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304)

난투전(1)

기사에게나 용병에게나 난투대회는 중요했다. 기사에게는 명예와 더 나은 보직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용도였고 용병에게는 용병 패의 승단에 크게 작용했다.

그러니 참가자들은 많으면 수천 명에 이르렀다. 펜부르크는 수천 명까지의 참가자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에게는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시온이 도착한 건물은 펜부르크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 중 하나였다. 많은 인물을 수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난투전 외에도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는 건물이었다.

어레이 경은 이곳의 관리를 맡아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시온을 발견한 어레이가 곧장 찾아와서 말했다.

“오셨습니까. 시온 경.”

“사람이 많군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아무래도 자링 가문에서 여는 난투전은 얻을 게 있으니까요. 작년보다 한참은 적은 편입니다. 자링 가문의 상황도 여의치 않고 바로 근처에서 영지전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곳에서 공을 세우는 것이 더 빠르겠죠.”

시온의 등장은 다른 자들을 자못 긴장하게 했다. 시온의 이름은 이제 펜부르크에서 어느 정도 알려졌었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온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완전히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신분의 증명이 필요했다. 물론 시온은 이런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었다.

본격적인 대기실에는 많은 기사와 용병들이 있었다. 안면에 익은 자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자도 있었고 경매장에서 유심히 봤던 인물들도 있었다. 시온의 조심히 그들의 수준을 어림잡아 봤다.

‘엔클리 경 정도는 없어 보이는데.’

“아, 시온 님.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리 자링의 시종인 후안이 아는 척을 하며 나타났다. 그는 시온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은근히 시온이 겁을 먹었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시온은 이런 곳에서 함부로 표정을 드러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결국, 시온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후안은 내심 놀랐다.

“시온 님은 긴장하지 않으시군요. 난투 대회 이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비슷한 거라도 많이 겪으신 겁니까?”

후안은 나이도 어린데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는 시온을 부러워하며 말했다.

상식적으로 시온이 가지고 있는 마법사로서의 가치나 기사로서의 재능은 양립하기 힘든 것이었다.

여기에 대한 비밀은 시온만이 알았다. 선조의 유물과 요행이 연이어 따라온 결과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난투전은 처음입니다.”

칼을 갈고 있던 자도 두셋이 모여 내기를 하던 자들도 여러 가지 가상 연습을 하던 자들 모두 시온이 내뱉은 단어에 안도했다.

각자 하던 일에 집중하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 은연중 시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고 있었던 거였다.

‘보아하니 결승전에 올라가려면 운이 있어야겠군.’

시온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봐도 난투전은 그냥 미친 시합이었다.

현대인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냥 개싸움이었다. 차라리 마상창대회나 결투 대회는 일대일이라는 명분으로 서로의 기량을 겨루기라도 하지 난투전은 그런 제약이 없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이 생기는 대회답게 참가하는 녀석들도 뭔가 패가 갈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난투전은 개인전이었다. 그야말로 난투를 위한 대전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레이 경이 부탁한 그 녀석은 어디에 있지.’

역시나 마리 자링의 사람답게 어레이 경의 일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후안이 새로운 남자를 눈짓으로 알려줬다.

시온 보다 더 어렸다. 실제 나이로 따지자면 시온은 제법 나이가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표면적 나이는 어리다. 그런 시온보다더 더 어렸다.

그야말로 이곳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준이었다. 어차피 이곳에서의 성인과 성인이 아닌 자를 구별하는 기준은 고작 해봐야 성년식을 치렀는지 안 치렀는지 아닌지로 나뉘었다.

그마저도 주먹구구식인 데다가 사는 지역마다 애매하게 달랐고 사냥을 전제조건으로 삼는 곳은 사냥이라는 사냥물의 조건만 충족하면 열세 살 정도라도 성인으로 취급받을 수 있었다.

“맞나?”

“필립스라고 합니다. 경.”

한눈에 봐도 지나치게 긴장한 상태였다. 시온은 어레이에게 따로 조건을 더 달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건 그냥 초짜가 아닌가.

너무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도 어린데 한두 해 정도 더 수련을 시켰다가 참가시키는 것이 맞아 보였다.

“긴장 풀어라. 괜히 긴장하면 원래 실력도 나오지 않아. 난투전은 위험하니까 최대한 안전 위주로 행동해.”

누가 들으면 난투전에 여러 번 참여한 것처럼 들릴 말투였다. 그러나 시온은 벌써 두 번의 전장을 겪었다. 난투전이라고 해봐야 그 두 번의 긴장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수준일 거였다.

“시온 경에 대한 얘기는 다섯 번 정도 들었습니다. 분명히 전국구가 되실 기사분이십니다. 눈으로 보니 느껴집니다. 이번 난투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

시온은 필립스가 사회생활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낯뜨거운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이 어레이와 똑같았다. 사촌쯤 되는 것 같았다.

‘전국구 기사라, 나는 마법사지. 기사는 몸값 올리기 정도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온이 후안에게 이끌려 간 곳은 대진표가 있는 대 회랑이었다. 넓은 수용 공간을 자랑하는 곳다웠다.

가운데에는 대진표가 있었고 한쪽에는 관리자들이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나눠주고 있었고 각종 노점상에 식사할 수 있는 곳, 간이 대장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사적으로 금화를 벌기 위해 온 의료마법사들 다양한 군집이 있었다.

