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교환(1)
시온은 도팽가의 중심부에 다시 들어갔다. 그곳의 방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에드바르와 만났을 때 머물렀던 곳보다 더 훌륭했다.
사실 시온이 뜻을 전하자 한번 안면이 있던 집사가 진지하게 되물어보고는 사라지더니 한참은 있다가 다시 와서는 이곳으로 안내했다.
‘아공간 액세서리부터 얻어야지.’
살 목록은 어느 정도 정해놨다. 가격이 어느 정도가 나올지 아니면 물물교환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게 중요했다.
사실 시온이 노리고 있는 것은 물물교환이었다. 도팽 가라면 이곳에서도 간단한 고급 장비 창고 정도는 가지고 있을 터이고 거기에서 구미에 맞는 것을 찾아내는 금방일 것이었다.
시온은 아직 급이 높은 마법사는 아닌지라 희귀 난이도의 장비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상위 장비를 가지고자 한다면 당연히 이런 배팅은 확률이 떨어진다.
시온은 차를 홀짝였다. 마법사관리소에서 먹어봤던 것보다 질이 떨어졌다. 그곳에서는 두 번을 시켜 먹었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냥 찻물에 불과했다.
어쨌든 시온이 기다리고 있는 자는 당연히 루시 도팽이었다. 루시 도팽에게 언급할 만한 어구도 몇 개 생각해놨고 시온은 그렇게 곧 있을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도중 누군가가 들어왔다. 시온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들어온 것은 공작새와 같은 복장을 하는 도팽 가의 여식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온은 그의 심장 쪽에 염색된 돌고래 문장을 보고 직감했다. 남자는 도팽 가문의 혈계의 인물이라고.
남자는 중년을 넘어서 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자였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 도팽이었다. 니콜라 도팽은 도팽 가문의 혈계 남자 중 하나였다.
그 역시 마법사였고 나이가 먹고 가문의 자문으로 빠지며 소소하게 일을 돕고 있는 처지였다. 그는 시온을 발견하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것이 루시의 관심을 사로잡은 녀석이군.’
“인사드립니다. 시온 니벨룽이라고 합니다.”
“앉게. 나는 니콜라 도팽이라고 하네.”
그는 자리에 앉아서도 시온의 자질에 감탄하고 있었다. 시온은 아무리 적게 봐도 벌써 두 번째 고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보통 재능이 아니었다. 게다가 노련한 그는 시온의 자질이 영 좋지 않은 자라는 것을 이어서 발견했다.
‘엄청나게 나쁜 토양과 엄청나게 뛰어난 씨앗인가. 과연 화제가 될 만 하군. 루시가 질투할 만 해.’
그는 연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사장의 보고를 들었지만, 막상 보니 정말로 특이했다. 에드바르는 그와도 잘 알고 있었고 에드바르가 시온을 영입하려고 했던 사실도 미리 들어둬서 알고 있었다.
‘전혀 머리가 좋아 보이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소문은 사실인가.’
마나 습득력이 높은 자는 보통 머리도 좋았다. 그의 나름대로 지론으로 대강 시온의 등급을 먹이고서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보기에 시온은 정말로 괜찮은 녀석인 것 같았다. 어떻게 보자면 신이 장난을 친 것 같은 수준이었다. 평생에 마법에 매진한 그조차도 고작 해봐야 고리가 세 개였고 그러기에 더 높은 단계로 가고자 하는 열망은 이미 옛날 옛적에 저버린 상황이었다.
두 번째 고리를 만들어 낸 게 언제인가, 하여튼 정수도 많이 먹고 실패도 많이 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수련 마법사 면허가 나온 자가 두 번째 고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으니 얼마나 빠른 속도로 마나를 쌓아가고 있는지 믿기 어려웠다.
에드바르가 두 번이나 제안하고 세 번째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이제야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신분이 낮고 결국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지. 안타까운 미래지.’
그는 자조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시온이 굉장한 속도의 마나 수련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자질이 나쁘다는 것은 다음 단계에서 더욱더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뜻했다.
지금이야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세 번째 고리부터는 거의 불가능해지고 가능하다고 해도 네 번째 고리 정도가 시온의 한계라고 그는 추측했다.
“그래, 물건을 한 번 볼까?”
