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 (6)
녹색의 반지가 완성이 된 것은 에드바르의 제안을 거절한 뒤 삼 일이 지난 후였다.
시온은 이제 여기에 푸른 액을 담근다고 해도 딱히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라면 거의 없어졌어야 했는데 그대로였다. 시온이 생각했던 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된 건가?”
여관의 문을 한 번 더 확실히 잠갔다. 옆방 용병들은 도박판이 벌어졌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시온은 이편이 오히려 좋았다. 지금부터는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녹색의 반지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었다.
금박의 정수는 고리가 세 개이든 네 개이든 애매한 마법사들에게는 너무나 가치가 큰 물건이었다.
하다못해 고리가 한 개인 시온이 먹으면 단숨에 고리 두 개를 달성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금박의 정수 제작법이 녹색의 반지에 숨겨져 있었다.
가치가 얼마일까? 정확한 것은 암시장에 비슷한 물건이 얼마에 팔리는지를 봐야 할 것이었다. 아니면 조언자에게 금화를 주고 물어봐야 할 것이었다.
금박의 정수 정도면 시온이 참여할 수 있는 경매도 아니었다. 경매도 급이 있었다. 시온이 수련 마법사 면허를 열었다고 해서 마법사 장비가 교환되는 모든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배경도 실력도 운도 필요했다.
“이 제작법을 그냥 팔아버릴 수도 있지.”
어차피 못 만들 정도의 물건이라면 팔아버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판매처는 어느 정도 정해지게 된다. 페라라 가문의 상품으로 받았으니 페라라 가문에 파는 것이 후환이 없을 것 같았다.
“도팽 가도 괜찮지 않나?”
친해졌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웠지만, 루시 도팽은 시온을 그다지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길도 열어 주지 않았는가. 그때 그 실수만 없었다면 좀 더 친분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온이 너무나 기뻐 그녀를 들어 올리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되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정말로 그게 나빴다면 끝나고 뺨이라도 후려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당황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다가 허둥지둥 도망치듯 가버렸다.
이 정도면 나쁜 인연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런 물건을 팔 수 있을 만한 좋은 인맥으로도 보였다.
“루시 도팽도 고리는 한 개고, 이런 정수는 눈에 불을 켜듯 찾고 있을 테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마법사가 심지어 대마법사들도 각종의 정수를 확보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마법사의 모든 것은 경지에 따라서 나뉘게 되는데 아무리 장비가 좋다고 해도 결국 경지가 낮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심지어 마법사들은 영지를 소유하는 것보다 더 높은 단계에 오르는 것을 선호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영지라는 것도 지킬 힘이 있어야 여러 분쟁에 휘말려도 극복할 수 있는 법이었다.
굳이 영지를 수여 받고자 한다면 고위 마법사가 되어서 황제나 유세한 왕 중 하나에 거대한 도시를 받는 방법도 있었다. 다만, 그만큼의 일은 해줘야겠지만.
시온은 녹색 반지를 의미 있게 봤다.
“해볼까.”
완전해진 반지는 깔끔하게 마나를 받아들이고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곧 환영이 눈앞에 만들어졌다. 몇 개의 하급 정수를 만드는 법과 강화 단약, 그리고 금박의 정수에 대한 것이었다.
금박의 정수 재료가 남김없이 묘사됐다. 며칠 전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잘 보였다.
“정말 선조님 감사합니다.”
시온은 니벨룽 가문에 대해서 딱 이 감사해본 적은 없었다. 사실 평민이었어도 상황은 엇비슷했을 것 같았다.
다만 인제 와서 가문의 혜택을 느끼는 것은 최소한 귀족 가문이기에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약간 사는 것 같았다.
에릭만 해도 시온과 발뭉을 대단한 기사처럼 대우했다. 특히 기초를 거의 다 가르치고 나서는 에릭은 발뭉을 무슨 용기사 정도로 취급하는 모양이었다.
시온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원래 에릭은 약간 광기가 있는 녀석이라 말을 듣지를 않았다.
“에드바르도 아직은 포기한 것 같지는 않고.”
뭔가 계속해서 집착하는 것이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시온은 이런 식으로 마법사의 탑에 끌려가면 그냥 노예나 다를 바가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에 확신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에드바르가 마음만 먹는다면 시온을 납치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인데 그 정도까지는 행동을 보일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재능이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을 뿐 아직 고위 마법서를 읽을 수 있다고 증명이 되지도 않은 시온을 납치라는 수단을 동원할 정도로 시온이 아직 무언가를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사실 시온은 고위 서적을 읽는 것이 가능했다. 시온은 모르고 있었지만 시온은 평생 마법 서적 때문에, 고대 언어 때문에 골이 섞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것이 그나마 이곳에서의 시온에게 주어진 행운이었다.
시온은 마석에 서린 마나를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으로 남김없이 빨아드렸다. 그리고 푸른 액도 복용했다. 오늘은 여분이 많아서 마나 증진이 평소보다는 컸다.
몸이 개운해지고 마나로 인해 심장이 뛰었다. 몸의 근력이 전반적으로 자극을 받는 것이 느껴졌다. 시온은 이제 확신했다. 푸른 액을 복용하면 근육이 유지될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발달된다는 것.
