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계(3)
시온이 잡아온 고기는 요긴하게 쓰였다. 아무리 도팽 가문이라고 해도 이런 일에 식량을 맛있는 등급 위주로 보급해놓지는 않았다. 먹을 수 있는 식량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건조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조금 맛을 낸다고 향신료를 처박아 대는 수준이었다.
특히 스튜가 최악인 편이었는데 말리고 덩어리가 된 정체불명의 것을 넣어 펄펄 끓인 뒤 억지의 억지로 먹는 수준이었다.
시온도 먹고 잠시 올라오려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적이 없다면 모를까 현대인인 시온에게 있어서 가혹한 음식이었다.
어쨌든 시온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에게 있어서 힘들었고 오와인 도팽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시온의 숙영 거처는 오와인 옆이었다.
“시온 경.”
“말씀하실 거라도?”
“사냥은 어디서 배운 것이지.”
“니벨룽 가문은 척박한 곳에 있어서 저뿐만 아니라 가문의 남자라면 어느 정도는 다 할 줄 압니다.”
거의 거짓말이었다. 사냥을 이 정도로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시온 밖에는 없었다. 생존에 연관된 기술에 차등을 두기엔 시온은 현대인이었으니까.
“그렇군.”
칼리 경이 감탄한 얼굴이 됐다.
‘니벨룽 가문이라면 아마도 기사 가문일 것인데 가문의 체면이 깎인다고 해도 자식들에게 이런 것을 가르친단 말인가.’
칼리는 그나마 생각이 좀 트인 사람인지라 시온의 가문의 자세가 기사답다고 생각을 했다.
“혹시 기사 서임을 받았나?”
그가 탐이 난다는 듯이 시온에게 말했다.
“아니요. 제 가문에서는 장자밖에는 받지 않습니다.”
가난한 가문인 탓이었다. 기사 서임을 받는 데에도 돈이 들었고 그 기사의 장비나 교육에도 많은 돈이 들었다. 결국은 돈 문제이니 허울 좋은 여러 명을 만들 바에 그냥 한 명에게 집중하는 게 나았다.
“내가 봤을 때 자네는 기사로서 훌륭한 인재야. 내가 아는 사람을 소개해줄 터이니 그곳에서 종자를 해보는 게 어떤가?”
칼리는 시온이 분명 기사의 뜻이 남아있기에 육체를 극도로 단련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기사라는 것도 하나의 평판 제였고 누구를 추천해주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었다.
추천이 들어간 순간 명예가 달려있고 잘 될지 안 될지에 따라서 앞으로의 영향력이 결정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칼리가 생면부지의 시온에게 대뜸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그냥 감정이 따른 충동적인 일은 아니었다.
시온의 기사급의 단련된 육체와 사냥꾼으로서의 솜씨 이 둘에 미루어 전투 능력을 엿본 것이다. 게다가 그는 시온이 니콜라 도팽의 후원을 받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
시온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가? 어쩔 수 없지. 나도 아쉬워서 해본 말이야. 그건 그렇고 멀리 나가 있는 사냥꾼들이 다 모이면 오와인 님이 자네에게 선임 사냥꾼 직책을 줄 걸세.”
ㆍㆍㆍ
다음 날 시온은 물가 앞에 서 있었다. 어제 쌓아둔 임시 돌과 나무에 물고기들이 갇힌 것이다. 물고기를 잡는 간단한 사냥 방법의 하나였다.
“뭐하는 거지?”
“물고기 잡을까 본데. 도와주자.”
어제 사슴 고기로 용병은 시온의 일이라면 이제 적극적이었다. 시온이 사냥한 음식을 조달해 먹는 건 크게 다가왔다. 흔히 그렇듯 용병들의 임금에 빠듯해 식량의 질 뿐만이 아니라 양도 어설프게 되어 있었다.
용병뿐만이 아니라 같이 온 다섯 명의 마법사도 신기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가장 높은 단계의 마법사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법사답게 행동을 해야지. 대체 뭐하는 녀석인가.”