그가 입을 떼자 시온은 경계심을 세우고 그에게 다시 물었다.
“루시 도팽은 오지 않는 겁니까?”
“오기야 하겠지만 지금 일이 있어서 오는 데 오래 걸릴 것이야. 그래서 내가 온 거네. 물건을 볼 수 있겠는가?”
어지간하면 친분이 있는 루시 도팽쪽으로 물건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니콜라 도팽이 그렇게 말하자 시온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니콜라 도팽이 루시 도팽보다 웃어른인 데다가 그 역시 세 번째 고리를 연성한 마법사인지라 나이를 고려하면 대 선배격이었다.
“알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시온이 조심스럽게 품에 있던 정수를 그의 앞에 내놓았다. 구름 줄기의 정수 네 정이었다. 흰색을 푸른색이 섞인 정수가 차례차례 탁상 위에 올라갔다.
니콜라 도팽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름 줄기 정수를 그가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태를 보아하니 품질은 상급에서 최상급인 것 같은데 푸른색이 도는 형태는 처음 본 것이었다.
“이건, 대체, 허.”
“왜 그러십니까?”
“놀라워. 만져봐도 되겠는가?”
“어차피 도팽 가와 거래하려고 가져온 물건입니다.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만져보더니 눈 위에 올렸다. 마나를 넣어보고 감정을 대략 해보더니 짧게 감탄사가 나왔다.
“특이하군. 정말로 특이해. 이걸 어디서 구했지?”
“그런 질문은 실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하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구나, 나는 평생 많은 종류의 정수를 봤지만 푸른 빛이 흐르는 구름 줄기 정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제가 치를 값에서 조금 더 쳐주시는 겁니까?”
어지간하면 말하기 싫었지만 시온은 그가 보는 것이 어느 정도는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대가문과 거래를 해서 이 정도의 흐름은 오히려 괜찮은 편이었다.
루시 도팽과 친구 사이로 알려졌기에 웃어른이 그래도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었다. 현대인인 시온은 그 점에 대해서 경계를 늦추고 있지 않았다. 더불어, 조금 더 받아볼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니콜라 도팽이 재미있다는 표정이 되었다.
‘젊은 녀석이 독한 구석이 있구먼, 보이기에는 오지에서 구르다 온 사냥꾼처럼 보이는데 거래를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니야. 니벨룽 가문이라.’
“쳐주지.”
시온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좋습니다. 사실 우연히 제가 만든 것입니다. 재료는 선조의 지도에서 표시된 곳에서 구한겁니다. 저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정말인가? 그게 무엇이지?”
시온이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적당한 장비 하나를 그냥 줄 테니 말해주게. 보아하니 이것으로 장비를 갖춰 가려는 것이 눈에 보이는구먼. 껄껄.”
시온이 한 개 남은 구름 줄기 정수를 그에게 건넸다. 변형된 구름 줄기였다.
“이것입니다.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에 채취한 것입니다.”
“허허, 말라가고 있군. 그런데 특이하다. 채취했다면 장소를 알고 있겠다는 뜻이겠지?”
“선조의 비밀입니다.”
“크흠···. 니벨룽 가문 말인가?”
시온이 도발적으로 말했다.
“강제적으로라도 말하게 하실 거라면 거래를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 안전이 더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구름 줄기에는 그 정도 가치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맞지 않습니까?”
시온이 바로 본론으로 꺼냈다. 그리고 그 말은 맞았다. 희귀한 형태여 봤자 하급 정수이다. 그러니 더 알아낸다고 해도 딱히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본 것이다.
“맞네. 흠, 내가 무례가 조금 심했구먼. 신기해서 말이지. 각자의 가문에는 지켜야 할 비밀이 있지. 그건 비단 도팽 가문만이 아니라 니벨룽 가문에도 있는 법.”
시온은 저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좋아. 거래하지. 도팽 가문의 장비 창고로 가세. 금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믿지 않은 시온의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았다. 아무래도 시온은 루시의 친우로 그에게 알려졌었다. 그러니 여기서 장비를 더 내주고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이제부터는 체면이 상하는 것이다.
어디서 채취했는가는 뻔한 일이었다. 가문의 근처일 테니까. 그는 따로 조사를 위한 인력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완전히 시온에게 속은 상태였다.
