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304)

이중계약(4)

“........”

“시온 니벨룽?”

엔클리 경이 소리쳤다. 그가 주위를 돌아보고는 경악을 했다. 주위에 남아 있는 자는 그밖에 없었다. 몇은 죽었고 몇은 뼈가 부러져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초조해졌다. 조금 전까지의 의기양양했던 것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시온을 두려운 얼굴로 바라봤다. 그는 답을 헤맸고 곧 답을 찾아냈다.

“시온 경. 결투를 받으시오. 마법사를 따로 부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비열한 짓은 그만하고 정정당당하게 나의 결투를 받으시오.”

“그 마법사는 나요.”

“?”

“그리고 그 명예는 거절하겠소.”

“무슨 뜻이지?”

“셋이서 공격을 하겠다는 뜻이요.”

시온은 그의 요구를 간단하게 무시했다. 흔히 이곳의 기사는 결투를 걸면 응당 결투를 받는 것이 관례였다. 그것이 신이 기사에게 인정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그의 제안을 받아 이 유리한 상황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기사의 감동적인 영웅담은 흔히 이런 결투 요구에서 시작되곤 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소. 나는 시온 경 그대에게 결투를 청하겠소. 이걸 거절한다면 신들의 저주를 받을 것이오.”

“........”

시온은 여전히 그의 요청을 무시했다. 애초에 기사도 아니기에 저주를 받을만한 대상도 되지 않았다. 킬번이 웃기다는 듯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이런 빌어먹을 녀석들. 너희는 기사가 아니다. 내 검을 받아라. 모두 목을 날려 주겠다.”

시온은 품 안에서 강화 단약을 꺼내 먹었다. 짧은 효과가 있었다. 신체의 신진대사를 활발히 하고 감각을 예리하게 했다.

질세라 엔클리 경도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먹었다. 시온과 비슷한 부류의 강화단약일 것이었다. 시온은 그의 몸에서 마나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시온이 복용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은 단약인 것 같았다. 아마도 저런 것은 전쟁 도중에나 먹으려고 아껴둔 것일 것이었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일 거였다.

저게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 시온은 궁금했지만 아직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결투 제안을 받아들였다가는 낭패에 빠질 것은 분명했다.

‘원래라면 저런 멀쩡한 상태가 아니라 마비약에 취해 있어야 했지.’

그게 원래의 계획이었으나 어그러져 이 꼴이 된 것이었다.

“셋 다 동시에 공격합니다.”

어레인은 불만을 가진 듯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시온의 명령에 동의하듯 칼을 들었다. 그는 복용할 단약이 없는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의 결투로 엔클리가 그의 실력보다는 우위에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 객기를 부렸다가는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시온은 침착하게 아라크네의 거미줄의 세 번째 식을 발동시키기 위해 준비를 했다.

다른 녀석들은 이미 행동불능이 되어서 제압할 필요가 없었기에 설치식을 풀고 한 명을 제압하기 위한 마법을 다시 시전할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상한 낌새를 느낀 엔클리가 공격을 하려다가 킬번과 어레이의 공격을 받았다. 시온이 신호를 준 것이었다.

강화단약을 먹은 엔클리는 둘의 공격을 받아내고 역공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의 메이스는 중량 마법이 걸려 있어서 한방 한방이 묵직하게 날아갔다.

잘못 맞았다가는 그대로 뼈가 부러질 것이었고 머리에 맞으면 즉사를 할 게 분명했다.

킬번 역시 숨겨둔 수가 있었는지 상황이 만만치 않게 흘러가자 단약 하나를 먹었다. 그의 움직임이 한층 더 민첩해졌고, 그가 허리에 있는 구슬 하나를 엔클리에게 던졌다.

펑-

폭발음과 간단한 폭발 마법이 엔클리에게 터졌다. 엔클리의 갑옷은 그 마법을 방어해냈으나 단순한 폭발 마법은 아니었다. 연기를 만들어서 시야를 방해하는데 그 추가적인 효과가 있었다.

킬번은 그사이에 검을 한 번씩 그어댔다. 이게 바로 그가 싸우는 방식이었다. 시온은 킬번이 금패급 용병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경험이 많고 장비도 치명적인 것들을 효과적으로 섞어서 쓸 수 있었다. 필시 난전이었거나 하수를 상대했다면 킬번의 공격은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엔클리는 저력이 있는 기사였다. 게다가 강화단약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의 능력이 조금 전보다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 같았다.

저 정도라면 부작용이 심할 것이었다. 강화 단약 중에서는 부작용으로 근육이 파괴되거나 탈골되어 버리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그 정도였다. 킬번이 재주를 부리곤 있으나 전투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렇게 보자 최약체는 어레이로 판명됐다. 사실 어레이가 그렇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이 되진 않았다.

시온이 봤을 때 어레이의 문제는 장비에 있었다. 장비가 너무 평범했다. 애초에 중량 마법이 걸린 메이스에 일반 검으로 두들겨 치는 수준이니 검술을 잘 닦았다고 해도 힘의 차이를 극복 못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이 둘은 시온이 새로운 마법식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어레이가 때마침 일격을 맞아 나뒹굴었다. 갑옷이 움푹 팰 정도였다.

‘머리에 맞았으면 죽었군. 아니 이미 치명상인가?’

시온은 이 식을 만들기 전에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바로 전에 싸우던 것과 비슷하게 강철 스태프로 엔클리 경과 싸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식을 쓰는 것이었다.

시온이 새로운 식을 쓰기로 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편이 더 안전해서였다. 대신 이 식을 준비하는 동안 킬번과 어레이가 사망할 수도 있었다.

