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계(5)
하프 오우거의 공격 방법은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거인족 자체가 특수한 마나를 일으키거나 마법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피부가 질기고 힘이 센 것이다.
선호하는 건 두꺼운 나무 덩어리나 쇳덩이였다. 쇳덩이를 들고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들고 있다면 인명 피해를 각오해야 했다.
오우거 종류는 대개 멍청하지만 가끔은 협박을 해서 무기를 받아내는 녀석들도 있었다. 인간형 몬스터 몇몇은 어설프게나마 인간의 말을 흉내 낼 줄 알았다.
어쨌든 이 하프 오우거는 그런 우두머리급은 아니었다. 들고 있는 건 나무 둥치였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부상도 심해지고 있었다. 허리 옆의 살이 한 움큼이 베어져 있었다.
녹색의 피가 물컹물컹 흘러나왔다. 몬스터는 붉은색의 핏물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없었다. 갖가지 색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흔한 것은 녹색과 푸른색이었다.
‘사냥 자체는 쉽게 끝날 것 같은데. 영수는 거의 다친 곳이 없군.’
시온은 영수의 외관을 보았다. 육식 형 동물이었지만 고라니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빨이 날카롭고 마나가 넘실거리는 것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뭘까? 아직 거기에 대한 감이 오지는 않았다. 영수는 몬스터에 비해 영리한 편이고 간단한 마법부터 고위 영수라면 고위 마법을 쓸 수도 있었다.
켄리스가 희귀종이긴 하나 그 정도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 정도 고위 마법을 쓸 수 있는 영수라면 하프 오우거는 진작에 영수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영수가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칼리 경과 용병이 돌격하는 모습을 보고 영리하게 내뺀 것이다. 특히 칼리 경을 경계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칼리 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프 오우거를 향해 돌진했다.
‘어떻게 보면 대단하긴 하네.’
시온의 생각에 현대에서 가끔 보곤 하던 고속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가 생각이 났다. 트럭이 있는데도 그냥 앞질러버리는 그런 무모함.
그러나 오토바이 형태의 트럭 같은 느낌으로 칼리 경과 하프 오우거가 충돌했다. 칼리 경의 무기는 투핸드소드였고 시온은 이제야 저기에 걸려 있는 마법을 알았다.
염력 마법이 걸려 있던 것이다. 발동 원리는 모르겠지만, 무게를 증폭시켜서 때리는 것 같았다.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니기에 중무장 상태에서 저것을 휘두르는 것은 칼리의 온전한 실력일 것이었다.
“아아악!”
칼리 경의 전투에 눈이 팔린 사이 첫 번째 부상자가 나왔다. 용병이 피를 흩뿌리며 물렸다가 뜯겨나가듯이 날아갔다.
시온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내버려둔다면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의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아마도 이제 용병 일을 제대로 구하기 힘들 것이었다.
‘어리석은 돌진이었어.’
게다가 명확한 명령도 내리지 않아 하프 오우거를 공격해야 할지 영수를 공격해야 할지 정하지도 않았다. 이야깃거리를 만들겠다며 칼리는 거기에 취해서 지금 하프 오우거와 일기토에 가까운 일격을 교환하고 있었다.
용병은 긴 무기로 뒤나 옆을 신속하게 노린다. 그러나 하프 오우거도 만만한 편은 아니었다. 시온은 애초에 이 인원이 전부 생존한 상태로 이 임무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프 오우거의 몽둥이가 순간 붉게 물들었다! 용병 세 명이 풀 스윙에 맞아 공중으로 흩날렸다. 늑골은 맞은 녀석은 즉사였고 다른 하나는 뼈마디가 박살이 났는지 일어나지를 못했다.
“도와줘!!”
자기의 창이 허벅지가 뚫린 용병이 이리저리 소리를 쳐댔다. 하지만 당한 자만 운이 없을 뿐이었다. 예비 인력은 넉넉했고 상처를 입은 자들은 뒤로 빠진다.
홍일점인 여 마법사가 드디어 활약할 시간이었다. 두 번째 고리의 마법사와 짝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의 역할은 긴급치료였다.
