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부르크(5)
시온은 경매장을 유심히 둘러 보았다. 경매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기사의 장비나 용병의 장비를 파는 구역과 마법사의 장비를 파는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시온 님. 그런데 기사 서임은 혹시 받으셨나요?”
“아닙니다.”
리사 자체도 마법사였다. 고리 하나의 마법사였지만 분명히 마나가 느껴졌다. 그녀가 물어본 이유는 그만큼 시온이 다른 마법사와는 달리 기사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쪽 관련된 장비는요?”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그보다 정보를 좀 얻고 싶은데요.”
“무슨 정보를 말이죠?”
“마나 재료에 관한 것들입니다.”
“재료? 지금 정수 제작에 대한 것을 얘기하시는 게 맞나요?”
“맞습니다. 작게나마 제작하는 취미가 있거든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그녀는 심히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간단한 것만 해도 그쪽의 훈련을 철저히 받아야 하는데 시온이 그렇게나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개해드릴 수 있는 분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경매장을 먼저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시온의 금박의 정수를 만들 만한 재료에 대한 단서를 찾아야 했다. 폭우 열매 가지고는 부족했다. 재수만 좋다면 경매에 금박의 정수에 대한 재료가 같이 나올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가진 것을 다 털어서라도 경매에 참가해볼 의향이 있었다.
리사와 함께 올라간 곳은 오 층이었다. 오 층은 그냥 층 하나가 공연장같이 되어 있었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하는 자도 있었고 차나 커피, 등을 마시며 담소하는 자도 있었다.
경매장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정치적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소였다.
‘땅 계열 마법을 교환 위주로 해야겠다.’
단파에게서 얻은 땅 계열 마법서가 몇 개 있었다. 어지간하면 그냥 배우겠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고 여기에서 속성을 하나 더 늘린다는 것은 영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시온은 이것을 팔아서 설치 마법류를 얻어볼까 생각 중이었다. 설치 마법이라는 것은 지형에 마법을 미리 설치해서 마법 함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지간하면 전기계열로 구하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독학으로 전기 필드를 작게나마 설정할 수 있었기에 관련된 마법 장비만 구할 수 있으면 연습의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파가 내가 속한 속성이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단파에게서 얻은 마법 서적은 마법사에게 특수한 역할을 한다. 마법 서적은 필사로는 해결되지 않는 성질이 있었다. 해당 마법을 습득하고 싶으면 마법서가 있어야 했다.
그 마법서에는 연습할 수 있을 만한 환상과 세부적인 흐름에 대해서, 기술되지 않은 어떤 것들이 메모라이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떤 마법사이든지 해당 마법을 완전히 익히려면 이러한 마법 서적을 계속해서 반복 체험 하는 것이 중요했다.
시온이 지금까지 독학한 것들은 정말로 간단한 마법이었고 앞으로 고리가 올라갈수록 마법을 배우려면 이런 까다로운 반복 훈련을 계획해야 했다.
여기에 알려줄 수 있을 만한 마법사까지 붙이는 경우도 다반사였기에 검증받은 마법서는 여러모로 중요했다.
잘못 마법을 배웠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시온. 여기서 보게 되는군. 너도 살 물건이 있나?”
누군가 시온에게 말을 걸었다. 메이거 풀이었다. 이곳에 와서 친분을 맺은 자유마법사였다. 그리고 익숙한 자들도 여러 명 보였다. 그 인사를 받다가 시온이 답했다.
“그렇지. 펜부르크의 경매장은 어떤지 궁금해서.”
“자유도시에서 왔다고 했던가.”
“자유도시에서 경매장은 암시장에 포함되어 있거든 고로 이렇게 공식건물에서 열리는 건 처음이라.”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시온은 이곳에 참여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메이거 풀은 시온이 유년기 시절부터 마법사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상은 시온이 수련 마법사 자격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그때의 암시장에서도 거래는 있었다. 다만 시온은 여기에 참여할 만한 자격이 전혀 없었다. 지금도 마법사로서 경력이 모자라는 시온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두 번째 고리만으로 이곳을 손쉽게 들어올 수는 없었다.
도팽 가에게 임시로 받은 패 덕분에 이렇게 손쉽게 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메이거 풀이 시온이 유년기에서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마나와 체력을 만들어 온 인물이라고 착각하는 이유가 나름 존재했다.
자유 마법사라고 해서 오 층을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건 무언가가 검증되어야 했으니까.
‘패가 효력이 있는 건 이때뿐이긴 하고 찝찝하긴 하지만 당장은 여기를 이용해야 하니.’
도팽 가의 임시 패는 효력이 곧 없어진다. 도팽 가가 맡겼던 원정을 올바르게 수행한 것은 아니기에 취소되거나 다른 이유로 찾을 수도 있었다. 물론 후자는 매우 희박했다.
‘계약이라는 것은 지켜야 하지. 단, 목숨이 날아가기 전까지는.’
계약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면 여기 이 경매장에 서 있는 대신에 지하 던전에 처박혀 가진 물건을 되찾기는커녕 무사히 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었다.
“그랬군. 자유도시와 제국의 도시는 다르지. 제국법에는 마법 장비의 경매는 불법이 아니거든. 세금을 가져가야 하니까.”
그리고 뒷말이 생략되어 있었지만, 자유도시 즉 마탑이 지배하는 지역에 경매장이 불법이라 암시장처럼 열리는 이유는 마법에 관한 모든 권리를 거의 마탑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ㆍㆍㆍ
경매는 작은 경매와 큰 경매로 나뉘어서 진행되었다. 큰 경매는 그냥 공개적인 것으로 현대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높은 값에 입찰하면 되는 것이었다.