그는 시온이 하는 행동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참고 있는 것은 시온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법사 역할만 수행하러 이곳에 합류한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뒷배가 있다고 건방진 녀석. 다른 사람이 있다면 따로 불러서 혹독하게 교육했을 것인데. 이래서 젊은 합격자들은, 쯧.’
그런데 곧 기절초풍할 일이 생긴다. 시온이 다가오는 용병에게 오지 말라고 말한 뒤 손을 살짝 물에 넣고 마나를 모은 것이다.
“?!”
용병도 마법사도 간단한 검술을 연습하고 있던 칼리 경도 모두 시온이 뭘 하려는 지 알게 되었다. 마법을 쓰려는 것.
첫 번째 고리에 어울릴 만한 가장 간단한 전격이 형성되어 물가에 뿌려졌다. 충격을 받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오른 것은 곳이었다.
“담자.”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용병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물고기를 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마법사들이 경악에 찼다. 안 그래도 불만이 있던 그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였다.
마법사라는 것은 그런 족속이었다. 하나의 문을 통과한 자들은 특권 의식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오랫동안 이들은 또 다른 계급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는 마법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격이 높은 것이고 또 그렇게 가르쳐 왔다.
마법사라는 신분으로 사냥을 즐기는 건 그럴 수 있지만 몬스터나 영수, 마수가 아닌 것에 마법을 쓰는 건 격이 떨어지는 일로 간주해 하지 않았다.
마법으로 물고기나 잡았는데 사람이 이렇게 모인 곳이라니 이런 사실이 몸에 배어 있는 마법사들이 시온을 황당하게 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뭐라고 한마디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건 따끔하게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시온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던 남자 마법사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물고기를 쓸어담고 용병들이 노래까지 부르고 있는 상황.
무슨 일인가 해서 오와인 까지 나와서 시온을 칭찬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쯤 되면 도팽가의 뒷배가 있는 것이 확실한데 시온에게 훈계를 하라니 고작 고리 세 개인 마법사 주제에 말이다. 아무리 이곳의 선배 마법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그러면 네가 해.”
“예?”
“니가 하라고.”
“그건······.”
“너도 못하겠냐? 너도 쟤 앞에서는 선배 아니야.”
“맞습니다만······. 제가 말하기에는 단계가 같아서······.”
“그럼 네가 나와 같은 단계면 그러면 할 생각이냐?”
“그러지···. 않을까요? 물고기 잡는 데에 마법을 쓰는 짓은······.”
“멍청아. 그러니까 네가 만년 거기인 거야.”
“?”
“벌써 십 년째 고리가 하나 아니냐고.”
“맞습니다만.”
“고리가 하나면 눈치라도 좋아야지. 저 녀석 방금 마법 쓰는 강도를 봐라. 저게 고리 하나짜리인 것 같아?”
모욕을 당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도 가만히 보니 시온의 마법이 이미 고리 일 단계의 마지막쯤에 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으로 봤을 때 지나치게 빠른 속도였다.
“설마 그 정도로 재능이?”
“어휴. 저 몸을 봐라 하루에 얼마의 시간을 투자해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내가 봤을 땐 온종일이다. 그런데도 저 정도의 마나 보유? 뻔한 거지. 정수를 먹은 거야.”
“아? 역시 귀족인가요. 니벨룽 가문에서 지원을 받은 거군요.”
“아니지! 니벨룽 가문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가문이었으면 너나 나나 알고 있어야 정상이고, 그렇다는 건 뻔한 거지.”
“....?”
“도팽 가의 후원을 받는 거야. 것도 혈계의 인물한테서.”
“그렇군요.”
“그런데 나한테 지금 쟤한테 교육하라고? 앞으로 일 안 할 거야?”
“아, 그런···.”
