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304)

각질화(2)

시온은 그에게서 각질화를 사고 다시 다른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엔 쉽게 찾을 수 있는 물건은 없었다.

시온이 노리고 있는 것은 실전된 나머지 희귀성이 있지만,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의 깊게 보던 도중 마지막 부분에서 한 가지 고급 재료를 찾아냈다.

덩어리가 진 저것은 영수의 사체가 굳어서 만들어진 것으로 딱딱한 석회질처럼 둘러싸여서 일견 돌덩이처럼 보였지만 저것을 녹여내기만 하면 그 안에 있는 진귀한 것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아마도 저것이 저렇게 무방비하게 놓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저것을 가공하는 방법도 그 안에 있는 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이것을 사고 싶다.”

이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아니었고 제국의 하급관리가 운영하는 잡다한 물건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그 역시 시온을 알아봤다.

“이런 것보다는 시온 경을 위한 것이 따로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시죠.”

“자네도 내 이름을 아나?”

“압니다. 어떻습니까?”

“아니, 난 이것만 있으면 돼.”

누군가가 와서 그의 귀에 속삭였다. 시온이 이미 앞서서 각질화를 샀다는 이야기였다.

“좋은 기사는 좋은 취미가 있는 법이죠. 제국에 서임한 기사에게 값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이건 그냥 드리겠습니다.”

시온은 그렇게 해서 회색 덩어리를 그냥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온도 군말 없이 받은 이유가 있었다. 이번의 회색 덩어리는 금화 다섯 개밖에 하지 않을 정도로 값이 낮았다.

시온은 돌아오자마자 회색 덩어리를 푸른 액에 부었다. 회색 덩어리는 녹여야 안에 있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어떻게 보자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런 값싼 덩어리에 고농도 마나 용액을 부을 수 있는 정신 나간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관리조차 시온의 행동을 좋은 취미라고 납득한 이유는 각질화와 같았다. 이 회색 덩어리는 강철로 내리쳐도 약간의 흠집밖에는 나지 않는 강도를 가지고 있었다.

기사가 이런 취미를 가진다는 건 흔히 그가 맺게 되는 서임에 비교가 되고는 했다. 단단하고 깨지지 않는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거품이 슬슬 생기고 천천히 녹고 있었다. 시온은 각질화도 따로 빼놓았다. 각질화를 다루는 법도 따로 있었다. 그냥 불길에 넣어두는 것이다.

점점 새까맣게 변하는데 이틀 정도를 내리 태운 것에 조제된 물을 부으면 각질이 흐물거려지고 그 안에 있는 줄기를 재료로 쓸 수 있었다.

ㆍㆍㆍ

“요새 통 안 보이던데.”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수련?”

“본래 마법사이니까요.”

“그랬지.”

마리 자링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삼일 뒤에 회의가 있어. 그 회의는 내 사람으로만 이루어질 거야. 습격대를 구성할 거야.”

“습격대?”

“간단한 문제야 펜부르크는 지금 위험해. 몇 가지 조처해야 해. 자세한 건 그때 얘기하겠어.”

대략 알 것도 같았다. 습격이라는 것은 아마도 현재 펜부르크의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을 만한 자링 가문의 숙부와 관련된 것일 거였다.

숙부인 벤 자링은 남작인데 그의 딸의 결혼식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그런데 그 정략결혼의 대상이 옆 영지인 오리엔의 영주였다.

누가 봐도 군대를 빌리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군대를 빌려 아마도 펜부르크를 공격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그 습격이라는 것이 결혼식을 공격하라는 겁니까?”

시온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말했다. 그녀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정확히는 그 행렬을 공격할 거야.”

‘설마 보쌈하라는 뜻인가?’

시온은 냉정한 그녀의 표정에서 혀를 내둘렀다. 어째 독학 여자라고는 매번 생각을 해왔지만 먼저 선수를 칠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이었다.

숙부의 딸이니 안면이 있는 사촌일 것인데 납치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은 섣불리 물어보지는 않았다.

“좋지 않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자링 가문은 맹비난을 받을 것인데요.”

여기서 흔히 말하는 맹비난이라는 것은 현대에서 정치인을 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시온도 자링 가문의 이름과 제국의 관습에 맹약을 맺어 마법사이면서도 서임을 받은 상황.

이곳의 귀족들은 봉신 관계에 있었다. 봉신 관계라는 것은 각자가 징병권과 징세권을 나눠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여론이 좋지 않아지면 당연히 상위 가문에 온전히 힘이 모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실수가 없어야겠지. 이 일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야. 숙부의 행동은 이곳의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트리게 하는 이기적인 행동이지. 탐욕 때문에 가문의 적수에게 자기 딸을 내주겠다는 생각은 진짜.”

마리는 입술을 질근질근 물었다. 아마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첩보원들이 여러 가지 정보를 남모르게 그녀에게 잘 모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와 이번에 만나기로 한 비밀스러운 장소는 저번과는 다른 신전이었다.

오늘따라 깔린 안개는 펜부르크를 가로 짓는 강을 따라서 한 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짙었다.

강의 끝자락에 놓여 있는 이 신전은 제국이 소유하고 있는 도시답게 대체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가 없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신전이었다.