“이 개새끼야 뒤져!”
칼리 경이 잔뜩 흥분했는지 온갖 욕설을 섞어대며 하프 오우거를 공격했다. 평소에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나름의 숨겨진 이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시온은 슬슬 움직일 시간이 왔다는 걸 알았다. 칼리 경의 어리석은 돌진 덕에 마법사들이 공격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석궁을 들고 있는 용병도 애매하게 견제 자세로 있거나 영수에게 한두 발을 쏠 뿐이었다.
석궁을 들고 있는 용병은 거의 대기였다. 워낙에 장전 시간이 길어서 허투루 날렸다가는 중요할 때 못 날리게 될 것이고 그랬다가는 큰 질책을 받을 것이었다.
‘일단 저 약초 뿌리를 다 챙겨야겠군.’
선임 사냥꾼의 역할이란 것이 무엇이겠는가 시온은 그곳으로 내달렸다. 시온이 생각하기에도 푸른 액을 지속해서 복용한 신체는 옛날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근력을 갖추게 했다.
그건 비단 힘겨루기뿐만이 아니라 달리기조차 그랬다. 경무장인 덕택에 몸은 가벼웠고 하프 오우거와 영수가 거리를 벌린 탓에 노출된 풀뿌리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고농도의 마나를 담고 있는 약초는 흔히 사람을 취하게 하는 향기가 심하게 났다. 이 냄새는 몬스터를 미치게 한다. 시온은 일단 풀뿌리를 낚아채기 전에 영수부터 확인했다.
용병 녀석들을 믿다가 영수의 공격에 속절없이 노출될 수도 있는 법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하프 오우거는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영수는 시온이 하려는 것을 보고 이빨을 드러냈다.
“벅, 화살을 날려!”
벅을 아까부터 이런 비슷한 상황을 대비시키기 위해 대기시키고 있었다. 사냥꾼의 화살은 생각보다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영수는 마음을 바꿔서 사냥꾼들을 사냥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그쪽으로 움직였다.
‘아 이런. 내 실수인가?’
비명이 터진 것으로 보아 영수에게 당한 듯싶었다. 그러나 도의적인 것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이 가치 있는 것들을 일단은 챙겨야 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용병이나 사냥꾼이나 기사나 병사나 모두 계약으로 묶여 있고 이런 위험에 대한 수당을 받으니 재수가 없으면 터지는 그런 것이다.
약초를 캐는 데에는 도구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시온은 그런 도구를 갖출 수가 없었다. 다만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었다. 시온의 마나 감지력은 수준급인지라 마나가 잘 걸쳐 있는 통째로 뜯어낼 수 있었다.
급한 대로 검을 박아서 흙을 파버렸다. 옆에 기사가 있었으면 대경실색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유일한 기사는 지금 하프 오우거에게 열띤 욕설을 내뱉는 중이었다.
‘네 뿌리인가.’
세 뿌리로 봤는데 작은 거 하나가 더 숨어 있었다. 시온은 그것을 모두 들어낸 다음, 아공간 반지에 집어넣었다. 아공간 반지에 사라져 가는 약초 때문인지 저 멀리서 영수가 전력으로 달려왔다.
빙점을 써버릴까 싶다가 꾹 참고 시온이 몸을 날렸다. 얼마짜리인데 이렇게 쉽게 날릴 수 없었다.
그때 화살 한 개가 영수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정통이었는지 꽥하고 비명을 질렀다.
‘됐다. 잘만 하면 마법을 먹일 수 있겠어.’
아무래도 마법이라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마법을 형성해야 하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는데 칼리 경이 하프 오우거의 대가리를 쪼개 버리는 데 성공했다.
“내 영광을 위해 뒤져! 뒤져!”
“저기, 칼리 경. 이미 죽은 것 같습니다······.”
하프 오우거의 대가리가 함몰되어 바닥에 퍼져 있었다.
“아 이런.”
큰 실수였다. 숨통을 남겨놨어야 했는데 여러 차례 내려친 까닭에 하프 오우거가 즉사해버린 것이다. 원래라면 오와인이 와서 마무리해야 했다. 그것도 모르고 오와인이 흥분해서 한걸음에 내달려왔다.
