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 제작(1)
도팽 가의 작업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 귀족 가문이라는 것이 항상 세수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컨대 도팽 가문의 주 수입 중 하나는 작업 주문을 받는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나의 정수이지만 각종 강화 단약에 대한 기사의 수요도 높았다. 강화 단약들은 부작용을 동반했고 그 중엔 심한 것도 분명히 있었다.
어쨌든 완제품의 가격은 쉽게 측정되지 않고 그때그때의 시세에 따라서 재측정 되었으며 수요가 조금만 많아도 경매에 부치는 일이 많았다.
이러니 그 비용이 어떨 때는 심하게 부풀려지는 일도 많았다. 이런 일에 대한 다른 방법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이 제작 의뢰였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타인에게 재료와 선입금을 주고 확률 높은 도박을 돌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애매한 구석이 많아 사기가 빈번하게 일어지기에 이런 방법을 쓰는 자들은 널리 알려진 대가문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대가문은 몇백 년 전부터 그 지역을 지배했고 그 기반엔 앞으로도 일을 맡으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의뢰에 탐을 내지 않을 만한 나름의 사람들의 기대가 있었다.
뛰어오르는 돌고래로 유명한 도팽 가문은 그러한 가문이었다. 그리고 마법사 가문이었고 멀리에서 소문을 듣고 의뢰를 하러 오는 자도 많았다.
이 지역에 대한 모든 제작 의뢰는 자연적으로 반독점하고 있을 정도였다.
“작업실도 거창한데.”
시온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이곳은 도팽 가와 경쟁이 붙어 있는 페라라 가문이 실권을 잡고 있는 자유 도시였기에 도팽 가의 제대로 된 힘을 느끼기에는 어려웠다.
그런데 역시 대가문의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나름대로 규모 있는 작업실에 갖춰져 있었다.
“역시 자유도시라는 건가.”
시온은 자유도시의 이점에 대해서 생각했다. 페라라 가문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유도시는 앞에 붙어있는 자유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그래서 권력도 그럴싸하게 나눠 가지고 있었고 긴 독재를 막기 위해 십 년마다 투표도 했다. 이곳의 시민이라는 자격이 있다면 투표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격이라는 것이 조금 까다로웠다. 시온은 이곳에 체류하고 있을 뿐이지 이곳의 시민은 아니었다.
보통은 왕이 다스리는 봉건제하에서 페라라 가문이 이곳을 다스리고 있다면 경쟁 가문의 건물은 시도 때도 없이 견제를 받아 잠깐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세금 같은 것도 복수라는 명목의 세를 붙여서 미친 듯이 뜯어갈 수도 있었기에 서로가 적수라고 판단이 되면 지역 자체가 원수로 갈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누구신지요.”
“시온 니벨룽입니다.”
관리자로 보이는 자가 시온을 막아섰다가 이름을 듣자 바로 알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아, 시온 마법사님. 아가씨의 친구분이시군요.”
“친구?”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시온은 여기에 대해서 별다른 말을 붙이진 않았다. 친구라고 불리기에는 아직 그 정도까지 친해지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아마도 그녀가 이렇게 말해두는 편이 편했기에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에게 소개받아서 들어간 작업실은 여러 공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확연히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일하는 자들이 거의 다 마법사였다.
조수로 보이는 자들은 아직 고리를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지만 분명히 지시하는 자들은 마법사들이 분명했다.
시온은 남자가 배정해준 구석의 독립작업실로 들어갔다. 공동 작업용이 아닌 개인 작업실이었다. 작업대가 있었고 각종 장비가 놓여 있었다.
현재로써는 시온은 이 중 하나도 마음 놓고 구매할 수가 없는 그런 물건들이었다. 별다른 말이 없이 문도 조용히 닫혔다.
정말로 혼자일까? 시온은 무작정 시작하기보다는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만큼 지금 하려는 작업은 최소한 누군가에게 노출되어서는 안 됐다.
