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304)

도팽가의 초대(2)

“아, 에드바르 님.”

시온이 말했다. 에드바르가 인사를 받았다. 에드바르는 시온에게만 인사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아래 마법사들에게 모두 인사를 받고 있었다.

다섯 개의 고리와 마법사의 탑이라는 배경은 이곳에 있는 자들의 최상위에 있다고 봐도 좋았다. 이곳의 모임이 도팽 가가 열었다고는 하나 그래 봤자 급이 낮았다.

에드바르의 참석은 다른 자들을 흥분하게 했다. 에드바르는 다색 등불이라는 별칭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재주가 다양한 자라는 뜻이었다.

전투에도 능했고 각종 제작에도 재주를 보였으며 정치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사실 이곳에 참여한 자들의 속마음이야 서로를 추켜세워주긴 하지만 최대 목표는 에드바르나 그 정도 급의 인사와 안면을 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에드바르는 주변에 간단한 답례를 보내고는 다시 시온을 봤다.

‘이 녀석은 과연 보석일까, 아니면 계륵일까.’

에드바르는 시온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에드바르의 별칭은 그의 다재다능함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마법사이기도 했다. 재주가 많다는 것은 한 우물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에드바르는 지금 제시한 것보다 더한 것을 더해서 시온을 영입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도 이런 갈등을 겪어보기엔 오랜만이었다.

고작 해봐야 이제 막 수련 마법사가 된 신참이 아닌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의 직감은 시온에게서 강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옆에 아가씨는 누구지?”

“베아, 라고 친구의 여동생입니다. 그리고 이번의 수련 마법사의 자격을 받은 마법사이기도 합니다.”

“호오, 그런가?”

“선배님을 뵙습니다. 베아 할트라고 합니다.”

“할트 가문이라. 그곳에서 결국엔 마법사를 배출하게 되는군. 반갑네. 여자라니 더욱 뜻밖이군. 자네의 삼촌이 되는 간마이 할트 녀석과 유적을 탐험한 적이 있지. 무식한 놈이었어.”

“호호. 삼촌이 무모한 면이 있기는 해요. 감사합니다.”

할트 가문 역시 기사 가문으로 인지도가 있었다. 시온의 가문만큼이나 인지도가 없는 가문은 아니었다. 시온은 그제야 할트 가문이 제법 이름이 있는 가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여전히 생각은 같은가?”

“그렇습니다. 아직은 너무나 배운 게 없고 혈기가 넘쳐 세상을 좀 더 배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데이게 되면 에드바르 가장 먼저 선배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시온은 생각을 골라 답변했다. 이 정도면 적당한 거절이 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에드바르의 영향력은 낮지 않다. 그에게 밉보여서 좋을 일은 없었다. 최대한 공손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했다.

혹시 몰랐다, 마법사 탑에서 재료를 구해야 할지. 마법사의 탑은 기라성같은 마법사들이 거주하는 대영지로 당연히 최대의 재료 경매소가 열렸다.

그곳에서 에드바르의 이름을 대면 쉽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온은 여러 가지 방향의 성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의 녹색 반지로 얻은 결론은 아마도 어떤 방식이든지 그곳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금박의 정수가 현재의 목표였다. 금박의 정수라는 것은 이런 경매장에서도 고가의 가격과 고등급의 배정을 받아 참여자도 전공과 마법사의 경력 제한이 걸린 높은 등급의 경매가 열리게 된다.

당연히 지금 인자한 후배를 끌어 올리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드바르도 금박의 정수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시온의 가죽을 벗기려 할 정도로 태도가 바뀔지도 몰랐다.

성장이 막혀 버린 마법사는 마나의 정수를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지금 에드바르 님이 저 녀석에게 자리를 제안한 건가?”

“그걸 거절했다고.”

“미친 거 아닌가.”

“알던 사이인가 봐.”

“시온 니벨룽. 이름 기억해 둔다.”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에드바르 정도 되는 마법사가 이제 막 수련 마법사에게 자리를 제안한 것도 극히 드문 일이었는데 그걸 또 거절했으니 난리가 난 것이었다.

니벨룽 가문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가문의 이름을 이곳에 모인 자들이 기억하기 시작했다.

ㆍㆍㆍ

루시 도팽이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의 일이었다. 그녀는 이 모임의 주최자였고 주인공이었기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정작 그녀의 눈은 덩치 큰 오지 남자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를 찾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인간이 별로 없던 것이다. 동시에 낯선 여자도 찾아낸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시온 역시 마냥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루시 도팽을 열렬히 찾고 있었다. 이곳의 모임이라든지 여자를 어떻게 해보겠다든지 좀 더 유명세를 보이고 싶다든지 명예로운 행동을 하겠다든지 전부 시온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시온은 작업대에 대한 이야기를 루시 도팽에게 하고 싶어 근질근질했다. 이곳에 온 이유가 그거 때문이기도 했고 빨리 시험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급 정수를 만들 때 그 재료에 푸른 액을 넣으면 완성이 될까?’

시온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녹색 반지에는 금박의 정수에 대한 제조법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급 정수에 대한 것도 두 개 정도 있었다.

시온이 작업대를 빌려 시행착오를 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하급 정수라고 해도 정수는 정수였다. 마나의 증진에 곧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격은 마석 뺨치게 비쌌다.

