이 시온 경에게 큰 실례를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걸맞은 사례를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현대 격투기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시온도 취미로 대충대충 배운 거였지만 여기 사람에게는 충분히 놀랄만한 형태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