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304)

서임(1)

초이와의 계약이 잘 마무리되어 초이에게 제약의 못을 박아넣었다. 스스로 맹약을 맺었으니 이제 함부로 시온을 배신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 있는 것을 빼낼 차례였다. 그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정체불명의 것을 빼기 위한 수술을 말이다.

“그···. 직접 하실 겁니까?”

“아니지. 사람을 하나 구할 생각이다. 의료수술이 가능한 마법사로 수술을 받을 거야.”

의료마법사는 어디에든 존재했다. 펜부르크에는 더더욱 많았다. 하지만 비밀유지가 되어야 했기에 따로 사람을 써야 했다.

“의료마법사가 필요해? 누구 때문에?”

“새로운 노예가 생겼다. 좀 문제가 있는 녀석이라서 소개해줄 만한 사람 있나?”

미아는 침대에서 뒹굴 거리면서 시온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슬슬 강체술에 관해서 물어볼까?’

“있기야 있지. 그런데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는 거 알지?”

시온은 그녀가 비밀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녀에게 가졌던 의문이 드디어 풀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미아가 무언가를 요구할 것 같다는 느낌말이다.

“해줄 수 있는 답변은 최대한 해줄 거야. 그보다 소개해줄 사람은 불법 의료 마법사로 부탁한다.”

“불법? 물론 불법적인 녀석도 알고 있지. 실력도 좋고 입도 무거운 녀석을 말이야.”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시온은 미아가 추가적인 대답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원하는 적당한 대답과 감춰야 하는 것을 고민해보다가 시온이 말했다.

“이번에 노예로 만들려는 자는 초이다. 엔클리 경이 데리고 있던 마법사지 사정이 있어 마리 자링에게서 노예로 빼겠다고 약속을 받았다.”

“아, 그렇게 된 거였어. 그런데 걔가 그거를 허락해줬어? 이상하네. 그런 성격이 아닌데.”

마리 자링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미아는 시온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해줬지. 그래서 바로 소개해 줄 수 있나.”

“가능하지. 그런데 시온. 너 그 육체···. 강체술로 단련하고 있는 거 맞지?”

“강체술? 그게 뭐지?”

“?”

그녀는 벙찐 얼굴이었다. 시온의 표정이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으니까.

“네, 육체는 특이하다고 마나가 흐르는 것 같아.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말아. 강체술을 배우고 있잖아.”

“아니 정말로 모른다. 강체술이란 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대체 그게 뭐지?”

그녀는 시온을 유심히 보다가 시온이 정말로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원래라면 강체술 때문에 시온을 만난 것인데.

그녀의 표정이 냉정해졌지만 시온이 모른다는데 더 요구할 수도 없는 마당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남남이 되기에는 시온의 명성도 자링 가문에서의 입지도 탄탄해져서 투자한 것을 생각하면 손해였다.

그냥 이대로 있는 것이 훨씬 나았다.

“모르면 됐어. 소개해 줄게.”

ㆍㆍㆍ

시온은 그녀가 접근했던 이유에 대해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강체술이라. 그런 고대의 기술을 내가 왜 알고 있겠어.’

시온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도 물러도 너무 물렀다. 마법의 비밀과 육체의 비밀이 합쳐진 강체술이라는 것은 이렇게 단순한 형태가 아니리라는 것이 시온의 추측이었다.

시온은 매일매일 복용하는 푸른 액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을 들킬 일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안 그래도 시온이 조심하고 있는데 아공간 반지를 제대로 다루면서 더욱 은밀함을 배가시키는 데 능숙해졌다.

마리에게서 소개받은 남자는 삼십 후반의 의료마법사였다. 시온은 그의 목에 걸린 문신을 보고 바로 알아챘다. 그는 마탑에서 파문을 당한 자였던 것이었다.

‘마탑의 룰을 어긴 자로군. 그렇다면 뭔가 이상한 짓을 한 모양인데.’

마탑에서 어지간하면 해당 마법사를 파문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룰을 어긴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짓을 저질렀거나 가담했다는 뜻이었다.

“난투전 우승자인 시온 니벨룽 님이시군요. 만나서 영광입니다.”

“영광까지야. 그냥 운이 좋았소.”

시온은 날이 갈수록 자신의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소문이었지만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긴 난투전이라는 것이 그런 용도이긴 하지.’

어제는 제국 용병 관리소에서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승단신청을 해달라는 요구였다. 원래라면 시온이 직접 해야 하는데 시온의 이름이 유명해지면서 적극적으로 제국 용병 관리소가 나서고 있었다.

“이분입니까.”

“내 노예가 된 자요. 그러나 누군가 내 노예의 몸에 이상한 것을 박아놓았소. 그래서 그것의 제거가 필요하오.”

슬쩍 훑어보더니 그가 난색이 되었다. 딱 봐도 그가 찾아낼 수준이 아니었던 거였다. 하지만 찾아내는 것은 원래 시온이 직접 할 것이었다.

이런 비밀리에 숨겨져 있는 것을 이 마법사가 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다.

“찾아내는 건 내가 할 거요. 당신은 그냥 제거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 정도의 장비를 가지고 계십니까? 한눈에 봐도 이건···. 제가 오랫동안 비슷한 일을 해봤는데 잘못 알려준다면 곧바로 신호가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지요. 이 노예는 죽을 겁니다.”

“아니 내가 직접 할 예정이오.”

“마법사였습니까?”

