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304)

다음 단계(2)

그리고 가장 중요해 보이는 두 명이 이내 걸어왔다. 한 명은 이 원정을 이끌 기사로 보이는 자였는데 온몸에 중무장을 한 자였다.

흔히들 시온을 기사라고들 많이 착각했지만,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사였다. 전쟁터에선 그야말로 인간 흉기이다. 입고 있는 갑옷도 값이 상당하지만 저건 한술 더 뜨는 갑옷이었다.

가장 무거운 흉부에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었다. 고대어로 적혀 있었는데 내용은 경량화 마법을 뜻했다. 저거 한 개를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기사의 격을 나누기도 했다.

마법사만이 많은 장비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기사 역시 그만한 장비가 필요했다. 남자의 옆에는 도팽 가문 사람다운 화려한 차림을 한 젊은이가 있었다.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은 없는지 여우 털과 비단이 섞인 겉옷과 가문 문장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 적갈색의 붉은 망토를 차고 있었다.

끼고 있는 반지나 안쪽에 보호대들은 하나하나 값이 상당한 마법 장비였다.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지만, 안전 장비로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 원정의 결과물이 저자인 오와인 도팽의 것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오와인은 루시 도팽과 상당히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와 기사는 무언가를 신나게 논의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직 기밀이라고 공개하지 않은 몬스터와 그 위치라든지 임금 문제 배치, 그런 것일 것 같았다. 시온이 봤을 땐 어지간하면 저기 있는 기사 혼자서 도륙을 낼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그의 무기는 갖춰진 중무장의 방어력을 믿은 투핸드소드였다. 검 자체도 어떤 마법이 메모라이즈 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알아볼 기회는 나중이 될 것 같았다.

방금 신분을 검사하던 자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는지 자리에서 벗어나서 시온에게 다가왔다.

발디는 시온이 도팽가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는 발디라고 합니다. 시온 마법사님.”

“시온 니벨룽입니다.”

“두 분과 알고 계십니까?”

“모릅니다. 저는 루시 도팽과 니콜라 도팽 두 분과 인연이 있습니다. 이번 일은 니콜라 도팽 님의 제안이 있어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시온은 이대로 인원이 출발할 때까지 가만히 있을 계획이었으나 남자는 시온의 입에서 니콜라 도팽이 나온 순간 중요 인물로 보고 있었다.

니콜라 도팽이 일이 바빠 참가를 했거나 언질을 뒀다면 이 정도까지 오해가 있진 않았겠지만 시온은 짧은 문답은 충분히 이들을 오해하게 만들만 했다.

“그럼 제가 소개해 드리지요. 어차피 알아두실 인물들이니까요.”

젊은 용병이자 수완이 좋아 보이는 발디는 시온의 몸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시온 보다 체력 단련이 된 사람은 없어 보였다.

시온의 건성으로 맞춘 장비는 오히려 장점으로 보였다. 시온의 경력이 사실이라면 시온은 마법사이면서 격렬한 전투가 가능한 전사이고 동시에 사냥꾼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정식 기사와 같은 중무장은 어울리지 않았다. 가죽으로 된 가벼운 장비가 적절했다.

시온은 거절하고 싶었으나 발디가 이미 가까이 간 탓에 자세를 바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중무장한 기사와 오와인이 시온을 바라보자 가서 인사를 해야 했다.

‘빨리 도망칠 것인데.’

시온은 속으로 뒤늦은 후회를 해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서 얘기를 나눠야 했다. 시온이 발디의 뒤를 밟자 발디가 말했다.

“이쪽은 이번 원정의 주인이신 오와인 도팽 님이시고 옆에 분은 칼리 경이십니다. 칼리 경은 용맹한 칼리라고도 불리십니다.”

“이쪽은···.”

“시온 니벨룽입니다. 이번에 참가한 마법사입니다.”

“마법사?!”

칼리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이런 체격의 마법사라니 본 적이 없었다.