“좀 배워. 그래야 운이 좋으면 딸리는 단계로 자리라도 하나 해먹지. 지금부터 말해둔다. 쟤는 이제 우리 논외의 사람이야. 그리고 나보다 깎듯이 대우해. 나도 그렇게 할 거니까. 알았어?”
“알겠습니다.”
시온이 다가오자 가장 먼저 가서 수고했다고 말을 꺼낸다. 그러자 너도나도 가릴 것 없이 시온에게 와서 칭찬하기에 바빴다.
“?”
시온은 얼마 전까지 냉랭한 녀석들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전격계가 능숙해졌는데.’
시온이 이런 일을 벌인 이유, 사냥하겠다는 일념보다는 여러 마법을 동시에 배워 나가고 있는 시온이 한 번이라도 확실한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ㆍㆍㆍ
며칠이 흐르고 일행은 목표하던 장소에 도착했다. 삼 일 전부터 강가를 벗어나 정상적이지 않은 길을 쭉 올라온 탓에 모두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온은 지금 이곳이 생각보다 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힘든 이유는 역시 가지고 있는 무장 때문이었다. 좀 더 가볍게 무장을 해야 이런 곳을 잘 돌파할 수가 있었다.
아니면 굉장한 체력을 가지고 있던가, 시온은 두 가지 다 해당이 됐다. 푸른 액의 복용으로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육체의 체력이 점점 상승하고 있었고 복장 자체도 경무장 상태였다.
마법사는 원래 경무장이긴 했다. 이곳이 중세이지만 아예 상식밖에 복장은 없는 것이 마법사들이라고 해서 로브를 입고 이런 곳을 전전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의 복장도 기본이 경무장이었다. 여기에 특수 보석이 달리거나 여러 마법이 있는 장비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것이다. 로브 같은 것은 비전투 인원이 입는 복장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가던 도중 널찍한 공터가 나왔다. 이곳이 목표로 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가 갑자기 시온에게 쏜살같이 달려왔다.
“시온님. 그게, 일이 좀 잘못됐습니다.”
서른 후반의 남자는 전형적인 사냥꾼 용병다운 차림이었다. 직접 도축해 만들어 입은 여러 가죽으로 몸을 덧대고 짧은 검과 각궁은 그가 좋은 사냥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어떻게 된 것이지.”
원래 이 남자가 선임 사냥꾼이었다. 그런데 칼리 경이 대뜸 이자의 직책을 뺏어 시온에게 넘겨버린 탓에 시온이 이 사냥꾼의 보고를 직접 받게 되었다.
무시하고 직접 올릴 법도 하건만 사냥꾼의 눈치도 보통이 아닌지라 시온을 무시했다간 큰 꼴이 날 것이라는 직감이 든 것이다. 물론 모두 오해였다.
시온의 솔직한 마음엔 좀 알아서 좀 했으면 하는데 자꾸 의견을 물어보거나 보고를 자기에게 하는 바람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프 오우거가 거처를 옮긴 것 같습니다.”
시온이 이마를 찌푸렸다. 오와인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하프 오우거를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하프 오우거는 이미 상단 하나를 습격해 열 명을 살해한 몬스터였다.
거처를 옮긴 것이 되면 찾아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것이 거처를 옮겼는지 알 수가 없는 마당인지라 이런 일은 정말로 추적술이 필요했다.
못 찾게 된다면 이 고생을 하고서 니콜라 도팽의 보상을 받지 못하니 시온으로서도 민감한 문제다. 하지만 시온도 추적술에는 지식과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단순한 몬스터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지금까지의 일이 수탈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한 기분일 수도 있지만 시온은 이번 일이 하프 오우거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빙점을 확실히 연습해봐야겠군.’
시온이 받은 마법 장비 중 하나인 빙점. 한 번밖에 소용이 없지만 시온이 쓸 수 없는 빙결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연습을 따로 해두진 않았다. 이미지 연습이라도 해둬야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일단 사냥꾼 다 불러라.”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그가 휘파람을 높게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