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부르크(6)
‘마나 재료는 나오지 않았군.’
하급 정수가 경매로 나오긴 했지만, 고급 약초 같은 재료는 나오질 않았다. 마나를 함유한 약초가 쉽게 매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돈을 더 주고라도 완성품을 사려고 하지 그 재료를 사려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도 나오긴 나온다. 안내원인 리사에게 물어봤더니 때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그렇다면 재료가 나오면 알려주시죠.”
“알겠습니다. 메이거 풀님과 아시는 분이라면 못 알려드릴 것도 없죠.”
펜부르크의 단점을 드디어 알았다. 정치적 문제 때문에 약초매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경매는 개인 교환 경매였다. 개인의 물건을 서로 보여주고 교환하거나 팔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가 부여되었다.
시온은 여기서 마음에 드는 마법서를 파는 사람을 찾아냈다. 그가 교환하고자 하는 마법서는 염동력 마법이었다.
염동력 마법은 다른 마법과 달리 특수 계열로 분류되기에 마법서가 좀 적은 편이었다.
마법서는 아라크네의 거미줄이라는 이름의 서적이었다. 즉 제압류 마법이었다. 시온은 단파에게서 빼앗은 땅 계열 마법서와 이것과 교환을 했다.
운이 좋게도 활력의 대지라는 마법서는 그의 성질과 딱 맞아 별다른 문제 없이 교환할 수 있었다. 그는 서른 중반의 남자였다.
시온이 마법서를 들자 그가 무심코 손을 내밀었기에 내주지 않았다.
“동시 교환이 원칙이 아닙니까.”
“아, 그렇죠. 자 여기 있습니다.”
그가 너무 깐깐하다는 표정으로 시온을 보면서 마법서를 꺼내서 시온에게 건넸다. 시온이 먼저 잡았지만, 그는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저자는 언젠간 저습관 때문에 크게 당하겠어.’
이런 곳이야 관리가 되는 곳이니 그렇다고 해도 허술한 장소에서 저런 어설픈 행동을 했다가는 상대방이 그대로 물건만 받고 강탈할 수도 있었다.
시온이 보는 중세란 곳은 그런 곳이었다.
어쨌든 물건을 교환하고 나자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마법서가 생겼다는 것에 만족했다.
지금까지 시온이 썼던 마법은 기초적인 것이었다. 그저 형성하고 발사를 하는 수준이다.
고리가 하나인 마법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의 방식으로밖에는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리를 두 개로 연성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본격적인 마법서를 배울 수 있었다.
마법서는 일종의 복합적인 마법 창고와 같은 것이었다. 거기엔 간단하게 반 메모라이즈 되어 있는 마법의 길이 있었고 그렇기에 반복 훈련을 해서 해당 서적의 담겨있는 여러 가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한 개의 마법이 아닌 여섯 개의 마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온은 일부러 이쪽으로 구했다.
아무리 다룰 수 있는 속성이 많다고 해도 메인으로 잡을 수 있는 마법은 하나였다.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골랐으니 이것으로 당분간 메인을 잡을 것이었다.
나머지는 보조일 것이고, 라이트닝 댄스는 설치 마법인데 장비의 수준이 매우 중요하므로 보조 마법으로 분류되었다.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단파에게서 얻은 물건으로 이제 제법 마법사다운 장비를 이것저것 맞췄다.
시온은 그의 아공간 반지를 처분하지는 않았다. 한 마법사가 각인시키고 사용할 수 있는 건 하나였는데 단파의 아공간 반지는 크기는 큰데 강제로 연 것이라 수리가 필요했다.
수리한다고 해도 여기서 팔아야 할 것인데 나중에 보관해뒀다가 지역을 옮기게 되었을 때 파는 것이 나아 보였다.
ㆍㆍㆍ
시온의 뒤엉킨 마나는 이제 정리가 완전히 되어갔다. 시온은 온천탕에서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시브의 마나 수련법으로 마무리해가는 참이었다.
‘이것으로 확실한 건 지금까지는 진짜 요행이 분명했군.’
정리되자 막상은 기뻤지만 이제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마나의 양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심각할 정도로 많은 양이 필요했다.
시온이 지금 쌓을 수 있는 양이 적은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다만 자질이 매우 좋지를 않았다. 에드바르가 경고했던 상황을 눈앞에 두고 보니 아찔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필요한 마나가 많은 편이었다.
정상적으로는 절대로 다음 단계에 갈 수 없었다.
‘역시 정수 위주로 마나를 모으는 게 맞겠군. 그때 제작에 대해서 배워둔 것은 다행이었고.’
하지만 시온에게는 선조의 유품이 있었다. 시온은 이 액으로 정수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키울 수가 있다. 다만 아직은 시행착오가 많았다.
또 이곳에 와서 한 가지 더 확인한 것은 정수제작소가 가격대에 비해 터무니없이 급이 낮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제작을 배우려고 했다면 얼마나 실패를 했을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도팽가의 제작대에서 기초를 배운 것은 운이 좋았던 셈이었다. 거기서 하급 정수를 연달아 만들어서 달성했던 것도, 이곳의 장비라면 제작 확률이 대폭 떨어져서 한 개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도팽가를 방문할 일은 거의 없으니 이것은 이것대로 처리해야 했다. 시온은 구석진 온천에서 자리를 일어났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연습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뿌연 김 속에서 낯선 여자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아는 가슴이 큰 편이고 몸이 굴곡져서 저렇게 가려져 있어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시온을 부르는 목소리는 미아였다.
“여기에서 휴식하는 거야?”
“역시 미아로군.”
이곳은 중앙에 있는 거대 목욕탕과는 따로 분리된 곳이기에 오는 사람이 적었다. 시온은 얼마 전에 이곳에서 나이 든 노 마법사와 체스를 한 번 둔 적이 있었다.
