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304)

펜부르크(7)

의외의 제안이었다. 미아가 원한 것은 뜻밖에 교제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시온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를 않았다. 현대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그런 기회는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곳에서는 가문 내의 엄격한 분위기나 배워야 할 기술이나 훈련 덕분에 영지 내의 여자를 희롱한다는 간단한 것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나 같으면 강백 반지를 받았을 것인데, 여자란 알 수가 없군.’

강백 반지는 그녀와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그녀의 속성에도 잘 맞았다. 그런데도 그녀가 원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었다.

이걸 간단하다고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시온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딱 봐도 뭔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시온이 배웠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강체술의 비밀이 흥미로웠다.

‘나에게 빠지면 결국 비밀을 알려줄 수밖에 없어. 철저하게 감출 생각에 여자에 둔한 사람이니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미아의 속내가 이어졌다. 아무리 봐도 시온의 신체는 기사의 신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시온의 신체에는 마나가 흐르고 있었고 그녀는 그것이 강체술의 강력한 증거라고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없던 마음도 생겼다. 그런 귀한 비법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단순한 배경일 리가 없으니 분명 공개하지 않은 후원자가 있을 것으로 추측한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지금 만날 수 있는 남자 중에는 가장 좋은 남자였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가 그녀를 이런 식의 요구를 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왜 그런 요구를 하는 지, 그리고 메이거와 만나고 있는 거 아니었나?”

시온이 아무리 그런 쪽에 둔하다고 해도 남들이 가지는 묘한 기류 정도는 쉽게 잡아내는 관찰력이 있었다. 그런 시온의 안목엔 분명히 둘의 관계가 보통 이상이었다.

‘경매장 일도 그렇고 생각보다 이곳에서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녀석인데.’

메이거 풀은 성격이 좋은 남자였고 그는 인맥을 통해 시온을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 시온은 메이거 풀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아무래도 곤란한 일이 되어 버린다. 도움을 받았던 자인데 되려 이런 식으로 갚아버리는 것이 된다.

“메이거? 메이거는 나를 좋아하지. 근데 나는 메이거가 그냥 그래.”

시온의 생각에 메이거는 그녀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풀 가문의 사생아였지만 귀족의 핏줄도 있고 그녀는 그 정도 급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녀가 별 사이 아니라고 하니 여기에 관해서 묻기도 곤란해졌다.

‘장비를 요구하던지 누구를 조지는 데 도와달라든지 뭐 이런 식일 줄 알았는데.’

“쉽게 허락할 수가 없군.”

“왜 메이거가 무서워? 메이거는 아무런 말이 없을 거야.”

“메이거한테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도 너한테 도움을 줬는데? 메이거는 너를 처음에 탐탁지 않아 했어. 그 밑바탕에 되어 준 게 나라고. 왜 그랬겠어? 난 네가 처음부터 좋았어.”

“?”

시온은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랬던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처음부터 좋았다고 하는 부분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도 맞았다.

메이거가 도움을 준 것은 어떻게 보자면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처음에 호의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친해질 이유가 없었다.

“흠.”

“진짜 내 제안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 줄은 알고 고민하는 거야? 자링 가문의 일은 인맥이 없으면 딸 수도 없다고. 그런 일의 기회를 내주겠다는 건데!”

그건 맞았다. 아마 그녀의 화를 내는 것을 보니 여기서 퇴짜를 놨다가는 자링 가문과의 계약은 이대로 날아갈 판이었다.

물론 다른 계약도 있겠지만 자링 가문의 계약은 펜부르크에서 얻을 수 있는 계약 중 가장급이 좋은 것이었기에 계약금은 물론이고 시온에게 있어서도 이런 이력을 남긴다는 것은 좋은 기회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ㆍㆍㆍ

시온은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연습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여섯 개의 마법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거미줄이란 마법이 무색하게 단일부터 주변까지 걸어버릴 수 있는 봉쇄 마법과 무게증가 마법이 있었다.

시온이 습득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여기에서 마지막 단계는 걸려든 대상자들을 일정한 곳으로 압력을 넣을 수가 있었다.

충분할 정도로 아라크네의 거미줄의 숙련도가 높아지면 그 광경은 블랙홀 같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시온의 단계로는 불가능한 얘기였고 그때까지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수련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좀 더 반복 연습이 필요하겠어.’

시온은 큰 물건들을 움직이는 식으로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연습했다. 마나의 감지에 대한 민감함과 현대와의 차이 덕에 손쉽게 할 수 있는 계산, 그리고 오차가 있을 수가 없는 정확한 해석 덕분에 남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습득해나갔다.

이제는 누가 보면 처음부터 익히고 있던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곳에서 익혔다고 볼 수가 없는 수준과 속도였다.

그것과 별개로 시온은 드디어 마나 약초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씨앗의 대부분은 시행착오로 폐기되었지만 최근 성공한 씨앗이 있었다.

불씨의 약초는 시온이 제작이 가능한 마지막 하급 정수였다. 녹색 반지에 레시피가 나와 있는 건 불씨의 약초를 이용한 정수가 마지막이었다.

‘이대로 다 실패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몇 개는 건져냈다.’

푸른 액은 마나 약초의 씨앗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다만 뭔가 조건이 더 있는 것 같았다. 불씨의 약초를 여덟 개를 얻었는데 여기서 몇 개가 정수가 될지는 몰랐다.

