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부르크(4)
시온은 간단한 인사를 했다. 다들 복장이 아슬아슬했다. 그러나 시온 만큼 대범한 사람은 없었다. 시온은 그냥 상체를 다 벗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게 완전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제국의 문화가 그랬다. 고대부터 오랫동안 이 목욕탕에서 정치를 해왔는데 이곳은 뜻밖에 사교 장소로 통했다.
시온은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시온이 안면을 튼 네 명은 꽤 사교력이 좋아서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저 몸은 강체술을 배운 게 분명해.’
자유마법사인 미아가 시온의 근육을 유심히 보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시온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순진하게 말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하물며 시온 같이 경계심 많은 자는 더욱 없을 것이다. 그녀는 내심 시온의 태도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나름 얼굴에 자신이 있는 미아는 은연중 시온을 유혹했다.
그런데 시온은 정말로 그냥 가버린 것이었다. 따로 자기를 찾지도 않았고 자기 할 일이 바쁘다는 듯이 무언가를 경계한다는 듯이 그런 태도였다.
그녀는 그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잘 모르는 그녀의 마법 액세서리는 마나의 미세한 분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녀는 시온에게서 신기한 것을 발견한 상황이었다.
‘특정 부분이 아닌 몸에 골고루 퍼져 있다는 거지, 특히 근육에.’
기사들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시온의 몸을 보고서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근육에 마나가 섞여 있어, 그렇다는 건 강체술을 배우고 있다는 거야.’
“대단하군요. 정말로. 옷을 입고 계실 때에도 유달리 단련하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시온도 자기 스스로 오랜만에 확인해보고 놀랄 수준의 밀도였다. 그러니 남들이 보고 놀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온은 굳이 잘난 척을 하지는 않았다.
자기를 숨기는 것은 그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좋은 것을 과시해봤자 높은 일이 벌어질 확률은 낮았지만 좋은 것을 가지고 낮추게 되면 상대의 호감을 쉽게 살 수 있었다.
자유마법사들에 호감을 사는 것도 일단은 중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어차피 시온도 어디에 속해있지 않는 자유용병이니까 겉 다리라도 속해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과찬입니다.”
“이 분은 누구시죠? 소개 좀 해주세요.”
미아와 메이거 풀이 아는 척을 하자 다른 자들의 머릿속에 단번에 시온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아니더라고 해도 시온은 그 자체가 특이해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약해 보이지 않았고 강자처럼 보였으니까.
기사의 특성과 마법사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사실 시온은 아마추어 수준의 격투기를 제외하고는 기사들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검술, 대검술, 한 손 검술, 쌍 검술, 이런 것은 전혀 할 줄 몰랐다. 기사의 꽃이라고 불리는 마상 창에 대해서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은 시온이 그런 부류에 숙달되어 있다는 착각을 주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자기의 이름을 말하고 소개를 부탁하니 시온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적자를 신경 쓰며 산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도시에 오니 확실히 도시다운 일이 생기고 있었다.
펜부르크는 자유도시보다도 그 규모 면에서 월등하니 사람이 많으면 더 복잡한 일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그냥 모두에게 말씀드리죠. 너무나 많으셔서 저는 시온 니벨룽이라고 합니다. 니벨룽 가문의 막내입니다. 자유 용병이자 자유 마법사이죠.”
그래서 간단한 소개를 해버렸다.
‘귀족?’
‘니벨룽 가문이 어디야?’
시온은 이들에게 또 다른 착각을 주고 있었다. 니벨룽 가문이 뭔가 괜찮은 가문일 수도 있다는 그런 착각을 말이었다.
괜찮은 가문이라고 해도 혜택은 둘째나 셋째에서 끊기는 일도 많았고 중세의 특징상 애를 어떻게든 많이 보려고 했기에 한 부모에 여섯 명씩 있는 것도 흔했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해서 첩까지 부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한데.’
시온은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무리에 있는 여자들의 모습을 잘 봤다. 하지만 뭘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과 간단한 안면을 터주고 마나를 정리하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어쨌든 시온은 대략 인사를 받았고 안면을 약간씩 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충분했다. 애초에 미아가 이들의 리더 격인 사람이어서 정신없이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옮겨간 것이었다.
그래서 시온이 있는 그 자리는 또 다른 토론장소가 되어 버렸다. 이야기들이야 이미 했던 것이었고 조금 특색이 있는 것이라면 역시 이곳 펜부르크의 위기와 관련된 것이었다.
시온이 봐도 펜부르크는 위험해 보였다. 여자상속자라니.
‘만일이지만 하이거 자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열여덟이지만 중병에 걸려 생사를 오락가락한다는 성년식도 치르지 못한 미성년자. 그 병약한 소년이 과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시온은 그 가능성을 적게 보고 있었다. 자고로 그 작은 니벨룽 가문에서도 형제들끼리의 은밀한 질시와 암투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대부분은 장남과 둘째, 셋째가 편을 먹고 갈라가는 느낌이었지만.
‘암살당할 수도 있지.’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게 누구라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누나일 수도 있겠지만, 그 누나가 부리는 봉신일 수도 있고, 그냥 여자 상속자로 만들어서 전쟁을 걸려고 하는 외부 사람일 수도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러한 것들이었다. 그 가능성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이었다. 시온은 제국이 고대에서부터 정치를 거대 목욕탕에서 했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현대에서 몸만 씻고 가는 그런 장소와는 차원이 달랐다.
