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지도(2)
시온이 다가가자 마법사는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벽 때문에 꼼짝을 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다. 시온은 그의 이름을 물었다.
“초이입니다.”
이름이 특이했다. 그러고 보니 혼혈로 보였다. 아무래도 다른 곳의 피가 섞인 것 같았다.
“그래. 초이 그래서, 내 대답에 말할 건가 아니면 강제로 말할 건가? 선택이다.”
시온은 그의 눈앞에 자백 반지를 시동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실제로 마나도 넣었다. 마나가 들어가자 그 안에서 괴이한 소리가 났다. 말이 자백 반지이지 끔찍한 원혼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단파란 놈의 취미를 잘 알만하군.’
자세히 들어보면 고문했던 자들의 단말마였고 그 소리는 시온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시온 역시 그렇게 될 뻔했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린 초이가 결국 항복하고 소리쳤다. 초이도 시온과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다만 단파라는 자의 존재를 모르는 초이는 시온이 이 단말마의 원흉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시온 경. 용서하십시오. 말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고문을 견디기에는 너무 나약한 인간입니다. 보아하니 단순히 기억을 잃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신을 나가게 하시려는 것이군요!”
“그건 오해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나는 이것을 다루는 데 미숙하거든. 이것의 원래 주인은 나한테 맞아 죽었다.”
시온은 너무나 겁에 질려 버린 초이에게 어느 정도 진실은 알려 주었다.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겁에 질려버린 나머지 시온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도 않았다.
“그 지도는 제 스승님에게 전달해 드릴 물건이었습니다. 제발 그것을 치워주세요.”
시온은 그의 얼굴에 가져다 대던 반지를 거뒀다. 마나 공급도 끊었다. 원한 서린 소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온처럼 자유롭게 떠돌거나 조직의 봉신으로 들어가 배우는 마법사도 많지만 이렇게 스승을 모시는 마법사도 많았다.
사제 관계라는 것은 강력하게 작용을 했다. 시온은 이제 초이가 쉽게 말을 꺼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먹었으면 됐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하면 아무런 일도 없을 거다. 나는 궁금증을 풀고 싶은 것이지 너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다. 하지만 거짓이 있다고 생각이 들면 이 일은 재개될 것이다.”
“물어보십시오.”
“그래서 이 물건의 정체가 무엇이지?”
“저도 안에 있는 내용물은 잘 모릅니다. 스승님이 가지고 있던 물건인데 저는 그것을 보관하다가 전달하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스승이 누구지?”
“자이펀입니다.”
“자이펀이 누구지?”
“오 서품을 받은 마법사입니다.”
서품 얘기가 나오자 바로 단파 이상의 마법사라는 느낌이 났다. 적어도 이 물건의 품질을 보장하는 하나의 증거였다.
“그래서 너는 왜 여기에 있었고?”
“엔클리 경과의 인연이 있어 그 일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이 물건을 전달하려는 대상이 어차피 한 달 뒤에 돌아오거든요.”
“그자에 대해서도.”
초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말하기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만약에 제가 말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저는 모진 일을 당할 것입니다.”
“여기서 바보가 되느냐 아니면 나중에 죽느냐 인가. 적어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보는 것이 낫지 않겠나.”
“불크 공작님입니다.”
“?!”
불크 공작이라면 유서가 깊은 공작 가문이었다. 자링 가문은 펜부르크 하나를 소유하고 있지만, 공작 가문은 대여섯 개의 도시를 다스리는 가문이었다.
‘단독으로 유적 원정을 꾸릴 수 있을 만한 가문이로군.’
이제야 물건의 의문이 풀리고 있었다. 아마 다른 조각은 불크 가문이 가지고 있을 터였다. 시온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부분일 것이었다.
대강의 이야기를 들은 시온은 혀를 찼다. 좋은 물건엔 비밀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뭔가 단순한 사제관계가 아닌 것 같은데.’
시온은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녀석의 몸을 살폈다. 뭔가 이상한 것이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네 스승인 자이펀이 너를 죽이려고 하는 것인가?”
“?”
“네 몸에 이상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맞습니다. 자이펀은 스승이라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저와는 노예 관계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손쉽게 제거할 수 있게끔 말이지요.”
“그래? 그러면 너는 죽겠구나. 물건도 빼앗기고 나에게도 정보를 내놓았으니.”
초이가 바로 공포에 젖었다. 시온은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초이란 녀석을 도와주면 이 지도에 얽힌 정보를 더 얻거나 얻을 수 있는 방편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면 나에게 협력할 거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너에게 자유를 주고, 너는 나에게 지도와 관련된 것에 협조하는 것이지. 손해 볼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네 스승이라는 자는 네 몸에 아주 좋지 않은 씨앗을 심은 것 같다.”
시온은 그의 배 쪽 부분에서 불길한 마나의 점 하나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이거 외과수술을 해야 하나?’
ㆍㆍㆍ
시온은 일단은 돌아와서 붉은 호박 수목을 꺼내 살펴보았다. 금박의 정수 핵심 재료 중 하나였다. 게다가 말라 있는 정도가 낮아서 품질이 희귀종이며 오래된 것을 감안해도 상급으로 보였다.
이렇게 재료가 좋을수록 결과물도 좋기 마련이었다.
‘이제 필요한 게 두 종류인가.’
