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304)

다음 단계(4)

하프 오우거는 거인족 계열의 하위 종이었다. 오우거 치고는 작은 녀석이었다. 그렇다고 전투 능력이 확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하프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고 해도 인간보다 작다는 뜻은 아니었다.

시온은 하프 오우거의 거처였던 동굴을 봤다. 동굴은 얼마 전까지 존재했을 몬스터의 냄새로 진동했다. 피 냄새까지 복잡한 것이 무언가를 먹어댄 것은 분명했다.

‘꼭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시온이 현대인이었던 시절 피 냄새를 맡아볼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고기를 사더라도 포장된 것을 사다가 그저 먹을 만큼만 구워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고 있었던 것의 냄새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구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것들이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중세에서는 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명 피해가 쉽게 발생한다. 그것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면 그것의 먹이라든지 얼마든지 넘쳐나는 것이다.

“벅, 안에 뭔가 있나?”

“없습니다!”

한 번 보고를 받았으니 안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거기에 벅이 들어가서 확인을 했다. 시온은 밖에 걸려 있는 하프 오우거의 영역 표시를 확인했다.

어설프게나마 거대한 돌덩이 같은 것을 작은 피라미드로 쌓아 놓은 것이다. 시온은 이것이 거인족의 특징임을 알았다.

‘하프 오우거인 것은 확실한데 이제 이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가 문제군.’

몬스터가 거취를 이동하는 건 지극히 간단한 이유가 있었다. 아마도 이 동굴 안에 자리 잡고 있었을 어떤 마나를 함유한 무엇 때문일 것이었다.

그것은 약초 일 수도 있고 액체 형태일 수도 있고 암석 형태일 수도 있고 영수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것이 이제 이곳에서 없어졌다는 것일 것이다.

없어졌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지극히 간단한 논리였다. 안쪽에 쓸만한 것이 있을까? 있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하프 오우거의 현상금이 걸리기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

피해가 발생한 상단의 사체에 남은 물건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잘만하면 마법사가 있을 것이고 마법사는 아공간 액세서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니 분명히 얻을 것이 있었다.

그러나 영 내키지 않았다. 악취 나는 곳에서 더러운 것이나 보면서 보물찾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선임 사냥꾼이라는 직책을 맡게 됐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칼리 경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문제 해결을 봐 두는 편이 좋았다.

나중에 일이 끝나고 보상에 생색을 내서 좀 더 받을 수 있을 거니까.

“저기 있군.”

사냥꾼들이 영 찾지 못하던 발자국의 흔적을 시온이 찾아냈다. 발자국이 워낙 많아서 방향 자체를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아마 내버려 뒀으면 온종일 걸렸을지도 몰랐다.

시온이 사냥꾼들이 찾아내지 못한 발자국을 찾아낸 이유는 간단했다. 시온이 이곳에 와서 받은 몇 개 없는 혜택 중 하나인 마나에 민감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벅, 이리 와 봐라.”

“예. 시온 님.”

안에 들어갔다가 횃불을 들고나온 원래 선임 사냥꾼이었던 벅이 시온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새벽부터 이곳에 와있었으니 하프 오우거가 어디에 갔는지 감을 못 잡는 상황.

시온이 구석으로 이어져 있는 발자국들을 가리켰다.

“내 생각에는 저거다.”

“아?”

“저것이 가장 마나가 생생하다.”

마나를 좋아하는 몬스터들은 그에 걸맞게 마나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시온이 골라낸 것은 가장 마나가 진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그새 무슨 마법이라도 쓰신 건가? 맙소사 맞아 보이는군.’

벅이 단번에 답을 맞혀버린 시온의 속도에 놀랐다. 시온이 가리킨 곳에는 이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돌덩어리 너머로 나뭇가지가 부서지듯 꺾여 있었다.

발자국의 깊이가 하프 오우거였다. 대략 크기는 삼 미터가 안 돼 보였다.