들을 얘기는 다 들었기 때문에 시온은 하던 일을 계속할 작정이었다.
그나저나 시온은 전생에서도 여기에서도 한 번도 받지 못한 뜨거운 시선을 받는 중인지라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들의 리더 격인 미아가 아주 노골적으로 시온의 몸을 탐내듯이 보는 것이었다. 그것이 조금 꺼림칙했다.
미아가 그러니 다른 여자도 착각하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은 시온을 처음 봤지만, 미아가 관심을 은연중 표현하자 꽤 괜찮은 가문의 자제인 줄 아는 것이었다.
‘불편해.’
아주 아주 불편했다. 시온은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그럼 전 오늘 휴식을 마저 취하겠습니다. 단련 후에는 충분히 휴식해야 하거든요.”
이것만큼 편리한 명분이 있을까 모두 단번에 이해해버렸다. 시온은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더욱 구석진 곳으로 가서 조용히 마나를 정리했다.
ㆍㆍㆍ
이후의 일은 상당히 간단했다. 시온은 매일 같이 이곳에서 시브의 마나 수련법을 단련했고 마나를 정리하며 푸른 액을 통한 여러 가지 일을 추진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각라에게서 연락이 왔다. 물건이 다 되었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시온이 가려고 했는데 각라가 직접 시온을 찾아왔다.
“다 되었습니다. 시온님.”
각라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뭘 잘못 먹었나?’
그의 태도가 극히 정중했는데 마치 왕을 알현하는 모습 같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뭘 하든 상관이 있으랴 물건만 좋은 그만인지라, 단파에게서 빼앗은 장비를 받고서 확인을 했다.
“훌륭한데.”
겉옷에 새겨져 있던 라레테저닛 가문의 사자 문장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거기에는 시온이 주문했던 반지 세 개가 달려 있었다.
이제 딱히 문제가 없다면 이 물건은 시온의 소유였다.
“마음에 드셨다니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래.”
각라는 허둥지둥 나왔다. 그는 시온과 얽히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라레테저닛은 바로 옆에서 영지 전을 준비 중인데 태연하게 소속 마법사를 살해하고 의뢰를 하는 자라니 분명히 뒷배가 대단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시온은 그가 완전히 떠나기 전에 말했다.
“경매장은 언제 열리지?”
“경매장을 이용하시렵니까?”
“그렇다.”
어느 도시에나 그렇겠지만, 경매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특히 마법 장비나 기사의 장비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경매장을 이용하고 싶어한다.
간단한 경매장에 대한 얘기를 들은 시온은 그곳을 방문할 계획을 잡았다.
‘일단은 마법 서적 몇 개 처분하고 교환할 수 있는 물건이 있는지를 봐야겠다.’
단파에게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아직도 마법 장비에 관해서는 한참은 부족했다.
시온은 겉옷을 입었다. 이런 고급 재료는 마나를 부여 넣으면 사용자에게 맞게끔 신축이 일어났다. 시온도 그렇게 입어보는 것은 이게 처음이었지만 신기하다기보다는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었다.
‘보아하니 첫 번째 단계 마법은 완전히 막아 내는 게 분명하군.’
이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시온이 던진 빙점은 순간적으로 세 번째 단계 정도의 마법일 터이니 한 번은 그 정도 급을 막을 주는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다음번엔 고렘에 대한 것 좀 물어봐야겠어.’
시온은 자유마법사 무리에게 고렘 제조술에 관해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경매장에 다녀와야 할 시간이었다.
ㆍㆍㆍ
아린의 안내로 찾은 경매장은 자유도시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자유도시에서는 몰래 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는데 이곳에서는 거대한 건물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총 여섯층 짜리 건물이었는데 펜부르크에서도 유서가 깊은지 흔히 보기 쉽지 않은 여러 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시온은 그것을 감상하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멈추세요.”
미모의 여자 하나가 시온의 앞을 막아섰다. 물론 여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도 숫자가 많았다. 다만 대표격으로 막아온 것이었다.
이곳 경매장을 이용하려면 당연히 신분이 증명되어야 했다. 그리고 까다로웠다. 하지만 시온은 두 번째 고리 마법사였고 도팽 가문이 임시로 발급한 패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도팽 가문의 패군요.”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시온을 봤다. 도팽가의 명성이라면 시온의 신분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했고 더욱이 시온이 마법사 패에 두 번째 고리를 증명하는 마나를 보여주자 여자가 완전히 이해를 했다.
밝기의 세기가 첫 번째 고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저는 리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리지만, 저 소녀는 데려갈 수 없습니다.”
리사가 말하는 건 아린이었다. 시온은 아린에게 약속한 은화를 주고 리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마법사도 있었고 기사도 보였으며 용병도 있었다. 용병이 제일 많았다. 용병이라고 해서 장비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용병이 제일 지출을 많이 하는 건 보통 술과 여자, 도박이지만 조금이라도 대가리에 든 것이 있다면 자신의 장비를 기사의 것과 유사하게 맞추려고 한다.
부족한 실력을 메우는 것보다는 장비를 갖춰서 한 번이라도 목숨을 구명 받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전략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온이 들려야 할 곳은 더 위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