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계약(3)
“시온 경, 그 하시겠다는 마법이······.”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다. 어레이 경이 무언가 물어보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아주 열이 받은 모양인지 엔클리 경이 욕설을 퍼붓고 달려오고 있었다.
사실 시온도 이 정도의 인원에 대해서 실전을 겪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을 상대로 연습을 해보긴 해봤는데 고작 해봐야 다섯 명 정도였고 그마저도 자유마법사들이었다. 기사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시온은 침착하기만 한다면 이번 일을 손쉽게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치 석의 배치도 마나의 순서도 아주 좋았다.
시온의 망설임 없는 표정을 흘깃 본 킬번은 오히려 마음에 편해져서 급하게 외웠던 이동 경로를 떠올렸다. 시온이 식이 발동되면 움직이라고 알려주었던 것.
‘저 인간은 어레이 같은 얼뜨기가 아니다. 열 명이든 이십 명이든 가능하다. 표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지.’
시온은 설치 석을 하나둘 가동하면서 달려오는 자들의 무장 상태를 보았다. 마법에 얼마나 저항력이 있는 장비가 있는지 역시나 그런 장비를 갖춘 자는 없어 보였다.
이들이 줄 전리품과 이 일의 해결로 얻게 될 희귀 재료 그리고 대금과 새로운 기회 여러 가지가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만큼 이번 일을 해결하게 되면 손쉽게 대량의 마나를 얻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위험할수록 보상은 더욱 큰 법.
시온은 아라크네의 거미줄의 설치식을 발동시켰다. 상황은 절묘해서 어레이 경이 여러 개의 검과 섞여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말이야 거창하게 했지만, 저 인간이 얼마나 저런 검들 사이에서 버틸지 그가 자신의 말을 지킬 수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됐다.
“마법사다?!”
“마법사가 있다!”
“제기랄! 누구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지?”
“모습을 드러내 비열한 자식!”
마나가 공간에 훅 돌자 아라크네의 거미줄이 발동되었고 되자마자 역행의 힘을 느낀 참여자들이 마법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서 주위를 둘러봤다.
시온은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너희 앞에 있잖냐. 내가 그 마법사란 말이야.’
놀랍게도 당사자들은 시온이 마법사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자면 큰 축복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법사는 어떤 전투에서도 우선 죽이고자 하는 일 순위로 잡히기 마련이었다.
어쨌든 시온이 아직은 마나가 딸리는 관계로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단계적으로 강해질 예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미리 준비해둔 방향으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고 둘은 이런 혼란이 벌어지자마자 신속하게 지그재그로 몸을 스텝을 밟으며 재빠르게 이동을 했다.
“크흑. 비참한 심정이군.”
어레이 경이 결국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만큼 둘이 보여주는 상황은 누가 구경했다면 폭소했을 만한 웃기는 춤사위처럼 보였다.
여기서 모두의 생각이 여러 방향으로 스친다. 달려들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대화를 해 볼 것인지.
그것은 시온도 마찬가지였다. 시온은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어두운 시야에도 상대의 복장을 최우선으로 확인한 이유는 혹여나 마법이 통하지 않을 만한 장비를 잔뜩 든 자가 있을지, 있다면 그런 자가 몇 명이나 있을지 그런 것들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
시온은 짧은 순간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어떻게 보면 약간 과민하게 생각한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웃기는 춤사위가 삽시간에 끝이나 버렸고 둘은 양쪽의 사선 끝으로 이동해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어레이! 네놈이 결국 타락해버렸구나. 너를 단죄하겠다. 어서 목을 내놓거라!”
정 중앙에 껴있던 엔클리 경이 결국엔 성질머리가 터져버렸다. 안 그래도 괄괄한 성격인 데다가 어레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갑갑한 자였다.
그 호통에 어레이도 마음이 불편했는지 대뜸 맞받아쳤다.
“하이거 님을 배신한 네가 목을 내놔야 할 것이다. 너는 나에게 생포 당해 더러운 진실을 토해야 할 것이야.”
이 둘이 아주 명예롭게 대화를 나누는 도중 시온은 아라크네의 거미줄의 마법식을 외우느라 아주 죽을 맛이었다. 열 명이다 보니 마나가 까이는 속도가 느껴질 정도였다.
시온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결정을 내렸다.
‘서두르자.’
한편 몸의 통제를 잃기 시작한 열 명은 아비규환이 되어 버렸다. 그중에 한 명은 바닥에 쓰러지듯이 짓눌렸다. 근력이 없어서일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시온이 설치해놓은 곳은 각기 강한 부분이 있고 약한 부분이 있었다. 쓰러진 자는 재수 없게도 가장 강한 부분에 있던 것이다.
다들 무언가에 얽매인 듯한 기괴한 자세가 되어가자 어레이 경과 킬번의 시선이 시온에게로 향했다. 시온은 대체 뭐하느냐는 듯이 답했다.
“정신 차리십시오. 너무 많아서 얼마 못 갑니다.”
어레이가 그렇겠다고 답하고는 부끄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만큼 시온에게 의지하고 있는 부분이 컸다. 킬번이 첫 번째 남자를 베어버렸을 때 긴장도가 한껏 올랐다.
애초에 이번 일의 목표는 엔클리 경을 사로잡는 것이지 다른 자들의 목숨을 챙기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라면 손 속이 더욱 독해야 했는데 용병답게 킬번이 재빠르게 일격을 넣은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생명이 갑작스럽게 떠났을 때 시온은 다시금 이곳이 현대와 다른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서는 어쩐지 사람의 목숨이 상당히 가벼웠다.
