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304)

새로운 길 (4)

알아봐야 할 것이 점점 명확해졌다. 파수꾼 반지가 드러낸 게 불분명한 정보라도 봐둬야 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을 만드는 것인지도 최대한 알아볼 생각이었다.

‘뭔가 실수로 나에게 온 물건이라는 느낌이 들어.’

반지를 받을 때 용도는 그저 마나의 방출을 증폭해준다고만 했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으면 되팔라는 언질도 슬쩍 받았다.

하지만 그 뉘앙스는 비밀이 숨어 있으니 반드시 회수해야겠다, 같은 것은 아니었다.

시온은 비밀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다. 에릭의 자세를 봐주게 되면 금화가 생길 터라 재정적인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고위 조언가를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디 유적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금화를 내라는 일에 단순히 돈이 아까워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꼬리가 길면 비밀이 노출될 수도 있었다.

조언자들이 남에 정보를 이리저리 팔고 다니면서 돈을 벌어가는데 거기엔 간간이 이용자의 정보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온이 장서 삼 층에 도착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만큼 마음이 급했다. 앞서 장비를 구하는 것도 구하는 거지만 늘어난 마나를 수련할 방법이 막막했다. 시온의 자질은 세간의 오해와 달리 최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감지가 좋다는 것과 마나를 쌓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고 마법사가 자질이 좋다고 얘기하는 것은 보통 마나를 쌓는 게 빠르다는 것을 뜻했다.

체감상 시온은 두 배 정도의 벽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에 고리를 형성하고서 든 생각은 그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계획이라면 마석의 확보와 푸른 액의 복용, 적당한 마나 수련법으로 다음 고리까지는 해결을 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쌓아야 하는 양이 많다고 느꼈다.

고로 그 이상이 필요했다. 이것이 그 실마리인 것은 당연했다. 마나를 늘리는 데에는 이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젊은 스승과 중년의 제자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은 비단 장비의 차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나를 정제한 약품, 마나 정수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희귀한 약초는 그 태생이 고농도의 마나를 함유하고 있었다.

시온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처음 그 개념을 이해할 때, 의미를 산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용병 중에는 이러한 희귀 약초를 전문적으로 채취하기 위해 원정을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에 다 선조의 일지에 적혀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혹여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영지 내의 사냥꾼과 기사, 노인들에게 사례해가며 약초를 보는 법을 배웠다.

물론 파수꾼의 반지가 만들어 낸 제조법의 환영에는 시온이 아는 약초가 주로 있었지만 아닌 것도 섞여 있었다.

“마나 정수나, 강화 단약인 게 분명하지.”

마나 정수는 말할 것도 없고 강화 단약도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물건이었다. 기사나 용병이 주로 구매하는 것으로 각종 효과를 순간 부여해준다.

일종의 부작용을 동반한 도핑이었지만, 죽는 것보다 삶의 애착이 큰 자에게 잘 팔리곤 했다.

강화 단약이라면 솔직히 아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강화 단약의 제조법 역시 대부분 관련 길드가 틀어막고 있었다.

거래되는 것도 꽤 있었지만, 당연히 눈이 휘둥그레질 고가로 팔렸다. 일단 제조법만 알면 어떻게든 하급품이라도 만들 수 있을 거였다. 당장 거기에 매진해 돈벌이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시온 마법사님 안녕하십니까.”

시온은 익숙한 소년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소녀도 하나 더 늘어서 네 명이었다. 새로 들어온 수습들이었다.

소녀가 시온의 체격이 신기한지 눈을 빛내며 봤다.

시온은 빠르게 약초 관련 도서를 쭉 가리키며 말했다.

“예, 무엇으로 내려드릴까요?”

“전부다.”

“?”

소년이 기절초풍할 눈으로 보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괜히 수련 마법사에게만 개방되는 층이 아니었다. 이곳의 서책은 모두 고대어로 적혀 있었다.