‘아라크네의 마법서의 세 번째 식은 일반 마법사에게는 계륵이지.’

시온도 움직이는 기사를 향해 써보는 건 사실 처음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세 번째 식의 제약조건은 단일 마법이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시전자의 신체의 근력과 섞인 염력 거미줄을 대상자에게 던진다는 것이었다.

좋은 장비이고 좋은 체격과 좋은 전투자세이지만 한 가지가 비어 있었다. 바로 마나 감지 장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엔클리 경은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시온이 이곳에 설치해놓았던 것은 보이지 않는 염력의 거미줄이었다.

그 거미줄들이 엔클리를 이미 똘똘 감고 있는 상황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이미 엔클리는 함정의 마지막 자락에 빠져있었다.

“흡?!”

어레이를 끝장내기 위해 내달리던 엔클리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나오며 부르르 떨었다. 시온이 본격적인 세 번째 식을 발동시킨 탓이었다.

시온의 강철 스태프는 단단한 쇠몽둥이지만 아주 간단한 특수 옵션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다른 유용한 스태프처럼 강력한 마법이 메모라이즈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시온이 소모한 마나를 대신 쓸 수 있는 마나를 창고처럼 품고 있다.

시온이 한 번 더 강력한 마법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스태프의 힘 덕분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이것이 저 거구의 기사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지금 증명이 되고 있었다.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엔클리는 꼼짝을 하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시온은 자신의 손에 엔클리를 붙잡고 있는 거미줄이 걸려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된···. 된 거요?”

눈치가 빠른 킬번이 시온에게 소리쳤다. 시온이 말했다.

“아마도?”

“대체 무슨 짓을······?! 이 정도의 마법사가 숨어 있었다고?!! 어디냐!!”

시온도 잘 몰랐지만 시온의 근력은 이미 기사를 능가하고 있었다. 고로 그 근력에 기반을 둔 염동력 거미줄은 고리 두 개를 능가한 강력한 마법이 되어 엔클리를 제압하고 있었다.

사슬에 꽁꽁 묶인 것처럼 말이다. 시온은 있는 힘을 다해 거미줄을 왼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엔클리 경이 쇠사슬에 꽁꽁 묶인 자세로 나뒹굴었다. 메이스가 땅바닥에 허무하게 떨어졌다.

“치워버려!”

시온이 말하자 기다리고 있던 킬번이 민첩하게 뛰어나가 메이스를 발로 차버렸다. 그런데도 그걸 엔클리는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핏줄이 솟아오르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시온은 그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근육이 요동을 치는 것을 느꼈다.

“킬번 한 대 후려쳐!”

한 대를 후려치라고 했건만 킬번은 여러 차례 엔클리를 내려쳤다. 덕분에 요동이 확연히 줄었다.

“됐습니까? 경?”

“아니. 무장 해제시켜. 완전히. 그리고 포박도 해야 하고.”

엔클리 경을 완전히 묶어버리고 나서 시온은 주위를 쓱 훑었다. 부상자가 난무하고 사망자도 있었고 아주 개판이었다.

전투가 벌어진 곳이 외곽이진 곳이었고 그나마 근처에 사는 사람은 겁을 먹은 상태인 데다가 관련 담당자는 시온과 같은 편인지라 이들을 도울 자는 없었다.

‘마법사가 하나 있었지.’

시온은 달려오는 와중에 마법사 하나를 확인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마법사라면 아공간 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마법사는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자빠져서 기절해버린 자였던 것이다. 확인해보니 고리가 하나인 마법사였다. 시온은 그에게서 아공간 반지를 챙겼다.

“어레이 경. 움직일 수 있습니까?”

“가능···. 합니다.”

어레이 경이 장비가 좋지 않다는 것은 취소해야 했다. 중량이 더해진 메이스를 맞았는데 일반적인 장비로 가슴 부분에 맞고 살아남을 리가 없었다. 적어도 가슴 쪽에 걸어둔 심장 보호대는 진짜배기였다.

“아는 사람 있습니까? 엔클리 경 하나만 운반하기에는 포로가 좀 많아졌는데요.”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거 제가 큰 빚을 진 것이 됐습니다.”

그가 공손히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는 시온을 처음 봤을 때의 그런 불신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에는 어떤 존경심마저 담겨 있었다. 그만큼 시온이 보여줬던 행동은 파격적이었지만 효율적이었다.

“빚? 그렇긴 하지요. 금화로 갚으시면 됩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약속했던 마비약은요. 그리고 왜 공격한 겁니까?”

이제야 쌓아뒀던 질문을 토해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비약을 분명히 먹었는데, 제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들지를 않더군요. 엔클리 경이 그 정도로 건강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

시온은 그 말을 듣자마자 엔클리에게 갔다. 엔클리는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을 대충 훑어봤는데 목에 걸린 목걸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해독 목걸이로군.’

그것을 풀어 완전히 손에 넣고 나서야 용도를 완전히 알 수 있었다. 녹색의 빛을 띠고 있었고 마비약을 해독한 탓에 녹색 알맹이들은 완전히 탁해져 있었다.

한도 내로 한 번은 막아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 정도라면 엄청나게 가치가 있는 물건이 분명했다. 하는 행동으로 봐서 자기가 마비약을 먹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시온은 슬그머니 목걸이를 아공간 반지에 넣었다. 중량 메이스도 시온이 챙겼다. 이리저리 휘둘러보니 그 무시무시한 타격 소리가 이해가 확 되었다. 중량 마법에 최하급 가속 마법까지 걸려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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