당장 얼마 전만 해도 라레테저닛 가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의 입을 막기 위해서 고용된 용병들을 학살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시온도 이대로 일이 끝났을 때 패배하게 된다면 멀쩡하게 끝이 날 일은 아니었다. 엔클리 경이 배신자이든 아니든 간에 자기를 공격한 사람이 어느 쪽의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해 고통을 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일은 계속해서 진행되어 부하의 피를 본 엔클리 경이 특유의 메이스를 휘둘러 어레이 경을 작살 내려고 했다.
염동력 마법이 엔클리 경을 둘러싼 것이 분명한데도 무식하게 강한 힘으로 억지로 이겨내고 공격을 하고 있었다.
어레이 경과의 공격은 어레이가 약간 우세였다. 그것으로 보아 둘이 제대로 붙었으면 어레이 경의 머리가 이십 합내로 쪼개졌을 것이었다.
킬번 역시 여러 명의 사내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들 모두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시온의 아라크네 마법을 억지로 이겨내고 교전을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쉬웠지만 아무래도 수가 밀리다 보니 킬번은 위협적인 공격을 누적시키고 있을 뿐 딱히 한 명 두 명 끊어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시온의 차례였다. 시온은 앞에 있는 세 명의 남자를 마주 봤다. 떡대 좋은 녀석들은 아주 공포에 젖은 얼굴로 시온을 봤다.
시온의 무장과 체격을 보고는 벌써 전의를 상실한 것이었다. 이제 시간이 촉박했기에 빨리 하나둘 끝장을 봐야 했다. 시온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남자의 공격을 받았다.
“?!”
시온이 들고 있는 몽둥이는 도팽 가에서 받은 마법 스태프였다. 이것은 동시에 공격용으로도 쓸 수 있었다. 강철로 만들어서 강도가 쓸만한 편이었다.
아무리 아라크네의 마법이 관여하고 있다고 해도 상대 역시 있는 힘껏 공격했는데 검이 그냥 퉁겨져 버렸다. 균형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만큼 시온과의 힘의 차이가 현격히 났기 때문이었다. 시온은 그대로 머리통을 내려쳤다.
퍽-
뭔가 지푸라기처럼 날아가다가 엎어졌다.
“누구야?”
“쇠몽둥이?”
“저런 기사가 있었나?”
이렇게 된 거 시온은 앞으로 내달렸다. 마법이 풀리기 전에 빨리 상황을 봐야 했다. 그렇게 하나둘 뼈가 박살이 나는 소리와 함께 하나씩 바닥에 쓰러졌다.
‘과연 명품이네. 도팽가에서 얻은 물건답게 품질이 최고구나.’
과연 용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경도에 시온은 마음껏 하나씩 제압을 해나가고 있었다. 첫 번째 녀석은 머리를 맞아 생사를 알 수 없었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부러뜨린 정도로 끝이 났다.
어차피 다 자링 가문의 사람이라 너무 피를 보면 안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시온의 생각이었다.
시온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다섯 명을 박살을 내자 킬번과 상대하고 있는 세 명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앞에 있는 용병도 만만치 않지만 저기 옆에 있는 건장한 기사는 상상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어 보였다.
게다가 이들은 마법사가 어디에서 자기들을 여전히 노리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아직도 하고 있었다.
시온이 마법사라는 것을 눈치를 못 챈 것이다. 그저 특이한 취향의 기사라고만 눈치채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온도 몰랐던 사실 이들의 검술 실력은 시온이 상대하기 어려운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시온이 마법으로 신체를 제압한 것도 컸지만, 검술 실력으로는 시온과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훈련을 거듭한 인재들이었다.
다만 시온은 순수한 근력과 순발력 반사신경으로 그냥 하나씩 격파를 한 것이었다. 시온이 푸른 액을 복용하면서 알게 모르게 시온의 신체는 기사로서 성장하기 좋은 자질을 점차 갖추고 있었다.
시온이 다가가자 세 명 중 하나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손을 들려고 했지만 아라크네의 거미줄 덕에 얼굴을 박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항복하겠습니다.”
항복자가 나오고 나머지 둘도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 빈틈을 놓치지 않고 킬번이 하나를 베어 버렸다.
이렇게 되자 항복하기는 싫은 모양인지 얼굴이 벌게진 한 명이 시온에게 달려들었다. 죽자 살자 공격이었지만 시온은 방금 습득한 기술을 썼다.
무게의 방향을 반대로 잡아버리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연습을 해뒀을 뿐인데 방금 실전을 겪으면서 습득한 것이었다.
덕분에 달려들다가 옆으로 기울어져서 너무나도 간단히 시온의 공격에 늑골이 부러져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미친. 당신 괴물이오? 당신 마법사 아니오?”
킬번이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봤다. 그도 그럴 것이 시온 혼자서 여섯 명을 작살 낸 것이었다. 정말 잠깐 사이에 하나씩 박살이 났다. 그나저나 엔클리 경과 어레이 경의 결투는 점입가경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어레이 경이 궁지에 몰려 있었다. 시온의 아라크네의 마법이 점차 약해져 가고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어레이 역시 얼굴이 벌게져 있었는데 그는 지금 엄청난 갈등을 겪는 도중이었다. 이대로는 대가리가 박살이 날 것 같아 도움을 받고 싶은데 결투의 명예가 있어서 쉽사리 시온 쪽을 향해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온은 마나가 소진되어 가는 탓에 잠깐의 휴식이 필요했고 킬번은 의외의 격차에 눈치를 보고 있는 탓에 어레이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결국, 어레이가 공격을 빗맞고 거리가 벌어져 버렸다.
다시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어레이를 노려보다가 엔클리 경이 주위를 보고는 경악해서 소리쳤다.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