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임(3)
이곳의 서임은 꽤 엄중하게 이뤄지는 편이었다. 절차도 까다로웠고 준비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서임을 내리는 귀족은 무구를 하사하고 받는 자는 맹세를 했다.
‘사람이 많군.’
거대하고 장엄한 건물에는 평민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서임식 자체는 평민에게도 중요하게 다가왔다. 이런 중요한 행사에 참가하면서 조금이라도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시온이 독립하기 위해 가문을 나간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 보통은 이렇게 빨리 기사 서임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지금의 상황은 요행 중의 요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때마침 비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서임식과 그 전에 있었던 난투전 그리고 그 허점을 파고들어서 얻어낸 우승이었다.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은 마리 자링의 눈에 들었다는 점이었다. 서임을 받아야 하는 기사을 중 시온의 나이가 가장 어렸다. 심하면 마흔이 넘는 자도 있었다.
그만큼 서임에서 자리를 하나 받고 기사의 직책을 받아내는 것도 평민에게 있어서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마흔의 사내는 거의 긴장으로 울기 직전의 상태였다. 시온은 그가 견뎌온 바가 대강은 직감되었다.
용병으로 시작해서 경력을 쌓고 여러 가지 다양한 임무에서 살아남으면서 필요하다면 수도회에 정기적인 기부를 해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어쨌든 그것뿐만이 아니었고 각종 상위 교습과 기술을 배워야 했고 기사로 활동할 수 있을 만한 장비를 갖춰야 했다. 보통 이 장비를 맞추는 것 때문에 긴 시간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평민과 귀족 배경의 차이는 거의 장비를 갖출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갈리곤 했다. 이런 장비를 우연히 참가한 곳에서 운 좋게 전리품을 배급받아 좀 더 좋은 장비로 바꿔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선조의 유물이나 여러 가지 운이 좋은 일이 없었다면 그렇게 밑바닥부터 채웠어야 했겠지.’
게다가 마법사의 길을 걷고 있는 시온이 이런 작위까지 받는다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 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여러 가지의 요소가 결합 되어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눈이 많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렸기 때문에 시온 역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시온을 보는 것이었다. 난투전의 우승자이면서 나이가 비교적 어렸고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떤 욕망이 시온에게 투영이 되어 가는 것이었다. 시온은 그 시선을 아주 뜨겁게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곳에서 이곳의 서임식을 채우기 위한 귀족들도 시온을 주목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평민들보다는 소식통이 좀 더 나은 편이라 시온이 마법사라는 점을 들은 나머지 경악하고 있었다.
체격 덕분에 기사라는 오해를 자주 사는 시온은 이번의 고렘 각인술 덕분에 오해받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고렘 각인술은 나름 유명한 편이었다.
게다가 시온의 불꽃 문양은 아무래도 눈에 더 뜨일 수밖에 없었다.
이래나 저래나 서임은 순서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을 자들이 가장 먼저 받게 된다. 그 뒤에는 맹약이 깊은 자가 받게 되고 시온은 마지막쯤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었다.
상관없었다. 시온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과 명예직을 두 개 다 팔아버렸다.
직책은 그렇다고 쳐도 명예직조차도 원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 의외였다.
“그리하여 자네에게 펜부르크의 수호자의 자격을 내리네.”
바로 저것이 원래 시온이 받기로 한 명예 호칭이었다. 이렇게 한 번 저자에게 수여된 이상 이제 수호자라는 타이틀은 거의 반납이 되질 않았다.
그만한 죄를 저질러야 하는데 줄을 잘못 서지 않는 이상 거의 그럴 일은 없었다.
남자의 어깨에 세련된 검이 그의 어깨에 내려졌다. 시온보다도 더 어린 하이거 자링은 여전히 건강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행사 정도는 직접 할 수 있었다.
어깨에 내려지는 검은 이제 그에게 하사될 검이었다. 가장 처음의 검은 나름대로 이름이 있는 검들이었다. 저 검의 이름은 서약자였다.
때로는 검이 아니라 무구나 말이 지급되기도 했다. 그렇게 뒤에 나오는 사람일수록 무기의 질이 떨어지거나 더욱 간소한 무기나 간소한 장비로 바뀌게 마련이었다.
서약자 정도면 마법이 메모라이즈 되어 있는 장비였고 당연히 이런 의식을 떠나서도 팔 수야 없지만 가치가 높았다.
그렇게 하나둘 장비를 받아가면서 서임이 되어 갔다. 이제 시온의 차례였다. 검이 그어졌지만, 그 검은 자링 가문의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이었다.
이것으로 바뀐 지는 중간부터였다. 검을 하사하지 않고 다른 물건으로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이거 자링이 들뜬 표정으로 시온을 봤다.
서임을 내리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하이거 자링은 진심으로 시온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호감이 이번 일을 더욱 쉽게 성취할 수 있게 해줬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다른 자들은 거창한 의식과 맹약을 치렀지만 시온이 하는 것은 자링 가문의 이름을 빌린 가장 약식의 서임이었다.
따라서 그 대상은 자링 가문이 아닌 더욱 거대한 것인 제국이 되었다. 그 힘의 발현인 황제를 따르겠다는 것과 그다음에 자링 가문을 두었고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것과 제국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양어깨에 내려지고 시온은 이제 서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기사수도회에 가입할 수도 있고 기사들이 배울 수 있는 여러 가지 각종 검술과 무기술에 대한 기회가 열린 것이었다.
