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계(10)
.작은 동굴은 깊지도 않아서 위험할 것이 전혀 없었다. 시온은 익숙하게 앞에다가 전류 필드를 설치했다. 처음엔 사물에 걸 수 있는 간단한 전격 마법이었지만 이곳에 오는 동안 계속 쓰다 보니 바닥에 걸 수 있었다.
작은 범위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잠깐 놀라게 하기만 해도 대처할 시간을 버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쓸 수 있는 마법도 늘려야 한다.’
마나를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가치 있는 마법도 배우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었다. 첫 번째 고리에서는 눈짐작으로 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아무래도 슬슬 대가가 들 것이었다.
추적대에 대한 경계도 아직 풀지 않았다. 시온은 지금 자신이 추격받고 있다는 사실에 한 치의 의혹도 풀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혹시 몰라 유년기에 준비해둔 도주 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동 방향도 최대한 흔적을 덜 남기는 식으로 했고 불을 피울 때도 연기가 덜 나는 재료로 정말 잠깐 잠깐씩 피웠을 뿐이었다.
잠은 나무 위에서 자고 벌레가 물지 못하게 약초를 몸에다 발라 잠을 잠깐씩 자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마나를 쌓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쫓는 사냥꾼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도주속도와 흔적 지우기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푸른 액이었다. 시온은 푸른 액을 급한 대로 모조리 복용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푸른 액에는 피로를 해소해주는 효과가 덤으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을 조금만 자고 대단히 많은 에너지 소모가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형성되어 온 체력과 푸른 액에 붙어 있는 회복 효과로 어마어마한 거리를 주파한 것이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곳은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산맥이었고 거기에 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 요소와 각종 요소 때문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온은 어느 정도 안전거리만 확보되면 하루는 푹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추적대라고 해봐야 고용된 사냥꾼 정도일 터인데 이들이라고 무한하게 시온을 추적하는 데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지 전에 흔히 쓰이는 것이 숙련된 사냥꾼이었다. 이들이 각종 정찰에 쓰이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러니 더 중요한 쪽으로 빠질 것이 분명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시온은 공기의 정수를 꺼냈다. 공기의 정수는 역시 하급 정수였다. 하급 중에서는 쓸만한 편이었고 시온이 복용한다면 부족한 마나를 채워 연성이 가능할 것 같았다.
공기의 정수가 무려 세 알이나 있었으니까.
푸른 액을 섞어 좀 더 효율을 보고 싶었지만, 현재로썬 여유분량이 없었다. 시온은 반투명한 엄지만 한 크기의 공기의 정수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하나씩. 먹자.”
시온은 긴장된 마음에 정수를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시온의 예상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원래 마법사 면허 시험을 봤을 때는 그저 첫 번째 고리를 연성하는 데에만 일 년이 넘는 시간을 잡아두고 있었다.
정수는 꿈에도 못 꾸고 면허를 받은 뒤에 의료 관련 일이나 배워서 현대의 지식을 동원해 자금과 인맥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건 무리가 있는 계획이었다. 애초에 마법사 면허 시험조차도 요구하는 마나량은 상당했다. 시온이 가지고 있는 마법 장비가 한 개도 없기에 생으로 마법을 보여줘야 했는데 어지간한 자질이 나쁜 시온으로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선조가 남긴 물건의 숨은 가치를 우연히 발견해서 그 뒤로 계획의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었고 그로서 몇 개월이나 지났다고 벌써 두 번째 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온갖 정수를 쓸어 먹었으니 가능한 일이었고 뜻밖에 자질이 나쁜 대가로 정수에 대한 내성이 덜 생기는 편이라 정수 덕을 더 보았다.
시온은 공기의 정수를 한입에 넘겼다. 반투명한 정수답게 약간 물맛이 났는데 이어서 이것이 고농도의 마나로 변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곧바로 이브림의 마나 수련법으로 그것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ㆍㆍㆍ
작은 새가 날아오고 그것을 받은 남자가 다리에 묶여 있던 작은 쪽지를 꺼내 펼쳤다. 빠르게 눈을 돌려서 읽더니 말했다.
“대단한 새끼인데요.”
“뭔데?”
“도망간 녀석들 있잖습니까. 대부분은 잡았는데 사냥꾼 세명이 안 잡혀서요.”
“뭐라고 되어있는데.”
“방향은 알겠는데 이미 산맥을 넘어간 것 같다네요. 추적하고 있는 사냥꾼 녀석들 보통이 아닌데요.”
전쟁을 위해 준비한 녀석들이라 일반 사냥꾼이 아니었다. 전문적으로 키워냈고 그중에 태반은 군과에 속해 있는 자들이었다.
“쯧. 이미 죽은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와인 도팽이 이끄는 원정대에 그만한 인재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저희가 역 고용을 해야 할 정도라서.”
“그래서 단파 님은 어떻게 죽었는데. 오전에 사체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나.”
“예. 트롤이 사체를 가져갔더라고요. 올리버 경이 힘을 써주셨습니다. 복수한다고 일일이 토막을 쳐서 죽였습니다.”
“트롤 아니었어?”
트롤은 재생력이 높아 한두 번의 토막질로는 죽지를 않았다. 그러니 토막을 쳐서 죽였다는 건 여간내기로 반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 크흠, 근데 아시잖습니까. 올리버 경의 성격.”
