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계(9)
잠을 줄이고 계속해서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산맥엔 몬스터가 많고 누가 보면 도시와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다 하겠지만 시온에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몬스터는 서식지에 대한 각종 지식으로 피하면 되지만 추격대는 붙으면 곤란해진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 벌써 며칠이 흘렀으니 이쯤 되면 단파와 벨페르의 시체가 발견될 것이었다.
운만 좋다면 발견이 아예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빙점의 흔적이 너무 강하게 남은 탓이었다.
일회성의 마법 물품답게 그 위력은 대단했다. 별다른 마법 저항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기사를 일격에 실신 상태로 몰고 갈 정도였다.
안타까운 건 빙점은 그대로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서리의 기운이 흐르던 돌덩이는 그대로 균열이 가서 쪼개져 버렸다.
시온은 흔적을 남길 수 없어 그것을 챙겨오기는 했다.
‘추적대가 붙기는 했을 거야. 최대한 안전하게 가는 것을 목표로 하자.’
시온은 거의 단정을 지은 상태였다. 그래서 가장 험난하고 흔적을 잡기 힘든 위치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히 충돌로 인한 소모가 아니라 단파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영주의 중요한 전력이자 재산이었다.
마법사를 유지하기 위해 각 영주는 많은 대가를 치르곤 한다. 시온은 단파의 마법을 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고는 생각했다. 분명 놀랄 만한 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최대 문제는 방심했다는 점이었다. 설마 마법사와의 대결에서 주먹에 얼굴이 빠개질 줄 몰랐을 것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마법사라고 해도 입은 놀려야 했다.
시온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산맥을 관통하는 작은 강줄기를 따라 걷고 있었다. 물은 이런 험지의 강줄기가 그러하듯이 녹색의 빛을 띠고 있었다.
물론 안에는 위험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시온은 주의 깊게 보면서 바위 더미를 타고 갔다. 크로거는 이런 물가에 사는 몬스터였다.
경계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퇴치가 목적이 아니라 식량과 식수 정도만 챙기면 된다.
물고기를 잡아볼까 하다가 그냥 물만 얻기로 했다. 아공간 반지에 건조 식량이 꽤 있었다. 혹시 몰라 약간 챙겨둔 게 있었다.
배를 채우고 나서 주위에 간단한 마법을 설치했다. 혹시 도둑이 들까 열심히 준비했던 전격 마법이었다. 더불어 이곳의 위험을 줄여줄 기척을 줄이는 마법도 썼다.
수준이 높은 게 아니지만, 그냥 노출된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만약에 짐승이나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급히 불을 피워 대처할 수 있게 불을 붙일 만한 재료를 근처에 놨다.
이제는 계속 시도하고 있던 단파의 아공간 반지를 열어 보는 작업을 재개할 것이었다. 오와인이 포획 당한 것은 뻔한 일인지라 니콜라 도팽에게 돌아간다고 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것이 그것을 대체해주기를 바라면서 계속해서 강제로 열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진척이 없었다면 진작 포기하고 이동에만 매진했을 것이나 진척이 분명히 있었다.
ㆍㆍㆍ
며칠이 더 흐르고 시온은 결국, 아공간 반지를 열어 내는 데 성공했다. 만약 열지 못했다면 도시에 가서 비싼 값을 치르고 전문적으로 이것을 열어 주는 녀석을 찾아냈어야 했을 것이었다.
그건 단순히 금화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 정도 급의 아공간 반지라면 필시 이 안의 물건중 일부를 자기에게 배분해달라고 얘기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시온이 마법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영 자질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이곳에서 아마도 현대인인 것과 관련이 있어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나를 감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적응력과 숨어 있는 마나를 찾아내는 데에 이곳 사람보다 좀 더 빠르고 정확한 게 이제 확실했다.
“제법 들어 있는데. 후우, 한 번 확인해 볼까.”
일단은 아마도 본인이 따로 챙겨 먹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간이 식량이 있었다. 것도 꽤 고급으로, 용병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과는 다르게 질이 풍부한 육포 위주의 건조 식량이었다.
어쨌든 다음 물건은 마법 서적이었다.
“서적?”
시온은 재빨리 그것을 꺼냈다. 시브의 마나 수련법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온은 재빨리 그 수련법의 내용을 읽었다. 시브의 마나 수련법은 단파가 익히고 있던 마나 수련법이었다.
당연히 현재 시온이 익히고 있는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과는 큰 차이가 있는 물건이었다.
기초 수련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수련법인 것이다. 이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사실 시온에게 가장 급했던 것은 나날이 채워야 할 마나를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으로 채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독학할 수 있을까?”
몇 문장을 읽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은 금방 익혔지만, 이 정도라면 보통 스승으로 모시거나 조직에 들어가서 까다로운 조건을 채워야 배울 수 있었다.
의문이 살짝 들었지만, 도시로만 내려가면 조언가에게 금화를 지급하고 일정 내용에 대한 해석과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나머지는 해석 실력에 달려 있는데 시온에게 있어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두 번째로 얻은 것도 서책이었다. 하급 영수를 길들이는 법이었다. 시온은 이것이 분명 그때 봤었던 이동형 영수를 다루는 법이라고 생각했고 예상했던 대로 야생의 것을 잡는 법과, 출몰 지역, 먹이를 어떻게 줘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것들이 앞장에 나열되어 있었다.
‘이건 약간 꽝인가.’
