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304)

새로운 길 (5)

마법사 관리소는 제국 용병 관리소보다 더 화려하고 더 거창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자유 도시들의 정점에 있는 건, 십삼 인의 대마법사들이었다.

황제와 제후연맹, 그리고 마법사의 삼대 구도가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 자유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마법사이기에 마법사 관련 건물은 보통 이상은 무조건 했다.

관리소 정도라면 자존심을 걸고 건축을 할 정도였다.

“시온 니벨룽님?”

“네. 맞습니다.”

“과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배님이 말씀하시기에 모를 수가 없다더니 정말이네요.”

눈웃음을 묘하게 치고 앞장을 서는 여자는 이십 후반의 마법사였다. 수습도 아니고 조수도 아니었다.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정식 마법사였다.

마법사 관리소답게 구성원들이 거의 정식 마법사였다. 시온은 나이가 어리니 이곳에서 일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자리 잡을 수도 있었다.

시온은 고층의 응접실에 들어갔다. 어디까지 올라가나 했는데 조금 놀란 상태였다. 당연히 이 층이나 잘해봐야 삼 층에서 얘기할 줄 알았다.

아무리 시온이 가능성을 보인다고 하나 시온은 고작 해봐야 고리를 이제 형성한 수련 마법사였다. 수련이라는 단어를 때지도 않았는데 위에 있는 곳까지 올라갈 일이 없는 것이 보통은 맞았다.

문이 열리고 고급 차 냄새가 났다. 응접실은 놀라울 정도로 고급장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온은 이런 방에 들어가는 것이 난생처음이었다. 오지에 이런 카펫이 있을 수가 있을까. 고상한 그림이나 간단한 조각, 심지어 조각은 염동력 마법이 걸려 있어 작은 파편이 빙글빙글 서로 돌고 있었다.

창가는 큼직했고 오후 햇살이 신나게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에 앉으세요.”

여자는 요염한 얼굴로 시온을 흘깃 보며 말했다.

시온은 차라는 것도 처음 봤다. 물론 현대에서는 무척 흔했지만, 이곳에서는 사치품으로 분류됐다. 그리고 현대에서 살 수 있는 그런 흔한 차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떤 마법사는 여기에 마나가 높은 약초를 섞어 마법사들이 환장할 만한 차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시온은 이 차가 그러한 종류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죠.”

“얘기는 들으셨나요?”

“추측은 하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일지 물어봐도 될까요?”

“마법사의 탑에서 왔겠죠. 무슨 용무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제가 낸 답안의 수준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그냥 말했다. 여자는 시온 보다 고리가 높은 마법사였고, 지금 떠보는 것도 단순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여자의 눈이 놀랍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여자는 입맛을 다셨다.

‘생긴 거와는 다르게 굉장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게 맞나 보네. 얼굴은 영 내 취향이 아니지만, 몸은 그럭저럭 괜찮고.’

그럭저럭 정도가 아니었다. 시온은 육체에 대해서만은 이제 어지간한 기사보다도 뛰어날 지경이었다. 별다른 훈련은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뚝 멈췄지만 복용하고 있는 푸른 액이 그의 몸을 갈수록 흉기로 만들고 있었다.

그때 창가에서 가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온은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가에 애매하게 고양이과 영수가 문을 건드리고 있었다.

“어머, 프랑소. 웬일이니?”

고양이치고는 지나치게 마나가 맴도는 것이 영수라는 것을 시온은 바로 알아챘다. 그리고 애초에 금빛 털인 고양이는 들어본 적이 없던 것이다.

여자가 창문을 열어주자 금빛 고양이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쓰다듬으려고 하자 재빠르게 피했다. 여자는 다시 하려고 했지만 절대 각을 주지 않았다.

“웬일로 왔다 싶었는데 오늘도 저기압인가 보네.”

시온은 영수의 눈이 금빛의 마법진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환상 마법인가. 또는 깨트리는 거겠군.’

삼층의 장서를 털면서 습득한 지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영수가 눈을 마주친 게 문제였는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시온의 근처를 맴돌았다.

