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304)

이상한 지도(1)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호한 형태의 지도였다. 시온은 그것을 가지고 펼쳐 보았다. 완전하지 않았으나 뭔가 재질이 특수했다. 단순한 종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붉은 인장까지 찍혀 있는 것이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전달해주기 위한 그런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언어가 섞여 있었는데 시온은 그중에 고대어만 골라서 읽었다. 지도가 불안정하기에 고대어도 완전하진 않았다.

“마나를 넣어라. 간단하군.”

고대어는 마나를 이렇게 저렇게 비틀어서 넣으라는 것을 정교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일종의 암호였다. 고대어에 능숙하지 않다면 이런 암호를 해석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제국은 오래되었고 그 제국의 틀이었던 제국도 존재했다. 그때의 것들을 모두 고대의 물건이나 고대어라고 치부를 했다. 시온이 보기에 이것은 그쪽의 물건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게 왜 그 마법사가 가지고 있었던 거지?”

겨우 고리가 한 개였던 마법사다. 그 마법사는 지금 엔클리 경이 갇힌 곳에 갇혀있을 것이다. 시온은 비슷한 수준의 그 마법사의 배경에 대에서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뭔가 하자가 있어 보이는데.”

고대어를 다 해석했지만, 지도는 애초에 삼 분의 일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이것을 함부로 시동시키는 것은 위험할지도 몰랐다.

어떤 물건은 저주가 걸려 있어 도둑을 방지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도둑이라는 것이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오래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시온은 잠시 고민을 했다. 해볼지 말지 그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에 해석이 어설펐다면 시동 방법을 완전히 시전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온은 이런 해석에 대해서 애먹는 일이 전혀 없었다. 다행히도 띄엄띄엄 있는 부분은 대략 짐작해서 해석할 수 있었다.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시온은 이것에 시동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것 외에는 고리 한 개의 마법사인지라 정수 비슷한 것도 없었다.

하기야 하급 정수가 있다면 본인이 먹으면 먹었지 남겨 두진 않았을 것이다.

잠시 뒤 시온은 지도를 시동하는 데 성공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는데 딱히 저주 같은 것이 걸려 있지는 않았다. 고리 하나짜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경계를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고대의 물건이라는 것도 아직은 확실치 않았다. 그렇기에 마음 놓고 여러 번 시도했다. 그렇게 세 번째 시도 끝에 지도가 시동이 되었다.

누가 보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특히 시온에게 서품과 자리를 제안했던 에드바르가 봤다면 놀라다 못해 파헤칠 정도였을 것이다.

세 번에 해결하기에는 해석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던 것이다. 어쨌든 시온은 시동이 되어 가고 있는, 지도 비슷한 것을 보았다.

녹 반지와 비슷하게 종이는 특정한 형태를 환영 마법으로 현실에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시온은 그 광경이 신기했다. 녹 반지도 비슷하게 정보를 알려줬지만, 녹 반지는 고작 해봐야 정보의 나열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것은 구체적인 지형지물이 요약되고 있으니 그 수준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적인가? 아니면 그쪽 지형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한데···.”

처음에 가졌던 의문이 맞았다. 지도는 불안정했고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삼 분의 일이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녀석을 찾아가 봐야겠군.’

이 지도를 가지고 있던 마법사를 찾아가 정보를 물어 답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아무래도 시온이 예상하는 그것이 맞는다면 이 지도의 가치는 상상 이상일 것 같았다.

유적 사냥은 예나 지금이나 활발했다. 난이도가 있어 원정 인원을 채워야 했지만, 그곳을 돌파하는 데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지도였다.

이미 어느 정도 발굴이 되어가고 있는 지도의 가치도 높은데 아예 미발견의 유적지도라면 그 가치는 더욱 높을 것이었다.

ㆍㆍㆍ

시온은 엔클리 경이 갇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곳은 비밀스러운 건물이었다. 입구는 신전 입구처럼 생겼는데 그 밑으로는 지하 던전이 이어져 있었다.

펜부르크 성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이런 비밀 던전에 엔클리 경과 그때 결투했던 자들을 빼돌린 것이었다.

시온은 마리 자링의 수하들에게 유명해서 따로 신분을 증명해야 한다거나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시온도 그 점에 대해선 놀랐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시온 경이라고 인사를 하는데 사실 그때의 일을 제외하면 대외적인 활동을 한 것은 한 개도 없었다.

‘마리 자링이 서임권을 밀어준다는 게 진짜라는 거군.’

아무래도 자기가 진짜로 편을 만들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미리미리 소개하기 마련이었다.

이곳 역시 어레이 경과 같은 비슷한 급의 기사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 역시 한 인상했는데 자크 경은 어레이 경의 친구인지라 그때의 일을 소상히 들은 모양이었다.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시온 경. 반갑소. 명예가 높다더니 전투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단련의 상태구려.”

“자크 경. 반갑습니다. 제가 온 것은 한 명에 대한 면담을 요청하고 싶어서입니다.”

“면담이라 어떤 것인지?”

“가벼운 궁금증 같은 것입니다. 엔클리 경과는 관련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껄껄거리고 웃었다. 그만큼 시온의 얼굴을 보고 나서 호감을 산 것이었다. 시온이 말하는 바도 나름의 추측을 끝낸 상태였다.