그리고 수요도 많았다. 정수라는 것은 각 급에 맞춰서 흡수하는 편이 좋았다. 에드바르 같은 경우는 금박의 정수가 아니면 먹히지 않지만, 그 밑의 마법사들에게는 하급 정수의 복용이 크게 작용을 했다.

“초대에 응해줬군요. 시온 니벨룽.”

시온은 어느새 다가온 루시 도팽의 목소리를 듣고는 반사적으로 답했다.

“초대해줘서 감사했습니다.”

시온은 공작새처럼 멋들어진 그녀의 모습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시온의 머릿속이 현대인의 본질처럼 계산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시온도 남자인 것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 않고 시온이 말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진 않았나요? 저번의 무례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마이 레이디.”

누가 봤다면 우스운 장면이었다. 아무리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고 해도 시온의 모습은 전형적이거나 세련된 귀족 남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그 모습을 보고 비웃음을 띄는 자들도 많았다.

‘옷이 날개라더니. 흐응.’

정작 당사자인 루시는 시온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루시는 속마음을 숨기고 냉랭하게 이어서 말했다.

“드디어 귀족다운 모습을 하셨군요. 그런 몰골로 도팽 가의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례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시온은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옷이 뭐 대수인가, 시온이라고 해서 옷을 넝마로 다니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거금을 쓰고 나면 금화가 나오나, 마나가 나오나.

여전히 시온의 생각은 확고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완전히 숨기고 웃으며 말했다. 작업대를 빌려야 하는 마당에 바보 같은 짓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점 역시 사과드립니다. 레이디.”

“네, 받아들이겠어요.”

“저 부탁 드릴.”

“옆에 있는 분은 누구죠?”

시온과 루시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시온은 아직도 지금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잘 몰랐다. 베아와 루시가 아까부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모를 것이었다. 시온이 대강 말했다.

“친구의 여동생입니다. 이번 초대에 허락을 받아 같이 왔습니다.”

“흐음.”

“베아라고 합니다.”

“그래요.”

시온은 어색해진 분위기에 난감해졌다. 그러나 둘의 사이가 불똥이 튀었기에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본론을 물어보기도 전에 너무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됐지. 여자들은 이래서 잘 모르겠다니까.’

시온은 이렇게 된 거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본론을 던져보기로 했다.

“루시 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도팽 가는 예전부터 마법 장비와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가문이었습니다. 아까 주신 질문의 답변을 간단히 드리자면 요즘 대부분 시간을 대장서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기초 제작에 흥미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사례를 드리고 작업대에서 개인적인 호기심을 채워보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여전히 특이한 인간. 그러세요.”

황당할 정도로 쉽게 허락이 나왔다. 도팽 가의 작업대는 쉽게 내어주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온도 안 그래도 부족한 언변을 최대한 신경을 쓴 것이었고 이번 일에 대해서 차선책을 미리 생각해뒀을 만큼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리 높게 잡지는 않았었다.

‘하하. 돼버렸네.’

이게 얼마나 지금의 금전적 상황이라든지 마나를 모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풀리게 할지는 시온만 알고 있었다.

‘기초 제작 작업이라, 대체 뭘 생각하는 거지? 이 근육 바보는.’

루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속으론 나름의 빚을 씌웠다고 만족하고 있었다. 나중에 이 빌미로 뭔가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여전히 시온을 천재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시온이 해석 시험에서 보여줬던 그 순간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제작에 흥미가 있으면 나야 좋지.’

잠재적인 라이벌로 정해버리기도 했다.

그녀는 시온에게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복잡한 것이었지만 한 개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부러울 것 없이 자란 그녀가 시온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제작이라는 것은 적통의 마법사에게 기피되는 일이었다. 그건 재능이 부족한 자들이 빠지게 되는 일이었다.

도팽 가문이 비록 그 방면에 유명하다고 해도 거기에 도팽 가문의 적자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였다. 제작 역시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고 기술적인 문제나 각종 변칙적인 마나의 흐름에 반응해야 하는 고된 훈련과 재능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시간을 써봐야 좋은 과실을 만들기야 하겠지만, 적통 마법사들은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단 한 가지의 방향 마나를 늘리는 데 특히 마나 수련법에 집중하고 대부분 시간을 쓰게 된다.

어느 쪽이 높은 고리를 달성하게 되는지는 뻔한 일이었고 한정된 자원으로 만들어진 각종 강화 단약과 마나의 정수들이 누구에게 투자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마법사 개인에게서도 큰 문제지만 각 가문에서도 고위 마법사의 존재는 중요했다. 특히 영토 전쟁을 앞둔 대영주들이 그러했다.

전쟁에는 흔히 물자와 인력이 끝도 없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마법사를 필요로 했다. 하물며 고위 마법사는 아무리 모아도 부족한 것이었다.

그녀가 시온의 생각과 달리 손쉽게 작업대를 내준 배경에는 이러한 것이 숨어져 있던 것이었다. 루시의 생각에 시온의 몸은 예전보다 더 훌륭? 해져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개인 시간의 대부분을 마법을 수련하는 것이 아닌 육체 단련을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 됐다.

그런데 거기에 제작에 흥미를 느낀다? 그것은 그와의 차이를 충분히 벌릴 기회처럼 보인 것이다.

그녀는 도팽 가문의 집중적인 투자를 받는 여식답게 섭취할 마나의 정수가 잔뜩 있었고 오히려 부작용 때문에 천천히 계획을 잡아 복용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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