“방음은 어느 정도 돼 있는 것 같고···.”
시온은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격 마법을 주위에 뿌렸다. 고리 한 개를 달성한 마법사라면 무난히 펼칠 수 있는 그런 급의 탐색 마법이었다.
전류들이 문과 벽을 빠르게 훑었다.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이상 징후가 발생했다면 스파크가 튀어 올랐을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온은 더 깊은 마법으로 탐색을 해보고 싶었다. 여기 있는 물건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마나 제조 작업대는 민감한 물건이므로 이상한 마법을 시도해서는 안 됐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없으니.”
이제야 시온은 일을 진행할 필요를 느꼈다. 시온은 가져온 보따리를 풀었다. 하급 마나의 정수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었다.
지금 만들려는 것은 콩나무 줄기 정수였다.
시온에게 친숙한 잭과 콩나무와 비슷한 콩 나무에서 추출할 수 있는 정수였다.
하지만 그런 설화와는 달리 콩나무는 거대한 편이긴 하지만 하늘 높이 솟아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특이 작물로 분류되어서 이곳에는 몬스터가 높은 확률로 존재했다.
몬스터는 마나가 함유된 장소나 약초나 작물에 무조건 존재했다.
그것이 몬스터와의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꿀을 모으는 벌처럼 어떤 몬스터는 해당 약초에 마나를 모아주는 일도 있었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이것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강화 단약이나 마나의 정수를 만들 수 있게 하는 핵심 재료가 된다는 것이었다.
붉은 잎사귀, 검붉은 점 버섯, 그리고 잡다한 재료가 차근차근 올라갔다. 가장 신중하게 올린 것은 콩나무 줄기였다.
콩 나무의 줄기.
그러나 시온이 제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마나가 함유되어 있지도 않고 그런 모습이나 특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 녀석들은 이제 섞일 녀석들이고.”
시온은 줄기를 한쪽으로 밀어놨다. 모든 방비를 한 이유는 이제 진짜 물건을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품 안에서 감춰두고 있던 보자기를 풀어 그 안에 재료를 차곡차곡 놓았다.
똑같은 콩나무 줄기였다. 그런데 방금 내놓은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마나를 포함한 데다가 특이한 빛을 띄우고 있었다.
푸른 빛이 발광하고 있는 데다가 잘라내어 생장이 정지되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싹까지 돋아있는 생생한 줄기들이었다.
시온은 드디어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에 했던 가상실험은 성공적이었다. 푸른 액 일부를 모아 그 안에 가치가 없는 콩나무 줄기를 모아놨는데 그것이 사흘 동안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것으로 한 가지 더 선조의 유품의 용도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액은 마나를 잃은 약재에 마나를 불어넣고 다시 생장을 시키기도 한다는 점을 말이었다.
푸른 액은 이제 다시 생성되고 있으니 오늘 분류해둔 물건은 저녁에 생성될 푸른 액에 담가둘 것이었다.
“됐군. 이제 시작해볼까.”
시온이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점검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녹색 반지, 그러니까 파수꾼의 반지에 숨겨져 있는 제조법을 바로바로 참고하면서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녹색 반지는 얼핏 보면 처음 받았을 때처럼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마나를 불어넣게 되면 숨겨져 있던 문자들이 빼곡하게 나타났다.
이것 역시 암호에 불과했지만 고대어는 현대의 언어와 똑같아 시온에게는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여러 번 몰래몰래 확인했던 작은 환상 마법이 녹색 빛을 뿌려대는 반지의 위로 투영이 되었다.
환영 마법은 재료의 이미지와 사용 방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온이 해당 문자만 열었기에 이 반지의 최대 가치인 금박의 정수가 아닌 하급 정수 중 하나인 콩나무 줄기의 정수가 표시됐다.