“......”

“당연히 용병인 줄 알았소만. 어르신과 인연이 있으신 분이 맞지 않소?”

“맞습니다.”

“저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시온 니벨룽 경. 제 누나의 모임에 가셨지요. 저도 잠깐 그곳에 있었습니다. 에드바르 님이 제안하신 걸 거절하셨지요. 맞지 않나요?”

오와인이 시온을 알아보고는 말했다. 시온은 모르고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유명해져 있었다. 몇 가지 특이한 점과 마법사의 탑에서 나온 에드바르의 제안을 거절한 일로 마법사와 귀족들 사이에서 얘기가 돌은 것이다.

“맞습니다. 소개를 길게 들일 필요가 없겠군요. 제가 이번 일에 참가한 연유는 아마도 제 가문의 특징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징이요?”

“니벨룽 가문은 산맥 서남쪽 끝에 있습니다. 고로 제 가문은 몬스터와 짐승들에 대해서는 이골이 났지요. 저 역시 사냥에 대한 지식은 사냥꾼들에게 지지 않습니다.”

둘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마법사인데 사냥꾼 지식을 가진 자에다가 기사 수준의 체력을 가진 자라 이곳에서 꼭 써야 할 유능한 인재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ㆍㆍㆍ

산맥으로 들어가는 일은 오랜 시간을 소모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비교적 길이 나 있는 곳으로 목적지가 펼쳐져 있었고 삼일 정도 집중적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시온은 하늘을 보다가 불현듯 이번 일이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완전히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게 시온의 결론이었다.

어쨌든 시온은 지금까지의 행보를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처음 자유 도시에 도착했을 때의 빈털터리였던 시점과 마법사 시험에 대한 막막함, 각종 산재해 있던 일들이 떠올랐다.

결과는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오히려 기대 이상이었다. 그래서 그럴지도 몰랐다. 이번 일이 끝나게 된다면 마법사 장비만 벌써 네 개째가 된다.

도시를 옮기고 제국 용병관리소 승단 시험을 본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수준이라는 것. 굳이 에스테 시가 아닌 다른 도시를 생각해봐도 좋았다.

금화를 벌 수 있고 마법사 장비를 구할 수 있는 곳이나 마법서를 구한다거나 여러 가지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시온은 마법사로 분류되기에 꽤 널찍하고 편안한 수레 위에서 갈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다른 마법사도 있었다. 이번 일에 참가한 마법사들. 그중엔 여자 마법사도 있었다.

마법사는 기사와 달리 여자의 비율이 상당히 있는 편이었다.

나머지 마법사들과는 그다지 대화할 기회가 없었지만 그나마 여자가 호기심이 많은 탓에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일단은 여자 역시 시온과 같은 첫 번째 고리를 형성한 마법사였고 저기서 눈을 감고 마나를 수련하고 있는 남자가 고리가 세 개인 마법사였다.

장비도 제법 잘 갖춰 이번 일의 성사는 이 마법사와 칼리 경, 둘이 해내는 것이 이제 확실해진 지경. 게다가 아직 목표물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지만, 인원을 보아하니 오와인의 안전 때문에 과잉으로 투여되어 있었다.

시온의 생각은 맞아들었다.

‘숙영인가.’

앞에 있는 말들이 멈춰 나가자 시온은 이곳에서 자리를 잡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온 역시 수레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산맥이라고 해서 모든 곳을 시온이 다녀본 것은 아니었다. 워낙 거대하고 길쭉한 면이 있어서 시온이 잘 아는 지형은 이곳의 반대쪽이었다. 그러나 산맥이라는 것이 생긴 것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시온은 대충 이들이 노릴 만한 몬스터가 무엇인지 감이 왔다.

그것보다 이곳을 좀 둘러보고 살펴볼 생각이었다. 얻을 수 있는 식량이 있다면 좀 구해보고. 시온이 활과 화살을 챙기자 그나마 말을 나눴던 여자인 다린이 시온에게 말했다.

