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계(1)
시온은 마나를 담그고 있는 작은 스태프와 빙결 구슬 하나를 넣었다. 스태프는 저장고 같은 개념으로 마나를 저장하고 있다가 쓸 수 있었고 빙결 환은 일회용의 구슬이었다.
한 번쯤은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공격용 스태프가 아닌 저장용 스태프를 고른 이유는 시온은 다른 마법사와 달리 여러 가지 속성을 쓸 수 있어서였다.
소모가 남달리 큰 만큼 이것도 만약 전투가 매우 급해졌을 상황을 대비해서 고른 것이었다.
두 개의 물건을 고르고 나자 니콜라 도팽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시온이 왜 이런 것을 고르는지 알겠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선택을 제외하고는 대략 짐작이 가는군. 젊은이.”
“그렇습니까. 저는 이렇게 고르겠습니다. 빙결 구슬은 품질이 좋아 보이는군요.”
“그렇지 눈썰미가 있군. 사실 빙점은 이 진열대에서 가장급이 좋은 것이라네. 그걸 골라냈을 때 잠깐 놀랐지, 껄껄. 결국, 내가 손해를 봐 버렸군.”
아공간 반지가 계륵인 것을 고려하면 빙점을 골라내려고 일부러 고른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니콜라 도팽이 시온에 대한 의견이 한 번 더 바뀌게 되었다.
‘적어도 지켜볼 만한 인물이겠어.’
창고를 떠나는 것은 무척 아쉬웠지만 더는 이곳에 있을 일은 없었다. 거래는 성공적이었고 시온은 만족할 만한 물건을 챙겨 나왔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번개의 눈을 가지고 나오고 싶었다. 시온은 번개의 눈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고른 것이 빙점이었다.
높은 단계의 마법을 장비를 통해 경험을 해둬 보고 싶었다. 결국, 높은 단계를 가기 위해선 전투 능력이 좋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흔히 말하는 전쟁엔 다양한 보상이 끼어 있었고 그 다양한 보상엔 마법사와 관련된 것도 한가득하였다.
그런 것을 그냥 나눠줄 리가 없었다. 전공에 따라서 나눠주는 것이다. 기사처럼 마법사도 철저히 성과가 있어야 했다.
어쨌든 도팽 가의 창고를 나오고 이동하려는 차에 니콜라 도팽이 시온은 불렀다.
“잠깐, 조금 더 얘기하지.”
용무는 끝났지만 할 얘기가 있다 하니 정수 제작에 관한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뻔한 일이었다. 이 늙은이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시온은 그를 따라가면서 빠르게 둘러댈 말을 생각해보았다.
니콜라 도팽을 따라가는데 점차 사람이 많아졌다. 그것도 중무장한 자들이었다. 도팽 가에 속해 있는 기사나 용병으로 보였다.
모두 건장한 체구에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단순하게는 검부터 폴암, 단창과 사각 방패. 문 앞에는 완전한 기사로 보이는 자가 온통 반짝이는 쇳덩어리 아래에서 투구를 살짝 들고 니콜라 도팽에게 인사를 했다.
“어르신.”
돌고래 문양이 있는 것은 도팽 가문에 속해있는 자였고 아닌 자는 고용된 자들이었다.
그들이 시온을 쳐다본다.
“누구야. 어르신이랑 같이 들어오네.”
“새로 추가되는 녀석이군. 몸 봐라. 예사 놈이 아니고만.”
“기사인가?”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와중 시온이 마법사이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무려 짧은 스태프를 들고 가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온 방은 또 다른 방이었다. 안에 있던 어린 시녀가 손님 접대를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 손님은 시온인 것 같았고 시온은 솔직히 무슨 일인가 했다. 자기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으니까.
“자, 거기 앉게.”
“알겠습니다.”
시온이 자리에 앉자 니콜라 도팽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조금 전에 보였던 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장난을 치던 노인이 이제 본론을 꺼내려는 것 같았다.
“장비도 세 개 챙겼고, 수련 마법사인 데다가 고리 한 개째에서 다음 고리에 곧 도착할 마법사이지. 보아하니 견습 기사 정도는 되는 육체 훈련과 단련을 계속해왔고, 아마도 관련된 무술과 검술은 밖에 있던 용병 정도는 되겠지. 맞나?”
시온은 검을 쓰는 방법은 잘 몰랐다. 레슬링이나 격투기라면 나쁘진 않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밖에 있는 녀석들과 동급은 아니다. 단순히 힘 싸움 정도라면 녀석들을 제칠 수 있었다.
“........”
“그래서 말이다만 이번 일에 나한테 고용되어 보는 게 어떤가?”
“고용?”
“그래. 이번 일에 마법사 쪽에 빈자리가 있네. 거기에 자네가 들어가는 거지.”
어쩐지 밖에 있는 무장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했더니 어디 작은 원정이라도 보내는 모양이었다. 시온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장 상태와 수를 봐서 절대로 간단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산맥 깊숙이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아니면 영지 전 비슷한 것일지도 몰랐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온은 일단 거절 비슷하게 날렸다. 아무리 준비를 해왔다 해도 아직 이런 일에 과감히 뛰어들기엔 미심쩍은 게 있었다.
“다녀오면 금화로 주거나 창고를 한 번 더 열어주지. 무난하게만 진행되면 아까보다 높은 등급의 진열대로 말이야.”
그가 그렇게 말하자 시온의 생각이 흔들렸다. 아까 있던 진열대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것보다 높은 등급의 진열대에 있는 품목이라.
대충 봐둔 것만 해도 경매장 급의 물건들이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금화가 있다고 해도 매물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몰라 대도시로 이동해야 무난히 살 정도.
이런 이야기를 대번에 꺼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꽤 위험한 일임은 틀림없었다.