설명하는 자는 딱 봐도 규칙 같은 것을 얘기하고 있을 듯했다. 난투전이 사망자나 부상자가 속출한다고 해서 아무런 규칙 없이 상대를 공격하는 건 아니었다.

머리와 목을 비롯해 각종 치명적인 곳을 무기로 공격하는 것은 금지였다. 공격의 방향은 언제나 갑옷으로 잘 보호된 곳을 공격해야 했다.

그래서 난투전에 참가하려면 갑옷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무기는 그냥 넘어가 줘도 갑옷이 급이 떨어지면 아예 참가가 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는 신기하단 말이지.’

갑옷의 단단한 부분을 공격했는데 상대가 항복하지 않으면 죽일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명예에 절박한 자들은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시합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다른 규칙이 부여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마법이 걸린 쇳조각.

네모난 쇳덩어리 하나를 갑옷에 달아주는데 갑옷에 입은 충격을 계산해서 색이 변하는 마법 보조 도구였다.

이것의 색이 점차 변해 빨간색이 된다면 그자는 여유가 있다고 해도 탈락이었다. 반대로 빨간색으로 변해버린 자를 공격하면 안 됐다. 그렇게 되면 실격처리가 된다.

ㆍㆍㆍ

대진표라고 하지만 일대일 같은 것은 아니다. 수가 많아서 대략 구분을 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대진표라기보다는 자리표였다. 각자의 자리에 가서 신호가 나면 난투전의 시작이었다.

시온은 주위에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설치했다. 난투전이라고는 하지만 마법사가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없었고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없었다.

애초에 마법사가 이런 난투전에 참가할 확률이 전혀 없었다. 참가 하기 위한 갑옷을 입으려면 경량화 마법이 아무리 고단계가 걸려 있다고 해도 기본 체력이 있어야 했다.

거기에 무기까지 휘둘러야 하는데 마법의 비밀에 빠진 자들이다. 둘 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온 이로군. 소문은 잘 들었소. 이곳에 나와 같이 배치되다니 운이 없구려. 보아하니 메이스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군. 항복한다면 지금의 명예를 잃지는 않을 것이오.”

난투전이 시작되고 반대 벽에서 나온 남자는 생각보다 수준이 높은 자였다. 시온은 그를 몰랐다. 하지만 어레이 경보다는 수준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미줄에 걸렸군.’

아무리 실력이 높다고 해도 운이 나쁜 것은 오히려 상대 기사였다. 기사는 대범하게 걸어오는 탓에 시온이 미리 설치해둔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옭아졌다.

시온이 메이스를 들자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대체 엔클리 경을 어떻게 잡아낸 것이지? 잘못 봤나 했더니 엔클리 경의 무기가 맞는군. 하지만 그런 실력으로는 엔클리 경의 공격을 받아낼 수가 없을 것인데.”

여기저기서 전투가 벌어지는 소리가 났다. 슬슬 시작이었다. 난투전은 속도감 있게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도 중요했다. 기사가 배점이 높았고 용병은 낮았다.

최대한 점수를 많이 내야 하는 것이 이 난투전의 묘미였다.

그가 의문을 거두고 마음을 먹었는지 시온을 향해 달려왔다. 단번에 몸통 공격을 하겠다는 심보였다. 난투전의 공격 루트는 지극히 단순했다.

그러나 그의 몸이 한순간 옭아매 져서 균형을 잃을 뻔한 것도 동시였다.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법?!”

시온이 내달리자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런 비열한!”

“이게 내 답변이다.”

엔클리 경의 메이스가 사정없이 기사의 흉부에 들이박혔다. 중량 마법 가속 마법, 그리고 시온의 육체가 만들어진 힘은 대단해서 그가 허망하게 허공에 떠버렸다.

그의 쇠 구슬이 단번에 빨간색이 돼버린 것은 물론 이었다. 그리고 표식 하나가 남았다. 시온이 순번이 쓰여 있던 것이다.

구경하던 자들이 놀란 것도 동시였다. 시온이 쓰러뜨린 자는 펜부르크에서 급이 되는 기사였기에 그랬다.

모두 수군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레이 경뿐이었다. 시온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본 그였기에 시온이 저 운수 나쁜 배치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부지리를 노린 것인지 타격음이 끝나자마자 다른 자가 재빠르게 시온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그는 시온을 발견하고는 달려드려다가 얼어붙었다. 시온의 구슬은 한 곳도 맞지 않은 본래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두 놈째.’

시온은 걸었던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당겨 다음번 녀석도 일격에 처리했다.

어떻게든 시온에게 반격을 하려고 했지만, 몸이 부자연스러운 데다가 시온의 육체 능력은 푸른 액 때문에 이미 용병 수준이 아니었다.

단번에 두 번째 빨간색을 만든 시온은 쓰러진 자들을 내려보았다. 단번에 끝냈기에 숨이 가쁘지도 않았다.

둘은 무거워진 갑옷 탓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빨간색으로 변하게 되면 못 움직이게 하는 마법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중량 마법 수준이라 참고 움직여도 상관은 없지만, 그 상태로 상대에게 달려들면 실격 정도가 아니라 중벌이 내려졌다.

용병이든 기사든 간에 큰 이미지 손상을 입게 된다.

낙담한 두 명의 대화를 무시하고 시온은 이 안으로 들어올 나머지 사람을 기다렸지만 그런 자는 더는 없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최대 효과는 이런 식의 설치 공격인지라 그게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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