“어디 가세요?”

“주위를 좀 둘러볼까 해서.”

“둘러본다고요?”

“사냥꾼 자격이 있다.”

“?!”

여자가 깜짝 놀란 듯싶었다. 시온은 그래도 귀족이었고 보아하니 도팽 가와 친분이 있는 듯한데 사냥 같은 귀족이 갖추지 않는 능력이 있다고 하니 놀란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세 개의 고리를 연성한 마법사 파렐이 혀를 두르며 생각했다.

‘이상한 녀석이군. 얘기는 듣긴 했는데 생각보다 이상한 녀석이야. 이번 시험의 차석이고 묘하게 과거와 접점이 없단 말이지. 그런데도 루시 도팽과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고, 어르신이 강제로 여기에 집어넣을 정도면······.’

분명히 뭔가 있는 놈이었다. 원래라면 그는 시온의 행동을 통제할 생각이었지만 선 듯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시온이 사냥꾼으로서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진짜배기로 보였다.

애초에 저런 육체를 가진 마법사를 본 적이 그조차도 없던 것이다. 그가 봤을 때 시온의 마나는 이미 막 면허를 받은 합격자가 가질 수준이 아니었다. 복잡한 생각이 들고 있는 와중 시온이 자리를 떠나자 남은 자들이 수군거렸다.

“뭔가 전략적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파렐 님.”

“흠흠.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니 나중에 하지.”

ㆍㆍㆍ

시온이 자리를 비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미 칼리 경에게 말해둔 일이기도 했다. 사냥꾼으로서 자유롭게 탐색을 하겠다고. 실제로 이 원정은 용병 사냥꾼도 고용되어 있었다.

이들 몇은 이미 긴 거리를 나가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역시 아공간 반지에 있는 것들을 확인하고 정비하고 마나를 쌓기 위해서였다.

시험 중인 약초를 길러보는 것에 대한 것과 푸른 액의 복용 그리고 아직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두 가지 정수의 잔여 마나들.

그런 시온의 기감에 사슴 한 마리가 보였다. 시온이 짧게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냥 운이 좋았다. 마법을 써볼까 하다가 그냥 활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화살로 사슴을 사냥했다. 그리고 복귀했다.

“뭐야.”

“진짜였네.”

“활로 잡았잖아.”

구석에 있던 칼리 경도 시온이 사슴 하나를 잡아오자 재밌다는 듯이 봤다. 시온은 적당한 곳에 사슴을 놓고 예리한 단검으로 빠르게 도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솜씨가 빠르고 정확했다. 칼리가 옆에 있던 용병에게 말했다.

“저거 잘하는 거 맞느냐?”

“굉장한 솜씨인데요. 우리 애들보다 낫습니다. 저분 귀족 아니셨습니까?”

“나도 그렇게 듣긴 했다.”

오와인도 천을 걷고 나오더니 시온을 보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저자에게 맡기지. 사냥감의 해체에 저자보다 적임인 자가 없어 보이는군.”

마법사와 사냥꾼의 조합이라니 같은 도축 작업이라도 신뢰가 확 생기는 조합이었다. 몬스터는 다양한 재료로 활용되었다.

사냥감으로 잡고 있는 몬스터의 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재료로 활용되는 것이 많았다. 피부부터, 힘줄, 뼈, 살코기를 특정한 방식으로 보관해 식용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팔 수도 있었고 신체 일부는 정력에 좋다 해서 잘 팔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몬스터에게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몬스터의 핵이었다. 이것을 손상 없이 잘 꺼내야 훌륭한 도축기술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위치가 부근에 있을 뿐 정확하지가 않아 이런 세심한 부분에서 실력이 갈리게 된다.

오와인이 말한 것은 지금 그 작업을 시온에게 맡기자는 얘기였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도련님. 아무래도 어르신께서 일부러 집어넣은 이유가 이제야 드러나는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