일반적으론 한 권만 빠듯하게 읽어도 일주일이 걸리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필사해갈 거면 더 걸릴 것이고, 그러니 이곳이 희한하게 북적이는 이유였다.

“저번에 이브림의 마나 수련 법을 읽으시지 않으셨나요?”

“다 읽었지.”

소년과 소녀가 다시 놀랐다. 이 소년 소녀가 왜 어린 나이부터 미리 수습 생활을 하겠는가, 이게 다 언어부터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곳 중세에서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 정도의 서적을 정확히 읽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이 필요했다. 물론 시온에게는 무척 쉬운 일이었다.

언어가 현대어와 똑같아 모국어를 어려워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시온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더는 답할 수 없던 수습들은 사슬 서적을 내리기 시작했다. 시온은 첫 번째 책부터 훑었다.

단순히 정보를 확인하는 정도이니 많이 볼 필요도 없었다.

ㆍㆍㆍ

생각보다 소득이 거의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아직 파수꾼의 반지가 정보를 완전히 비추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제대로 자료를 털어보는 겸 선조의 유품을 찾아봤는데 추측과는 달리 그런 비슷한 물건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물을 넣었는데 그게 마나를 머금고 있는 푸른 액으로 나온다는 비슷한 어구도 없었다.

이로써 이 물건의 정체에 대해서 시온은 삼 층에서 찾아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놓았다. 아직 개방되지 않은 층을 간다고 해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았고 그나마 더 많은 서적과 정보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단서를 모아야 할 것 같았다.

“일단은, 이것부터지.”

시온은 하루 동안 마나를 모아 푸른 빛이 넘실거리는 마석을 쥐었다. 이 마석과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을 통해 마나를 쌓을 것이었다.

그 전에 푸른 액 한 모금을 복용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창 준비할 때처럼 모두 먹어버리고 싶지만, 나머지 액은 파수꾼의 반지에 부어 놓아야 했다.

녹색 반지가 다시금 푸른 액에 둘러싸여 특유의 녹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시온은 여기에 전격 마법을 걸어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나 대비는 항상 해둬야 했다.

그리고 편한 자세로 마석을 쥐고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을 돼내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마석은 푸른 빛을 잃어버렸다. 시온은 몸에 쌓인 마나의 양에 약간의 만족을 얻었다.

ㆍㆍㆍ

에릭의 가문은 생각보다 금전에 여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시온은 솔직히 에릭이 금화 백 개를 걸고 이렇게 나설 줄은 몰랐다.

시온의 입장에서야 그리 아껴야 할 기술도 아니었고 지금은 금화가 급하니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긴 했다.

반면에 에릭 역시 걱정이 많았다. 시온의 말을 다 믿진 않은 것이다. 시온이 가르쳐 주는 겨루기 기술이 가문의 비전 기술로 철저히 믿고 있었다.

다만 시온이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현대의 격투기는 과학적인 연구가 전혀 진행되지 않아 난잡하게 이루어지는 중세의 격투기보다 질적으로 높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기본자세만 해도 그랬다. 흔히 볼 수 있는 현대 격투기의 기본자세는 다양한 스타일로 이어질 수 있는 적응력이 좋은 스타일의 자세였고, 더 나아가 머리를 공격받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 복싱처럼 얼굴을 보호하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자세가 정립되어 있지를 않았다. 심지어 머리를 보호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도 있었다. 왜냐면 머리는 단단하니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기사의 겨루기는 흔히 강한 허세가 포함되어 있어 상대의 공격을 한 번 받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 자도 있었다.

사실 이곳의 기사들은 그것을 최고의 명예로 쳤다. 시온의 입장에서는 그저 미친놈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 짓을 했다가 턱이라도 맞았다가는 턱뼈가 나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당장 명예고 자시고 생사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명예를 최대한 쳐줄 수 있는 영주조차도 한 대 맞고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강한 신체와 기술을 가진 기사를 원하는 것이지 한 번에 나가떨어질 얼간이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 기본자세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제 선조께서 말씀하시길······.”