남자는 매우 놀란 모양이었다. 예전에도 많은 오해를 사곤 했지만 난투전에서 우승까지 한 상황인지라 지금은 오해가 더 심했다.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믿으시고 그곳에 있는 것을 제거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탓하지 않겠습니다.”

탓을 한다고 해도 파문당한 마법사인지라 여차하면 튈 것 같았다. 하지만 시온은 위치에 대해선 정확히 말할 수 있었다.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지요. 전 장담 못 합니다.”

이곳의 외과수술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시온은 상당히 흉악한 장비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더러워 보였다. 식견이 없는 자가 봤다가는 고문 도구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소독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이었다. 그가 파문당한 마법사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초이는 수면초를 잘 섭취하고 자고 있었다. 시온은 그의 행동을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는데 의외로 소독이라는 개념을 아시는군요.”

“소독이요? 그게 뭡니까.”

“지금 불로 도구를 한번 훑고 있지 않습니까.”

“이걸 소독이라고 합니까? 고대어입니까? 저는 고대어를 잘 몰라서 죄송합니다.”

누가 의료마법사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럼 지금 하는 짓은 뭡니까?”

“불로 정화하는 거지요. 할 수만 있다면 간단한 공양까지 하고 하는 것이 좋은데 이 노예에게 그렇게까지 투자하실 것 같지는 않고.”

조금 더 물어보고 나서야 시온은 이곳의 실태를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어느 정도 반복된 미신 덕분에 불로 지진 도구로 이런 행동을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프레임은 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시온은 그의 행동을 유심히 보면서 빠르게 배워 나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현대의 지식이 있는 시온은 이곳의 마법사보다 훨씬 나은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간단한 것이라도 주의 깊게 봐둬서 배워두면 나중에 분명히 써먹을 곳이 있을 것이었다.

‘도구 한두 개 정도는 직접 만들어서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메스 같은 거를 제조하다가 팔아도 꽤 돈이 될 것 같았다. 지금 남자가 쓰려는 작은 칼은 생각보다 무식한 식칼 형태였다.

다행인 것은 마법으로 예리함을 늘리게 해서 솜씨 좋게 뭔가를 할 것 같은 기술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입니까? 크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정말 실수하셔서는 안 됩니다.”

시온은 망설임 없이 방향 하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크기도 알려줬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는 게 이런 마나에 대한 기감이었다.

따로 관련 기술을 배우지도 않았지만 시온의 수준은 이미 범인 이상이었고 그것을 넘어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서 이렇게 숨겨져 있어도 쉽게 찾아내는 것이 가능했다.

시온이 너무 간단하게 짚어내자 그의 눈이 좁혀지며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그 정도로 중요하다고 했음에도 너무나 간단하게 짚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 부분에 대해서 감지 마법을 썼을 때 그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방금 아무런 마법도 장비도 쓰지 않았는데 이 위치를 어떻게 아신 겁니까?”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암묵적으로 진행을 요구하자 그가 행동을 시작했다.

한참이 흐르고 시온이 그에게서 받아낸 것은 작은 형태의 조그마한 붉은 구슬이었다. 피가 묻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빨간색의 구슬 같은 형태의 것이었다.

“피의 독이군요.”

“피의 독?”

“독이 있는 영수의 피를 봉인 마법으로 가둔 것입니다. 독특한 방법으로 말이지요. 이런 것을 하려면 마탑의 인물로 보이는군요.”

그가 정확하게 식견을 내놨다. 그의 의견대로 초이의 스승은 마탑의 마법사가 맞았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아마도 낌새가 있었다면 이 피를 풀어서 중독시켰을 겁니다. 완전히 풀게 되면 과다 중독으로 죽겠지요.”

“그럼 이제 안전해진 건가?”

“일단은요. 딱히 제 기술에 실수는 없었습니다. 이대로 치유만 하면 됩니다.”

시온은 그가 하던 행동을 머릿속에서 반복했다. 생각보다 절차 자체는 간단해서 직접 할 수도 있어 보였다.

ㆍㆍㆍ

시온의 서임식은 빠르게 결정이 되었다. 난투전에서 우승을 해버린 탓에 반대자는 거의 없었다. 다만 여기서 세부적으로 협의해야 할 점이 있었다.

진짜 맹약 서임을 받아서는 안 됐다. 그 가문에 속해버리는 맹약 서임은 그 가문을 모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했다. 시온이 받으려는 서임은 약식이었다.

그것도 제일 약한 것으로 받을 계획이었다. 그게 안 된다면 서임을 받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그냥 논의가 있어서 기사 서임이 제시됐는데 그것을 거부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력이라는 것이 남았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왜 약식으로 받으시려는 겁니까.”

어레이 경은 시온의 요구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식으로 약식으로 받으면 가문 내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었다.

자링 가문이 급이 낮은 가문도 아니었고 이런 기회를 약식으로 날려버린다면 이번 계약이 끝나게 되면 자유기사랑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식 서임을 받으면 자링 가문의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고 자링 가문의 추천을 받아 공작 가문의 대리 기사로 나갈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 기사로서의 업적이 생긴다면 그곳에서도 서임을 또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기사가 가지고 있는 길이었다.

‘아직은 정착할 필요가 없지. 많은 마나를 쌓기 위해선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필요가 있으니까.’

시온은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삼갔다. 시온에게 있어서 기사 같은 것은 결국 마법사의 단계를 올리는 많은 마나를 쌓기 위해 가는 길에 얻고자 하는 그런 보조적 지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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