ㆍㆍㆍ

원정대가 합류하고 이제 더욱 빠르게 속도를 올렸다. 더 깊어져 가는 여정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원래라면 대형 덫을 놓았어야 했는데.’

하프 오우거를 가둘 수 있을 만한 대형 덫을 만들고 유인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동해버린 탓에 찾아내는데 시간을 다 쓰고 있었고 재수가 없으면 그대로 우연히 만나버릴 수도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던 것이 이것 때문인가?’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일 것이었다. 어차피 시온의 생각에 칼리 경이 알아서 처리할 것 같았다. 그 정도의 무력이 있어 보였다.

“시온님. 아무래도 사냥감을 찾은 것 같습니다.”

벅이 신호를 받더니 시온에게 곧장 보고했다.

“찾았다고?”

“예. 가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이 징표는···.”

“얽혀있군. 그렇다면 하프 오우거가 사냥 중이라는 건가?”

“이 표식을 아십니까?”

“나도 사냥꾼의 지식이 있다고 했을 텐데, 그게 빈말인 줄 알았나?”

“아. 아닙니다.”

전투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뜻은 세 가지 중의 하나였다. 하프 오우거가 사냥 중이리던가, 아니면 전투를 하고 있다던가, 그도 아니면 사냥당하는 중이었다.

‘마지막 것은 좀 아니긴 하지.’

방향을 알게 되자 보고받은 방향으로 목표를 좁혔다. 생각보다 가까운 위치인 모양이었다. 소리가 생생하게 나고 있었으니까. 칼리 경이 용병들의 대열을 준비하라고 소리쳤다.

이제 진짜 일을 할 시간이었다. 다 죽어가던 오와인 도팽의 얼굴이 생생해졌다.

오와인은 나이가 적은 시온이 지친 기색도 없이 선임 사냥꾼의 역할을 해내자 연신 감탄 중이었다. 루시가 염두에 두고 있을 만한 사람이 맞긴 맞는다고. 첫인상이 귀족 같지가 않아서 은연중 무시하고 있었다.

어쨌든 노출되기까지는 이제 얼마 나지도 않은 것이 나무가 부서져서 기울어지는 것이 보였다. 칼리 경이 대뜸 나와서 말했다. 그의 별칭처럼 그의 체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다고는 하나 완전 무장상태로 이 같은 험지를 돌파한다는 것은 보통이 아니다. 도팽 가문의 리스크를 줄여 줄 수 있을 만한 인재인 셈.

그는 별로 지쳐 보이지도 않았고 이어서 시온에게 말했다.

“훌륭하다. 시온 경. 여기서부터는 내가 지휘를 하지.”

“돌발상황인지라 덫을 놓는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요.”

“덫? 그런 건 필요가 없다.”

“?”

“기사에게 덫은 수치지. 특히 이런 일에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네. 배워두게! 하프 오우거의 대가리를 내가 어떻게 떨어트리는지.”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지만, 수치는 무슨 수치인가, 말하는 꼴을 봐서 그냥 돌격해버릴 생각인 모양인데 그럼 대체 마법사를 왜 데려왔고 이 인원을 데려왔는가.

같이 돌격하는 용병 놈들은 분명히 죽는 놈이 나오긴 할 것이다. 벅이 눈치를 본다. 사냥꾼 놈들은 이야깃거리나 전공보다는 목숨이 우선인 놈들이었다.

선임 사냥꾼 직책이 나에게 들어왔으니 일단은 오와인 명령하기 전에는 시온의 명령이 칼리 경보다도 우선이었다. 중세의 명령 체계답게 오와인 도팽이 가지고 있는 명령권을 시온이 대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희는 그냥 대기하고 있어라. 주변이나 잘 관찰하고 뭐가 다가오거나 저쪽쯤에, 활 들고 대기하고 있어. 함부로 쏘지 마라. 괜히 같은 편이나 칼리 경을 건드렸다간 목이 떨어질 거다.”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사냥꾼은 이번 일을 잘해낸다고 해서 기사가 되지 못한다. 임금도 받은 거에서 더 받아내지는 못한다. 사냥꾼은 용병보다도 흔한 탓이다.

