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투전(2)
난투전은 인원이 있어서 바로 개싸움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구역으로 나뉘어 한 구역 내에서의 승리자가 좀 더 통합된 구역으로 움직이게 된다.
더 작게 구분하자면 방 하나 크기의 공간이었다. 작은 벽 하나만 쳐있는 공간. 위는 뻥뻥 뚫려 있는데 이것은 관객들을 위해서였다.
시온은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점점 더 커지는 환호성도 느꼈다. 이곳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콜로세움 같은 살인 결투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어떻게 보자면 현대에서는 죽어도 일어날 일이 없는 자극적인 도박이 존재하다는 뜻이었다. 사형수끼리 칼을 맞대고 생사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권리였다.
어쨌든 지금 상황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온은 구경꾼들의 광기와 흥분으로 차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한 붉은색이 아니었군. 기사는 삼점, 용병은 일점, 그런데 이자는 오점인가?’
시온은 오점이라는 점수표를 보아 상대가 얼굴을 모르지만, 급이 높은 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그가 내뱉은 말들이 허세는 아니었다.
정면으로 맞붙었다면 낭패를 봤을지도 몰랐다.
엎어져 있는 두 명에게 머물러 있을 시간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점수를 더 확보해야 했다. 난투전의 특징 중 하나였다. 최종까지 살아남지 않아도 이곳의 우승자가 될 수 있었다.
총점수만 높으면 되는 것이다.
시온이 그곳을 나오자 이미 두 명의 사내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 사이로 한 명이 엎어져 있었고 그의 쇳덩이는 빨간색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온이 그곳을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곳을 들어간 것은 에밀리온 경이었다.
에밀리온 경은 난투전의 우승 후보 중 하나였다. 에밀리온 경이 여기에 있는 자들을 모두 무시하고 시온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 것은 당연히 시온을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치를 보던 용병들이 서로에게 검을 겨눈 것은 동시였다. 그들은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칠 작정이었다.
떨어진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점수를 높여야 하는 것이 난투전의 핵심이었으니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나 다른 구역으로 도망치는 것도 좋은 선택지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시온이 나왔으니 예상을 깬 것은 물론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시온이 에밀리온 경을 이겼다고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둘을 공격해야겠군.’
시온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한 명은 시온의 눈치를 봤지만 다른 하나는 이미 광분상태여서 전혀 상대와 협상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이 둘은 용병이었다. 시온은 형식상 기사로 알려졌고 그러한 갑옷을 입고 있으니 이들은 시온이 둘의 승패를 기다려줬다가 공격하지 않을까 싶은 방향으로 기울고 있었다.
기사들은 대부분 그렇게 행동했다.
시온이 가만히 있자 눈치 보던 자도 이제야 전력으로 앞에 있는 자와의 전투에 집중했다. 시온이 둘의 결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다시 한 번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급하기 쓸 수가 없는 마법이었다.
준비를 꼭 해야 했다. 다행히도 둘의 실력이 비슷하니 준비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을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곧 염력을 담고 있는 무형의 실이 시온의 손에서 은밀하게 나아갔다. 염력 마법이 좋은 점이 바로 이런 은밀함에 있었다.
화염 마법이나 타격계, 탄환계 마법같이 적을 단번에 박살 내지는 못하지만 이런 장점이 있는 것이었다.
검이라기보다는 상대의 갑옷을 뭉개기 위한 쇳덩이 검들이 서로의 득점을 위해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 둘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
“설마?! 마법사냐?”
시온은 답하지 않고 그대로 메이스를 부여잡고 내달렸다. 함정을 제대로 설치해놓고 걸은 것이 아니라 어설픈 면이 있어서 상대가 반항했다.
하지만 제약이 걸린 탓에 시온의 입장에서는 굼벵이처럼 보였다. 가슴에 메이스를 후려 맞은 자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른 녀석은 더 형편이 안 좋았다. 상황을 짐작한 용병은 도망치려고 어기적거리고 방향을 틀었다. 시온은 재빠르게 쫓아가서 등에 한 방 내려쳤다.
사이좋게 둘의 쇳조각이 빨갛게 변하고 행동불능이 되었다. 시온은 순식간에 구역에 있는 사람을 다 잡아버린 게 됐다.
‘보통 메이스가 아니군.’
과연 엔클리 경을 제압할 때 애먹었던 이유가 있었다. 엔클리 경의 메이스는 시온이 생각했던 것보다 품질이 좋았다.
한 번만 맞기만 해도 갑옷이 바로 걸레 짝이 되어서 쇳조각을 바로 빨간색으로 만들 수 있었다.
‘뒤에 누가 있나.’
“누구지?”
시온은 자기 외의 낯선 기색을 느끼고 바로 말했다. 시온의 보호를 받기로 약속한 종자인 필립스였다. 필립스의 상태는 아주 좋아 보였다.
“아 벌써 끝내셨군요. 시온 경 쪽에 에밀리온 경이 있는 것 같아서 돕기 위해 왔습니다.”
대화는 간단히 해야 했다. 아무래도 규정상 난투전은 개인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둘 정도는 몰래 합작해석 공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처리했다.”
시온의 간단한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당연히 거기엔 에밀리온 경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뜻을 알아차린 필립스가 매우 매우 놀랐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너무 티가 나서는 안 되기에 필립스가 갑자기 도망을 쳤다. 도망가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었다.
