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 제작(2)
어떤 마나의 정수이든 그렇겠지만, 정수라는 것은 신중하게 먹어야 했다.
시온이 눈앞에 두고 있는 콩나무 줄기의 정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시온이 만들어 낸 것은 기존의 것보다 급이 약간 더 좋았다.
고농도의 마나가 점과 같은 형태로 함축되어 복용자에게 마나 폭풍 현상을 일으키며 흡수가 되는 것이 보통 일어날 일이었다.
다만 각각의 특성이 담긴 정수마다 색다른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가장 간단한 현상이라면 화염 특성이 담긴 정수를 먹었을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길이었다.
이렇게 바깥에 일어나는 일은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독 같은 것을 품고 있어 복용자를 중독시키거나 크게 다치게 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이것을 완전히 받아드릴 수 있을 만한 마나 수련법이 없다는 거네.”
정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마나 수련법이었다. 모든 마법사는 어떠한 형태이든지 마나를 모아가는 마나 수련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종류는 시온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고 세분되어 있었다.
당장에 쓰이는 분야가 다르면 아무래도 마나 수련법도 변화가 오기 마련이어서 의술이나 포션 제작이나 시온이 어제 도팽 가에서 만났던 마법사들은 아예 제작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한 마나 수련법을 익혔다.
“도팽 가는 도팽 가의 마나 수련법이 있고.”
제로니아의 서약이라는 비전 마나 수련법이 도팽 가의 혈육에게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마나 수련법을 시온이 배우려면 도팽과의 혈육과 약혼이나 결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외인에게 알려줄 리가 없었다. 그마저도 사정이란 사정은 다 해서 심사까지 거쳐야 할 것 같았다.
시온은 루시 도팽을 순간 떠올렸지만, 그녀의 싸늘한 태도와 도도한 모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감생심이다.
그 외에는 효과가 떨어지지만, 경매에 나오는 것이나 어딘가 누구의 밑으로 들어가 긴 시간을 통해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든 마나 수련법이라는 것은 지금 상태에서 당장에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나마 누구 밑으로 가서 긴 시간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는 금화를 주고 사는 것이 낫겠지만 이마저도 시온은 생각이 없었다.
그 금화가 있다면 해당 약재를 죄다 사서 제작에 몰두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운이 좋았어, 진짜로.”
재료를 거의 다 날린 상황에서 다섯 가지의 방법 중 그냥 하나를 찍은 상황이었다. 돈이야 다 떨어졌으니 그 도박까지 실패하게 된다면 당분간 에릭에게 교습비를 받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있어야 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도박은 성공했다. 삼백 골드의 재료를 날렸지만 정말 주사위에 다 실패했다가는 천 골드가 넘는 손해가 날 뻔했다.
진짜로 천 골드가 날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시온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 대부분의 값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다시 생장에 성공한 콩나무 줄기였다.
아무것도 아닌 이것을 푸른 액에 담그면 어느 정도 재생장이 된다.
하지만 기회비용이 있었다
푸른 액이라는 것이 생성되는 양은 하루에 정해져 있고 그것을 허무하게 날리는 것은 그것대로 아까웠다.
애초에 통째로 복용 하는 것 대신에 다른 길을 찾아보고 있는 것도 좀 더 가치를 높여 사용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또 이것대로 고민인데.'
생전 처음 제작한 값비싼 마나의 정수. 멀쩡한 가문이 있었다면 한 개쯤은 받아볼 수 있었겠지만 그러한 혜택을 기대하기 힘든 오지의 가난한 귀족 가문과 그중에서도 가장 투자의 가치가 떨어지는 막내라는 포지션.
“에라이.”
시온은 그냥 입에 넣고 먹어버렸다. 애초에 이렇게 머리 아프게 고민하려고 제작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어차피 남들보다야 쉽게 만들 수 있고 대체 어느 정도 마나가 쌓아 지는지를 알아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수 있을 거였다.
입에 넣자마자 짙은 녹음이 느껴지고 마나가 고속 성장 하기 위해 움츠러드는 것이 보였다. 시온은 곧바로 이브림의 마나수련법의 구절을 외웠다.
이브림의 마나수련법으로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손실이 크게 난다고 해도 가만히 있으면 이마저도 얻지 못하고 모조리 날리게 된다.
그건 아마도 할 수 있는 수 중에 최악의 선택지일 것이었다.
ㆍㆍㆍ
마나의 정수가 만들어내는 양은 심할 땐 평범한 자질로 마나 수련법을 했을 때 일 년 치 마나를 생성시켜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좀 더 좋은 물건이어야 했고 시온이 만들어낸 것은 그야말로 만들 수 있는 정수의 가장 아래 단계.
푸른 액의 힘으로 그나마 상급의 품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위안이 대는 점이었다. 시온은 시간이 훌쩍 흘렀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보다도 시간이 세 배는 들 정도였다.
“후아.”
시온은 한결 가뿐해진 신체와 여전히 몸에 남아있는 녹음의 기운을 느꼈다. 확실히 자연 계열의 정수인지라 그쪽으로 영향이 심했다.
시온이 가지고 있는 자질들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었고 각자 마나를 원했다. 거기에 대량의 자연 계열 마나가 들어간 것이다.
“미쳤군. 대략 육 개월 치인가?”
그마저도 현재 시온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을 때에 나올 정도의 수치였다. 푸른 액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복용하고 마석도 가장 마나가 잘 쌓이는 시기일 때 집중적으로 흡수했을 때가 이 정도라는 것.