그중에 하나를 시온은 기르고 있었다. 이것을 기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의문이 많이 들었지만, 대부분의 푸른 액을 소모 시키면서 실험해본 결과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던 것이다.
‘눈물의 홍수.’
시온이 기르고 있는 것은 눈물의 홍수라고 불리는 재료였다. 이것은 거의 다 자라서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재료라면 보통 녹색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눈물의 홍수는 파란색이었고 눈물 모양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다섯 종류의 씨앗 중 유일하게 재배에 성공한 것이었고 시온도 이것을 키워내면서 이 정도로 자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씨앗에서 키울 수 있는 게 가능할지에 대한 여부에 대해서 도박수로 실험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 이 일은 성공으로 끝이 나고 있었다. 경매장에서 눈물의 홍수를 기다렸다가는 반년이 넘어도 손만 빨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매물이 없었다.
‘앞으로 한 달 정도?’
이 속도라면 완전히 재료로 쓸 수 있는 과실을 맺을 때까지 한 달 정도가 더 걸릴 것 같았다. 눈물의 홍수는 완전히 자라게 되면 딱 한 번 작은 열매를 쏟아내는데 이것이 금박의 정수에 재료가 됐다.
더불어 시온은 의뢰를 맡겼던 것을 받아왔다. 골렘 시동석이었다. 시온은 단파에게서 얻은 골렘 제작법에서 가장 낮은 급의 골렘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골렘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태도 형태였지만 시동석이 중요했다. 시온이 가지고 있는 건 두 가지의 핵이었다. 이 중 몬스터의 핵을 의뢰했고 그것이 작은 형태의 시동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의뢰에는 실패율이 있어서 실패한다면 그 값을 되돌려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실패하게 된다면 골렘 제작을 포기하고 관련 마법서를 팔아버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급은 낮았지만 시동석이 무난하게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받자마자 그것을 받아왔다.
펜부르크는 규모가 있는 도시답게 골렘 제작에 필요한 재료도 무난하게 갖추고 있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자금 사정도 있고 연습을 해야겠다는 명분으로 시온이 준비한 것은 진흙으로 된 골렘의 틀이었다.
고급 재료라고 한다면 각 속성에 어울리는 특수 재료를 섞어 외형이나 그 행동에 특수한 효과를 부여할 수도 있었다.
펜부르크에는 불의 속성이 담긴 뜨거운 돌도 팔았는데 시온은 그것을 구매하지는 않았다. 일단 그 정도의 틀에는 그만한 핵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골렘을 만들어 보는 것은 그저 탐색 정도에 불과했다.
“뭐 하고 있어?”
시온이 밖에서 진흙을 응고시키고 있자 궁금증이 생긴 미아가 와서 물었다.
“골렘.”
“만들려고? 그런 마법도 할 줄 알아? 그 계열은 아니지 않아?”
“그냥 시도해 보는 거다.”
그녀에게는 그렇게 둘러댔다. 아무래도 마법사라는 자들은 여러 일에 분화가 되어 있었다.
시온은 여러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게 아니고 자유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염동력 마법사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렇게 활약을 하기도 했고 말이었다. 골렘 역시 골렘만 연구하는 마법사가 따로 있었다. 미아가 의문을 가진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금화 아깝지 않아?”
“취미.”
“흐음.”
그녀가 턱을 쥐고 시온이 하는 바를 살펴봤다.
‘도통 알 수가 없는 사람이란 말이야. 저런 기술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저것을 배우려면 마법사의 탑 소속이어야 할 건데. 그쪽은 아니었단 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다. 시온이 하려는 행동은 제작 방법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자유 마법사가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골렘 제작법 같은 것은 경매장 매물로 잘 나오지도 않았다. 시온은 이번에 경매장을 들리면서 그것을 깨달았다.
단파가 생각보다 좋은 물건을 시온에게 던져준 것이었다. 골렘 마법서는 골렘의 제작 방법도 소개되어 있지만, 그것을 구동하는 것과 여러 가지를 설정하는 방법도 메모라이즈가 되어 있었다.
이 반 메모라이즈를 통해 골렘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시온이 만들고 있는 건 허리의 반밖에 오지 않은 형태였다. 시온은 이 정도도 어렵다고 보고 있었다.
그만큼 골렘 전용 마법사가 있는 것은 그만큼 마나가 많이 들고 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아는 시온이 하는 바를 가만히 구경하다가 누군가가 그녀를 찾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다. 여전히 자유마법사의 무리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하는 건 미아였다.
이번에 시온이 만들어 낸 성과 덕분에 미아 소속의 자유마법사들은 자링 가문의 일거리를 몰아받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시온은 하나하나 굳혀가던 덩어리 형태를 어느 정도 형성하는 데 성공 했다. 시동석의 위치에 시동석을 넣었고 골렘 마법서의 구동어를 외웠다.
특이한 형태의 마나 흐름을 따라 골렘을 집중하던 차에 골렘의 두 눈에 서광이 들었다.
‘됐나?’
시온은 단번에 성공했다는 것에 믿기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계약을 맺는 일이었다.
이지가 없는 것이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골렘에 들어가는 것은 가장 하급의 자연 정령 같은 것이었다. 의사를 갖지는 못한 그저 떠도는 것을 집념체로 만든 수준이었다.
시온은 계약할 수 있을 만한 집념체의 종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종류가 많았다. 이럴 때는 자질이 나쁜 것이 오히려 좋았다. 원하는 속성으로 골라 넣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