가벼운 것이면서 말하기 껄끄러운 것이라면 몸값과 관련이 있는 것일 것이었다.

하지만 시온에게는 자격이 있었다. 대부분은 시온이 쓰러트리고 잡아온 포로였다. 이곳에 구속하고 있다고 해도 시온이 포로를 넘기라고 한다면 일정 한도에서는 넘기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단, 엔클리 경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엔클리 경은 지금 경질 시키려는 인물이었고 영주의 암살 시해 음모에 얽혀 있는 인물이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지.’

“역시 시온 경. 그 부분에 대해서 짚어주시는군요. 엔클리 경은 현재 엄중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마리 자링님이 직접 오셔서 압박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와의 대화를 제외한 다른 것은 마음껏 하셔도 됩니다. 짐작이 갑니다마는.”

그래서 시온은 손쉽게 독방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독방의 상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던전과 비교를 하자면 현대의 감옥은 천국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곳에 오래 있다가는 건강을 잃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문이 열리자 한 남자가 어설프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횃불이 걸려 있어 불빛은 충분했다.

남자는 시온이 그때 봤었던 그 마법사가 맞았다. 그 마법사는 별다른 마법을 한 번도 쓰지 못하고 시온이 만들어 놓은 아라크네의 거미줄 덫에 걸려서 단번에 신체의 자유를 잃었다.

장비도 부족하고 그것을 대비할 만한 기민함을 갖춘 자는 아니었다.

“날 알아보겠나?”

“?!”

“한 번 더 묻지. 나를 알아보겠나.”

시온은 보안상 문제로 문을 닫았다. 그러나 아무런 걱정은 없었다. 마법사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리는 자유로웠지만, 손은 포박되어 있었고, 고리 하나를 연성한 마법사의 제약이 얼마나 심한지는 시온이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게다가 육체의 능력은 한술 더 떠서 그를 열 명을 가져다 놔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차이가 컸다.

“압니다. 시온 니벨룽. 마리 자링님이 고용하신 새로운 자유기사. 그리고 그때 그 전투에서 우리를 포로로 만든 장본인이시죠.”

그는 시온을 알아봤다. 잊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시온은 지체하지 않고 그에게 가지고 있던 질문은 던졌다.

“네가 가진 아공간 반지는 내가 차지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특이한 물건을 발견했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나 역시 마법사인지라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더군. 그래서 직접 찾아온 거다.”

그가 아주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온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히 관련 정보를 알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뻔한 흐름이었다. 시온은 예상하고 왔다. 그가 일단은 숨길 거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표정에서 이미 읽은 상황인지라 강력한 방법도 쓸 계획이 있었다.

어차피 명목상 마리 자링의 포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에게 할당된 포로였다. 즉 어느 정도 선에서는 고문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시온은 무자비한 고문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약간의 위협과 마법사다운 자백을 요구하면 될 것이었다.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자백의 반지라는 것이 도움될 것이었다.

시온은 말없이 그의 뺨을 한 대 후려쳤다. 힘을 한참은 빼고 쳤는데 무슨 지푸라기 날아가듯이 날아갔다. 때린 시온도 당황할 정도였다. 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헉헉. 잠깐만요.”

마법사와의 육체 차이는 상상 이상이었고 그의 입에선 벌써 한 줄기의 피가 흘렀다.

“이제 생각이 나나? 자크 경이 얘기해주지 않은 모양인데 너는 영주 암살 건으로 들어와 있다.”

“누···. 누명입니다! 저는 아무런 관련도···. 믿어주십시오. 경!”

“생각이 나냐고 물었는데.”

시온이 가까이 가자 그가 뒤로 물러서 벽에 바짝 붙었다. 다리는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모···. 모릅니다. 그것은 그냥 가지고 있던 물건입니다.”

“그래? 이것이 무엇인 줄 아나?”

시온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자백 반지를 그의 눈앞에 보여줬다.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백 반지의 무서움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그것을 쓰시려는 겁니까? 그것은 마탑에서 금지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그래? 그러면 더 잘 됐군. 이게 어떤 물건인지 알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나는 네가 가지고 있던 물건의 출처에 대해서 알아야겠다.”

자백 반지는 상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일정 내용을 말하게 하는 용도가 있었지만 미숙하거나 운이 없다면 대상자는 그대로 기억의 상당량을 잃어버리거나 최악의 경우는 바보가 될 수도 있었다.

남자 역시 마법사이니 손가락이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기억을 날려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있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지식과 지혜는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 물건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이미 내가 시동을 했거든. 그것은 불완전한 지도더군. 맞나?”

“?!”

“안 그래도 자백 반지를 연습해볼까 했는데 잘됐지. 네가 그 대상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미숙하시단 말입니까?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된단 말입니까.”

“나야 모르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써줘야 하나?”

“몸값을 지불하겠습니다. 경. 제발 사용하지 말아 주십시오.”

“거부한다.”

시온도 굳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온도 이것에 당할 뻔했던 추억이 있었다. 이것은 최대한 그에게서 정보를 끌어내기 위해 그러는 척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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