“어떤 내용입니까?”
“사냥이지.”
그가 그렇게 말했다. 사냥은 시온이 자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오지에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철저히 배웠다. 그러니 그 얘기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당장에 영지 전에 투입되는 일이었다면 거절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몬스터 사냥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정도 인원이라면.
“어떤 녀석입니까?”
시온이 단어를 꺼내자 그때 문이 한 번 더 열리고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젊은 남자였는데 화려한 옷차림과 더불어 익숙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어 대략 누구인지 감이 왔다.
오와인 도팽이었다. 오와인은 도팽가의 남계 자손이었다. 그렇다면 대강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오와인이 쌓을 경력을 위해 원정 원을 구성했고 그 급에 맞는 몬스터를 잡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정도라면 끼어들 만했다. 아무래도 니콜라 도팽의 호감을 산 것이 분명하다고 시온은 생각했다. 남계 자손이 쌓을 경력에 위험한 것을 맡기겠는가, 어떤 것을 잡는다고 해도 그만한 뛰어난 자들이 참여할 것 같았다.
ㆍㆍㆍ
시온은 돌아와서 물건을 정비했다. 일을 받아들였으니 원정에 참여할 준비를 해야 했다.
“오랜만에 사냥인가.”
그리고 마법사로서의 첫 임무이기도 했다. 시온은 싱숭생숭했다. 마법사로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이번 일만 잘되면 진열대 하나를 더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정도라면 마법사의 구색은 갖추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온은 더 큰 도시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금박의 정수를 제작하기 위한 정보도 필요했고 따라서 마법사 용병으로 일을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뒀다.
그리고 몬스터 사냥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배워볼 것이었다. 아무래도 보상이 큰일은 크든 작든 사람이 만드는 전투에 있었다. 거기에 고용되어서 금화를 모으는 게 가장 빨랐다.
‘예상했던 대로 좋군.’
시온은 지금까지 가지고 불편하게 가지고 다녔던 선조의 유품과 마석, 잡다한 재료, 금화를 모두 아공간 반지에 집어 넣어버렸다.
크기는 넉넉했는데 시온이 골랐던 아공간 반지의 옵션 덕에 공간의 한쪽에는 작게나마 재배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었다.
시온은 여기에 한 가지 더 실험할 계획이 있었다. 여기에 희귀 약초 씨앗을 넣고 재배해보려고 했다. 물 대신 푸른 액체를 넣어서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볼 계획이었다.
거리를 나가 용병들이 다니는 상점에 갔다. 사람도 많고 가벼운 다툼도 있었다. 시온은 간단한 무장을 위해 금화를 썼다. 심장 같은 곳만 철판 때기로 간신히 가린 가죽 장비를 구했다.
검을 날카롭게 만들어 줄 도구도 구했고 돌아와서 개인적으로 갈고 정비를 할 것이었다. 시온이 빈자리에 급히 들어가는 형태라 원정에 끼어들어 가기만 하면 됐다.
출발은 곧 이었다. 시온은 돌아오자마자 칼을 꺼내 갈고 푸른 액을 복용하고 정수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씨앗을 사서 아공간 재배지에 심었다.
몇 개 자라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실험을 해보는 것이 주목적인지라 앞으로 좀 봐 둬야 했다. 그리고 마석에 있는 마나를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으로 빨아들이고 하루를 마쳤다.
ㆍㆍㆍ
출발 전까지 시온이 한 일은 대장서를 뻔질나게 다니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쓸 만한 마법을 확실하게 익히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낮은 고리의 마법들은 해당 고리를 연성하는 것이 중요해서 익히기에는 쉬운 편이었고 시온은 이미 사용할 줄 아는 상태였기에 무난하게 여러 가지 마법을 빠르게 익혔다.
어차피 무리에 섞여서 다된 사냥감에 마법을 날리는 일이라 그다지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정리된 시온이 가장 낮은 급의 용병 패와 수련 마법사 면허 패를 챙기고 황금 도끼 여관을 나섰다.
약속 장소는 도시 밖의 길이었다. 이미 사람이 꽤 있었다. 시온이 도착하자 이곳을 관리하는 자가 여러 가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몇몇은 토론을 하고 있었고 정비를 하는 자도 보수를 확인하거나 관리자에게 뭔가를 따지는 자도 있었다.
시온의 차례가 되어 시온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가 시온을 보고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법사라고요?”
“여깄습니다.”
시온이 패를 보여주자 그가 아, 하는 짧은소리를 냈다. 그는 이제야 시온이 누구인지를 알았다. 어르신이 추천한 인물이었던 거다. 사람을 제법 봐왔던 자도 시온을 다시 한 번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런 녀석도 있었네. 하기야, 이제 막 마법사가 되기는 했지만 몬스터 사냥에는 이런 녀석이 더 괜찮겠네.’
그는 시온의 실력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신입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신체 조건에 마법사라니 역시 어르신이 집어넣은 인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귀족이었다.
“혹시 추가로 더 잘하시는 부분이?”
“사냥에 관해 지식이 많습니다.”
“역시 어르신이네요. 이번 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느낌이 드네요. 보수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어르신이 따로 얘기하신 건가요?”
“네. 따로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아하.”
“그나저나 여기에 루시 도팽은 참가하지 않는 겁니까?”
“네. 루시 도팽 님은 다른 일이 있어서 거기에 가문 대리로 나갔습니다. 게다가 이번 일은 오와인 도팽 님이 전적으로 진행하는 일인지라······. 그런데 사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친구입니다.”
그가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시온을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르신이 추천한 인물에 루시 도팽과의 친우 사이라, 그렇다면 이번 일에 있어서 다른 일개 용병과 달리 조심히 다뤄야 할 인물이 되었다.
시온은 그의 표정을 보고 예상대로 조금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