작은 경매는 개인끼리 교환의 장이 열리는 건데 일단은 공식 경매가 끝나고 나서나 할 수 있었다.
자격 요건이 제법 있다고 해도 펜부르크의 인구만큼이나 마법사도 많았고 자리는 꽉꽉 차있었다. 별다른 대가를 내주지 않고도 시온은 상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메이거 풀 덕분이었다. 메이거 풀은 펜부르크에서 팔 년 정도를 일한 데다가 인맥도 넓어서 아는 사람도 많았다. 그가 시온을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를 같이 잡은 것이었다.
“마나 감시자입니다!”
하나씩 공개적으로 사회자가 물건을 소개하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마나 감시자라고 하는 구슬을 소개하고 있었다.
상대의 마나가 어느 정도의 단계인지 그리고 마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보조적 도구였다. 상당히 수준이 높고 잘만 쓴다면 상대하는 마법사의 전략을 읽을 수도 있었다.
시온은 이러한 정보를 안겨주는 마법 장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뭘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단파가 방심하고 있었던 것은 이것과 비슷한 종류의 것 때문이었다.
“혼란의 지팡이!”
환영계열 마법 장비도 나왔다. 상대가 사용했던 마법을 기반으로 해서 상위 마법을 한 번 환상으로 보여준다. 혼비백산할 것이고 그때를 틈타 치명상을 날릴 수 있는 좋은 장비였다.
메이거 풀은 혼란의 지팡이에 금화를 걸었다. 시온은 그 모습을 주의 깊게 봤다.
‘메이거 풀은 환영계 마법사로군.’
마법사들은 보통 세 속성 정도를 다루니 메이거 풀의 주력이 환영마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온이 탐을 낼 만한 물건이 나왔다. 라이트닝 댄스였다. 설치 마법 장비가 나온 것이었다. 시온은 저것을 구해야 했다.
“설치 마법? 그쪽인가?”
메이거 풀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시온은 그냥 그렇다고 말했다. 사실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거지만 그가 착각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설치 마법은 아무래도 주류 마법은 아니었다. 설치를 미리 해야 했고 시간을 들어야 했으며 설치하는 거에 비해서 난이도가 무지하게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계산에 있었다. 설치 마법을 설치할 때에는 수학할 줄 알아야 했다. 문제는 이곳은 중세였고 무엇보다도 언어체계가 숫자를 표시하기에 엉망이라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구구단에 곱셈 정도만 할 줄 알아도 쓸만한 설치 마법을 빠르게 설정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구구단도 없었다.
시온은 현대인이라 아라비아 숫자를 기반으로 한 구구단 정도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고 고교과정을 무난히 수료한 터라 계산과정도 그렇게 애먹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정말 어렸을 때부터 마법교육을 철저히 받았나 보군.’
메이거 풀은 시온이 엘리트가 아닐지 라는 추측을 했다. 보기에는 굉장한 육체파였고 기사인 것으로 보였으며 마법을 쓴다고 해도 이런 수식계열은 아닐 것으로 보였는데 대뜸 설치 마법을 고른다는 건 이런 식으로 밖에는 설명되질 않았다.
어쨌든 그런 까다로움 덕분에 입찰은 상당히 약했다. 시온은 라이트닝 댄스를 받아내는 데 성공을 했다.
사람들한테 인기가 있는 건 이런 설치 마법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감지 마법이나 일회성의 폭발계 마법이었다.
오늘 나온 물건중 가장급이 좋았던 마법 장비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장비였다.
무척 짧았지만, 이목을 속이고 한순간 거리를 벌릴 수 있다는 점은 이 장비가 한 번은 무조건 살려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가격도 가격이 대단했지만 시온이 그걸 낙찰받는다고 해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순간이동계열 마법이라면 고리가 더 높아야 했다.
“라이트닝 댄스와 이것과 교환이 되나?”
시온은 리사에게 말했다.
“물론 물건이 괜찮다면 됩니다. 한 번 줘보시죠.”
시온이 건넨 것은 단파에게서 얻은 반지 중 하나였다. 하나는 자백반지였고 하나는 간단한 감지 반지였는데, 다른 하나가 설치 계열 액세서리였던 것이다.
감정은 받지 않았지만, 속성이 다른지라 딱히 손을 대고 있지는 않았다. 시온이 반지를 건네자 리사가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송곳니 감옥이군요. 충분히 교환이 가능합니다.”
“그럼 교환하지.”
시온이 그냥 교환한 이유가 있었다. 정확하게 가격을 매기자면 시온이 약간 손해였다. 그런데 그래야만 별 배경이 없는 시온에게 라이트닝 댄스를 교환해줄 것이었다. 또 교환한 물건이 문제가 있어도 숨기고 처리해줄 것이었다.
경매장 역시 관련 세력이 있으니 의심스러운 물건은 지역을 바꿔 알아서 처분하는 시스템이다.
라레테저닛의 의심도 받지 않고 물건도 처리하고 시간을 크게 절약한다는 점이 제일 좋았다.
시온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특수 물건들이고 가격이 꽤 나간다고 해도 이것을 정확한 값을 받으려면 한 달 정도는 사람들하고 흥정을 해봐야 알 수 있었다.
경매장에 그냥 팔아봐야 헐값에 팔리게 되니 일일이 사람들을 구해야 했는데 그런 인맥이 없으니 시간으로 때워야 했다.
그걸 이런 식으로 하면 당장 강해질 수 있으니 시온은 이것이 더 낫다고 보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뭔가를 익혀둬야 펜부르크에 있을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시온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곳은 영지전 비슷한 게 일어날 게 분명했다.
‘당장에 미아가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했고.’
아직 그게 누구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자링 가문의 계약과 관련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