“이제 내가 공격하면 되는가?”
“죄송합니다. 제가 모르고 숨통을 끊어버렸습니다.”
“뭣?”
오와인이 화를 내기도 전에 영수가 눈치를 채고 내빼기 시작했다. 이곳을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다리에 맞았다. 그렇다는 건 추적할 수 있고. 하프 오우거 따위보다는 저 영수가 가치가 높지.’
거인족의 핵보다야 영수의 핵이 훨씬 가치가 높았다. 그러니 이들의 방향을 빠르게 되짚어 줘야 했다. 시온이 말했다.
“켄리스의 숨통을 끊으면 되지 않습니까! 다리를 맞췄으니 멀리 못 갈 겁니다. 빨리 쫓아야 합니다!”
“그거 현명한 답변이군. 시온.”
그래서 빠른 추격전이 다시 시작됐다. 모두 그렇게 영수를 쫓아갈 때 시온은 하프 오우거의 사체 앞에서 신속하게 단검을 꺼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핵이라도 챙겨두자.’
재수가 없으면 이곳에 배회하는 들짐승이나 몬스터에게 핵이 먹혀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당연히 이것을 지키는 사람도 둬야 했지만 시온은 미리미리 해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엇, 지금 시작하실 겁니까?”
“그렇다. 아무래도 선임 사냥꾼인 내가 확실히 보관해 두는 편이 좋겠지. 이대로 추격이 길어지게 되면 핵은 손실이 온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지만 시온도 잘은 몰랐다. 그러나 마법사인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벅이 동의했다. 시온이 재빠르게 단검을 꺼내 사체 심장 부근에 숨어 있는 핵의 위치를 감지하려고 노력했다.
숨어 있고 손상도 쉽게 되고 작아서 신중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시온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단번에 거인족의 핵을 꺼내자 사냥꾼이 놀라서 감탄했다.
“아니,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그래서 챙기고 간다고 한 거다. 온종일 있었을까 봐?”
“보통은 삼십 분은 걸립니다.”
그것도 숙련된 자에 한해서나 그랬지 경험이 적은 자라면 한참은 오래 걸렸다. 거의 달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경지였다.
그러나 이렇게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사냥감을 놓칠세라 이미 정신없이 쫓아가고 있는 칼리 경과 오와인의 뒤를 바짝 붙어 보조를 해줘야 했다.
ㆍㆍㆍ
시온의 예감이 맞게도 낯선 무리가 거꾸로 오와인과 칼리의 동선을 쫓아오고 있었다. 마찬가지의 무장병력이었고 수도 훨씬 많고 질도 높았다.
“이 녀석들은 왜 이렇게 이동이 빠른 거야.”
“더 빨리 움직여야겠다! 사냥감을 쫓고 있는 모양이다! 정신 바짝 차려라. 이번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오와인을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그들의 깃발이 허공에 펄럭였다. 사자기였다. 왕의 깃발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자유도시는 왕의 관할이 아니었다.
ㆍㆍㆍ
영수는 결국 따라잡혔다. 다리에 상처를 입은 것이 크게 작용을 한 것이다. 안 그래도 하프 오우거와 전투 중에 피로도가 쌓인 상태에서 중요 근육에 화살을 맞은 게 문제였다. 거기엔 독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형태의 영수에게는 하프 오우거와 같은 강한 피부 질량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일은 정말 간단히 진행되었다. 칼리 경이 냅다 공격해서 치명상을 입혔고 거기에 오와인이 가서 숨통을 끊었다.
일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영수 사냥이 끝난 것이다. 시온이 재빠르게 영수에게로 갔다.
“드디어 성년식을 제대로 치르게 됐어!”
“축하합니다.”
“켄리스의 사체는 이곳에서 분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온이 말하자 칼리 경이 곧바로 동의했다.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시온은 흔쾌히 답했다. 이미 마법서 서적으로 공부해 둔 것이 있었다. 이런 형태는 분류하는 것이 까다롭지가 않았다. 까다로운 건 딱 하나 영핵을 분류하는 것인데 시온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다음 단계(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