“흠, 그래. 이야기 좀 해.”
그녀는 그러면서도 유심히 시온의 몸을 흘깃흘깃 관찰했다. 그녀는 여전히 시온의 몸이 강체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지.”
이야기에 대해서는 대략 눈치채고 있는 바가 있었다. 시온은 이들 무리와 상당히 친해졌다. 미아와 메이거 풀은 나이도 비슷했고 메이거 풀역시 사생아였기에 가문에서 뛰쳐나온 것이라 공감대가 있었다.
그녀와 따로 이동한 곳은 조금 더 한적한 곳이었고 앉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사람도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분명히 자링 가문과 관련된 것일 거였다.
항상 나누던 이야기의 흐름은 그쪽이었으니까. 이 제안을 받지 못했을 거라면 따로 제국 용병소에서 발품을 팔아야 했을 것이나 그녀의 무리는 이곳에서 일거리가 항상 고정적으로 있었다.
바로 미아 덕분이었다.
마치 봐달라는 듯이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그건 맞았다. 미아는 약간 화가 났다. 저 둔한 남자는 꿈쩍을 하지 않으니까.
“저번에도 대충 얘기를 했지만 이번에 일거리가 있어. 이번 계약은 꽤 큰 거야.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너는 검증이 안 됐지.”
“일거리라는 게 뭐지?”
“맞춰봐.”
그녀는 도발적으로 물었다. 시온은 항상 그녀가 이런 식이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었다. 도팽 가의 여식과는 다른 성격, 용병다운 과감함이 있었다.
“자링 가문이겠지.”
“알고 있었어?”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패거리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고는 하나 그녀는 이런 계약을 따내는 것과 자기가 알고 있는 인맥에 대해서는 결코 입을 여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밖에는 없지. 그리고 너라면 윗선과 닿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큰 가슴에 팔짱을 끼며 미아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만들었다.
‘확실하게 마법사가 맞아. 그것도 굉장히 머리 회전이 빨라. 생김새는 평범하고 둔해서 기사 같아 보이긴 하지만 뜻밖에 지능파란 말이야. 고대 언어도 잘 읽는 것 같고.’
물론 시온이 눈치가 빠른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녀는 몇 가지는 착각하고 있었다.
“물 좀 한잔 가져다줄래?”
물이야 어차피 은화가 드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구해다 줄 수 있는 것이라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일분 정도 걸려서 물을 가져왔다.
그러면서 시온은 그녀의 말의 단어를 생각해봤다.
‘나에게 요구할 게 있군. 그리고 그건 나도 기다리고 있던 바고.’
시온은 그녀에게 넘길 수 있는 단파의 물건을 생각해봤다. 그녀가 좋아할 것 같은 마법 장비는 강백 반지였다.
상대의 자백을 강제로 받아낼 수 있는 반지. 시온은 뜻밖에 미아가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나에게 증명이 안 돼 있다고 했지. 그건 맞다. 나는 전혀 증명되어 있지 않아. 이 패거리에 들 수 있었던 것은 운이지.’
사실 복잡한 착각이 여러 단계로 쌓여 있었지만 시온은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시온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시온이 증명할 수 있는 건 막 받아낸 수련 마법사 패와 역시 경력이 미비한 용병으로서의 경력, 그리고 실패로 끝난 도팽 가의 원정이었다.
그녀가 꺼내려고 하는 자링 가문의 일이라는 것은 경매장에서 본 용병들이 계약을 따내려는 안달하는 것일 터인데 거기에 낄 수 있는 사람은 미아의 자유마법사 무리 중에서도 다섯 명 안팎일 것 같다는 추측이 들었다.
‘이럴 거 같아서 미리미리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준비한 거고. 예상대로 그녀가 어떤 마법을 보여줄 수 있냐고 한다면 한두 가지는 멀쩡하게 보여줄 수 있지.’
그녀는 팔짱을 끼고 여전히 다리를 꼰 상황이었고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시온은 거대한 그녀의 가슴을 감상했다.
‘진짜 이곳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몸이 좋은 것 같아.’
현대와 이곳의 다른 점 하나가 바로 이곳 사람들의 체격이었다. 평균적으로 다들 우수했고 얼굴도 평균 이상인 사람이 많았다. 물론 시온은 아니었다.
니벨룽 가문은 대대로 추남인 편이 많았고 그나마 평범하게 태어난 것도 기적이라고 시온은 보고 있었다.
“고마워.”
“얼마든지 가져다줄 수 있지. 그래 생각은 좀 해봤나? 어떤 조건인지 어서 듣고 싶군.”
“조건? 내가 조건을 걸 거라는 걸 알았단 말이야?”
“그러면 아니었나? 아니면 나야 좋다.”
“내가 조건을 걸 거라는 것은 어떻게 안 건데?”
“네 성격이라면 그럴 거라는 생각을 했지.”
“흐음.”
그녀는 물을 들이켜고는 말했다.
“맞아. 나는 너한테 걸 조건이 있어.”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내 장비 중에서 하나를 떼주겠어. 나는 이것을 준비하고 있었지.”
시온은 강백 반지를 테이블에 놓았다. 단파에게서 얻어낸 것 중에 쓸만한 것 중 하나였다. 사실 시온은 강백 반지를 굳이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해결할 일 있으면 두들겨 패면 될 거 같기도 했고.
“?”
“왜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장비도 있다.”
“아니, 아니. 진짜. 너 성격이 너무 의외잖아. 평소에 말수도 없으면서 이런 거 생각하고 다니는 거야?”
“기본 중의 기본이지. 누가 공짜로 뭘 해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다 대가가 있는 것이지.”
“그래, 그럼 나랑 만나. 그러면 자링 가문 계약에 넣어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