완성되면 녹색의 원형 알약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 결과물인 원형 정수가 팔아도 금화를 듬뿍 받을 수 있고 수요조차도 많아 타이밍만 좋으면 경매까지 올릴 수 있는 그런 가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이 정수를 팔 생각은 없었다. 시온 역시 이제 막 고리를 한 개밖에 형성하지 못한 마법사였다. 금화가 있다면 모든 금화를 투자해 이런 마나의 정수를 깡그리 사고 싶은 게 현재 심정이었다.
“단계만 높아지면 금화를 벌 수 있는 일은 금방 찾을 수 있으니까.”
세상엔 마법사를 필요로 하는 일이 많았다. 다만 실력이 좋은 마법사를 필요로 하고 그에 맞은 수임을 줄 뿐이었다.
시온은 침착하게 호흡을 하고 앞에 놓인 재료와 작업대, 그리고 작업 장비를 봤다. 이제 마법사 서적에서 읽은 제작 지식과 반복된 작업을 통해 실전능력을 얻을 때였다.
ㆍㆍㆍ
늦은 오후가 다 되어서야 시온은 앞에 있는 녹색 알맹이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콩나무 줄기의 정수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원재료가 다른 방식으로 생장이 되어서 그런지 파수꾼 반지에 숨겨 있던 정수와는 조금 다른 형태였다.
푸른 빛이 살짝 돌고 있었다. 모든 재료는 다 소진했고 시온은 경험을 얻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운이 좋았다.’
사실 우습게 본 것은 아니었다. 비록 적통 마법사의 재능이 부족한 자들이 빠져드는 샛길 중 하나였지만 이곳의 일이 그렇듯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재료를 거의 다 소진하고 미리 만들어둔 콩나무 줄기를 다 쓰고 나서야 우연히 시도해본 방법을 도박적으로 해본 것이 효과가 있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마법의 불로 녹여낸 액이 반투명 파이프를 통해 내려가 시온이 분류기를 마나로 운영, 조금씩 통과해 방울방울 떨어지게 되는 그것을 결국엔 응고 장비를 통해 응고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콩나무 줄기를 만들어 낸 방법이 선조의 유품 덕분이어서 그렇지 날린 금화만 삼백 골드인가.’
하루에 날려버린 것치고는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시온은 너무나 이 작업을 만만하게 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완성된 콩나무 줄기의 정수는 이제 챙겨야 했다. 조심히 손수건에 챙기고 가슴안에 넣어둔 뒤 전격 마법을 걸었다. 누가 이것을 만지게 된다면 갑작스러운 전류에 고통을 느낄 수준. 이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소매치기의 손이 들어간 순간 시온이 주먹을 날려버릴 것이었으니까. 시온이 밖으로 나가자 오전에 봤던 마법사가 난감한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나오시질 않아서 들어가 볼까 했습니다.”
“마음만은 고맙군요.”
“어떠신가요? 보아하니 재료를 모두 날려버린 모양이군요 하나도 들고나오시질 않으니.”
“그렇습니다. 이렇게 어려운지는 몰랐습니다.”
“낙담하지 마십시오. 원래 다 그렇습니다.”
그와의 대답은 간단하게 끝이 났다. 시온은 그와 그리 길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미 가슴이 들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자마자 완성된 정수를 복용할 생각이었다.
마나의 기운에 민감한 시온은 가슴팍에서 고농도의 마나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황금도끼 여관은 여전히 친숙한 분위기였고 이제 그곳의 점주는 꽤 친해져서 시온에게 여자를 넣어줄까 넉살스럽게 물어봤지만 시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금화가 있다면 약재라도 하나 더 살 판이었다.
“너 고자 새끼냐? 껄껄. 이번에 예쁘장한 애 들어왔다니까 몸이 흉기인데 여자한테 숙맥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걸걸하게 웃는 점주의 얼굴을 뒤로하고 시온은 피곤하다며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공간, 그리고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문을 잠그고 탁자에 콩나무 줄기의 정수를 꺼냈다. 영롱한 것이 여자보다도 매혹적이었다.
“이것으로 시작인가.”
시온은 두 번째 고리를 형성할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