놀라운 만한 수치라는 것은 이것도 그나마 이브림의 마나수련법의 비효율적인 면으로 인해 많은 양의 마나를 날려버리고 남은 것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흡수했다면 그 이상도 볼 수 있었을 것이었다. 첫 흡수는 이래서 중요했다. 사람이 받아들이는 해당 계열의 첫 흡수는 흔히 마법사들이 말하는 마나 폭발이 일어난다. 얼마만큼 많은 양을 가져갈지는 가진 자질에 따라 나뉘지만 대체로 평소에 쌓는 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양이 몰려든다는 점이었다.
그 점에서 시온의 마나 폭발은 평균이상이었다.
“만약에 내가 누군가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거나 보조할 수 있는 장비가 있었다거나 아니면 좋은 마나 수련법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겠지.”
마나 폭발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기회가 몇 번 없었다. 즉 시온은 한 번 써버린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시온이 가진 거라곤 현대의 지식과 습성 그리고 운으로 발견한 선조의 유품의 활용방법 정도니까.
“그나마 위안 삼아야 하는 건 내가 제작할 수 있는 하급 정수에서 가장 좋은 녀석으로 터뜨렸다는 점이려나.”
콩 나무 줄기의 정수는 파수꾼 반지에 숨어 있는 재료 법 중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이었다. 다른 재료였다면 이 정도 양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정수라는 것은 몇 번에 나눠서 신중히 복용해야 했다 다시 복용을 한다고 해도 얼마만큼 증가할지는 추이를 봐야 했다. 내성이라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시온은 휘몰아치는 마나를 느끼고 정리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법사의 탑의 일자리를 제안한 것도 훨씬 나았던 것 같았다.
그곳에서 눈치 보면서 해봐야 절대로 이러한 마나를 단숨에 얻을 방법은 없었다. 마나 수련법이야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보다야 좋은 것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단기간에 두 번째 고리를 달 수 있다면 해석 마법사들은 바로 해석 일을 때려치우고 적통으로 계통을 바꿨을 것이다.
ㆍㆍㆍ
다음날 시온은 에릭을 교습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갔다. 에릭은 이미 나와 있었고 한참을 연습 중이었는지 이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몇 가지의 자세를 계속해서 연습하고 있었는데 시온은 솔직히 에릭의 재능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사실 이제 가르칠 것이 없었다. 그냥 대련을 좀 해주고 뭐가 있는 것처럼 대충 덧붙여주는 게 지금 하는 꼴이었다.
그나마 힘의 차이가 확실히 나서 기술적으로 비슷하다고 해도 시온은 간단히 힘으로 눌러버려서 이기는 판국이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그랬다. 그나마 요즘은 꽤 위협적일 정도였다.
‘푸른 액의 보조 효과인 근력 형성이 없었다면 진작에 나가떨어졌겠지.’
푸른 액을 소량만 복용해도 시온의 몸은 점점 좋아졌다. 그러니 대련을 하는 에릭도 단단히 착각에 빠져 있었다. 시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수준의 단련을 혼자서 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에릭은 그래서 마법사이면서도 체력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시온을 나름 존경까지 하는 판이었다.
“시온 경.”
“훈련 열심히 네.”
헐레벌떡 시온이 있는 곳으로 온 에릭이 빠르게 말했다.
“저번의 일에 무례를 사과할게.”
꽤 진중하게 얘기하는데 도대체 무슨 무례를 저질렀다는 것인지 시온은 전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굉장히 난감한 기색인 듯싶었다.
“?”
“어제랑 그제 아무리 찾아가도 보이질 않아서.”
그야 여관에서 죽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온종일 마나의 정수를 제작하고 제작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경험을 쌓느라 열중이었으니까. 그리고 과실도 얻었다.
“마법사의 탑과 관련해서 몇 가지 일이 있었다. 별건 아니고 마법사 지식과 관련된 일이었지.”
시온은 대충 둘러댔다.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에릭과 친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시온은 아직 누구에게도 여러 가지 비밀을 밝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릭이 좋은 사람이란 것은 맞지만 시온은 그것과 이것은 별개라는 가치관을 가졌다.
“아, 그런 중요한 일을 다색등불 에드바르 님과 관련된 일이겠구나.”
“?”
“어쨌든 정중히 사과한다.”
“뭘 말이야?”
“내 여동생 때문에 분명히 화가 났을 거니까.”
“?”
“나이가 어려 철이 없고 생각이 없다. 네가 좀 이해해줘. 장래의 약혼자 앞에서 다른 놈이랑 춤을 추로 가다니. 돌아와서 내가 얼마나 경악했는지.”
에릭이 얼마 전에 있었던, 도팽가에서의 모임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시온은 잠깐 에릭이 무슨 말을 하는지 생각했다가 알아챘다.
이곳의 귀족이라면 특히 공식적인 자리라면 더욱이 약혼자 앞에서는 다른 남자와 뭘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 그거.”
“무례한 짓이었지. 가문에 먹칠하다니. 내가 종일 교육을 했다.”
“난 괜찮다. 어차피 춤을 배우지도 못했어. 창피한 일이지.”
“춤을 모른다고? 니벨룽 가문에서 배우지 않은 거야?”
“음.”
에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니벨룽 가문은 무서운 가문이군. 마법사인 시온 조차도 체력 단련을 극한까지 한다. 춤조차 가르칠 시간이 없었던 거야. 이것도 용기사의 가르침인가?’
에릭이 부르는 명칭인 용기사는 발뭉을 뜻하는 것이었다. 시온의 선조인 발뭉 니벨룽은 용기사가 아니었다. 용기사는 기사 중에서도 최고 등급으로 분류되는 기사였다. 그런데 혼자서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약속했던 금화가 왔다. 자.”
생각보다 털털하게 에릭이 땅바닥에 엎어져 있던 개인 도구에서 금화로 가득 찬 주머니를 꺼냈다.
‘미친. 금화 백 개를 저렇게 놓고 있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