문어의 다리가 길게 이어진 듯한 형태의 신전은 긴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상당히 외곽 구석에 있는 거의 폐건물인지라 집이 없는 하층민들이 얼기설기 살고 있었다.

시온은 이 건축물에서 나오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까부터 묘하게 근질거리는 느낌이었는데 어째 점점 확신이 생기고 있었다.

‘뭔가 있다. 어떤 마나가 숨겨져 있어.’

시온이 이곳을 처음 온 것은 아니었다. 펜부르크의 대략적인 지형을 알기 위해 한번은 들렀었던 장소였다. 그때는 감각에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안개가 껴서인지 강렬한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곳의 각종 기둥에는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온이 알고 있는 대중적인 그 고대 문자가 아닌 소수만 썼을 것이 확실한 해석이 안 되는 특이한 문자들이다.

분명히 관광차 왔을 때는 아무런 의미도 마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약간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시온은 그 문자를 따라서 쭉 느끼며 글자들을 따라갔다.

그 문자들은 신전의 뒤편을 향해서 길이 형성되지 않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나마 보이던 하층민, 뛰어놀던 어린애들도 보이지 않았고 시온은 문자들이 점차 강렬해지는 것을 알아챘다.

마치 숨겨져 있다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이 다가오자 문자에 걸린 자물쇠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잠겨 있었군.’

그리고 강가와 이어져 있는 뒤편에 도착했다. 강한 마나의 흐름은 이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강 아래인가.”

흐르는 강을 보면서 시온은 이 지점이 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확인하기 위해서는 강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미친놈으로 보일 상황이었다. 시온은 잠시 고민했다. 이것을 지금 해야 할지 나중에 해야 할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이런 느낌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안개가 원인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입고 있던 무거운 장비들을 대략 벗고는 가벼운 차림이 되었다.

풍덩!

시온이 강 안으로 뛰어든 것은 동시였다. 오지에서 단련해왔기에 수영 정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유속이 심했다면 절대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야가 보이지 않았기에 마나의 느낌이 강하게 요동치는 곳을 향해야 했고 시온은 그 방향을 향해 더듬듯이 물속에서 휘저으며 움직였다.

만약에 이런 나침판 같은 마나를 감지하는 기감의 재능이 모자랐다면 정말로 위험한 행동이었다. 막상 물속에 들어와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앞으로 열심히 휘저어가며 움직인 결과 가장 요동치고 있는 지점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용기가 필요한 것이지 딱히 엄청나게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덜컥-

돌이 뒤집히면서 길이 하나가 나왔고 시온은 그 돌덩이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자 야광주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빛이 모자랐기에 시온은 아공간 반지에서 적당히 태울 것을 찾아서 꺼낸 뒤 불을 붙였다.

시야가 확 드러났는데 안에 있는 것은 몇 가지의 특이한 빛 덩어리가 있었다.

이 빛 덩어리가 시온을 이끌고 왔던 정체불명의 마나 덩어리였다.

“이게 뭐지? 안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이 공간은 신전 안에 꼭꼭 숨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제단으로 보였다.

낯선 곳이기에 시온은 주의를 집중했다. 마나 덩어리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단순한 마나가 아니라 독이 있거나 사람을 공격하거나 녹일 수도 있는 마나인지는 아직은 알 수가 없었다.

“쇳덩이를 넣어볼까.”

마음을 먹은 시온은 아공간 반지에서 스태프를 꺼내 덩어리 안에 집어넣어 보았다. 하지만 별일이 없었다. 잠시 생각해보다가 그냥 확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곳은 새로운 방이었다. 여러 가지의 물건이 각종 조각상에 끼어 있던 것이다.

“뭐지? 이 조각상들은?”

나름 이곳의 문화를 공부했던 시온은 이런 조각상들을 처음 보았다. 조각상들은 어떤 신의 모습을 본뜬 것 같기는 한데 모두 제각기였다.

일곱 신의 형태도 아니었고 그 외의 다른 신의 형태도 아니었다. 그러나 뭔가 고대 사람들이 숭배했던 신들이긴 한 모양이었다.

‘안개가 깔리거나 특정 시기에만 열리는 장소인가? 강 아래에 비밀 통로로 숨겨져 있었다면 지금까지 발견이 안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시온이 조각상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몇 가지는 불길해 보이고, 몇 가지는 쓸만해 보이는데.”

적어도 시온은 저 중앙에 있는 것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째 영 느낌이 안 좋았다.

‘보라색 천.’

천이 조각상 위에 떠다니고 있었는데 시온이 가지려고 하자 자연스럽게 시온에게 따라 내려왔다. 특이한 촉감을 즐기다가 다른 것을 빨리 살펴보기로 했다.

문어의 머리처럼 휘어져 있는 특이한 형태의 단검을 조각상의 손에서 뺐다.

이어서 책자를 챙겼고 특이한 형태의 옷을 발견했다. 일단 재질이 특이한 게 분명했는데 도무지 비슷한 옷감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을 들어 보니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사 장비라는 것을 알았다.

‘무언가를 소환하는 건가?’

밖에 나가서 시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시온은 이어서 보석과 눈알 모양의 반지를 발견했으나 기감이 요동을 쳤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그런 느낌 말이었다.

‘고리가 낮아서 그런가 보다.’

나름의 추측을 내린 시온은 자신의 직감을 믿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0