게다가 이제 두 개의 고리가 연성된 마법사라서 하급 정수의 효과는 반감하게 된다. 아직은 만족스러운 수준이지만 세 번째 고리로 들어가게 된다면 이제 급이 높은 정수를 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ㆍㆍㆍ

마법사 관리소에서 운영하는 정수 작업대를 쓰기 위해 그곳을 들렸을 때 시온은 바가지 가격과 급이 낮은 작업대에 혀를 내둘렀다.

건물 자체는 크고 넓고 이용자도 제법 있었는데 허울만 좋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시온은 배정받은 방을 확인한 후 불씨 약초를 꺼냈다.

화염이 달린 듯한 착각을 주는 이 약초는 불씨 정수를 만들 수 있었다. 시온은 밑 작업을 하기 위해 작업대에 특유의 마나를 차근차근 운영해봤다.

그렇게 계속해서 한 시간이 넘게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이것이 루시의 호의로 배웠던 제작 기술의 기본이었다. 그리고 레시피 대로 불씨 약초 하나하나 신중하게 분리해 보기 시작한다.

시온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릴 때쯤 시온은 정수 세 알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기에 여덟 개의 불씨 약초로 세 개의 정수를 얻은 것이 되었다.

아쉬웠지만 이 정도도 다행일지도 몰랐다. 이곳의 질 낮은 작업대의 수준으로는 하나도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시온은 손바닥에 있는 불씨의 정수를 보았다. 외관상으로는 지금까지 만들어 본 것 중에 가장 화려했다. 불기운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는데 그래 봐야 공기의 정수보다도 함유된 마나량은 적었다.

거처로 돌아온 시온은 곧바로 복용에 들어갔다. 뜨거운 기운이 몸에 감돌고 이윽고 이제 완성한 시브의 마나 수련법으로 정수의 마나를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시브의 마나 수련법덕분에 예전과 비슷한 마나를 얻어낼 수는 있었다. 그만큼 마나 수련법의 질이 낮아서 그동안 손해 본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신을 차리자 거처하는 곳에 불이 붙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의 이 현상은 주변에 불꽃을 뿌리는 것이었던 거다. 시온은 곧바로 불을 껐다.

“큰일 날 뻔 했잖아. 다음부터는 이런 현상을 좀 감안하고 조심해야겠는데.”

중급 정수부터는 이러한 이 현상도 그에 맞춰서 격렬할 것이었고 근처에 피해를 줄 것이 있다면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도 있었다.

시온은 시간을 봤다. 약속 시각이 아슬아슬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미아와 보내야 했다. 시온은 미아가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도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단순히 잠자리 욕구를 채우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뭔가 요구할 것이 있었다면 금방 얘기를 슬금슬금 꺼냈을 건데 그녀는 생각보다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었고 무난한 시간과 잠자리를 가지길 원했다.

ㆍㆍㆍ

자링 가문의 소개를 받은 건 그로부터 며칠이 더 흐르고 나서였다. 시온은 그동안 불씨 정수 세 정을 다 흡수했고 마나 안정화를 했다.

얻은 양도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이 정도만으로는 이제 다음 단계를 얻기 위한 마나를 얻는 데는 턱없이 부족했다.

세 알을 다 흡수했는데도 여전히 초기 수준이었다. 중간 단계도 가지 못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펜부르크의 거성은 지금까지 시온이 봐왔던 거성중에 가장 거대했다. 자유 도시에서도 보긴 봤지만 그래 봤자 제국 도시급이 될 수가 없었다.

제국의 도시들은 오래된 도시가 많았고 오래된 만큼 특별한 건물들이 많았다. 오히려 건축술 같은 것은 고대가 더 훌륭한 편이어서 관련 기술이 실전된 것이 많은 편이었다.

시온이 들어가려는 이곳도 그런 곳이었다. 그런 혜택이 녹아있는 곳이다.

“의외의 사람이네.”

시온을 감평하듯 말한 자는 여자였다. 마리 자링. 그녀가 말한 계약을 걸어준다는 여자는 마리 자링이었다. 마리 자링은 두 번째 여자 상속자였다.

“시온 니벨룽이라 합니다.”

시온은 그녀에게 답하듯 말했다.

“네. 반가워요. 저희 가문은 지금 일손이 많이 필요하답니다. 시온 님은 소개받은 대로 그 기준이 맞아 보여요.”

“감사합니다.”

“제 가문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시나요?”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네. 하이거가 지금 병마에 시달리고 있지요. 하이거가 죽게 되면 펜부르크의 상속은 제 언니가 가지게 돼요. 그런데 저희 가문은 적이 많거든요. 미아에게 추천받은 사람 중에는 가장 훌륭해 보이네요.”

그녀는 솔직히 말했다. 미아가 대충 말한 것치고는 시온은 뛰어난 사람이었다. 전사와 마법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말로 특수한 사람.

‘탐이 나는데. 미아가 만난다고 하더니. 보이지 않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남자로군.’

“실례지만 미아와의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시온은 미아가 그녀와 쉽게 계약을 틀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했다.

“어렸을 때 친구예요.”

‘과연 이래서 그 많은 다리를 건널 수 있었던 거구나.’

펜부르크의 거성으로 들어오면서 있는 자링 가문을 모시는 많은 귀족, 그런 귀족들도 각각의 목적에 의해 용병과 자유마법사를 고용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위의 사람들과는 계약맺기가 쉽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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