“?”

시온은 영수가 붙지 않았으면 했다. 눈깔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한 번이라도 만지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지만 시온은 그런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물이라고는 덫을 놓고 잡아다가 도축해서 먹을 고기는 불을 피워 굽고, 남은 부위는 염을 치거나 말려서 장기간의 식량을 확보하는 일을 집요할 정도로 반복한 경험밖에는 없었다.

‘영수라면 재료로 쓸 수 있을지도?’

그러고 보니 각종 재료가 영수에게서 나왔다. 녹색 반지 덕분에 여러 재료와 제조를 살펴보는 도중에 얻은 지식은 생각보다 시온에게 하나둘씩 스며들고 있었다.

확실히 영지에서 빈약한 가문 서고나 선조의 일지에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일이었다. 물어볼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시온이 여러 가지 생각에 물들고 있을 무렵 고양이가 어느새 근방까지와서 털을 고르고 있었다.

“어지간해선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일이 없는데 신기하네요~”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 시온은 이런 현상을 저번에도 느꼈다. 시험을 치를 때도 다람쥐 같은 영수가 온갖 곳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었다.

떨어트리려고 했는데 잽싸게 피해 다니고 집요하게 달라붙어서 결국에 시험관이 내려오라는 복종 마법을 내려야 내려왔다.

“쓰다듬어달라는 건가?”

“분명히. 맞아요.”

“대신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애매한 긴장감이 돌았다. 시온은 그냥 차나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여자의 얼굴이 곤란해졌다.

차를 이렇게 마시는 것이 아니니까 그랬다. 차를 천천히 마셔야 하는 것은 비단 현대뿐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온이 이 차를 들이켠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주 소량이지만 마나의 활력을 돕는 차였던 거다.

“한잔 더 부탁합니다.”

여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에 핀잔을 줬지만 시온은 신경도 안 썼다.

시온의 냉정한 얼굴에 그녀가 결국 한 잔 더 내올 때쯤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ㆍㆍㆍ

고리가 다섯 개가 있는 마법사였다. 상당한 수준이었다. 시온은 놀랐다. 남자는 서른 중반이었다. 약간 기울어진 탑이 염색된 옷이었다. 분명히 마법사의 탑에서 나온 것이 맞았다.

저 문장을 쓰려면 그곳의 소속밖에는 쓸 수가 없었다. 에드바르 라는 이름의 마법사는 인지도도 있고 별칭도 달린 마법사였다.

그는 냉정한 표정이었고 실제로도 내정한 편이었지만 시온을 보고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시온이 마법의 길을 걸어가는 듯한 외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뭐하는 놈이지?’

순간 그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은 그 단어였다. 그는 여러 차례 유적 사냥을 한 경력이 있는 노련한 유적 사냥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같이 일할 전사를 고를 때 신경 쓰는 것의 일 순위가 체력이었다.

“흠흠.”

그가 헛기침했다. 시온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말했다.

“시온 니벨룽입니다.”

“아, 그러면 내가 찾는 사람이 맞아 보이는군. 그 답안을 낸 것이 자네인가?”

“네.”

그가 고개를 어이없다는 듯이 갸웃했다. 관상학에도 조예가 깊은 편인 그의 정보에 큰 충격을 줬다. 그 답안의 필사는 분명히 에드바르도 봤다.

한정된 시간 내에 푼다는 것은 그도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 위에 사람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걸 이 무명의 남자가 해냈다는 것이 그에게 일차적인 충격을 줬고, 이차적으로 시온의 단련된 상태가 이차 충격을 줬다.

그의 추측에 온종일 극한의 단련을 하지 않고서는 저런 근육이 생길 수가 없었다.

“하나만 묻겠네.”

“물으십시오.”

“어떻게 한 건가?”

“뭐 말입니까?”

“그 몸.”

“단련합니다.”

“마법사가 아닌가?”

“예, 마법사입니다. 이번에 수련 마법사 면허를 받았습니다.”

“?”