ㆍㆍㆍ
도팽 가문의 장비 창고는 시온의 입을 벌리게 할 만했다. 암시장에 있는 물건보다도 제법 풍부해 보였다. 그리고 그건 맞았다. 이곳은 도팽 가문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여러 개의 창고 중 하나였다.
이곳에 있는 물건은 주기적으로 다른 장소로 옮겨가기도 했다. 시온이 며칠만 늦게 왔더라면 이곳의 물건의 태반이 사라져있었을 것이었다.
“어떤 물건을 원하지?”
“대단하군요. 정말로 많아요.”
“자네가 시기가 좋았네. 이 물건들은 이제 각지로 운반되어 경매에 올라갈 물건이야.”
가장 가까운 에스테 시부터 제국의 도시, 왕의 도시, 아마 물건의 분류에 따라 비싸게 받을 수 있을 만한 곳으로 천천히 옮겨갈 것이다.
가장 가까운 선반에 놓인 지팡이에 시온의 눈길이 쏠렸다.
“번개의 눈, 이것은 자네가 구매할 수가 없는 걸세.”
딱 봐도 그래 보였다. 어떤 재질인지 몰라도 흰 목단으로 만들어진 지팡이는 그 자체에 뇌전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는지 전조가 슬금슬금 흐르고 있었다.
저런 물건이 가치가 높은 이유는 별 이유가 없었다. 사용자의 마나를 돕는 것이 아닌 강제적으로 메모라이즈가 되어 있는 장비이다.
마나 소모만 감당할 수 있다면 낮은 고리의 마법사가 중간 고리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긴급상황에서는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길일 것이고 저런 공격용 스태프는 몬스터의 치명상을 날리기도 좋아서 용병 업체에서 몸값이 걸릴 때 몸값을 뻥튀기시켰다.
뿐만이 아니라 루시가 끼고 다니는 액세서리와 비슷한 것들이 이곳저곳에 하나씩 있었다. 하나만 가지려고 해도 허리가 휠 정도의 것들.
“특이한 하급 정수 네 개라. 그러면 이쪽을 봐야겠군. 결정은 오늘 하는 게 좋아. 내일부터 이 물건들은 분류될 것이거든.”
그는 한눈에 봐도 약간 구석진 곳으로 가서 물건을 고르라고 했다. 시온이 대충 훑어봤다. 이 정도도 나쁜 급은 아니었다.
암시장에 있는 물건보다야 확연히 좋았다. 역시 시온의 생각이 맞았다. 이곳에서 처리해야 한다면 암시장에 가서 교환해야 할 것이 아니라 도팽 가나 페라라 가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장비 하나는 이미 결정을 해놨다.
“아공간 액세서리가 필요한데요.”
“아공간? 하긴 그게 급할 수도 있겠구나. 자네 자질이 좋지 않아 보여서 나 같으면 조금이라도 마나를 쌓기 쉬운 장비를 찾았을 건데 이것처럼.”
그가 푸른색 반지를 꺼냈다. 녹색 반지와 비슷한 종류인데 녹색 반지의 결함을 생각해보면 결함이 없는 사파이어 반지였다.
“마석과 같이 쓰면 시너지가 있네.”
시온이 쉽사리 대답하지 않자 그가 반지 하나를 다시 집어서 줬다.
“아공간 반지일세. 자네가 찾는 게 맞아 보이는 군.”
시온은 아공간 반지를 받았다. 마나를 넣어보자 가 공간이 열렸다. 말로만 듣던 것이라 신기했다. 넓이를 보아하니 넉넉한 것은 물론이고 특수 효과까지 있었다.
간단한 식량을 재배할 수 있었다.
‘이거다.’
“긴 원정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옵션이 붙어 있어서, 다른 것도 한 번 봐보게. 마나와 관련 있는 것은 이렇게 세 개가 있네.”
“아니요. 이걸로 하겠습니다. 마음에 들어요.”
“흠.”
이제 두 개를 더 골라 나가면 됐다. 이제 고민을 조금 해봐야 했다. 아공간 반지는 비밀로 해야 할 물건들이 있어서 급했지만 다른 것들은 그만한 장단점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