현재로써는 이동에 대한 것에 목이 마르진 않았다. 단순히 기를 수 있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고 유지비용이 상당한 탓이었다. 나중에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서 위세가 필요하다면 생각해볼 만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고 쓰여있는 내용을 보니 길들이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나중에 팔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나온 것은 마석이었다. 시온의 것보다 등급이 높은 흰색의 마석이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탓인지 많은 마나를 담고 있었다.
“마석도 확보. 잠깐만, 이거 빙점이랑 비슷한 것들 아닌가?”
시온은 빙점과 비슷한 형태의 돌을 두 개 꺼냈다. 하나는 붉은색이었고 하나는 흰색이었다. 복잡한 메모라이즈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분명히 빙점과 비슷한 용도의 것이 분명했다.
다만 니콜라 도팽이 얘기했던 대로 빙점보다는 급이 낮은 것들로 보였다.
그리고 정수도 있었다. 하급 정수였는데 공기의 정수였다. 시온이 만들었던 것들보다는 좋은 것은 아니지만 시온이 아직 한 번도 복용하지 않았던 정수인지라 분명히 효과가 클 것이었다.
그리고 불안전한 정수가 하나 더 나왔다. 아마 본인이 먹으려고 마련한 것인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빼앗기게 된 것이었다. 시온은 대번에 이것이 하급이 아님을 알아챘다.
이것들을 복용하고 마나를 잘 돌리면 두 번째 고리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만 이건···.”
시온은 뜻밖의 물건도 찾아냈다. 금박의 정수에 재료인 폭우 열매가 다섯 개 있었다. 현재 잡아 놓았던 계획 대부분은 금박의 정수를 어떻게 하면 제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어서 재료의 그 형태에 대해서 암기를 완전히 해둔 것이었다.
몇 번이고 보았지만, 폭우 열매가 맞았다. 폭우 열매는 최 남부 지방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인데 우기에만 약간 얻을 수 있는 열매라서 가격도 상당하고 매물이 나오는 타이밍이 정해져 있었다.
즉 경매장을 뻔질나게 다닌다고 해도 단번에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이것을 단파가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 불안전한 중급 정수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던 것들이었겠지.’
이제는 물어볼 수가 없기에 그냥 추측만 할 뿐이었다. 마법에 관한 서적도 있었지만, 단파는 땅 계열 마법사라서 시온이 배울 것이 없었다. 다만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다.
“고렘 제조술.”
형태를 빚어 그 안에 정령을 집어넣은 다음 부릴 수 있는 마법이었다. 이 정도라면 간단한 것은 만들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수준이 낮아 여기에 적힌 대로라면 고작 해봐야 작은 동물 수준의 고렘 밖에는 움직일 수가 없어 보였다.
어느 정도 아공간 반지를 다 털어내고선 시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단파는 확실히 에드바르 급의 마법사가 맞았다. 하나하나가 가치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니콜라 도팽이 약속한 보상에 비해서 한참은 가치가 높은 보상이었다. 그만큼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이었지만 어쨌든 지난 일은 지나간 일이었다.
시온은 이 흰색 마석에 있는 보석의 마나를 흡수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새로운 마나 수련법은 이제 연습을 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이브림 마나 수련법을 사용했다.
마나의 양과 질이 높아져 있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기존에 쓰이던 것은 이제 매물로 내놓아야 하는 것이 이제 확실해졌다.
“에스테 시에서는 이것들을 다 처리하고 다른 물건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데.”
하지만 그곳이 꺼려지는 이유는 많이 있었다. 영지전에 휘말릴 것이고 그만큼 영지의 상태가 불안해지고 물가가 폭등할 것이다. 물건을 처리할 때도 보는 눈에 따라붙을 테니 암시장을 이용한다고 해도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산맥을 완전히 건너는 것이 좋겠어.’
시온은 산맥의 반대편으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혔다. 에스테 시로 돌아가게 되면 도팽 가에게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는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영수의 핵을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가 됐다.
이렇게 된 거 영수의 핵을 가지고 그냥 처분하는 것이 나았다. 영수의 핵을 금화로 처리하든지 아니면 이것으로 마법사 장비를 제조해보는 것도 좋았다.
시온은 이번 일로 인해서 장비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겼다. 더 높은 단계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비를 무시하다가는 단파의 경우처럼 허무하게 당할 수도 있었다.
시온의 경우에는 마법으로 당하게 되는 꼴이겠지만 빙점이 단파의 겉옷에 방어될 때 정말로 깜짝 놀랐다. 비슷한 일이 있다면 단순히 육체가 단련돼있다고 해도 꼼짝없이 벨페르처럼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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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이 산맥을 넘어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시온은 반대쪽으로 넘어왔다. 몬스터와도 만났지만 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서식지에 대한 생태와 조심해야 할 점은 이미 사냥꾼으로서의 지식이 풍부한 시온에게 있어서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시온은 도시로 들어가기 전에 얻은 정수를 흡수하고 두 번째 고리를 연성하고 넘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로 가는 길에 또 다른 위험한 일을 만날 수도 있고 막상 이렇게 단계를 올릴 때는 아무래도 도시보다는 혼자 있는 곳이 마음이 편했다.
“이곳에서 해야겠군.”
시온은 작은 동굴에 거처를 마련했다. 오랫동안 거처가 없었던 동굴은 박쥐 몇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시온이 안에다 불을 피웠다. 오면서 채취한 열매를 태워 안에 있는 잡다한 박쥐를 모두 쫓아내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