깔끔한 대답이었고 그렇게 이해해야 했지만, 그는 여전히 쉽게 의심을 풀질 않았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자네의 답안은 완벽했네.”

“그렇다더군요.”

“그래서 마법사의 탑으로 들어오길 바라네. 이곳에서 서품을 받고 해석 마법사의 길을 걷는 거야. 내가 적당한 스승도 소개해 주지. 자질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사실이구먼. 그래도 스승만 잘 만나도 고리 세 개는 형성하네.”

고리 세 개를 평생 노력해서 만들고 죽는 마법사도 많았다. 시온 같은 경우는 고리 두 개도 힘들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필요로 하는 마나가 많았다.

서품에 스승에 대한 제안까지 시온은 에드바르가 작정을 하고 왔구나 싶었다.

수련 마법사의 다음 길은 당연히 수련이라는 단어를 떼는 일이었다. 용병에 등록한 것도 용병업을 겸해서 경력을 만들 생각이었다.

경력이 받쳐주면 고리 한 개로도 능력을 인정받아 앞에 붙어있는 수련이라는 단어를 뗄 수 있었다.

아니면 고리를 바로 두 개를 달성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도 수련이라는 단어를 한 번에 떼게 해줬다.

그리고 마법사는 마법사의 탑에서 서품을 받게 된다. 마법사 품을 받는 것이었다. 가장 낮은 것부터 시작하고 여기서 품을 받지 못하게 되면 출세하고는 조금 멀어진다.

그래도 평민이었다면 여전히 나쁘지 않은 수익과 인지도가 있어 쉽게 자리를 잡는 편이었다.

그런 품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그것을 단번에 내려주고 스승까지 구해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섞여 있었다. 그곳에서의 급은 나쁘지 않겠지만 구해지는 스승이라는 자도 해석작업에 관련이 있는 자일 터인데, 그렇다면 스승 역시 자질이 낮은 자라는 것은 분명할 것이었다.

“거절합니다.”

시온은 미리 준비해왔던 답변을 공손히 했다. 시온이 봤을 때 이것은 계륵이었다. 그런 식으로 출발하면 안 됐다.

마법사의 탑에 걸친다고 해도 적통으로 들어가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 시간은 다음 고리를 형성하는 데 쓰일 것이었다. 당장엔 파수꾼 반지에 숨겨져 있는 제조법을 완전히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시온이 간단하게 답변하자, 내심 거절당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던 에드바르가 상당히 당황했다.

시온은 이제 막 마법사 면허를 받은 상황이었고, 보통 이런 자들의 목표는 마법사의 탑에서 일하는 것이기에 그가 이곳에 시온을 데려가기 위해 왔을 때는 실패에 대해 고민은 해본 적이 없었다.

‘허, 신기한 놈이네. 생긴 것도 마법사답지 않은데 돌아가는 사고방식도 모르겠다. 뇌도 근육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제안을 거절할 수가 있지?’

하지만 뇌가 근육이라면 정작 자기도 불가능한 그 답안을 제한시간 내에 작성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에 그의 자괴감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시온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결렬된 자리에 오래 있을 필요가 없어 그곳에서 나왔다.

ㆍㆍㆍ

파수꾼의 반지는 나날이 푸른 액을 먹고 점차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떤 연유로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 기괴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본래의 기능은 이런 여러 종류의 제작법을 보관하는 반지 정도로 보였다.

그런 내용을 정리하며 시온은 이 반지가 두 개에 대한 제작법이 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시온의 흥미를 끄는 것은 마나의 정수 여기 적혀 있는 금박의 정수를 만들 수 있다면 마나를 단숨에 대거 향상할 수 있었다.

“이거라면 두 번째 고리를 달성하게 해주겠군.”

마법사의 탑에 간다는 것은 이래서 위험한 것이었다. 당장에 푸른 액을 생성하는 선조의 유품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고 이런 제작법을 마음껏 만들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만약에 들키기라도 한다면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즉 그곳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 될 것 같았다. 충분하게 강해지고 귀중한 물건을 지킬 수 있을 때가 적정할 시기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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