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304)

도팽가의 초대(1)

도팽 가문 정도면 이런 도시에서 가장 좋은 건물 중 하나는 쉽게 가지고 있었다. 여러 방면의 목적이 있겠지만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은 도팽 가에 직계나 방계가 페레 시에 머무를 때 쓸 수 있는 저택의 용도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황금 도끼단이 운영하는 여관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를 쓰던 시온의 노력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이런 것이 흔히 말하는 귀족 가문의 힘일 것이었다.

시온의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거대한 유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안타까울 것이 없었다. 선조에게서 선조조차도 사용용도를 모르던 것을 챙겼으니까.

어쨌든 도팽 가가 이 정도 규모의 도시에 괜히 거대한 저택을 마련해 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저택의 또 다른 용도는 바로 모임을 여는 것이었다.

“초대장?”

시온은 앞에 있는 집사에게서 한 장의 멋들어진 편지를 받았다. 편지는 당연히 일반인이 사용하기 어려운 고급 종이었고, 주황색이 은은히 빛나는 인장이 편지를 봉납하고 있었다.

마법사 가문이 아니랄까 봐 원래라면 초를 녹여 만든 붉은 색을 띠어야 했는데 색도 도팽 가문을 뜻하는 주황색이었고 그마저도 간단한 마법이 걸려 있어 은은하게 멋을 부리고 있었다.

“휘유. 뜯어버리기 아쉬울 정도의 초대장인데.”

도팽 가문은 돌고래 문장이었다. 시온도 가문에서 이런 비슷한 것을 보기는 했다. 정말로 높으신 분에게 보낼 때만 이런 봉납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끼 부리는 것은 상상도 못 할 것이었다. 시온의 가문 문장은 푸른 반지가 세 개가 있는 것이니 푸른 색이 나오게 하면 이거랑 비슷할 것 같았다.

“시온 니벨룽 님. 과연 아가씨께서 걱정하신 대로의 복장 그대로시군요.”

“?”

자신을 도팽 가의 집사라고 소개한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이 자의 이름은 벨몬이었다. 벨몬은 시온을 아래서부터 위에서까지 다섯 번이나 훑어봤다. 시온이 초대장을 가지고 시시덕거리는 동안 이미 능숙한 집사답게 사태를 파악한 것이었다.

‘기이한 자로군. 귀족임이 분명하나 마치······.’

집사 벨몬은 시온 같은 유형의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시온을 표현할 만한 단어를 딱히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온이 루시 도팽의 다음의 성적이라는 것도 알았고 루시 도팽이 시온의 해석 시험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봐왔던 그로서도 시온이 분명히 범인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범인인데 속내가 있는 범인이라.’

벨몬은 결국 단어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복장이 안 되면 도팽 가문의 모임에 참여할 수 없는 겁니까? 그러면 저는 가지 못하겠군요.”

시온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가고 싶다는 마음과 아닌 마음이 반반 섞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온은 별로 멋들어진 의류를 사는 데 금화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팽가에 가서 루시 도팽과 다시 안면을 터보는 것은 언제나 좋은 선택이었지만 당장에 급한 것은 아공간 악세사리를 구매할 수 있는 금화를 모으는 것이었다.

귀족의 옷이 싼 것도 아니었다. 괜히 귀족의 의무에 옷을 잘 차려입는 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옷만 해도 값이 나가는 편이었고 본격적으로 돈이 드는 것은 가문의 문장을 염색하는 일이었다. 염색장이들은 보통 길드 소속이었고 밀약을 맺고 있어서 여간 비싼 게 아니었다.

“아닙니다. 그 점에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말씀은?”

“저희 쪽에서 준비하겠습니다.”

시온은 솔직히 놀랐다. 이런 호의는 쉽게 해주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화를 좀 더 해보니 약간 이해가 가는 구석이 있었다.

이번 모임은 아무래도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던 루시 도팽의 이름과 명예를 알리기 위한 것, 그러기에 차석도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옷이 격이 떨어진다면 그녀로서는 명예가 손상당하는 일인 것이었다. 그녀의 가문 정도라면 시온의 복장 정도는 푼돈에 불과했다. 아마도 시온이 싫다고 해도 억지로 입힐 것이었다.

“흠. 그렇군.”

“그러면 치수를 재보겠습니다.”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고 그 전에 시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도 같이 초대받을 수 있나요?”

시온은 에릭과 에릭의 여동생이 떠오른 것이었다. 이왕이면 따로 모임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한 번에 해결하면 좋을 것 같았다.

“몇 명입니까? 삼십 명 정도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아니요. 두 명이면 됩니다.”

“두 명이요. 허허. 가능합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답변을 마치고 벨몬이 박수를 짧게 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 시종들이 들어와 시온의 몸을 쟀다.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온의 몸은 시험을 치를 때보다도 더 좋아지고 있었으니까.

“엄청나게 단련을 하셨군요. 기사도 이 정도의 체력 단련은 흔치 않습니다.”

벨몬이 치수가 재어가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시온은 굳이 답변하지는 않았다. 다들 착각을 하고 있었지만 시온의 단련은 중단된지 이미 오래였다. 시온이 하는 것은 오로지 푸른 액을 적당량 복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착각을 굳이 수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설명하자면 애매한 부분을 밝혀야 했고 그것은 스스로 위험을 초래하는 꼴이었으니까. 그 정도로 나이를 헛먹은 것은 아니었다.

벨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온에 대한 평가를 대폭 수정했다.