사전에 맞춰둔 대로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뭔가 이상했다. 어레이 경의 부탁대로라면 필립스는 시온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필립스가 나타난 시기는 묘하게 빨랐다. 시온이 처리한 속도도 제법 빨랐는데 그거랑 거의 비슷한 속도였다.
‘도망친 건가?’
시온은 필립스의 뒤를 쫓다가 슬쩍 해당 벽을 들여다봤다. 용병 넷이 박살이 나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기사급은 없지만, 분명히 필립스의 작품으로 보였다.
“어레이 경이 걱정할 필요는 없는 녀석이었군.”
저 나이에 벌써 이런 실력이면 오늘 난투전에서 시온의 도움이 없어도 높은 등수를 차지했을 게 분명했다.
ㆍㆍㆍ
구역이 점차 정리되고 시온과 필립스는 상당한 점수를 얻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난투의 상황에 빠지게 됐다.
각 구역을 정리한 승리자들이 마지막 가운데 구역으로 넘어와 난투를 버리게 된다.
얻어야 할 점수가 부족하다면 여기서 다 얻어야 했고 최후까지 살아남지 못한다고 해도 최종점수만 높으면 그만이기에 마지막 장은 시온이 들어갔을 때부터 이미 치열한 상황이었다.
필립스는 나중에 들어오라고 한 상황인지라 시온은 일단 이곳의 입구를 확보해야 했다.
“각오해라!!”
점수가 부족한지 시온이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달리는 남자의 공격을 시온은 피했다.
이곳에서는 아라크네 거미줄을 사용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럴만한 여유가 당장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고렘을 소환할까.’
시온은 남자의 공격을 받으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고렘 같은 것을 사용하게 되면 아무래도 너무 눈치 보였다.
시온은 빠르게 남자를 처리하면서 이제 깨달았다. 신체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곳에서 걸 수 있는 마법은 너무 티만 나지 않으면 됐다. 고로 마법 자체로 공격하는 것은 눈에 걸리지만 비슷한 것은 괜찮았다.
시온은 전격 마법을 메이스에 걸었다. 정확히는 도둑 방지용 마법을 응용해 건 것이었다.
전류가 흘렀기에 이제 메이스와 부딪히기만 해도 저항 방어구가 없다면 꼼짝없이 시온의 공격에 노출되어야 했다.
시온은 바로바로 사냥감을 찾아냈다. 용병들은 멋모르고 시온의 공격을 받아냈다가 감전을 해버리고 이상징후를 보였다. 시온은 그렇게 미친 듯이 상대를 정리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우승해 버린 것이었다.
‘설마 아무도 마법 저항 장비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줄이야.’
기사고 용병이고 간에 그냥 메이스와 부딪히기만 해도 몇 번 받아내지를 못했다. 시온의 감전 마법은 라이트닝 댄스로 인해 발전된 형태였다.
거기에 메이스 자체에 걸린 중량마법과 가속 마법 덕에 시온의 공격을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난투전에는 아무래도 고급 장비를 끼고 오지는 않았다. 마법 관련 장비라면 더더욱 꺼렸다. 어차피 마법사가 참가하지 않는 시합이기에 그랬다.
그런 부분 덕에 마법과 전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온이 알게 모르게 모두의 허점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남은 자는 필립스 하나였다. 필립스는 상대하던 자를 끝내고 주위를 보더니 재빠르게 기권을 선언했다. 애초에 짝을 맞춰서 교묘하게 서로를 보조했던 상황이었다.
이곳의 관리역을 맡았던 어레이 경이 시온의 승리를 발표했다. 시온의 획득 점수는 독보적이어서 따로 승자를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ㆍㆍㆍ
마리 자링은 시온의 수준에 믿을 수가 없었다. 본래의 마음은 그냥 성적을 내라는 정도였고 시온이 우승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정도 참가해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냈다 이 정도만 있어도 나머지는 그녀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우승을 해버려서 일이 곤란해졌다.
“하라고 했다고 정말로 우승을 해버리면 어떡하니. 진짜로.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마법사 아니었어? 기사는 형식상으로 받아놨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저도 이런 결과를 낼 줄은 몰랐습니다. 난투전에 딱히 마법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어서요.”
“그러면 지금 알게 모르게 마법을 썼다는 거야?”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아니 몰랐지. 그냥 두들겨 맞아서 부들거리던데.”
“그게 마법입니다.”
시온은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아무리 고용주라고 해도 어떤 마법을 쓰는지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었다. 언제든지 쓰고 버리는 패가 된다면 솔직했던 점이 오히려 독으로 다가올 터였다.
“후, 난투전은 그냥 마법을 쓸 줄 안다고 해서 우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거기는 정말로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이제 네 이름은 정말로 유명해졌어. 굳이 내 압박이 필요가 없을 정도야.”
그녀는 계속해서 서임 자격문제와 앞으로의 거처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시온은 그 이야기를 대강대강 들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우승상품이 있지 않습니까?”
“있지. 갑옷 한 벌과 무기 중 택일이야.”
그녀가 말하는 것은 다시금 자링 가문의 금고를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기사 장비는 필요가 없어서요. 마법 장비로 받을 수도 있습니까?”
“이제 당당히 요구하는구나. 원래는 안 되는 일인 건 알고는 있는 거지?”
“그리고 제 쪽에 사람 하나 붙여 주십시오. 이번에 같이 봤던 필립스가 좋을 것 같습니다.”
시온을 필립스가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실력이 아니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