이렇게 되면 푸른 액만 모아다가 따로 기사들에게 팔아도 돈벌이가 대단할 것이었다. 다만 이것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했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어야 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도의 육체 훈련과 단련을 하는 기사들이 이 액체의 효능을 알게 된 순간 칼을 들고 무슨 짓을 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ㆍㆍㆍ
에릭과의 대련은 오전에 이루어졌다. 처음엔 기초를 알려주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에릭 자체가 이미 종자 중에서도 수준급이었다.
사실 시온은 에릭이 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는지는 잘 몰랐다. 그만큼 여동생을 아끼는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여동생 때문에 여기에 머무는 것이었다.
에릭과의 격투기는 최대한 피하고 있었고 주로 훈련하는 것은 레슬링 형태였다.
사실 칼이 부러지고 나서의 절박한 상황에서 기사들에게 주어진 것은 타격 공격이 아닌 상대방에게 달려들어 질식사를 시키는 것이었다. 기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대를 제압해야 했고 그것을 명예로 알았다.
“으어어어!”
시온은 웃통을 벗은 채로 달려드는 에릭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왜 저 녀석은 항상 달려들 때 저 소리를 낼까, 어쨌든 금화가 달린 문제였고 아직 받지는 않았기에 성심성의껏 가르칠 생각이었다.
에릭이 지급할 금화 백 개가 지금 중요했다. 시온은 아공간 반지를 암시장에서 노리고 있었다. 귀중품을 거기에 넣어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끄아아아아아!”
에릭의 이차 추임새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중세의 레슬링은 현대의 것보다는 완전히 살벌한 형태였다. 중세 레슬링의 목적은 결국에 상대방을 질식사시켜 죽이는 것에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거나 몸값을 받기 위해서 기절시키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그러니 그 과정을 달성하기 위해 실전에서는 어떤 약점을 쓰는 것이 용납되었기에 눈을 찌른다든지 고환을 때린다든지 별놈의 짓을 저질렀다.
애초에 경기 규칙도 세게 잡혀있는 판이었다. 손가락을 꺾어 버린다든지, 목을 조르는 것은 기본이었고 발을 걸어서 탈골 시키는 것은 다반사였다.
어쨌든 여기서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짓을 당당하게 하려면 상당히 악연이 있거나 대회의 급이 높아야 했다.
이긴 놈이 상금이랑 전공을 가져가니까.
시온은 솔직히 말해서 기본기 정도만 알고 있었고 어떻게 보자면 기술적으로는 에릭에게 모자랄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온은 그럴 때마다 에릭을 힘으로 자빠트렸다.
“아무래도 이번엔 한쪽 팔 붙잡기가 약했던 것 같다. 에릭. 이런 잡기는 턱이나 머리를 압박해야 상대가 움직이지 못해. 잘 봤지?”
대충 이런 식으로 알려주면 뭔가를 알았다는 듯이 에릭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사실은 기술적인 것보다는 힘의 차이로 어떤 잡기를 하든지 간에 더럽게 유리한 것이었다.
그래도 에릭에게 이런 반복적인 훈련은 그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에릭의 자세를 보아 몇 년 내에 제국 겨루기 대회에 나갈 생각인 듯싶었다.
큰 축제였다. 제국 겨루기 대회서 입상만 한다면 평생 남을 경력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대회를 현대처럼 생각하면 안 됐다. 이곳의 중세에서의 이런 대회는 반드시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부상자도 많았고 장애인도 나왔다. 또 일이 끝나고 다른 상대를 보복하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에 입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전반적으로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순수한 실력이 등수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해도 정치력이 부족한 편이라면 상대편에게 보복당하거나 방해당해 제대로 시합을 할 수도 없었다. 만약 모시는 사람이 밀어주는 기사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등수를 양보하는 일도 많았다.
“끝났군.”
“오늘도 고마웠다. 시온.”
에릭과는 존칭을 떠나서 이제 어느 정도 말을 놓게 되었다. 처음엔 에릭이 스승처럼 대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시온의 입장에서는 영 거북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을 평등하게 하는 것으로 하자고 제안을 했다.
현대인인 시온에게는 이쪽이 편했고 대가로 금화를 받으니 불만 가질 것도 없었다.
“혹시 내일 저녁에 시간이 있나?”
“무슨 일인데?”
“여동생이 시온 경을 초대하고 싶다고 해서.”
그놈의 여동생이 이제 들어갔나 했더니 다시금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시온은 금화를 완전히 받을 때까지는 에릭의 말을 어지간하면 들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ㆍㆍㆍ
시온은 지금 녹 반지에서 나온 하급 정수를 만드는 방법을 골몰하고 있었다. 간단한 정도는 직접 만드는 편이 앞으로의 일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의뢰하는 법도 있었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최대한 몸을 굴리는 법이 맞을 것이었다.
재료가 있다고 해서 하급 정수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수 작업대가 필요했고, 작업대에서 같이 쓰이는 도구도 있어야 했다. 그 도구들을 다룰 줄 아는 마나의 이용법도 알아야 했다.
“작업대는 빌리면 되니까. 간단한 정도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용병 패도 발급받았으니 몬스터 정리에 관한 임무를 받아 현상금 형식으로 근처를 드잡이하고 다닐 수도 있었다.
시온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일단은 팀 없이 하는 수색이었다. 약초를 찾아내는 일은 자신이 있었고, 생존 기술도 충분했다.
예전에도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는데 지금의 고리를 형성한 상황이라면 약간 깊은 곳까지 들락거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에릭의 일이 마무리되면 출발할 것이었다. 한 번 출발하면 보름은 꼬박 걸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