“칼리 경과 결투를 못 해서 아주 울부짖는 소리를 듣긴 했다. 그래서 단파 님을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
“그것이 애매합니다.”
“?”
“벨페르가 마법에 당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아마도 도주 중인 사냥꾼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사냥꾼이 마법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이 부분에 대해선 미묘한 점이.”
“마법환 아니야?”
“그렇게는 보고 있습니다.”
“야. 일 제대로 안 해? 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것이 걸려 있다는 거 모르나? 페레 시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 어떤 징벌을 받으려고 그렇게 안이하게.”
“죄송합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단파 님도 워낙에 말씀 없이 움직이시는 분이신지라 뭔가 그 당시에 이상한 것을 봤는지 무작정 영수를 타고 벗어나서 말입니다.”
“진짜. 단파 자식. 주군이 귀여워 해주신다고 오만방자해서. 매번 명령체계를 무시하고 단독행동을 하지 않나. 결국엔 이 꼴이군. 그래서 단파는? 똑같은 마법사한테 당한 거냐? 사냥꾼일 수는 없으니 몰래 숨어있던 그 마법사 말이야.”
“그게······.”
“왜. 말을 해.”
“마법으로 죽은 게 아니라, 얼굴이 으깨져서 죽었습니다.”
“?”
“주먹에 연속으로 맞아서 함몰로 쇼크사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했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게 있어서 저는 트롤이 단파 님을 죽인 거라고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제기랄. 단파를 트롤 따위한테 내줬단 말이야? 영지 전을 앞두고? 이걸 뭐라고 보고해야 해? 그리고 사냥꾼들 다 불러들여.”
“예.”
“도팽 측 사냥꾼 세 명 샜다고 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 건 아니다. 어차피 오와인과 칼리 경을 확보했으니 이런 건 좀 알아서 하란 말이야.”
결투 패배로 팔을 잃어버린 상임 기사 덕분에 안 그래도 난감한 입장인데 그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설마 그 사냥꾼이 마법도 쓰고 단파도 두들겨 패서 죽이고 이 짧은 시간에 추적을 피해 산맥을 넘은 것은 아니겠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의 녀석이 이런 저급한 일에 끼어들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 성질을 눈으로 확인한 남자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 새끼고 저 새끼고 나만 곤란해진다니까. 단파의 장비가 완전히 털렸으니 트롤이 아닌 게 분명한데 아니라고 한다면 그 새끼를 무조건 찾으라고 할 거니까. 트롤에 맞아 죽었다고 보고하는 게 훨씬 낫지. 분명히 산맥을 넘어간 놈이야. 그런데 그 녀석을 어떻게 잡냐고. 인간이 맞긴 맞나?’
ㆍㆍㆍ
시온의 주위로 공기가 팍하고 밀려나겠다.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듯한 강풍이 일어난 것이었다. 시온이 두 번째 고리를 연성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완전히 연성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얻어낸 걸 골라낼 필요가 있었다.
조금 전의 일은 공기의 정수를 온전히 흡수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시온은 며칠 동안 이곳에서 공기의 정수 네 알을 복용했다.
한 알을 빼고는 내성 때문에 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고려하고 무작정 밀어붙였다. 지금 상황이 호락호락한 편이 아니어서였다.
그렇기에 두 번째 고리를 연성할 만한 마나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도시로 내려가 가닥을 잡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두 알은 예상대로였지만 한 알이 예외적으로 많은 마나를 주는 데 성공을 했다.
“후. 정말 믿기 지가 않는데.”
왜 마법사들이 단계에 목을 매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막상 두 번째 고리를 연성하고 나니 첫 번째 고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마법을 쓴다고 해도 위력도 틀리고 이미지도 빨리 형성이 되었다. 신체도 그것에 맞게 좀 더 변화가 온 것 같았다.
왜 상위 단계의 마법사가 그 아래의 마법사와의 승부에서 굉장히 높은 승률을 가졌는지 이제 단박에 이해가 됐다.
시온은 이제 이 작은 동굴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마른 식량으로 충분히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간 뒤 다시 산맥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온이 목적으로 하는 곳은 펜부르크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펜부르크시가 적절해 보였다. 펜부르크시는 황제 소속의 도시였고 그렇기에 여러 왕 사이에서 중립적인 도시였다.
그리고 황제가 소유하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인 만큼 역사가 깊고 도시가 컸다. 에스테 시와 비슷한 급의 도시인 것이었다.
그곳에서 현재 필요한 물건이나 교환이나 제작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게 분명했고 나아가서 영지 전이 돌아가는 정세를 빠르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승단부터 해두자.”
이제 본격적으로 용병의 패를 올려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승단 역시 승단 시험을 봐야 했는데 시온에게 있어서는 무척 쉬운 편이었다. 시온은 이제 두 번째 고리 형성 자인 것이다.
완전히 산맥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여정을 재촉한 시온은 펜부르크시의 주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라 시온은 산지에서 내려오는 형태로 있었는데 그렇기에 펜부르크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하고 오래된 성벽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성벽밖에는 판잣집이 너지 분하게 있었다. 해자와 경계가 불분명한 특정 지점을 넘어가면 건물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건물은 점차 커지고 가장 상단 쪽에는 이곳의 영주가 머무는 펜부르 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유도시에서는 저런 위압적인 성을 일부러 안 짓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지에서 오랫동안 있었던 시온도 제대로 된 급의 성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