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304)

펜부르크(1)

펜부르크의 대로는 인산인해였다. 이곳의 인구는 시온이 얼마 전까지 있었던 자유 도시보다 네 배에 육박했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가지 일로 들어가거나 나가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뜻했다.

‘얼마 만에 사람이냐.’

그동안 온갖 추격에 신경 써서 산맥을 넘는 탓에 오랫동안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보지를 못했었다. 산맥을 넘어가서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제국 가도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마음을 놓고는 있었다. 이 정도의 도주를 따라올 사냥꾼이 있다고 해도 시온 자신이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올시다였다.

‘영수의 핵에 관심이 있던 건 단파뿐이었지.’

다른 기사들은 오와인 도팽의 신병을 확보하는 거에 혈안이 되어 있었지 다른 거에 관심을 두고 있진 않았다. 굳이 문제가 되어 보이는 부분을 짚어보자면 단파를 죽인 것이었다.

단파가 라레테저닛 가문의 피가 조금이라도 흐르고 있다면 중세 귀족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복수하려고 혈안이 되겠지만 시온이 봤을 땐 단파라는 자도 그저 고용된 마법사에 불과했다.

물어볼 여유가 있다면 간단한 협박을 통해서 물어보기는 했을 것이었다. 어차피 본인이 몸값을 내겠다고 먼저 말을 꺼낼 게 분명했다.

어쨌든 시온은 이미 추적에서 벗어났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른 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나마 도망치라고 명령을 내려 선임 사냥꾼으로서 소속 사냥꾼들을 도망치게 했다.

일단은 산맥을 관통하는 도중에 만난 인원은 없었다. 아마 대부분 좋지 않은 결말이 났으리라 추측을 하고 있었다.

시온이야 험지를 돌파할 수 있을 만한 체력이 있었고 아공간 반지에 비축해둔 식량과 각종 마법으로 불을 피우지 않고서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냥꾼들은 그런 여유가 없었을 것이었다.

“흠, 자네는 사냥꾼인가?”

시온이 사냥했던 가죽들을 주렁주렁 달아놓은 배낭을 메고 가자 펜부르크 검열관이 시온을 향해 물었다. 시온의 몰골은 영 아니었다. 옷이 해진 정도가 아니었고 이곳저곳이 찢어졌으며 오른쪽 팔은 거의 붕대로 감아 놓은 꼴이었다.

다만 시온의 체격과 몸에 붙은 극도로 단련된 근육, 여러 가지 정황으로 펜부르크 검열관이 쉽사리 시온을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고압적인 인간이라고 해도 한눈에 봐도 이 남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마법사 용병입니다. 산맥에서 몬스터한테 일행을 잃어서 여차여차해서 이곳으로 넘어왔습니다.”

그가 얘기를 듣자마자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사라고? 장난하나.’

그는 순간 화가 났지만 시온의 근육과 덤덤한 눈빛을 보자 화를 누그러뜨렸다.

“그렇다면 패를 보여주시오.”

시온은 아공간 반지에서 두 개의 패를 꺼냈다. 제국 용병소에서 받았던 용병 철패였고 다른 건 마탑에서 나온 마법사 패였다. 마법사 패는 원래 유독 특이해서 이목을 끌었는데 백 명 정도가 시온이 패를 꺼내자 경악해서 수군거렸다.

물론 그걸 구경하던 사람들만 수군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그것을 구별하는 데 오랜 시간에 걸쳐 훈련을 받은 검열관은 입을 벌렸다.

이런 마법사는 본 적이 없었다. 아공간 반지를 사용한 것만 해도 이미 증명이 되었지만, 마법사 패에 마나를 불어넣기까지 하자 백 퍼센트 마법사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 마법사 탑의 속해 있는 시온 니벨룽 마법사님이시군요. 귀족이십니까? 복장이 너무 험해서 실례했습니다.”

그가 공손히 사과했다.

그나마 경계 어렸던 시선이 완전히 친절해졌다. 다른 사람이라면 복잡한 절차를 계속해서 받아야 했지만 시온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법사라는 것은 어느 도시에서도 환영받는 존재였다.