‘어느 정도 마법사의 단계가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시온이 서임의 물건으로 받은 건 장갑이었다. 장갑이라고 해도 내구력이 좋고 날붙이 종류에 저항할 수 있는 옵션이 붙어 있었다.
‘칼날을 잡을 수 있을까?’
두 번이야 안 되겠지만 한 번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나름 묘수를 짤 수도 있을 것이다.
ㆍㆍㆍ
일단 기사가 되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물론 당장은 말이다. 기사가 되었으니 종자도 둘 수 있었고 펜부르크 내에서 출입이 되지 않는 곳도 없었고 어떤 일을 맡든 간에 추가임금이 붙었다.
가장 먼저 시온이 한 일은 다른 기사들을 찾아가 보는 일이었다. 얼굴도 알고 친해져야 할 필요가 약간은 있었다.
어레이 경의 소개 덕에 안면을 트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시온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자도 많았다.
‘대체 이자는 신도 불공평하지.’
시온을 만난 자들은 시온에 대해서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시온은 엄밀히 말하자면 마법사였기에 마법사이면서 기사 서임에 성공한 그런 자였다. 나이를 생각해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의 결과가 따랐다고 볼 수 있었다.
나이를 생각해보면 발전 가능성이 너무 창창했던 것이었다. 어느 쪽을 간다고 해도 시간이 넉넉해 대성할 것 같은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시온은 몇 명과는 모임에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시온에게서 명예 호칭과 직책을 사간 이들이었다. 시온은 그들에게 값을 받고 그것을 팔았다.
그 금화로 시온이 구입한 것은 화염 강타 코어 마법서였다. 아라크네의 거미줄과 같이 가격이 제법 되는 마법서였는데 이번 기회에 구입을 했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화염 코어 마법서 역시 여섯 가지의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습해서 원하는 것을 꺼내어 적절한 곳에 퍼부으면 되는 방식이었다.
원래라면 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었다. 보통 마법사가 여러 개의 마법을 크게 다루는 것은 위험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몇 배의 마나를 모아야 하는 시온은 치명적인 단점과 같이 이런 장점이 있었다.
이렇게 여러 개의 마법을 다룰 수 있을 만한 마나와 자질이 있는 것이다. 시온이 두 번째 고리 급의 화염계 마법서를 고른 이유는 다름 아닌 고렘 때문이었다.
현재 고렘의 의식에 간섭해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수행시키는 형태의 수련을 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래서는 공격방법이 너무 단순한 것이다. 아직 수준이 낮아서 한 개밖에는 가르칠 수가 없지만 집념체에게 화염 코어 마법식 중 하나를 가르칠 수 있었다.
단파의 고렘 제작 마법서에는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시온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화염계 마법을 골랐다.
저번의 펜부르크 경매장에 비싼 가격 덕에 여전히 걸려 있던 물건이었다. 당시에는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고를지 화염 코어를 고를지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풀려서 두 가지를 모두 확보한 것이었다. 다만 위험한 부분은 두 가지 마법을 쓸 때 얻게 되는 충돌이나 갑자기 부족해 버릴 수 있는 마나 탈진 현상이었다.
전투 중에 탈진상태에 빠지게 된다면 그냥 죽었다고 봐도 좋았다. 그 점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었다.
ㆍㆍㆍ
시온이 나가고 나서 기사들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마리 자링의 사람이 아닙니까? 거리를 두는 것이 좋지 않나 싶습니다.”
“하긴 그 여자를 조심해야 하긴 하지. 부정한 자이긴 하나 엔클리 경도 당했고 하이거 님이 어서 일어나셔야 가문을 바로 세울 것인데.”
“저는 난투전에서 에밀리온 경을 이겼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뒷거래가 있었을 겁니다.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물론 시온 경이 엔클리 경 이상의 단련을 해왔다는 것은 알지만 한 방에 나가떨어지다니요.”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아. 그리고 예의도 바르고. 나는 시온 경이 정당하게 이겼다고 생각하네.”
“예의가 바르다고요, 농담도 지나치십니다. 게르 경.”
게르는 에밀리온 급의 기사였다. 그 역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게르 경은 여전히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나이에 누가 얻은 직책과 명예 호칭을 반납할 것인가.
“자네라면 할 수 있겠나?”
“그건···.”
“어림도 없는 얘기겠지 아니 저 또래의 기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야. 수호경의 호칭을 반납한다는 것은 더욱이 말이야. 그 수호경의 호칭은 누가 압박을 넣은 줄은 알고 있나?”
“마리 자링 이겠죠.”
“맞네. 그리고 거기에 대한 근거를 난투전의 우승자로 잡았지. 그런데 그것을 거절한 거야. 바로 자기 고용주가 압박을 넣는 것을 말이야.”
“..........”
“이게 명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녀석은 마법사입니다.”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숨어 있었다. 흔히 마법사는 이해 타산적이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기사이네. 나는 그가 아주 명예로운 자라고 보고 있어. 앞으로 이런 주제는 불편하니 내 앞에서는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군.”
“...... 진심이십니까?”
“진심이네. 그리고 다음번 모임에는 고렘 구경을 한 번 해보고 싶구먼.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 고렘과 싸워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그럼 소환물은 뻔한 거 아닙니까.”
“전쟁을 겪지 못한 자네 다운 발언이군. 전쟁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목록에는 고렘이 포함된다네. 고렘의 종류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 자세히 파악도 못 하고 고렘에 맞아 죽는 기사를 나는 많이 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