‘아가씨가 말한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 전사의 단련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저렇게 세상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아가씨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노력파다. 아가씨가 이런 인물을 장기적으로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알게 모르게 벨몬의 지지를 받는 시온이었다. 벨몬은 사실 보통 집사는 아니었다. 그는 도팽 가의 집사장이었다.

집사장 역시 귀족 출신이었고 나름의 다양한 경력을 쌓고 집사장에 오른 실력파였다. 그는 나름의 무서운 면이 있었고 아가씨에게 해가 되는 인물이라고 판단되면 사람을 쓰거나 협박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ㆍㆍㆍ

귀족이라는 것은 사교모임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그 사교모임은 각각 급이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먹고 놀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각 모임은 그것대로의 막강한 힘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줬다.

권력을 가진 사람끼리 끼리끼리 친구가 되거나 친해지거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둘이서 노릴 수 있을 만한 약자나 자기들을 노리는 강자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쉽게 뭉칠 수 있었다.

그래서 하위 귀족이나 상위 귀족이나 귀족이라면 별별 모임이 많았다.

‘거창하군.’

시온이 도팽 가의 저택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모임을 하기에 충분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리가 남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모임을 주최할 수 있을 만한 위세가 있었다.

도팽 가의 문장은 돌고래였고 저택의 문이나 어딜 가도 돌고래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끝내주는데.”

에릭이 한 마디 뱉었다. 생각보다 에릭은 자기관리가 어느 정도 되는 인간인 듯싶었다. 그 정도로 복장을 철저하게 입고 온 것이었다. 하기야 유명한 기사의 종자 생활을 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피도끼 경이라면 왕을 만나야 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니까.

시온은 그냥 머리를 비우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온 것 시온은 루시 도팽에게 정수 작업대를 빌릴 생각이었다.

도팽 가의 전문분야는 각종 단약의 제조와 특히 포션 부분 쪽에서 이름이 있었다. 그러니 말만 잘 한다면 그녀의 허락을 얻어 작업대를 얻어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작업대 역시 좋은 것을 써야지 좋은 것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무조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실패할 수도 있었고 시온 같이 시행착오를 철저히 겪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작업대라도 좋은 것을 써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보안이 된다는 거겠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마법사 쪽이나 용병 업체 쪽에서 작업대를 금화를 주고 빌려야 했다.

문제는 작업대 자체도 질이 낮았지만 워낙에 현대인 같은 상식이 없는 중세인지라 보안 쪽에서 영 아니었다. 의도적인 걸 수도 있었다. 몰래 관찰해뒀다가 비싼 것이면 가로챌 수 있을 테니까.

아무래도 그 점이 찝찝했다. 막상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름의 수단을 취해야겠지만 일단은 도팽 가의 사교모임에 온 김에 관련 정보나 작업대를 빌릴 수 있는 허락을 받는 것을 중점에 둬야 할 것 같았다.

“시온 니벨룽 경. 제가 옆에서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주실 수 있을까요?”

시온은 화들짝 놀랐다. 에릭의 지시일까? 에릭의 여동생인 베아 할프가 시온에게 과감히 옆에서 붙어서 가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보통 같았으면 이 같은 음모가 느껴지는 제안은 바로 거절했을 것이었다. 시온은 벌써 결혼을 해서 코가 꿰이고 싶은 생각은 결코 없었다.

‘초대했는데 거절하기도 좀 그렇긴 하지.’

이곳에 초대한 것은 누구도 아니고 시온이었다. 시온은 에릭에게서 남은 금화를 받아야 했다. 그러니 적어도 앞으로의 관계가 어그러질 수 있다고 해도 지금은 피해야 했다.

“그럽시다. 마이 레이디.”

시온이 아주 어색하게 말했다. 실제로 어색했다. 시온이 아무리 옷을 잘 차려입었다고 해도 시온의 몸이나 오지에서 온 것 같은 평범한 얼굴에서 어떤 귀족적인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시온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귀족적 예의는 알고 있다. 마땅한 이유도 없는데 여기에서 여자의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모욕적인지를.

안은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안면이 있는 시험관도 있었고 합격을 한 사람도 많이 있었다.

금발의 다부진 턱에 고집 있는 푸른색의 눈을 가진 전형적인 기사의 체구를 가진 에릭은 생각보다 이곳의 여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었다.

덩달아서 시온 역시 희한한 느낌으로 주변 남자의 강렬한 질투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에라이. 조용히 가려고 했는데.’

이런 것은 시온의 성미와는 잘 맞지 않았다. 시온은 아무도 모르게 쓱 지나가 루시 도팽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에릭의 여동생인 베아의 외모와 몸매가 뛰어났다.

오빠를 닮아서 긴 금발에 균형 있는 몸매는 이곳 남자들의 마음을 훔치기에는 충분했다. 미녀와 야수라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였다.

“아, 그 인간.”

“차석인데 소문대로 무시무시한 놈이네요. 길을 상당히 잘못 들은 것 같은데요. 마법보다는 주먹이 먼저일 것 같지 않습니까?”

“도팽 가와 친분이 있다는 얘기야. 합격에 기뻐서 그녀를 들어 올렸다던데.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요? 그러면 알던 사이네요. 어쩐지.”

시온은 재빠르게 눈을 돌려 루시 도팽을 찾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됐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어깨를 잡았다.

“응?”

“여기서 또 보는군. 시온 니벨룽.”

다섯 개의 고리의 마법사. 마탑의 직속인 에드바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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