물론 발뭉 니벨룽은 이러한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발뭉은 겨루기에 조예가 깊은 대단한 기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그가 받아들이기에도 좋았고 뒤에 있을 미연의 일들을 예방하기에 좋았다.

에릭은 시온이 내뱉는 말들을 너무나 신기하고 고맙다는 듯한 표정으로 들었다. 실제로도 에릭은 얼굴로 표현하고 있진 않았지만, 감탄의 연속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이름 있는 종자였고 예비기사 훈련도 상당한 양을 거쳤다. 그런데 훈련이라 치고 가르칠 때 이론을 가르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단 이렇게 휘둘러 보고 그렇게 무조건 해야 해던 것이었다.

그러니 시온이 기본자세를 잡더라도 왜 기본자세를 이렇게 잡아야 하는지, 상대가 이렇게 주먹계열의 형태나 발차기 계열의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서라는 것을 설명했을 때 말할 수 없는 시온과의 격의 차이를 느껴버린 것이었다.

‘시온 경과 평생 친우로 가야 한다.’

그게 에릭이 번쩍 든 결론이었다. 시온은 이어서 잡기 기술까지 대응할 수 있는 이 현대의 기본자세에 관해서 설명을 마쳤다.

“대단한 실전 경험이 녹아 있군요. 듣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겨루기에 관해서는 제가 모시는 단톤 경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단톤 경이라면?”

“피도끼 단톤 경입니다.”

시온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겸 물었다. 피도끼 단톤은 그냥 미친 작자였다. 특히 일기토에 미쳐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기사들은 전장에서조차 상대가 자신이 기사인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복장을 반드시 고집했다.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기사가 더 상위 기사가 되기 위해선 전공이 필수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쳐주는 것이 바로 일기토의 결과였다.

그래서 반드시 서로의 이름을 얘기하는 것이 예의였다. 전장의 예의인 셈이었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손해를 볼 일은 아니었다.

서로 상대의 신분을 확인하고 전투에 임한 뒤 승리하게 되면 그 결과를 보고하고 더 높은 몸값과 출세의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다.

“과찬입니다.”

“아니요, 굉장한 실전이 겪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생사를 몇 번이고 넘겨야만 할 수 있죠. 물론 검이 파괴되고 나서 전장에서 남은 두 기사를 말하는 겁니다.”

에릭이 매우 진중하게 답했다. 시온은 그 말을 듣고 그냥 선조가 다 만들어냈다로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선조가 아니라 시온이 만들었다고 하면 겨우 잠잠해진 약혼 제안이 다시 악몽처럼 반복될 것 같았다.

어쨌든 그의 교육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선입금으로 금화도 두둑이 서른 개를 받았다. 나머지는 가문에 요청해놨다 하니 며칠 뒤에 연락이 올 것이었다.

그보다 오늘 시온은 마법사 관리소를 들러야 했다. 수련 마법사 등록을 하고 나서는 들리지 않은 곳이었지만 어제 전서를 전달하는 소년이 시온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오라는 얘기였지. 그건 분명히 수습 소년들이 해던 말일 터이고.’

수습 소년들이 마법사의 탑에서 사람이 올 것이라고 했다. 시온에게 해석 관련으로 업무를 제안하러 오는 것이었다.

나쁜 제안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리고 시험관들의 눈도 나름 정확했다. 시온이 넘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은 검증했지만 동시에 시온이 여러 속성을 다룰 수 있다는 것조차 드러나 실망을 한 것도 있었다.

만약 시온이 속성을 한 개만 타고났다면 대마법사가 나올 것이라고 동네방네 찬양하고 다녔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시온의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 같으니 이쪽으로 보내 소모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해석, 주석을 다는 일에 능통한 자가 나오면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적통 마법사들이었다.

그냥 누워서 받아먹는 꼴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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