시온의 답변에 역시 전략적으로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지 벅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알겠습니다. 애들아, 둥글게 돌아서 움직여.”

기사라는 것이 그랬다. 칼리 경 같은 경우는 사냥꾼이 자신에게 화살을 쐈다고 해서 목을 날려 버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기사는 오히려 트집을 잡아 본보기를 보여준다고 그런 짓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칼리 경이 그냥 우르르 몰려가는 형태였으므로 같이 따라온 마법사들은 기러기 같은 모양새가 됐다. 그런데 애초에 이 정도의 인원은 하프 오우거를 잡아내기에 너무 많았다.

그저 오와인 도팽이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봐 최대한 붙여놓은 것이지 정말로 효율을 생각해서 붙여놓은 것은 아니었다.

하프 오우거 거처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친절해진 이 마법사들은 이곳에 오면서 이동하는 데에만 기진맥진해졌고 어느새 시온이 우두머리 같은 것이 되어서 따로 명령하는 형태가 되어 있었다.

“오와인 님한테 물어보고 대답 없으면 선배가 하세요.”

시온이 이렇게 말을 해줘야 했다. 오와인은 아직 비슷한 대열에 있었다. 오와인은 아마 결정타를 날려야 할 때 저곳을 갈 것이었다.

이 전공이 오와인에게 가야 했으니까. 시온은 이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기 위해서 앞으로 내달렸다.

약간 언덕진 지형 덕분에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예상대로 그곳에 목표로 하고 있던 하프 오우거와 흰색의 어떤 것이 전투 중이었다.

“?!”

시온은 그것을 보자마자 낯선 흰색의 것이 영수라는 것을 알았다. 몬스터와 영수 둘 다 마나가 담긴 약초를 좋아해 이렇게 서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시온은 이 난잡한 상황에서도 도대체 저것들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저 끝에 고농도의 마나가 담긴 거대한 풀이 솟아 있었다.

‘저거군. 세 뿌리인가?’

세 뿌리 아니면 네 뿌리일지도 몰랐다. 정확한 건 가서 봐야 했다. 아무도 저거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마법사들도 당장 벌어지고 있는 개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잘만 하면 한두 뿌리는 슬쩍 할 수 있을지도?

“맙소사. 흰색의 켄리스!”

“켄리스?”

“희귀 영수입니다.”

벅이 영수를 알아보고는 시온에게 말했다. 오와인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저건?”

“영수 켄리스입니다. 아무래도 하프 오우거와 서로 사냥 중인 것 같습니다.”

“켄리스?!”

오와인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하프 오우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보상이 돌아왔다. 영수가 가지고 있는 영핵은 둘째치고 가죽만 벗겨다가 옷을 만들어도 오랫동안 명성을 빛낼 것이었다.

다만 켄리스는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온이 보기에 하프 오우거는 일방적으로 사냥당하는 도중이었다. 애매해 보이지만 상처를 입은 것은 하프 오우거뿐이었다. 이대로라면 결말은 뻔했다.

‘하프 오우거의 사체, 핵, 마나 약초, 그리고 희귀 영수인가.’

시온은 저것을 멋있게 잡게 돼서 남게 되는 이야깃거리 같은 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저것들을 잡게 되면 저 중에 하나를 배분받을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흥분한 것은 오와인 뿐만이 아니었다. 칼리 경과 용병들이 사태를 보자마자 용감하게 짧은소리를 내지르고는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선두에는 칼리 경이 있었다. 풀 무장한 칼리 경의 달리기는 별칭인 용맹한, 이라는 단어가 왜 붙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줄 만큼 강렬했다.

‘뇌를 비우고 달리는군. 대열도 엉망이고 구호까지 외쳤으니 대처할 시간까지 준 셈이지.’

그리고 삽시간에 이들이 얽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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