단순히 용병 패만 내밀었다면 검열관의 태도는 여전히 시큰둥했겠지만, 마법사 패와, 그 패에 적혀 있는 귀족 가문의 성씨와 문장은 모든 걸 간소하게 만들 수 있을 만한 힘이 있었다.

“들어가면 되나?”

“그렇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다만 들어가셔서 마법사 조합에 잠시 들리셔서 신분을 한 번 더 검증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시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거대한 다리를 걸어갔다. 페레시보다 인구가 큰 만큼 다리도 두 배는 되어 보였고 해자도 큼지막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래에는 물이 팅팅 고여 있었는데 물고기도 보였고 개구리 같은 것들이 이리저리 헤엄을 치고 있었다. 물의 깊이가 상당했다. 펜부르크는 수성에 강하기로 악명이 높은 전력이 있었다.

이곳에서 벌어졌던 여덟 번의 전쟁 모두 공세를 방어한 적이 있었다.

시온은 이어서 높게 감아 올라 있는 성문을 바라봤다. 성문 위쪽에는 녹색 바탕에 연어가 그려져 있었다.

이곳의 영주 가문인 자링 이였다. 관문을 통과하자 펜부르크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지형이 내리막길인 터에 도시가 전체적으로 중앙으로 내려가 있는 형태였다.

중앙엔 강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었다. 강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강변에서 다시 위로 올라가는 형태였고 거기서부터는 이곳을 관망할 수 있는 성이 쌓여 있었다.

‘휘유. 끝내주는데.’

페레시와 비교해봐도 급이 다른데 니벨룽 가문의 영지와는 또 비교도 안 될 수준이었다. 이곳의 한 구역을 놔도 부족할 수준.

시온은 이런 도시를 가지고 싶었다. 당연히 이런 도시를 갖고 싶다면 이러한 작위를 가지고 있는 왕이나 황제에게 작위를 받아야 할 것이었다.

ㆍㆍㆍ

시온은 복잡한 거리를 가로지르며 일단은 마법사 관리소를 찾았다. 관리소는 강가의 옆에 거대하게 세워져 있었고 그곳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등록절차는 간단했다.

그냥 패를 보여주기만 하면 됐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행방불명된 마법사의 행적 지를 확인하고 이곳에 거주할지에 대한 여부에 대해서 정하는 것이다.

밖으로 나오고 나서 뜻밖의 일을 확인했다. 아공간 반지에 있는 배양 장소에서 싹을 틔우고 급격히 자라나고 있는 약초의 재료들을 확인한 것이다.

‘예상이 맞았나.’

시온이 준비해두고 있던 일 중에 하나가 과연 씨앗을 푸른 액을 통해서 기를 수 있을지의 여부였는데 이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 열어 두었던 다수의 씨앗은 이미 끝이 났다.

피로 해소용으로 쓰려고 액을 거의 직접 복용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씨앗 두 개는 조금이나마 꾸준히 물과 섞어서 부어줬는데 그게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좀 더 다양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 도중 소녀 하나가 시온에게 다가왔다.

“마법사님이 맞으시죠?”

시온의 복장은 거칠어서 마법사 답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소녀가 눈치껏 시온에게 질문을 가했다. 마법사 등록을 하러 왔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맞다.”

“펜부르크에 처음인가요?”

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다면 머무를 거처를 찾고 계시겠네요. 제가 마법사님들이 좋아할 만한 거처를 잘 알고 있어요.”

귀여운 소녀는 영리해 보였고 시온은 잠시 고민을 했다. 소녀가 자기를 사기 치려는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페레시처럼 이곳에서 발품을 팔기엔 너무 넓은 탓에 영 귀찮은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금화도 넉넉한 편이었다. 두 명에게서 얻은 금화가 넉넉했다. 그리고 특정 단어가 거슬렸다.

“마법사들을 위한?”

“네. 마법사님들을 위한 곳이지요. 일반 여관이 아닙니다. 혹시 거처가 있으신가요? 이미 다른 귀족에게 고용 당하셨다던가.”

“아니 이제 구할 예정이다. 그보다 그 여관에 대해서 더 얘기해봐라.”

“예. 대신에 저한테 은화를 좀 주셔야 합니다. 얘기만 듣고 가버리시는 분도 있거든요.”

정보는 돈이고 정보를 건네주는 것도 돈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생리를 잘 알고 있는 듯해서 시온은 둘째 형이 생각이 났다.

이제는 만날 일이 거의 없겠지만.

“그래? 알겠다. 약속한다.”

“펜부르크의 여관은 마법사들의 휴식처로 이름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산맥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마나를 품고 있거든요.”

시온은 소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펜부르크의 다른 특징에 대해서 들으면서 여관에 도착했다. 과연 도시가 큰 만큼 이런 형태의 여관은 세 군데나 있었다.

그리고 분위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다른 의미로 말이다. 휴식처라고 할 만큼 이곳은 용병들이 환장할만한 유흥가가 이어져 있었다. 술과 도박장 여자 결투장 각종 오락거리가 즐비했다.

“어떤 형식을 좋아하시는지 제가 거기를 소개해줄 수 있어요.”

아린이라는 소녀는 은화를 받더니 더 대담하게 말을 이었다. 말인즉슨 좀만 더 돈을 챙겨주면 여기에 있는 환락 시설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시온은 이곳에 있다는 지하수와 공용 목욕탕에 관심이 있을 뿐 다른 것은 관심이 없었다.

공용 목욕탕, 이것이 제국의 큰 특징 중 하나였다. 자유 도시에서는 그런 시설이 별로 있지 않지만, 제국은 각종 목욕탕 시설을 가지고 있었다.

시온도 말로만 들어봤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니벨룽 가문에서의 샤워는 강가에 처박혀서 수영하는 것으로 대체했던 것이 전부였다.

현대인이었던 시온에게서 어쩌면 그리웠던 행위였다. 그 물이 마나에 도움이 된다니 일거양득인 것은 확실했다. 게다가 시온은 이곳에 오자마자 이곳이 마나가 다른 곳보다 농도가 높다는 것을 알았다.

즉 소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이 마나가 높다는 것만으로도 무조건 이곳으로 거처를 정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음. 마나의 농도가 높으면서 가장 조용한 곳으로 부탁한다.”

“조용한 곳 말인가요? 이곳에서 피로를 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건데요.”

“그건 나중에 하지. 일단인 조용한 곳이 마음에 편해서 말이야. 필요하다면 아린 너를 부르마.”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소녀가 기쁜 듯이 거리의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마법사님에게 제공할 수 있을 만한 거대 여관은 세 개밖에 없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조용한 대는 님프의 노래 여관이지요.”

세 여관 모두 이곳의 영주인 자링 가문을 모시는 봉신 귀족들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시온은 이곳에서 자리를 잡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나마 조용하다고는 했는데 지하수가 나오는 곳이 선택적이니 어쩔 수 없이 님프의 여관으로 결정했다.

멋들어진 조각상과 거대한 저택으로 이루어져 있는 여관은 시온이 페레시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용병단이 운영하는 여관과는 질적이나 규모로 큰 차이가 있었다.

안에 있는 자들도 복장부터 신분이 있어 보이는 자들이었고 시온이 들어가자 이질적인 느낌에 상당한 시선이 쏠릴 정도였다.

확실히 마법사가 많았다. 마법사가 무려 반은 되는 것 같았다. 그중에 고리가 높아 보이는 마법사들이 큰 테이블에서 체스를 하면서 뭔가를 크게 토의하고 있었다.

‘흠. 이곳이 좋겠군. 그나저나.’

시온은 아린에게 말했다.

“염색장이도 하나 소개해줬으면 한다.”

“염색장이요? 물론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시온이 은화를 건네주니 행복에 겨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일단은 거지처럼 다닐 수는 없고 단파가 입었던 마법 장비 겉옷을 입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다만 그냥 입고 다니면 거기에 박혀 있는 문장 덕에 오해를 살 수 있으니 그 문장을 지워버릴 계획이었다.

펜부르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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